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호

‘美人공장’ 1000곳! 강남 성형외과 타운

  • 김문영 < 자유기고가 > noname01@freechal.com

    입력2005-04-11 14: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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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 7시, 강남 신사동에 위치한 한 성형외과 접수계원들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고객 명단을 보며 일일이 전화를 걸고 있는 것이다.

    “이선미 선생님이시죠? 여기 병원인데요. 내일 오후 3시로 예정된 수술 스케줄 확인하려고 전화 드렸어요. 시간 맞춰 나오시고요, 반지나 목걸이 같은 장식품은 모두 댁에 두고 오세요.”

    원장 외에 네명의 전문의가 더 있는 이 병원은 강남에서도 수술 건수가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전화 문의는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어서 상담하러 오는 사람만 해도 하루 십수 명에 이른다. 환자가 많은 날은 의사 다섯명이 식사를 건너뛰거나 도시락으로 대신해야 할 만큼 바쁘다.

    압구정동 성형타운의 요지경

    강남 최고의 성형외과임을 자랑하는 이 병원은 우선 시설부터 다른 개인병원을 압도한다. 전체 5층 규모의 병원에서 1층을 과감하게 환자 대기공간으로 할애했다. 전화를 받은 환자 쪽에서 “미리 가서 기다려도 되느냐”고 물은 모양이다. “1층에 와서 쉬고 계시면 된다”고 대답하는 접수계원의 목소리에서 병원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 나온다.



    대기실은 최고급 커피숍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호화로운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얼핏 봐도 고급스러운 탁자와 의자, 하얀 벽지와 원목 바닥재가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청동 조각 장식품, 천장 중앙의 번쩍거리는 샹들리에와 조명시설…. 물잔 하나, 휴지통 하나 예사 물건이 없다.

    화장실도 호텔을 무색케 할 정도다. 바깥쪽에는 세면기가 있고 안쪽 좌변기 양 벽면에는 전신 거울이 붙어 있다. 좌변기도 심상치 않다. 위생을 위한 비닐 교환 시설, 비데 등을 포함한 최고급품이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환자들에 대한 배려도 세심하다. 여성지를 비롯한 각종 읽을거리는 기본. 대형 스크린의 TV와 비디오, 다른 한켠에는 인터넷 이용 시설이 갖춰져 있다. 두 대의 PC 모두 최고 기종이다.

    이처럼 성형외과는 인테리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병원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약품 냄새, 병원 냄새도 전혀 맡을 수 없다. 대기실은 물론이고 상담실이나 의사 연구실도 푹신한 의자, 고풍스러운 가구로 채워져 있어 잘 꾸며놓은 가정집을 연상시킨다. 벽에 걸어놓은 전문의 자격증, 의사 사진 정도가 이곳이 병원임을 일깨워줄 뿐이다.

    특히 최근 성형외과 밀집지로 부상하는 청담동 일대는 겉모양마저 주변 화랑이나 고급의상실에 조금도 뒤지지 않을 만큼 고급스럽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간판 하나에도 격조가 있어야 하는 곳이 바로 여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역시 강남 성형외과의 ‘메카’는 신사동이다.

    신사동과 압구정동 대로를 걷다 보면 안과, 치과, 피부과, 성형외과 등 각종 개인의원 간판이 즐비한 것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성형외과, 비만클리닉, 미용센터 등 성형수술이 행해지는 곳이다.

    지하철 신사역이나 압구정역은 역사 벽면의 평범한 광고란조차 다른 역과 다르다. 보통 지하철 역이라면 개봉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는 것이 적당할 듯한 자리에 ‘00성형외과’, ‘00클리닉’ 등의 광고판이 부착돼 있다. 신사역 부근에서도 성형외과가 유난히 많은 신사역과 압구정역 사이, 즉 2번, 4번 출구와 8번 출구 쪽에 특히 많다. 신천, 역삼, 양재 등에 위치한 성형외과 광고도 상당수다.

    강남구정보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강남구 소재 개인의원 수는 488개. 단일 진료과목으로 의원 수가 가장 많은 분야는 성형외과다. 전체 488개 의원 중 110개로 22.54%에 육박한다. 110개의 성형외과 중 54.54%인 60개가 압구정동과 신사동, 청담동에 집중해 있다. 이 지역에서는 전체 개인의원 중 성형외과 비중이 50%를 상회한다.

    정보센터의 집계에 빠진 의원도 있다. 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에는 총 450개 의원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는데 그중 200여 개 의원이 서울지역에, 특히 150여 개 의원이 강남에 분포돼 있다고 한다. 개원의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개원의의 협의회 가입률이 99%라고 하니, 150개가 넘는 의원이 강남지역에 몰려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실제 강남구에서 성형수술을 하는 의원은 1000여 곳에 가깝다. 이는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추정한 수치다. 150여 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외과, 피부과 등 타과 전문의나 외국에서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 성형을 진료과목으로 내 건 경우다.

    의원 중에서도 성형외과는 특히 개원 비용이 많이 든다. 깨끗하고 쾌적하게 꾸미려면 좋은 건물을 임차해야 하고 적잖은 인테리어 비용을 들여야 한다. 수술 장비도 대부분 고가품이다.

    뚱뚱한 여자 ‘못 참는’ 강남

    성형외과가 밀집해 있는 곳에서 눈에 확 띄는 시설을 갖추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장안평에 개원한 국광식 원장은 “강남에서는 인테리어 비용으로 평당 200만원이 필요하다. 100평 기준으로 인테리어 비용만 2억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성형외과 개원의(開院醫) 대다수는 빚을 낸다. 의사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가 수월하다. 신용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물론 자금이 풍부하다면 빚을 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신사동에서 5층 규모의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김병건 원장은 “지금까지 빚을 져 본 적은 없다”고 밝혔다.

    강남의 성형외과 수술비는 강북이나 지방에 비해 확실히 비싸다. 단순 비교하면 크게는 30%, 최소 10% 이상 차이가 난다. 강남 지역에서 쌍꺼풀 수술비는 120만원 이상. 요지가 아닌 강북 변두리지역에서는 80만원 선이다.

    압구정동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박 아무개 원장은 “압구정동에서는 커피 값도 더 비싸지 않은가”라며 “하지만 환자에게 부담을 줄 만큼 큰 차이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600만원 규모의 수술이라면 강남과 강북의 수술비가 많게는 200만원까지 차이 날 수도 있다. 그런데도 강남에는 ‘200만원 차이가 부담스럽지 않은 환자들’이 있어 의사들을 만족시킨다.

    국내에서 성형외과가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다. 당시 유명한 성형외과들은 대부분 명동, 신촌에 밀집해 있었다. 두 곳 모두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패션의 중심지였다. 특히 명동은 최고급 의상실과 각 은행 본점, 백화점과 사채시장 ‘큰손’들이 활개치는 부의 근원지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경제적 패권이 강남으로 넘어왔다. 압구정동이 옛 명동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성형외과들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겨와 지금은 지하철 3호선 신사역에서 압구정역에 이르는 거리 전체가 성형외과 밀집지역으로 변모했다. 압구정 중심가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새롭게 부상하는 곳이 청담동이다. 거부들이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청담동 빌라촌으로 옮기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편리한 교통이 강남지역의 이점 중 하나. 특히 신사역, 압구정역 등 지하철역에서 가까울수록 규모가 큰 의원이 많고 지명도도 높다. 여성 유동 인구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지하철 강남역 6번 출구 쪽, 뉴욕제과와 외환은행 앞은 대표적인 약속 장소다. ‘물’ 좋기로 유명한 이 일대에서는 소위 ‘쭉쭉빵빵한’ 여성을 흔히 볼 수 있다. 사람 구경 좋아하는 젊은 축들이 벤치에 늘어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릴없이 바라보는 모습도 흔한 풍경이다.

    이 거리는 일명 ‘찌라시(전단)’ 천국이기도 하다. 지하철 출구에서부터 100m가 채 안 되는 거리를 걷는 동안 최소 10명 이상의 ‘삐끼(홍보원)’를 만나게 된다. 영어학원, 디자인학원, 카드 깡, 인력 알선 등 내용도 다양하다.

    요즘은 단순히 전단을 뿌리는 행위를 넘어서 고도의 전략을 구사한다. 타깃 마케팅이라고 해야 할까. 우선 목표 행인을 정한 다음 가까이 접근해 “설문조사를 한다”며 말을 붙인다. 한가하거나 순진한 사람이라면 간단한 설문조사쯤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실상은 설문조사를 빙자한 홍보행위다.

    “최근 2년 동안 건강진단 받은 적 있으세요?”

    “어떤 이유로 안 받으셨어요?”

    “다이어트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신 적 있으세요?”

    “몇 kg정도 빼고 싶으세요?”

    “저렴한 비용에 확실히 살을 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해보시겠어요?”

    이쯤 되면 누구나 이 설문 조사의 목적이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광고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묻지도 않았는데 “확실한 단식 프로그램이 있다”는 둥 “지방흡입술도 저렴하게 받을 수 있다”는 둥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돈 없다”, “살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강경하게 나가 보지만 순순히 물러날 설문조사원(?)이 아니다. “남들처럼 예쁜 옷 입고 싶지 않으세요?”, “그냥 이대로 살자고 생각하세요?”하며 속을 긁어 놓는다.

    아무리 강남이라지만 예쁘고 몸매 좋은 사람들만 다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다이어트를 해야 할 만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홍보요원들은 뚱뚱한 사람이 그냥 지나치게 놔두지 않는다. 몸매에 지나친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강남 거리에서는 어느새 주눅들기 쉽다. 아마도 강남지역에 유독 성형외과가 많은 한 이유일 것이다.

    이와 관련 압구정동에서 개업중인 박 아무개 원장은 “모던한 사회일수록 성형이 많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말하는 ‘모던한 사회’란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다. 미덕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권장’된다.

    강남지역 전문의들은 최근 몇 년 새 성형수술이 급속히 보편화하면서 환자층도 매우 다양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압구정동 C성형외과의 최재원 원장은 1989년 초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국내 성형외과 전문의 1세대에 속한다. 10년 전 논현동에서 개원했다가 7년 전에 압구정역 부근으로 옮겼다. 최원장은 “10년 전에는 나이든 여성들이 몰래몰래 수술을 받았다. 최소한 20대 중반은 넘었다. 그러나 지금은 열 살도 안 된 아이의 손목을 끌고 오는 엄마들까지 생겼다. 남자 환자도 전체의 10%를 넘는다”며 “남녀노소의 구분이 점차 무의미해져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비 내리는 7월 중순의 어느날 오후, 중년 여성과 그보다 더 연상으로 보이는 부인 한 사람이 병원으로 들어섰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 소파에 앉은 두 사람은 약간 긴장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괜찮을까?”

    나이가 더 지긋한 쪽이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서울 반포동에 거주하는 시어머니 최희정(63·가명)씨와 며느리 김미성(40·가명)씨였다.

    최씨는 최근 손녀의 권유로 주름살 제거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다 늙어서 몸에 칼을 대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수술 없이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구미가 당겼다. 걱정하던 아들 내외도 이내 “일단 상담을 받아보자”며 긍정적인 쪽으로 돌아섰다.

    며느리 김씨의 친구 중 압구정동에서 주름살 제거 수술을 받은 이가 있었다. 그 친구는 주름살이 많은 편이라 수술을 해야 했지만 심하지 않은 사람은 약물치료나 방사선치료도 가능하다고 했다. 시어머니 최씨는 나이에 비해 고운 편이었다. 김씨는 친구가 권하는 병원을 찾아 상담 날짜를 받았다.

    “친구들도 다 나더러 젊은 편이라고 해요. 그래도 젊어지고 싶은 욕심이야 끝이 있나. 손녀하고 아들, 며느리 다 해보라고 하니까 슬슬 욕심이 나데.”

    최씨가 치료를 받고 싶어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아들 며느리가 잘 해줘서 팔자 좋은 노인네라고 늘 친구들한테 부러움을 샀는데, 성형수술까지 했다고 하면 더 부러워할 것”이라는 셈속이다. 자매 같아 보이기까지 하는 두 부인의 모습은 분명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했다.

    “에미는 뭐 자기도 수술하고 싶으니까 나한테 먼저 하라고 떠민 것 같은데….”

    며느리를 슬쩍 흘기는 최씨의 표정에서 흐뭇함이 느껴졌다.

    뼈를 깎는 고통을 참고

    좁은 이마 때문에 고민하던 강미연(26·가명)씨. 강씨는 이마 수술을 받고도 한동안 ‘피통’을 달고 있어야 했다. 이마를 가르는 대수술을 하고 난 후라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물론 말못할 고통이 뒤따랐다. 하지만 결과는 좋았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믿게 된 강씨는 친구에게도 성형수술을 권했다.

    강씨의 친구인 박수진(가명)씨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두 눈의 크기가 달랐던 것. 그냥 봐서는 이상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인데 사진만 찍었다 하면 여지없이 표가 났다.

    짝눈으로 고민하던 박씨는 성형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잠깐의 고통은 감내할 수 있겠다 싶었다. 수술 받는 김에 콧등도 높이기로 했다. 강씨가 수술을 받은 압구정동의 한 성형외과를 방문했다.

    수술비는 한쪽 눈과 코를 합쳐 210만원이었다. 박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은 적금을 깨기로 결심했다. 돈 때문에 망설이다가는 수술 결심도 흐지부지될 것 같아서 서둘렀다.

    박씨는 유아교육 전문업체에서 방문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4월 초순으로 수술 날짜가 정해졌는데 의사는 회복기간까지 2주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휴가철도 아니고 회사에서 2주씩이나 휴가를 내줄 리는 만무했다. 성형수술 때문이라면 더욱 어려울 터였다. 고민하던 박씨는 퇴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방문교사 자리는 늘 있는 편이라 용단을 내릴 수 있었다.

    “적금을 해약하고 회사를 그만두면서까지 수술을 받는 것이 남들 보기에는 이상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고민을 계속 안고 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어요. 주위에서도 자신한테 투자하는 거니까 나쁠 것 없다고 격려해 줬고요.”

    물론 만류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대로도 예쁜데 왜 수술을 하느냐”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부모님 반응이 어떨지 두려워 성형 수술 사실을 숨겼다. 일산에서 자취하는 처지라 일주일에 한 번 보는 부모님 눈을 속이기는 쉬웠다.

    수술을 받기로 한 날, 의사가 박씨에게 한 가지 수술을 더 받으라고 권했다.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를 깎으라는 얘기였다. 처음에는 딱 부러지게 “싫다, 예정된 것만 하겠다”고 말했지만 의사의 말을 계속 듣다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안면윤곽 교정도 원했던 친구를 “그럴 필요 없다”며 만류했던 의사라는 점 때문에 더욱 신뢰가 갔다. 눈, 코, 광대뼈 세 가지를 함께 하면 수술비도 싸진다고 했다. 의사가 제시한 금액은 600만원. 예상을 크게 뛰어넘었지만 욕심이 앞섰다. 일부는 현찰로, 일부는 카드로 결제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봤다. 현찰을 많이 내 수술비 중 30만원을 더 깎을 수 있었다.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찾아왔다. 박씨는 그때의 고통을 “죽다가 살아났다”,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고 표현했다. 강씨와 마찬가지로 박씨도 수술 결과가 좋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수술을 했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부모님도 눈치채지 못했다.

    결과가 좋자 또 욕심이 생겼다. ‘뼈를 깎는 고통’도 희미해져 갔다.

    “만족하기보다 욕심이 자꾸 생겨요. 겁도 없어졌고요. 돈 있으면 또 하고 싶어요. 일단은 턱을 깎고 싶어요.”

    아픈데도 더 예뻐지고 싶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다. ‘이러다 성형수술 중독이 되는구나’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압구정동의 박모 원장은 “하루 세끼 먹는 것도 힘들던 1960, 70년대에도 성형은 있었다”고 말한다. 성형은 크게 재건성형과 미용성형으로 나뉜다. 재건성형은 교통사고나 화재로 인해 손상된 신체, 선천성 기형에 대한 치료 및 수술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6·25 전쟁 직후 재건성형 분야에서 성형수술이 시작됐다. 1950년대에 국내에 들어온 미국인 의사들이 언청이 시술을 한 것이 그 시초다.

    1950, 60년대에는 무면허 의사, 소위 돌팔이들이 ‘미용’을 목적으로 성형수술을 했다. 타과 전문의가 성형을 겸하다가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성형외과가 일반외과에서 분리돼 전문화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경제성장과 맞물려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미용 성형의 역사는 이처럼 오래된 것이다.

    성형 붐에 대한 비판의 근거는 ‘획일화된 아름다움’이다. 큰 키와 날씬한 몸매, 갸름한 얼굴, 오똑한 콧날, 주름살 없는 피부 등 미디어에 의해 모델링된 이른바 ‘미인의 조건’ 때문에 지금의 사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성형을 “왜곡된 미적 관념에 사로잡힌 여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물론 미용성형에 치료적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재원 원장은 “성형은 일종의 심리치료”라고 말했다. 실제로 ‘남 보기 예쁜 사람’보다는 한두 가지 결점이 있는 사람들이 수술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점에 계속 신경 쓰며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느니 성형으로 해소하는 것이 낫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 ‘결점’이라는 것에 객관성을 부여하는 것도 ‘사회적 통념에 따른 미의식’이다.

    압구정동 C성형외과에서는 홈페이지를 이용해 네티즌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얼굴이 예쁜 사람이 사회에서 더 우대받는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다. 7월10일 현재 응답자 1061명 중 90.8%에 해당하는 963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예쁜 사람이 사회에서 우대받는’ 현실 에서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니 생긴 대로 살자’는 식의 충고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탤런트들이 예뻐 보이는 건 매스컴의 조작 때문이야. 난 이대로도 충분히 예뻐”라고 확신할 수 있는 여성이 있다면 그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슈렉’의 피오나 공주는 만화 주인공일 뿐이다. ‘마녀의 저주를 받은 못생긴 공주가 진실한 사랑을 통해 아름다움을 되찾는다’는 환상은 ‘슈렉’에서 유쾌하게 파괴된다. 공주 피오나는 알고 보니 괴물 슈렉 못지않은 추녀였고, 영화는 두 추남 추녀가 황홀한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드림웍스가 제작한 ‘슈렉’은 ‘디즈니의 불온한 사상을 뒤집은 걸작’으로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슈렉’의 관객들은, 머리로는 마음이 아름다운 있는 그대로의 피오나를, 마음으로는 날씬하고 아름다운 피오나를 선호한다. 영화를 보고 나온 한 여성은 “피오나가 추녀로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기분이 찜찜하다. 사실은 슈렉까지 멋진 왕자로 변해야 제대로 된 영화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환자들은 주로 어떤 것을 요구할까. 남성이건 여성이건 서구적 미의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세원성형외과의 오세원 원장은 “동양인의 50∼60%는 쌍꺼풀을 갖고 있지 않다. 얼굴 윤곽도 밋밋한 것이 특색이다. 서양인은 90%가 쌍꺼풀을 갖고 있고 얼굴 윤곽도 뚜렷하다. 쌍꺼풀 수술이나 얼굴 윤곽 수술, 코 높이는 수술 등 주요 성형수술은 모두 서구적인 미의 기준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쌍꺼풀 수술 방향도 ‘둥글고 큰 모양’에서 ‘작으면서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바뀌었다. 국광식 원장은 “예전에는 둥근 얼굴에 어울리게 둥근 쌍꺼풀을 요구했다면 지금은 서구적인 모양을 많이 찾는다. 탤런트 이나영처럼 밖으로 열리는 쌍꺼풀, 약간 날카로워 보이는 모양이 인기”라고 말했다.

    무조건 서구적 미인을 모방하는 풍조에도 변화는 있다. 오세원 원장은 “서구화가 한동안 유행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되 자연스럽게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수술해주기를 바라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매몰법으로 해주세요”

    환자들의 요구사항은 점차 다양화, 전문화하는 추세다. 성형 부위의 모양뿐 아니라 수술방법에까지 까다롭게 신경을 쓴다.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인 만큼 환자들은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성형 정보를 얻는다. 예전에는 의사와 상담하러 와서도 수동적으로 조언을 듣는 환자가 많았다면 지금은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필요한 질문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환자가 더 많아졌다.

    관상을 보고 와서 이런저런 모양으로 바꿔달라고 주문하는 환자도 많다. 심지어 점술가에게 수술 날짜와 시간을 받아오는 경우도 있다. 의사로서는 스케줄이 겹쳐 난감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환자는 강경하다. 환자는 “정한 날 수술을 받아야 예쁘게 되고 운세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의사를 설득한다. 최재원 원장은 “환자가 원하는 때에 수술을 해야 심리적으로도 안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환자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말했다.

    전문의들이 가장 곤란해하는 문제는 ‘환상을 갖는 환자가 많다’는 것. 심영기성형외과의 심영기 원장은 성형외과의 애로로 “성격에 장애가 있는 환자를 상대하는 것”을 첫째로 꼽았다. 상담을 통해 환자가 원하는 것과 의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을 줄여야 하지만 ‘무조건 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그래서 전문의들은 환자에게 공통적으로 성형은 매직(마술)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주부 이진선(45·가명)씨. 이씨는 12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코 수술을 받은 일이 있다.

    “언론에서는 할 일 없고 돈 많은 유한부인의 사치라고 매도했죠. 하지만 국내 수준을 믿을 수 없었어요. 게다가 성형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아서 성형수술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지요. 두 달간 여행 겸 다녀왔어요.”

    이씨는 당시의 선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고 지금 이씨는 주름살 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 압구정동의 한 성형외과에 와 있다. “숨길 이유도 없거니와 국내 의료수준도 많이 높아진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다.

    성형은 마술이 아니지만 기술은 점차 완벽해지고 있다. 얼굴에서 신체 모든 부위로 확장됐고, 간단한 수술에서 복잡한 수술로 진화했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많이 행해지는 수술은 눈, 코 수술이다. 눈, 코 수술은 국내 미용성형의 초기 단계인 1960년대에 시작됐다. 심영기 원장은 “1970년대에는 유방확대와 축소 수술이 보급됐고 1980년대에는 광대뼈나 턱뼈 등 뼈를 깎는 고난도 수술이 본격적으로 행해졌다. 1990년대 들어서는 주름제거수술과 지방흡입수술이 많이 보급됐다”고 설명했다.

    지방흡입도 예전에는 국소 비만을 치료하는 수준이었다. 1500∼3000cc의 지방을 뽑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몸무게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최근에는 5000∼7000cc의 대량 흡입이 시도되고 있다. 시술한 경우 몸무게 3∼4kg이 줄어든다.

    D성형외과 송홍식 원장은 “10년 전 교과서에는 지방을 1500cc 이상 빨아내면 수혈이 필요하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5000cc, 많게는 8000cc까지 뽑아낼 수 있다. 출혈을 줄이면서 안전하게 흡입하는 테크닉이 발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편 의료수준이 높아지면서 복잡한 수술을 간단하고 빠르게 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달하고 있다. 쌍꺼풀 수술은 ‘절개법’이 가장 일반화돼 있지만 시간이 적게 드는 ‘매몰법’이 점차 각광받는 추세다. 매몰법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수술법이 아닌데도 매몰법으로 해달라고 떼쓰는(?) 환자가 있을 정도다.

    주름살 제거 수술로는 ‘보톡스시술법’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보톡스는 주름살이 있는 부위에 약물을 투여해 주름살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시간이 적게 들고 통증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서울대의대 피부과의 서구일 박사는 보톡스를 소개할 때 늘 “차 한잔 마실 시간이면 시술이 끝나고 남편도 모른다”고 말한다.

    신기술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신기술일수록 검증이 덜 됐다는 뜻이기 때문. 오세원 원장은 “장안에 화제를 몰고 왔던 기술이 많은 의료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성형외과 의료사고의 범위는 상당히 넓은 편이다. 단순하게는 환자가 육체적 고통을 겪지는 않지만 수술 전보다 오히려 안 좋은 모양이 나오는 경우가 있고 그 외에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찾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환자가 수술중 사망하는 사고도 일어난다.

    지난 1월 유방확대수술을 받은 20대 김진영(가명)씨의 사연이다. 지방에 거주하는 김씨는 평소 빈약한 가슴 때문에 고민하다가 유방확대수술을 하기로 결심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가 서울 소재 유방전문클리닉을 알게 됐다. 전화를 걸었더니 의사는 “멀어서 불편하더라도 최상의 결과를 얻으려면 이곳으로 오라”고 권했다.

    수술을 받기 전에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결과는 ‘최상’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대충 보기에도 모양이 부자연스러운데다가 딱딱하고 한쪽 가슴에는 주름까지 생겼다. 그런데도 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흉터부분도 줄일 겸 200만원을 더 들여 재수술을 하자”고 했다. 이미 수술비를 600만원이나 들였는데 200만원이 더 필요하다니, 김씨는 어이가 없거니와 재수술 비용도 문제여서 조처를 취하지 못하고 집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몇 개월 후, 겨드랑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외과에 갔더니 가슴에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근처 성형외과에서는 “수술이 엉망으로 됐다”며 “당장 가슴에 삽입한 백을 제거해야 한다. 언제 백이 터질 지 모른다”고 했다.

    김씨는 당연히 수술한 곳에서 백을 제거해주고 수술비 600만원도 돌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술한 의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일단 변호사를 찾아보기로 했다. 변호사는 “민사 소송을 하려면 현 상태를 보존해야 하므로 재수술을 받아서는 안 된다. 소가 제기된 후에 내가 재수술 때 참관해 사실을 입증하겠다”고 했다. 또 “소송에 이기더라도 실익이 적으니 가능한 한 의사와 타협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했다.

    성형사고뿐 아니라 대부분의 의료사고는 피해자와 가해자 간 ‘합의’로 해결된다. 그리고 그 합의 조건은 주로 ‘돈’이다. 성형외과는 피해가 아주 심각하지 않은 이상, 무료로 재수술을 해주는 선에서 처리가 끝난다. 물론 의사에 따라서는 김씨가 수술 받은 곳처럼 재수술 비용까지 환자에게 부담시키려 드는 경우도 있다.

    의료사고 소송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워낙 전문적인 분야라 웬만해서는 문제 파악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김씨 사고처럼 부작용이 심각한 경우에는 소송에 유리한 편이다. 하지만 ‘모양이 이상하게 나온’ 정도로는 의사 과실을 입증하기 어렵다. 우선 수술 전 모습과 수술 후 모습을 명확하게 비교해볼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성형외과에서는 기본적으로 수술 전후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환자의 요구에 따라 사진을 제공하는 의사는 많지 않다.

    환자가 의사로부터 자신의 진료기록을 넘겨받을 수 있는 권한을 인정받은 것도 최근의 일이다. 2000년 7월에 시행된 개정의료법에 이르러서야 환자의 진료차트 교부권이 인정됐다.

    더구나 성형 분야는 보험 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진료비 납부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곳도 많다. 의사가 “수술하지 않았다”고 딱 잡아떼면 더 이상 대책이 없는 셈이다.

    ‘ 장애’판정받기 힘든 성형사고

    주부 신유라(31·가명)씨는 지난 1995년 명동의 한 성형외과에서 코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예뻐지기는커녕 누가 봐도 이상했다. 신씨는 이 성형외과에서 세번에 걸쳐 재수술을 받았다. 그래도 결과가 좋지 않자 의사는 수술비를 줘서 압구정동에 위치한 다른 성형외과로 신씨를 보냈다. 옮긴 곳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두 번의 재수술을 하고도 “한번 더 해보자”는 말을 듣고 말았다.

    6년간 일곱 번의 재수술을 받으면서 신씨는 우울증, 망상장애 등 정신장애에 시달리게 됐다. 부부관계에도 문제가 생겼다. 신씨는 참다못해 정신과 전문의 소견서를 첨부해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여섯 번 수술을 받는 동안의 물적·정신적 피해 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다.

    법적 대응을 위해 신씨가 찾은 곳은 의료사고에 관한 무료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사고가족연합회(www.malpractice.co.kr, 약칭 의가연)’. 이곳을 통해 변호사도 소개받았다.

    의가연의 이진열 회장은 “의료사고는 변호사도 잘 나서지 않아 처리하기 힘들다. 특히 미용 성형 사고는 더 힘들다”고 말했다. 변호사는 보통 소송금액의 일정부분을 수임료로 받는데 의료사고는 소송액수가 적다. 최악의 상황, 즉 환자가 사망해도 보상액은 10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성형 결과가 안 좋은 정도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즉 모양이 잘못 나왔다는 점, 그 잘못이 의사 과실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인정받더라도 환자가 의사한테 요구할 수 있는 법적 책임에는 한계가 있다.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 판정의 기준은 ‘직업별 노동력 상실도’이다. 그런데 성형사고는 ‘장애’ 판정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코 모양이 명백히 이상해졌다고 해도 주부인 김씨의 노동력에는 별 영향이 없는 것으로 판정되기 쉽다. 따라서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아주 적은 보상금을 받게 된다.

    김씨는 계속되는 성형 실패로 정신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눈물로 세월을 보내기 일쑤고 외출이라도 하려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닌다. 우울증, 망상장애 등의 정신질환을 겪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성형사고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인정한 판례는 없다.

    성형사고에 따른 장애 판정으로는 ‘얼굴마담’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얼굴’이 노동력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의사가 성형사고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얼굴마담의 노동력 상실도는 60%로 판정됐다.

    최근에는 지방흡입술을 받은 38세의 여성 장모씨가 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장씨는 수술로 인해 화상을 입고, 반점이 생긴데다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는 증세까지 겹쳤다.

    장씨는 낮에는 컴퓨터 시스템 엔지니어로, 밤에는 카페 여종업원으로 일하며 월 530만원을 벌고 있었다. 재판부는 장씨가 컴퓨터 기술자로 60세, 카페 여종업원으로 45세까지 일할 수 있는 만큼 예상 소득과 위자료 1000만원을 합해 총 7400여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 해 동안 의가연에 접수되는 의료사고 상담건수는 1500∼2000건이다. 그중 의가연에서 검토해 사고로 판명되는 것은 500건 안팎. 의가연 설립 당시인 1991년 8월부터 1992년 11월까지 일 년여 동안에는 총 532건이 사고로 판명됐다. 그중 환자와 병원 사이에 합의가 이뤄진 경우는 91건. 532건 중 성형분야 사고는 21건이었고 4건이 합의로 처리됐다.

    이회장은 “성형외과들은 평판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버틸 수 있을 때까지 과실을 부정한다”고 지적했다. 소송이 까다롭고 승소해도 실익이 적다는 점은 의사 측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환자들은 변호사 선임이 어렵고 비용도 부담스러워 소송 시도조차 못 한다. 환자가 승소할 확률도 낮다. 환자의 불리한 처지를 악용해 의사가 무성의하게 나오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고 소문이나 평판이 의원 운영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강남의 한 개원의는 “물론 양심 없는 의사도 있다”고 전제한 후 “사람이 죽어나가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됐는데도 의원은 별 무리 없이 운영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성형사고에 대한 사후처리가 이 지경이라면 환자들은 수술이 별 탈 없이 끝나기를, 운 좋게 실력 있는 의사 만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성형사고 대책으로 몇몇 의원들은 ‘보험’을 이용한다. 2년 전 삼성생명, LG화재 등 주요 보험사에서 성형사고 보험상품을 개발했다. 교통사고와 마찬가지로 성형사고가 일어나면 보험사가 의원을 대신해 사태 수습에 나선다. 환자에게는 그나마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피해를 입은 후 보상받는 것보다는 아예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이 낫다. 그래서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꼭 성형외과 전문의에게 수술받을 것”을 강조한다. 미용실이나 비만클리닉 등 의원이 아닌 곳에서 행해지는 무면허 수술은 말할 것도 없고, 타과 전문의들이 하는 수술도 위험하다는 것.

    의원명칭으로 ‘성형외과’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성형외과 전문의뿐이다. 성형외과의원은 의료법시행령에 따라 국내에서 성형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의사가 개원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보통은 간판만 보고도 성형외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곳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타과 전문의가 성형수술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피부과 전문의가 성형수술을 할 경우에는 진료과목에 ‘성형수술’을 포함시킬 수 있다. ‘성형외과’라는 간판을 걸지만 않으면 된다. 실제로는 타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의원이 성형외과 전문의원보다 훨씬 많다.

    타과 전문의에 대한 성형외과 전문의들의 공격은 거세다. S성형외과의 강윤섭 원장은 “지방흡입술로 물의를 일으킨 개그우먼 이영자씨 사건의 담당의사도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니다”며 “타과 전문의들 때문에 성형외과 전문의들까지 매도당하는 것은 불쾌한 일”이라고 말했다.

    타과 전문의라고 해서 한결같이 매도당하는 것을 유쾌하게 여길 리는 없다.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신사동에서 성형의원을 운영하는 김모 원장은 “수련과정에서 성형외과술도 배웠다. 정형외과는 성형외과와 매우 비슷하다. 성형외과 전문의라고 해서 다 수술 잘하는 것은 아니고 타과 전문의라고 다 못하란 법도 없다. 이영자씨 경우에도 수술 내용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명예냐 돈이냐

    타과 전문의로 분류되는 의원 중에는 해외파가 운영하는 곳도 있다. 압구정동의 한 성형외과는 외국에서 성형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박아무개 원장이 운영하는 곳. 박원장은 “일반외과 수련과정을 몇 년간 거치고 성형을 하고 싶어서 성형외과 수련도 받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국내 전문의보다 더 오랜 기간 수련을 거쳤다. 굳이 국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야 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광식 원장은 해외파에 대해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국내 자격을 취득하고 떳떳이 성형외과 간판을 거는 것이 낫지 않으냐”고 말했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되는 과정은 타과와 마찬가지다. 의대 6년, 인턴 1년을 마치고 4년간 전공의(레지던트) 수련 과정을 거친 후 전문의 자격취득시험을 볼 수 있다.

    성형외과 전문의 제도가 생긴 것은 1970년대 중반. 제도가 생긴 지 20여 년 만에 가장 경쟁률 높은 분야로 인정받을 만큼 크게 성장했다. 성형외과가 인기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고수익이다. 또 팀을 이루지 않고 혼자서 수술할 수 있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지원자의 적성에 맞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1980년대 초반에는 성형외과 전공의 과정에 들어가기 위해 뇌물 제공이 횡행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의과대 정원을 두 배로 늘렸는데도 전공의 과정 정원은 그만큼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형외과는 워낙 인기가 좋은데다 지원자도 느는 탓에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수련 과정을 모두 마치면 학교 병원에 남거나 개인병원으로 나가는 길이 있는데 절반 정도는 개원을 한다. 나머지는 개인병원에 취직하거나 군대에 가기도 하고 학교에 남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에 남는 사람은 많지 않고 남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개원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 병원은 채용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에 한계가 있다. 또 전문의로서는 학교 병원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자기 생활을 꾸려갈 수 있고 수입도 많은 개원의의 길이 훨씬 매력적이다.

    종합병원의 성형외과에는 미용성형보다 재건성형이 훨씬 많다. 재건성형은 10시간 이상 걸리는 장시간 수술이 많다. 송홍식 원장은 재건성형을 “노동집약적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힘든 작업인데도 수입은 매우 적다. 10시간짜리 수술비가 쌍꺼풀 수술보다 못할 때도 있다. 의사 개인의 소득도 개인병원보다 좋을 리 없다.

    오세원 원장은 지난해 7월 청담동에 개원하기 전까지 종합병원에서 재건성형 수술을 했다. 하지만 내과, 외과, 산부인과 등 주요 진료과목에 비해 수입이 적은 성형외과는 같은 병원 내에서도 ‘찬밥’ 신세였다. 오원장은 “내가 있던 곳은 재건성형으로 유명한 병원이었는데도 투자가 부족했다. 주임교수들도 기회만 되면 개원해서 나가 버린다. 전문의들도 마찬가지다. 남으라고 해도 안 남는다”고 말했다.

    못 견뎌서 개인병원으로 나온 것은 송홍식 원장도 마찬가지다. 송원장은 1991년부터 10년 가까이 종합병원에서 재건성형 수술을 해왔지만 더는 못 하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3월 개인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송원장은 “계속 있었으면 쓰러지거나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병원의 성형외과는 수익성이 높지 않으니 투자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의사 개개인의 처우 문제도 그렇거니와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는 데도 소극적이다. 송원장은 “병원 운영진은 환자가 많으니까 의사를 더 뽑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의사니까 하루에 16시간씩 수술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다.

    오세원 원장이 종합병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다섯 살이 채 안 된 아이가 손가락을 다쳐서 찾아왔다. 유아는 혈관이 워낙 미세해 수술이 어렵다. 오열하는 부모를 생각하며 의료진들이 14시간 동안 매달린 끝에 수술에 성공했다. 아이 부모가 주는 점심값을 거절 못하고 받았다가 촌지 수수로 몰려 곤욕을 치렀다. 오원장은 “보람조차 없을 바에야 개원해서 내 생활이나 제대로 영위하자”는 생각에 종합병원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투자한 만큼 번다’는 경제원리는 성형외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가 쉽기 때문이다. 성형외과가 즐비한 강남에서는 ‘홍보’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개원한 지 오래돼 실력을 인정받고 단골 고객도 확보한 다음에는 큰 무리가 없지만 신규 개원의는 사정이 다르다. 또 성형외과가 계속 늘어나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최근에는 고참들도 안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의원 홍보 수단으로 흔히 쓰이는 것은 시설 투자와 광고다. 시설 규모와 광고량은 의원의 매출에 큰 영향을 끼친다. 국세청에서 성형외과 특별세무조사의 근거로 삼는 항목이 시설 규모, 전문의 수, 광고량이라는 점이 그 단적인 증거다.

    경쟁이 치열해진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병원의 대형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압구정동과 신사동 두 군데에 병원을 갖고 있는 D성형외과는 전문의 네명이 공동 원장으로 운영하는 체제다. 투자도 함께했다. 2년 전 신사동에 의원을 열고 1년 만에 압구정동으로 확장했다. 대형화 전략이 멋지게 들어맞은 사례다.

    신사동의 한 성형외과는 6년 전 김모 원장 혼자 시작했는데 그간 꾸준히 성장해 작년에는 두 배가 넘는 5층 규모로 확장할 수 있었다. 김원장 외에 네명의 전문의가 가세했다. 국내 경제가 전반적으로 흔들린 IMF 구제금융기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성형외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브로커를 활용해 손님을 끌어들이는 곳도 있지만 병원 특성상 그런 마케팅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이 여성지 광고다. 강남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광고량이 매출액으로 직결될 만큼 광고의존도가 높다”고 털어놨다.

    성형 시장에서도 ‘80 : 20 법칙’이 지배한다. 상위 20% 성형외과가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국광식 원장은 “강남이라고 다 잘되는 건 아니다. 한 달에 한두 곳은 자리를 옮긴다. 아예 문 닫는 곳도 있다. 3분의 1은 잘 되고 3분의 1은 현상유지, 3분의 1은 힘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강남지역의 성형외과 원장에게 필요한 것은 수술 실력만이 아니다. 규모의 경제에서는 자금이 필수다. 막대한 투자비를 바탕으로 한 비즈니스 마인드는 성형외과 원장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덕목이다. 강남의 성형외과 원장은 의사이면서 사업가여야 한다. 사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다. 여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다는 단서만 붙는다면, 탈세쯤은 큰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압구정동의 박아무개 원장은 “한국은 세금을 내도 별 혜택이 없다. 일하다 손이라도 다치면 직장생활 끝인데 그 후 내 삶에 대한 보장이 없다”며 탈세를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또 “속이는 건 잘못이지만 의사한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세금에 관한 한 대다수 국민이 범법자 아니냐”고 덧붙였다.

    세제가 성형외과에 불리하게 돼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또 다른 성형외과 원장은 “성형외과는 표준소득률이 54.6%로 일반과(20% 내외)의 두 배가 넘는다. 탈루를 미리 감안해서 높게 책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사들은 “의사는 신이 아니다”는 말을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완벽한 의사는 없으며 수술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는 것이다. 의사는 실수를 하더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정도의 실력과 양심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미다.

    모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의학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의사의 이상형을 보여주는 주인공이 “의사는 신이 바빠서 대신 내려보낸 사람”이라는 스승의 말을 되새기며 고뇌한다. 의사는 물론 신이 아니다. 의사와 사업가, 1인 2역으로 신 못지 않게 바쁜 강남의 성형외과 의사들은 신과 자신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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