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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체력·정신력 그리고 수중전

16강 진출의 마지막 변수

더위·체력·정신력 그리고 수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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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은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또한 부자유스럽게 한다. 축구에서의 ‘압박’도 마찬가지다. 공을 가진 상대선수의 공간을 최소화시키는 게 ‘압박’, 즉 ‘프레싱’이다. 공을 가지고 있는 상대선수를 순간적으로 2∼3명이 에워싸면, 상대선수는 플레이할 공간이 좁아지게 된다. 공간이 좁아지면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선수는 패스미스를 하거나 공을 빼앗기게 된다.

압박할 때 다른 동료선수들도 공을 향해 일제히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압박당한 상대선수의 패스루트를 차단할 수 있다. 물론 마라도나나 펠레 지단같이 개인기가 좋은 선수라면 그 좁은 공간에서도 자기 동료에게 정확하게 패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오히려 압박해 들어가던 팀이 역습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압박은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다. 어느 순간 기습적으로 하는 게 좋다.

압박을 자주 하다보면 상대도 곧 이에 익숙해진다. 체력소모도 엄청나기 때문에 나중에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상대할 미국이나 폴란드가 즐겨 사용하는 것과 같이 상대가 최전방 골문까지 한번에 긴 패스로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도 있다. 그래서 압박은 상대팀에서도 가장 개인기가 떨어지는 선수를 집중적으로 노리는 게 중요하다.

압박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양 사이드와 상대진영이다. 이는 상대의 볼을 빼앗자마자 재빠르게 공격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양 사이드는 가운데에서 사이드라인 쪽으로 2∼3명이 에워싸면 상대는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그렇다고 압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기습공격의 타이밍을 놓친 경우에는 일단 볼을 멈추고 빈틈을 노려야 한다. 원활한 패스 플레이를 펼치면서 상대 수비수들의 실수를 유도해야 한다. 농구처럼 슬슬 공을 돌리면서 틈을 엿보아야 한다.

축구역사상 압박, 즉 프레싱을 가장 잘한 팀은 74서독월드컵에서 준우승한 요한 크루이프의 네덜란드팀이다. ‘오렌지군단’은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돌아가는 ‘압박 토털축구’로 세계 축구팬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다. 리누스 미켈스 감독은 3-4-3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역동성-압박-스위칭 플레이를 능수능란하게 연출했다. 모든 선수가 상대 진영부터 압박수비를 펼치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모든 선수가 공격수가 되기도 했다.



최종 수비라인은 왼쪽부터 ‘루스베르겐-크롤-수르비어’가 맡았다. 이중 센터백 크롤은 압박전술을 총지휘했다. 한국으로 치면 홍명보와 같다. 그는 압박 타이밍과 방법을 동료들에게 지시했다. 때로는 하프라인 위쪽까지 수비라인을 끌어올려 상대진영에서부터 강한 압박수비를 펼치기도 했다.

마름모꼴로 선 미드필더진 4명은 ‘네스켄스-반 하이겜-얀센-한’. 얀센은 한국의 김남일과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상대팀 플레이메이커를 맡았다.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4-4-2로 나온 플레이메이커 오버라트를 묶는 데 주력했다. 오른쪽 미드필더인 한도 얀센의 뒤를 받쳐주면서 수비에 치중했다. 마름모꼴 꼭지점에 서서 플레이메이커로 뛴 선수는 반 하이겜이었다. 한국팀으로선 윤정환이나 안정환의 자리다. 그는 최전방의 요한 크루이프에게 수시로 패스를 찔러줬다. 반 하이겜을 지원한 선수는 올 라운드플레이어 네스켄스.

최전방엔 왼쪽부터 ‘레센브링크-크루이프-레프’가 섰다. 축구천재 크루이프가 공격라인을 지휘했다. 그는 최후방 센터백 크롤과 수시로 고함을 질러가며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공수의 템포를 조절했다. 한국의 홍명보와 황선홍이 서로 소리를 질러가며 마치 풀무를 오므렸다 폈다 하며 음을 조절하는 아코디언처럼 팀의 템포를 조절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네덜란드인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팀도 바로 이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었던 오렌지군단이 모델이다. 한국팀 포메이션 역시 3-4-3이 주다.

압박을 하려면 우선 ‘블록전술’이 전제가 돼야 한다. ‘블록전술’이란 수비-미드필드-공격라인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촘촘하게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최전방 공격라인과 최종 수비라인의 간격이 30m를 넘어서는 안된다. 공간이 생기면 상대선수가 자유로워질뿐더러 압박을 해도 빠져나갈 틈새가 커진다. 3개 라인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동료선수들과 협조가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상대팀 공을 빼앗을 가능성도 커진다. 공격시 블록전술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골키퍼의 역할이 중요하다. 골키퍼는 페널티에어라인 훨씬 앞쪽까지 전진해 리베로 역할을 해야 한다. 골키퍼가 골대 앞에만 있으면 골대와 수비라인의 간격이 너무 넓어 수비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압박’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압박에 실패했을 땐 상대의 롱패스에 의한 역습이 시작된다. 4월27일 한국 대 중국의 평가전에서 중국이 보여준 롱패스 작전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 수비진 뒷공간에 찔러주는 중국의 긴 패스에 한국 수비진은 당황하다가 중국 공격수들을 놓쳤다. 단순한 전술이지만 상대 패스가 정확하고 상대 공격수의 스피드가 빠르다면 눈뜨고 당할 수 있다. 이날 한국도 중국에 결정적인 찬스를 두세 차례 허용했다.

한국과 맞붙을 미국과 폴란드는 바로 이와 같은 역습에 능하다. 패스도 빠르고 정확하다. 미국과 폴란드의 최종 수비라인에는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많다. 이들은 비록 순간동작은 떨어질지 몰라도 시야가 넓다. 한눈에 상대의 빈틈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곳에 긴 패스를 찔러준다. 우리의 홍명보처럼.

거꾸로 우리가 상대로부터 압박당할 수도 있다. 이럴 땐 논스톱 패스와 순간적으로 상대의 뒷공간을 노리는 롱패스가 필요하다. 발빠른 공격수가 상대 뒷공간을 파고들 때 바로 그앞에 공을 찔러주는 긴 패스는 한순간에 상대의 압박을 무너뜨린다. 논스톱 패스는 정확한 볼 컨트롤, 정확한 판단력, 정확한 패싱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논스톱패스를 하면 상대의 압박을 피할 수 있을 뿐더러 순간 역습이 쉬워진다. 부상당할 가능성이 적고 쉽게 피곤해지지도 않는다. 그뿐인가. 결정적인 기회를 잡을 수 있고 공간확보가 쉬워진다. 논스톱 패스가 자주 이뤄지면 상대선수들은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받게 마련이고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게다가 상대 수비수들은 늘 ‘순간역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쉽사리 공격에 가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논스톱 패스는 원터치 혹은 투터치까지만 하는 게 좋다. 그 이상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논스톱 패스가 끊기면 곧바로 역습을 허용하게 된다. 통계상 축구경기 중 뒤로 돌리는 공이 아닌 빠른 패스의 성공률은 스리터치 이상인 경우 10% 미만에 불과하다. 원터치나 투터치 패스에서 끝내야 한다는 뜻이다.

폴란드는 논스톱 패스에 능하다. 더구나 그 패스는 후방에서 단숨에 최전방으로 찔러주는 긴 패스다. 아차 하는 순간에 당할 수 있다. 일본은 지난 4월 폴란드와의 평가전에서 한국이 폴란드와 어떻게 싸워야 이길 수 있는가를 잘 가르쳐줬다. 해답은 ‘강한 압박’에 이은 ‘순간 역습’. 폴란드 선수들은 체력이 강하고 순간 역습에 능하지만, 압박에는 약했다. 몸이 굼떠 순간 압박을 당할 때는 당황하고 우물쭈물 하다가 공을 뺏기거나 엉뚱한 곳으로 공을 차내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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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차장 >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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