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지상청문회|기초자치단체장 임명제 발의 내막

명분은 방만 경영 속셈은 라이벌 견제

  • 안기석 daum@donga.com

명분은 방만 경영 속셈은 라이벌 견제

2/2
기초자치단체장의 인사권 전횡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뉜다. 임명제론자는 기초자치단체장을 선거로 뽑으니까 공무원들끼리 순환보직은 되지 않고 기초자치단체장의 선거운동에 공로가 있거나 잘 보이는 공무원만 승진한다는 것. 따라서 선거철만 되면 지방공무원 조직 내부에서는 줄서기가 횡행하고 이로 인해 행정공백 현상까지 생긴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선거제론자는 임명제 시절에도 줄서기 현상은 있었다고 반박한다. 특히 지금은 주민의 눈치라도 보지만 그때는 임명권자의 눈치만 살폈다는 것. 그리고 선거에 따른 논공행상은 중앙정부와 마찬가지로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현행 지방자치제 아래서는 ‘우리 동네는 안된다’는 님비식 지역이기주의 문제도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다. 시장 군수 구청장이 차기 선거에 당선하기 위해 광역시나 국가 전체 차원에서는 필요하지만 지역주민들의 이해에 반하는 사업은 할 수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쓰레기 소각장 문제. 가령 서울시 강북구 노원구 도봉구는 한 지역구인데 노원구 주민들의 반대로 소각장을 가동하지 못해 피해가 3개 지역으로 확산돼도 속수무책이라는 것.

선거제론자들도 지역이기주의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이 문제를 임명제가 해결해줄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임명제하에서 행정력이나 물리력으로 지역이기주의를 눌러버리면 폭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원자로 폐기물 시설 건립을 반대했던 안면도사태를 예로 든다. 지역이기주의 문제는 주민들의 이해가 반영된 것이므로 설득과 적절한 보상으로 주민 의식의 변화를 유도해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초자치단체장 임명제 문제와 관련해서 찬반 양측의 주장을 분석해보면 찬성하는 쪽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폐해라는 각론을 부각시키려고 하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지방 분권화는 세계사적 대세라는 총론을 앞세운다.



시장 군수 구청장이나 시민단체들은 발의에 서명한 의원들의 자질에 대해서 의혹을 갖고 있다. 이번 법안 발의는 “세계사적 대세에 대한 몰지각과 정치적 이기주의가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광역자치단체장은 선출직으로 하고 시장 군수 구청장은 임명제로 전환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포기가 아니라는 주장은 지방자치의 기본 단위는 주민에 가장 가까운 기초자치단체인 시 군 구라는 지방자치의 기초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동안 학계에서 논의돼온 ‘도폐지론’ 등의 광역자치단체 폐지론에도 어긋나는 후진적 발상입니다.

국회의 공전과 파행적 운영, 국민은 생각지도 않고 당쟁만 일삼고 있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무관심의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고 국회의원 임명제로 바꾸라는 소리가 있습니까. 국회의원들의 이번 발의는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는 겸허한 자세를 갖기는커녕 각 개별법의 합리적 개정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인 문제까지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전가시키면서 입법기관이라는 권한을 남용하여 과거 단체장 임명시절에 지역에서 제왕으로 군림하던 독점적 지위를 다시 누리려는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집권론자와 분권론자의 충돌

시장 군수 구청장들은 이번 발의가 최근에 야기됐던 행정자치부 부단체장의 국가직 전환 시도 등과 함께 지방자치의 부정적 요소를 과장하여 중앙집권적 통제 체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으로 본다. 임명제 시절에 지역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누리던 일부 정치권과 지방행정기관에 군림하던 중앙정부의 이기주의적 사고와 행태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임인배 의원은 “이번 발의는 지방자치제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며 현행 선거제의 폐해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행정개혁이 이뤄질 때까지만 임명제로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지방자치라고 하면 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기초자치단체의 자치를 의미한다. 학계에서는 광역시장이나 도지사는 임명제로 하더라도 기초단체장은 반드시 선거제로 하는 것을 지방자치의 핵심으로 평가한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미국과 일본에서는 주민이 시장을 직선하며,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스웨덴 등 유럽 각국에서는 지방의회가 기초단체장을 선출하거나 지방의회의장이 기초단체장을 겸임하고 있다. 프랑스는 자치단체장을 지방의회에서 선출하는데 1982년 신지방분권법을 제정하기 이전에는 도지사는 임명제였지만 시 읍 면장은 선거제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권위주의적 중앙집권 체제의 폐단을 타파하고 주민에게 권리를 되돌려주기 위해 오랜 투쟁과 산고 끝에 95년에 지방자치가 시작됐다.

따라서 기초자치단체장을 임명제로 하자는 것은 지방자치체의 포기이며 그 배경에는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이 시장 군수 구청장들의 주장이다. 학계에서도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정세욱 명지대 교수는 한 논문에서 “통치권자가 중앙집권화를 위해 자치단체장 임명제를 추진한다면 이에 적극 반대해야 할 의원들이 자치단체장의 임명제를 앞장서서 주장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기초단체장을 임명제로 바꾸자는 국회의원들의 주장은 경쟁자가 생길 여지를 아예 봉쇄해버리자는 의도로 해석했다.

“의원들은 기초단체장의 행태를 나무랄 자격이 없다. 들끓는 비판여론과 질타를 무시하고 파렴치한 행동을 해온 것은 기초단체장이 아니라 다수의 의원들이다. 과거 총선 양상을 보면 여야 후보들은 선심성 공약을 내걸고 경쟁적으로 돈을 뿌려 사회분위기를 이완시켰다. 기초단체장을 임명제로 전환하자는 국회의원들의 저의는 순수하지 않으며 그들의 편협한 이기주의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정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자치단체장 임명제 시절인 95년 6월 이전에는 국회의원들이 민선 대표직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누려왔다. 그래서 주민들이 의원들을 찾아와 아쉬운 부탁을 했고 의원에게만 의지하려 했다. 의원들은 시장 군수 구청장 임명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들을 마치 자기 부하로 여겼다. 한마디로 그 지방의 ‘제왕’으로 군림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95년 7월에 민선단체장이 들어서면서 국민의 대표직을 기초단체장과 분담하게 되었고 국회의원들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약화되면서 민선단체장이 의원들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어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시장과 의원의 자리 배치 신경전

실제로 지역구에서는 의원들과 시장 군수 구청장 간에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가령 지역 행사가 있어 의원들이 참석하게 되면 의전상 자리배치가 기초자치단체장, 지방의회의장, 그 다음이 의원이라는 것이다. 지역이 큰 기초자치체에서는 단체장 1명에 국회의원이 3, 4명인 경우 의원들은 완전히 찬밥신세다. 다음은 임인배 의원의 말이다.

“저는 그동안 지역행사에 참석하면 김천시장 다음으로 자리를 배치해주더니 이번에 발의하고 내려가니까 제 자리를 가장 상석에 배치해놓았어요. 그러니까 기분이 더 나빠요.”

이런 자리 배치에 대해 유정복 김포시장은 다음과 같은 반론을 폈다.

“경기도 부천시, 성남시는 의원이 4명이니까 시의장 자리가 2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원들이 의자 배치에 신경쓰는 것은 권위주의적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축하하러 온 것이지 주최가 아니지 않습니까.”

자리 배치문제 보다도 의원들이 더욱 신경 쓰는 것은 ‘돈’과 관련된 문제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참담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지역구에 내려가서 경로잔치나 새마을체육대회에 참석하게 되면 위신이 서지 않습니다. 의원들은 후원회 기금을 여러 곳에 쪼개 쓰다보니까 몇십만원 정도밖에 못 주는데 시장은 몇백만원, 천여만원씩 쾌척합니다. 시민들이 보기에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장이 내는 그 돈이 누구 돈인데 생색은 혼자서 냅니까. 단체장들은 주민들 돈으로 평상시에도 공공연히 선거운동을 하는 셈입니다. 지방 공기업에 대한 인사에서도 단체장들이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원들은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힘듭니다.”

이에 대해 유정복 김포시장은 “국회의원은 중앙무대에서 국가를 위해 좋은 정책이나 입법을 하는 것이 주임무인데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자체가 잘못된 발상”라고 반박했다.

임명제 법안에 서명을 한 의원들은 이번 발의를 기초자치단체장에 대한 경쟁의식의 발로로 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의원들에 따라 그런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엽적인 문제라는 것.

“서명을 한 의원들이 자기 지역 기초단체장과 사이가 나쁘기 때문에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서 발의했다든지, 차기의 라이벌을 제거하기 위해서 임명제로 전환을 시도한다는 등의 주장이 있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만약 임명제가 통과되면 차기 총선에서 현행 기초자치단체장들이 대거 출마할 터인데 그것이 더 불리한 것 아닙니까.”

임명제론자들은 이번 발의가 통과되지 않더라도 지자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소득이 있다고 평가했다. 선거제론자들도 이번 기회를 통해 국민들이 지자체 제도의 보완과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됐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현행 지자체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거나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논의가 있는 것일까. 먼저 행정자치부에서는 기초자치단체장의 부단체장을 국가직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도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명분은 중앙정부와 인사교류를 꾀하고 지방자치체의 재정부담을 들어주자는 것인데 시장 군수 구청장들은 중앙정부가 기초자치단체를 견제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행자부의 시도를 거부하는 입장이다.

경실련에서는 지방자치단체 부단체장을 ‘개방형임용제’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필요한 인사는 자치단체장이 바라는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국가직으로 못박을 필요는 없고 지방의회에 의한 인사청문회를 거쳐 동의를 받으면 된다는 주장이다.

강형기 충북대 교수는 “지방자치가 다소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자꾸 중앙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은 샘물이 혼탁하다고 소독약을 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지방 자치 능력을 해치게 된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시장 군수 구청장의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주민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YMCA는 임명제 발의에 대해 반대 성명을 내면서 주민참여의 제도화를 강조했다.

“올바른 지방자치의 정착은 주민참여(주민 소환, 주민투표, 주민소송 등) 제도화에 있음을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여기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의원들이 자치단체장 임명제라는, 역사를 후퇴시키는 입법안을 제안한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지자체 존립은 의원들 손에

주민 소환제에 대해서는 시장 군수 구청장마다 생각이 약간 달랐다.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검토해볼 수는 있다며 유보 입장을 보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지역 주민의 이해와 직접 관련된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주민투표제를 도입할 만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김근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제는 찬성하지만 주민 소환제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현 단계에서 주민소환제는 유보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역 주민들이 단체장 자질을 보고 선출해야지 소환하면 지자체가 불안정해집니다. 그러나 주민발의제나 주민투표제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지방의회가 단체장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명예직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지방자치제의 역사가 오래된 다른 나라에서는 재력이 있는 봉건 영주나 귀족들이 명예직 차원에서 지방의원이 됐지만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릅니다. 지방의원들을 전문화해서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장해줘야 합니다.”

발의에 서명한 한 의원은 주민참여제나 지방의회의 견제 기능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다.

“시의회는 1000명당 시의원 1명인데 감히 시장에게 대들 수 없습니다. 대드는 시의원에게는 예산 안 줍니다. 따라서 현재 지방의회는 단체장의 들러리에 불과합니다. 박수부대일 뿐이지요. 주민이 단체장을 감시할 수 있는 제도로 주민감시, 주민투표제, 주민소환제 등을 말하는데 누가 누구인지 다 아는 좁은 지자체 안에서 시장에게 대들 사람이 있겠습니까.”

현행 기초자치단체장 정당 공천 문제에 대해서는 의원과 시장 군수 구청장의 입장이 판이했다. 의원들은 양보를 하더라도 최소한 연합공천이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기초자치단체장은 기초자치단체가 여야 정치구도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인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정당 공천을 배제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정치권이 기초자치단체장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끈인 ‘공천’문제에서 양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앙집권시대에서 분권화시대로 넘어가면 힘의 분산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 임명제 때 행정력만 갖고 있던 시장 군수 구청장들은 이제 행정력 뿐 아니라 주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정치력까지 갖게 됐다. 기초자치단체장들의 정치력이 강해지면서 지역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원들과 충돌하는 와중에 나온 것이 바로 ‘임명제 발의’로 풀이된다. 이번 발의는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의원들이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제의 생사 여탈권을 여전히 쥐고 있음을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신동아 2001년 1월호

2/2
안기석 daum@donga.com
목록 닫기

명분은 방만 경영 속셈은 라이벌 견제

댓글 창 닫기

2019/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