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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비평

제가(齊家)도 못하고 치국(治國)을 하였으니…

  • 안정효 < 번역가·소설가 >

제가(齊家)도 못하고 치국(治國)을 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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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렀고, 이번에는 대통령의 세 아들에 관한 ‘카더라 통신’이 나돌기 시작했다. 세 아들이 소통령(小統領)의 직위를 이용하여 얼마얼마씩 이권을 챙겨왔다는 ‘터무니없는 소문’이었다. 필자는 이번에도 이들이 부정부패와 결부되었다는 카더라 소문을 눈곱만큼도 믿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첫째 아들이 조폭과 제주도에서 어쨌느니 하는 등등, 슬금슬금 이상한 얘기들이 나왔다. 물론 그것 또한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카더라 유언비어임이 밝혀졌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첫째 아들은 대통령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이권 청탁을 하기 위해 몰려드는 시정잡배의 유혹이 워낙 심해서 처신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책까지 써냈다.

검찰청에 들어서며 기자들에게 “내 결백은 검찰이 밝혀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하고는 며칠 후에 구속되곤 했던 비리 정치인과는 달리, 대통령의 첫째 아들은 전혀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져 이 무렵까지도 카더라 산업의 전망은 점치기 어려웠다.

그리고는 다시 시간이 흘렀다. 요즈음에는 대통령의 2대 삼총사에 관한 얘기가 신문 방송에 하루도 빠짐없이 대문짝만하게 오르고 있고, 그 소문의 진위가 아주 조금씩 밝혀지는 중이다. 물론 카더라 통신과는 엄청나게 수치(數値)가 다른 ‘겨우 몇 십 억’ 정도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잠깐 생각해 보면, 대통령의 자식들은 온 국민이 모두 갖고 있는 ‘미래를 훤히 내다보는 신통력’을 전혀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정권과 권력의 꼬투리로 돈벌이를 하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라는 판박이 대사를 되풀이하며, 묶인 두 손목이 모자이크 처리된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보이더니,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소통령이 겪은 전례가 머지않아 되풀이되리라는 카더라 통신도 나돌았다. 그랬는데도 상황은 이렇게 시끄러워지고 말았다.



도대체 또 다른 김씨 대통령 집안의 삼형제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일으켰던 ‘물의’를 되풀이했다가는 언젠가 들통이 나게 마련이고, 그러면 검찰청 문간에 서서 사진 찍히게 되리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예측했으면서도, ‘까짓 거 잠깐 살다 나오면 되니까’ 일단 미래를 위한 투자는 해둬야겠다는 각오라도 했던 것일까?



齊家와 治國


번번한 아들을 셋이나 둔 대통령이 금년에 보낸 어버이날은 그리 즐겁지 못했을 듯싶다. 어쩌면 셋이나 되는 자식들 가운데 정신이 제대로 박힌 자식 하나가 없어서, ‘민주투쟁의 전사’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노벨상까지 받아낸 아버지를 위해 몸조심 하자고 다른 형제들을 말릴 생각조차 안 했을까? 민주화를 위해 아버지가 부지런히 드나들었던 형무소를 자식은 이제 어떤 명예로운 이름으로 드나들려고 하는 것일까?

마치 좀도둑처럼 몰래 입국해서 007식으로 비겁하게 기자들을 따돌리고는, 살금살금 무엇인가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느라고 “25시간째 잠적해 버렸다”는 대통령 아들의 모습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켜보고 있노라면, 온갖 카더라 통신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영원히 무사하리라고 믿었음직한 셋째 아들은 아마도 미아리에 점집을 차리기는 힘들 것 같다. 그야말로 빤히 보이는 한치 앞날을 내다볼 능력조차 없어 보이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카더라 통신사’가 발족한 시기는 전두환 소장이 신군부를 이끌고 제5공화국을 창출하던 시기였다. 대다수의 국민은 군사독재의 횡포가 극에 달했던 제5공화국과 박정희 정권의 폭압정치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러면서도 요즈음 박정희 기념관을 건축하자는 소리가 요란하고, “차라리 5공 시절이 좋았다”는 말까지 나도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다가 이 나라는 차라리 군사독재자들을 그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소장(少將) 출신의 두 독재자가 휘두르던 국가 폭력에 시달리던 시절, 우리들은 그들 독재자와 맞서 싸웠던 두 사람을 투사로 존경하며 기억했고, 그들이 겪은 고난에 보상이라도 하듯 대통령으로 뽑아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김영삼과 김대중 두 민주화의 기수는, 투쟁은 잘했는지 모르지만 국가를 운영할 자격은 아예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제가(齊家)’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치국(治國)’ 하겠다고 나선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신동아 200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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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 < 번역가·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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