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대구사회연구소는 ‘노무현 정권’ 비밀 싱크탱크?

  • 글: 김진수 jockey@donga.com

    입력2003-01-30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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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대구에 있는 한 연구소가 주목받고 있다. 대구사회연구소가 그 주인공.
    • 이 연구소 소속 연구위원 3명이 인수위원으로 전격 발탁되자 세간에는 대구사회연구소가 ‘노무현 정권’의 숨겨진 싱크탱크라는 설이 나돌고 있다. 아직 일반에 생소한 대구사회연구소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 17년의 ‘역사’를 더듬어보았다.
    대구사회연구소는 ‘노무현 정권’ 비밀 싱크탱크?

    이종오 국민 참여센터 본부장,권기홍 사회·문화·여성분과 위원장,이정우 경제1분과위 간사(맨위부터 시계방향)

    노무현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가 인선을 마무리한 뒤 대구사회연구소(약칭 대사연)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대구사회연구소, 盧의 싱크탱크로’ ‘노무현 싱크탱크로 부상한 대구사회연구소’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주지하듯, 이는 인수위 사회·문화·여성분과 위원장 권기홍 교수(53·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경제1분과위 간사 이정우 교수(52·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국민참여센터 본부장 이종오 교수(계명대 사회학과) 등 3명의 위원이 공히 대사연에 적(籍)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실제 이들은 대사연의 6개 연구부 중 하나인 경제연구부 소속 연구위원들이다.

    게다가 출신지역을 보면 권교수가 대구, 이정우 교수도 대구다. 이종오 교수는 서울 출생이지만, 20년 가까이 계명대(대구)에 봉직해 넓게 해석하면 반쯤은 ‘대구인’이다. 때문에 일부 언론은 이들에다 경북 출신인 경제2분과위 간사 김대환 교수(53·인하대 경제학부)까지 포함해 인수위의 ‘신(新)TK 4인방’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노당선자에 대한 지지도가 전국에서 가장 낮았던 대구지역에 기반을 둔 연구소가 무려 3명의 인수위원을 한꺼번에 배출한 것은 뜻밖의 ‘사건’임에 틀림없다.

    과연 대구사회연구소는 ‘대구사회’를 연구하는 단체인가? 아니면 대구에 소재한 ‘사회연구소’인가? 대사연은 그 자체로 의문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대구 시민조차 잘 모르는 ‘대사연’

    1월7일 대사연 사무실을 찾았다. 대사연은 대구시 북구 산격3동 산격종합시장 인근에 자리한 대구은행 복현동지점 건물 4층에 세들어 있다. 건물 1층 입구에 붙은, ‘사단법인 대구사회연구소’라고 쓴 나무 현판만 아니라면 초행(初行)의 방문자가 대사연을 찾기란 쉽잖아 보였다.

    대구 시민들조차 대사연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상 돌아가는 움직임에 민감하다는 택시운전사에게 물어봐도 대사연 명칭을 들어본 적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대구지역 학계에선 “대사연 멤버십이 있어야 대구의 진보적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이름이 높다.

    40여 평. 사무실 규모는 예상외로 크지 않다. 사무실은 크게 두 쪽으로 나뉘어 한 켠은 상근 직원들의 사무공간으로, 다른 한 켠은 자료실 겸 회의실로 쓰이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실내구조다. 대사연엔 현재 사무국 직원 2명과 프로젝트 상근 연구위원 2명이 활동비만 받으며 일하고 있다.

    “대사연은 결코 ‘노무현 사단’의 산실이 아닙니다.”

    기자를 만난 대사연 이창용 사무국장(37)은 대뜸 손사래부터 쳤다. 그는 “대사연은 정치성이 전혀 없는 연구단체일 뿐, 노당선자의 싱크탱크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대사연은 오로지 지방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정책대안을 연구·제시하는 일을 주목적으로 하는 순수 연구단체라는 것. 때문에 이번 인수위원 참여와 관련해서도, 그저 “일부 회원들에게 생긴 뜻밖의 경사일 뿐”이라며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다.

    더욱이 대사연은 지난 1월초 한 중앙일간지가 대사연을 ‘민주당의 섬’이라고 표현한 기사를 인터넷에 띄우자 이에 강력히 항의, 해당 표현을 삭제하게끔 했다.

    그렇다면 ‘한 지붕 세 (인수)위원’의 주역이 된 대사연의 저력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그 해답을 찾으려면 대사연의 태동 배경부터 알 필요가 있다.

    대구사회연구소는 ‘노무현 정권’ 비밀 싱크탱크?

    대구사회연구소가 발간한 연구총서와 각종 자료집들

    대사연은 1992년 5월 창립했다. 당시 뜻을 같이하는 대구지역 진보 성향 교수들이 지역 중심의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정책으로 관철시키자는 취지로 의기투합해 순수 민간 연구단체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대사연이다.

    특이한 점은 그 어떤 외부의 조력이나 개입도 없이 학자들만의 참여로 태동한 자생적 연구단체라는 점. 그것도 TK정서가 지배하는 대구지역에 기반을 두면서도 진보적 색채를 띠었다는 점에서 대사연의 창립은 아이러니컬할 수밖에 없는 ‘이벤트’였다. 회원들이 주머니를 털어 1억원의 출연기금을 마련, 비영리 연구단체를 꾸렸다는 점 또한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5년, 교육부(현 교육인적자원부) 산하 공익 학술법인으로 전환하면서 회원자격을 학자 일변도에서 타 방면의 전문가로 대폭 넓혔다. 대사연은 창립 당시, 3억원을 기부하는 조건으로 이사장 자리와 연구소장 임면권을 갖고 싶다는 대구지역 한 유력인사의 은밀한 제의를 받고는 이를 극구 사양한 적이 있다. 연구활동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으로부터 온전히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해관계에 따라 어느 한 쪽으로 경도(傾倒)되지 않고, 이념적 스펙트럼에 연연하지 않는 대사연의 독특한 정체성은 이때부터 형성된 것이다.

    대사연은 아직 외부에 폭넓게 노출된 단체가 아니다. 그러나 임원진 및 운영진의 면면을 보면 조직구성이 결코 만만치 않은 단체임을 금세 알 수 있다(표 참조). 6명의 고문 중엔 한완상 한성대 총장(전 교육부총리), 권오기 21세기평화재단 이사장, 홍희흠 전 대구은행장 등 명망가들이 눈에 띈다. 19명의 이사 가운데서도 류창우 전 영남대 총장,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 윤덕홍 대구대 총장, 강대인 방송위원회 위원장 등 이른바 ‘전국구’급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현 연구소장(제6대·임기 2년)은 5대 소장을 역임한 김형기 경북대 교수(50·경제통상학부). 부소장은 4명으로 허노목 변호사, 내과 원장인 김병준 대구·경북 인의협(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 김규원 경북대 교수, 윤대식 영남대 교수 등이 맡고 있다. 초대 소장은 김민남 경북대 교수(교육학), 2대 소장은 서석구 변호사, 3∼4대 소장은 권기홍 교수가 역임했다.

    2003년 1월 현재 대사연 회원은 240여 명선. 대구지역에서 진보적 성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교수,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문화예술인, 시민운동가 등 각계 전문가가 망라돼 있다. 회원들은 통상 박사급이나 그에 준하는 경력자에 해당하는 연구위원(150여 명)과 석·박사과정에 있는 연구원(90여 명)으로 나뉜다. 이중 연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열성 회원은 100여 명 가량. 그러나 나머지 회원들도 평소엔 각자의 일에 종사하다 해당분야의 연구프로젝트가 있을 때 참여하는 잠재적 인력풀(Pool)로 기능한다. 회원 1인당 연평균 활동횟수는 대략 15∼20회로 적지 않은 편이다.

    대사연의 주된 활동은 토론기능의 활성화를 통한 종합정책연구다. 특히 지역균형발전과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대안을 연구한다. 대사연엔 21세기 한국의 대안적 발전모델을 연구하는 대안적발전모델연구센터를 비롯해 지역혁신시스템연구·사회조사·정책평가센터 등 4개 연구센터와 경제·도시환경·문화예술·보건의료·시민사회·지방자치 등 6개 연구부가 운영되고 있다. 회원들은 이중 1개 이상의 연구센터나 연구부에 소속돼 활동한다.

    대구사회연구소는 ‘노무현 정권’ 비밀 싱크탱크?

    대구사회연구소의 특장점은 활발한 토론기능에 있다. 2000년 9월 대구사회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21세기 발전모델 포럼

    대사연은 지난 10년간 상당한 연구실적을 쌓았다. 대구·경북사회에 대한 최초의 지역연구 개설서인 ‘대구·경북사회의 이해’(1995), ‘자치시대, 대구·경북의 비전’(1996) 등 연구총서 10여 권을 발간했고, 각종 지역실태조사를 20여 회나 했다. 또 창립 초기부터 1998년 8월까지 매월 지역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 흐름을 간략히 정리한 소식지인 월간 ‘대구·경북 지역동향’(통권 73호)을 발간했다.

    각종 정책토론회와 학술심포지엄, 포럼, 시민토론회 등도 수십 차례 주관해 지역시민사회에 대사연의 이름을 알려왔다. 특히 1994년 대사연이 주관한 시민대토론회는 ‘전환기, 대구·경북의 선택’이란 주제로 6주간 실시돼 방송홍보 40일, 총 방청객 2200여 명, 총 토론자 40여 명, 총 20여 시간 토론, 총 방영시간 540분을 기록, 지역방송 토론 사상 유례가 없는 초대형 토론회로 회자되고 있다. 당시 김원기 의원, 이수인 전 의원(작고·영남대 교수) 등 여야 정치인들도 이 토론회에 참여했다. 대사연은 지난해 12월 독일 콘라드 아데나워재단과 공동으로 지방분권 국제심포지엄을 대구에서 개최, 활동범위를 해외로까지 넓혔다.

    이런 대사연의 모태가 된 단체가 ‘지사연’이다. 지사연은 ‘지방사회연구회’의 줄임말. 지사연은 1985년 11월 당시 민주화 정책연구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일단의 대구지역 경제·사회분야 교수들과 그들의 제자들이 조직한 연구모임이다. 이는 1980년대 군사정권 아래서 민주화가 주된 사회정치적 이슈였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대사연 전화번호(053-944-1985)가 지사연의 창립연도를 뜻하는 ‘1985’인 것도 두 단체간의 밀접한 관련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지사연은, 창립 이후 6공과 문민정부 시기를 거치며 우리 사회에서 일정 정도 ‘의사(擬似)적 민주화’가 이뤄지자 이념적·관념적 민주화보다는 지역시민사회 발전과 지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실제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대안 제시에 더욱 관심을 쏟게 된다. 이는 곧 지사연 조직을 대폭 확대한 대사연의 출범으로 이어져 지사연은 발전적 해체를 맞는다.

    인수위에 참여한 세 교수 역시 지사연에 이어 대사연 창립 초창기의 핵심멤버들이다. 이중 대사연과 가장 밀접한 사람은 단연 권기홍 교수다. 지사연의 ‘창립멤버’이기도 한 권교수는 1996년부터 4년간 대사연 소장을 지냈고, 현재는 이사로 있을 만큼 대사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그가 인수위원으로 발탁된 것은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대구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덕분이지, 대사연 조직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게 대사연측의 설명이다.

    정치성 배제한 순수 민간단체

    1980년대의 지사연이 당시 시급한 과제였던 민주화에 관심을 뒀던 데 비해 1990년대 창립한 대사연의 활동은 ‘실사구시(實事求是)’에 큰 비중을 뒀다. 지역시민사회의 여러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활발한 활동을 편 것.

    그렇지만 대사연 멤버들이 역대 정권에 참여한 적은 거의 없다. 이는 YS정권과 DJ정권 아래서는 진보적 성향을 띤 대구·경북지역 인재의 용처(用處)가 없었던 탓도 있고, 동시에 창립 이후 지금까지 대사연을 관통하고 있는 정치적 중립이란 흐름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대사연 소속 교수 3명이 이번 인수위에 발탁된 것은 대사연으로서도 전혀 뜻밖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대사연 김형기 소장은 “회원 중에 노당선자의 철학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사연 자체는 철저히 정치적 중립을 견지한다”며 “대사연을 노당선자와 ‘특별한 관계’로 보는 시각은 명백한 ‘오버’”라고 말했다. 즉 3명의 교수가 인수위로 들어간 건 오로지 당사자들과 노당선자 간 개인적 인연과 친분에 의한 것이란 설명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눈여겨볼 만한 것은, 3명의 인수위원을 ‘탄생’시킨 대사연이 과연 노당선자를 위한 또다른 ‘도우미’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다. 이와 관련, 권기홍 교수는 한 중앙일간지에 “(대사연의) 많은 멤버들이 노당선자의 철학과 일치점을 갖고 있어 앞으로 많은 회원들이 노당선자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 언급한 바 있다.

    반면 대사연의 시각은 지극히 가치중립적이다. ‘추가 발탁’ 여부는 노당선자 캠프와 대사연 회원 개개인의 결정에 달린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만 대사연도 지난 10여 년간의 꾸준한 연구활동 덕분에, 물잔에 물이 찰랑찰랑 넘치듯 회원들의 개인역량이 넘치는 시점이 됐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대사연에도 예외없이 절체절명의 위기가 있었다. 1997년 IMF사태의 여파로 적자가 누적된 대사연은 ‘폐쇄’냐, ‘휴면’이냐의 갈림길에 섰다.

    당시 대사연 연구국장이었던 김형기 소장은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 소장은 권기홍 교수였는데, 연구소의 경제사정이 무척 좋지 않았다. 때문에 회원들이 대사연의 문을 닫을 것인가를 놓고 심각히 고민했다. 권교수는 ‘휴면’을 주장했지만, 그때까지 쌓아올린 연구성과가 너무도 아까웠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회생의 길을 모색키로 결정했다.”

    논란을 거듭하던 대사연은 ‘존속’이란 ‘제3의 길’을 택한다. 당시로선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 모험은 새로운 생존 기회로 이어졌다. 당시 3명이던 상근 직원 전원을 내보내는 등 구조조정을 통해 연구소 조직을 초슬림화하고, 월간 ‘대구·경북 지역동향’을 휴간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다. 그 뒤 경상경비 누적으로 인한 부채도 완전히 청산했다.

    하지만 대사연의 살림살이가 빠듯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가시적 성과가 금방 나오지 않는 연구단체의 특성상, 후원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대사연은 최소한의 운영경비인 회비로만 운영된다. 회비는 전적으로 연구위원들과 이사들의 몫. 연구위원들은 매월 1만원, 이사들은 10만원씩 낸다. 대사연의 정체성에 위배되지 않고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한도 내에서, 지역대학과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연구 프로젝트를 적극 유치해 용역비로 연구비를 충당하고 있다.

    대사연에 대한 대구지역 기업들과 지역민들의 애정은 새록새록 솟아나고 있다. 현재 대사연이 입주해 있는 건물은 지역기업인 대구은행 소유. 2000년 5월 옛 사무실에서 이곳으로 이전한 대사연은 그때부터 줄곧 일반 상업임차료의 절반만 내고 있다. 대사연에 대한 지역기업의 배려를 읽을 수 있는 한 단면이다.

    지방분권운동의 총본산

    대사연을 말할 때 떼놓을 수 없는 것이 지방분권운동이다. 2001년 전국적 이슈로 떠올랐던 ‘지방분권’의 물결은 대사연의 ‘작품’이다.

    대사연은 최근 2년간 지방분권을 최대 사업목표로 정하고, 각종 세미나와 연구조사 등을 바탕으로 지방분권운동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2001년 9월, 그 정점이랄 수 있는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전국 지역지식인 선언’(3000여 명 참여)을 이끌어냈다.

    현재 지방분권운동을 이끄는 공식 조직은 ‘지방분권국민운동’이란 단체. 그러나 이 단체의 총회 격인 전국대표자회의 의장은 바로 대사연의 김형기 소장이다. 대사연 사무실이 전국조직인 ‘지방분권국민운동’과 지역조직인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의 사무실을 겸하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2003년의 경우 ‘지방분권국민운동’의 최대 관심사는 ‘지방에 결정권을, 지방에 세원을, 지방에 인재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대변되는 지방분권의 확립. 특히 지방분권운동의 주력인 한국지역사회학회 산하 지방분권특위와 함께 지방분권 특별법, 지역균형발전 특별법, 지역혁신촉진법 등 지방분권 3대 특별법안을 연구해 입법화하는 게 목표다. 한국지역사회학회에는 대사연을 비롯해 부산·경남 지역사회연구센터(부산), 전남사회연구회(광주), 호남사회연구회(전주), 대전·충남사회연구회(대전) 등 여러 지역학술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단체들은 모두 대사연의 성공모델을 벤치마킹한 연구기관이다.

    대사연의 정치적 중립성을 시사하는 에피소드 하나. 김형기 소장은 지난해 민주당 국민경선 직전에 당시 노무현 후보로부터 장문의 e-메일을 한 통 받았다. 핵심내용은 지방분권에 적극 동참하며 노후보 자신도 이미 오래 전부터 지방분권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해왔다는 것. 그러나 김소장은 답신을 띄우지 않았다.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사연은 이번 대선에서도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대신, “지방분권에 찬성하는 ‘분권 후보’를 찍겠다”는 선언적 의미의 입장만 표명했다. 인수위에 들어간 3명의 교수 역시 지방분권운동의 취지엔 공감하지만, 구체적으로 지방분권운동에 참여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발전대안이 지역에 있다’는 이같은 인식이 개혁적 이미지를 지닌 노당선자의 정치철학과 맞닿아 있는 것만은 부정하기 힘들다.

    대사연 강승구 선임연구원(39·경제학 박사)은 “지방분권 연구를 계기로 대사연은 지역과 전국의 발전모델을 종합적·학제적으로 연구하는 전국적 조직으로 거듭났다”고 분석한다. 비록 연구소 명칭에 ‘대구’라는 접두어가 붙어있지만, 대사연의 실제 활동은 전국에 걸친다는 것이다.

    지사연의 활동기간까지 합하면 17년의 역사를 지닌 만큼 대사연엔 숨은 이야깃거리들도 적지 않다.

    대사연 회원들은 장삼식씨(39)를 좀처럼 잊지 못한다. 경북대 경제학과 84학번으로 김형기 소장의 제자인 장씨는 대사연 창립 멤버. 창립과 동시에 그는 대사연의 상근 간사를 맡았는데, 원래부터 몸이 좀 약한 데도 왕성한 연구활동을 하다가 그만 두 눈을 실명하게 됐다.

    대사연 회원들이 이를 나 몰라라 할 순 없었다. 생활형편이 어려운 장씨를 위해 대사연의 이사들과 동료 연구원들은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왔다. 끈끈한 동료애는 장씨가 장애를 극복해나가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됐다. 장씨는 꾸준히 재활과 학업을 병행, 마침내 지난해 여름 경제학 박사학위를 따낼 수 있었다.

    2001년 6월 자신의 집필실에서 투신자살해 대구지역 시민운동권을 충격에 빠뜨렸던 고 신현직 계명대 교수(당시 46세·법학)도 대사연 창립멤버다. 신교수는 생전에 20여 년간 줄기차게 시민운동을 주도해 ‘다시 나오기 힘든 천재적 지역운동가’라는 화려한 찬사를 받았던 인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도 1992년 대사연 창립 초기 사무국장을 맡아 당시 김형기 연구국장, 최병두 편집실장(대구대 교수), 이호철 조사자료실장(경북대 교수) 등과 함께 대사연의 실무자 4인방으로 활동했다. 신교수는 특히 대사연의 전신(前身)인 지사연에서도 김형기 소장과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였다.

    대사연은 일찍부터 배타적인 지역패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며 지역감정 극복과 동서화합을 주창해왔다. 하지만 좀처럼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김형기 소장의 토로다.

    “지역사회의 퇴행을 막기 위해 TK정서를 버리자고 외치다 한때 일부로부터 ‘YS·DJ의 앞잡이’로 매도당하기도 했다. ‘지역감정은 민주화의 걸림돌’이라 항변해도 좀처럼 이런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지역의 시각에서 한국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려면 결국 중앙집권을 깨는 지방분권이란 키워드를 내세움과 동시에 대구·경북지역의 낙후된 혁신능력을 제고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대사연의 모토 ‘분권과 혁신’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그 ‘분권과 혁신’은 대사연을 대구사회의 ‘마이너리티(Minority)’에서 ‘당당히 시민권을 획득한, 무시할 수 없는 마이너리티’로 변모시켰다.

    사단법인화한 뒤 지난 7년간 대사연의 활동목표는 ‘지방분권’과 ‘지역혁신’이란 두 단어로 집약된다. 대사연은 이 두 가지야말로 ‘서울의 식민지’로 전락한 지역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민주적 정책대안이라 보고 있다. 지역사회가 구습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지역혁신(이노베이션)을 해야 하며, 이 지역혁신의 필요조건이 곧 지방분권이라는 것이다. 대사연이 2000년 10월부터 월간 웹진 ‘분권과 혁신(webzine.tiss.re.kr)’을 발행하고 있는 것도 지방분권과 지역혁신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분권과 혁신’의 진원지

    어쨌든 소속 연구위원들이 인수위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대사연이 그 이름을 드높이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비록 대사연 관계자들은 그것을 일종의 ‘반사적 이익’으로 치부하지만, 지방분권이란 목표의 달성과 관련해서 대사연측의 ‘기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지방분권에 공감을 표해 온 인사들이 노당선자 주위에 포진한 만큼 지방분권운동이 어떻든 이전보다는 탄력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지역분권국민운동’은 지난해 12월6∼11일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등 각 정당의 대통령후보들과 ‘지방분권 대(對)국민 협약 체결식’을 가진 바 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방분권 관련 10대 의제들을 실행하겠다’는 게 협약의 주된 내용이다.

    지방분권 달성엔 걸림돌도 없지 않다. 권한 이양의 양(量)과 관련해 중앙정부의 반대가, 권한의 분산과 관련해선 수도권 주민들의 반대가 충분히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지방분권의식이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들지 못한 단계라는 게 문제다.

    김형기 소장은 “지방을 살리려면 지방분권은 필수적”이라며 “다만 대사연은 연구활동이란 고유기능에만 충실하고, 그 실천은 ‘지방분권국민운동’을 통해 해결하는 역할분담을 할 것”이라 답한다. 그는 “지방분권은 이제 시작일 뿐이며, 사회의 힘(Power)과 관련한 문제이므로 어차피 제대로 확립되기까지는 30년쯤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취재를 마친 뒤, 기자는 대구의 한 지인(知人)에게 때늦은 신년인사를 전했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대구에서 개업중인 대구 출신 한의사(41). 그는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공약을 보고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털어놨다. 또 “노당선자가 국토의 균형 활용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이 공약을 반드시 지켰으면 한다”는 바람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의 기대가 오로지 그만의 것일까. 대사연이 올린 지방분권의 기치도 이같은 보편적 바람과 결코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전국 지역민들의 곁에, 지방분권운동이 분수처럼 솟구쳐오르길 염원하는 대구사회연구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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