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전두환 비자금 환수,금년 봄 물 건너간다

314억 vs 2073억… 받아낸 全·盧 추징금 천지 차이

  • 글: 김진수 jockey@donga.com

    입력2003-02-05 1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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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두환·노태우씨에 대한 대법원의 추징금 판결이 내려진 지 올해로 7년째. 노씨의 추징금 환수는 비교적 순조롭다. 반면 전씨에 대한 추징 작업은 여전히 겉돌고 있다.
    • 두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실적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속사정은 뭘까.
    • 전씨의 비자금은 제대로 환수될 수 있을 것인가.
    전두환 비자금 환수,금년 봄 물 건너간다

    전·노씨의 추징금 환수 실적은 지극히 대조적이다. 2000년 12월 청와대 만찬에 참석한 두 전직 대통령

    지난 1월2일 노태우 전대통령과 관련한 짧은 기사 한 꼭지가 지면(紙面)을 장식했다. 서울지검 총무부(양재택 부장검사)가 1991∼92년 노씨가 나라종금에 은닉했던 비자금 248억여원의 이자 가운데 일부인 1억7600여만원을 가압류 절차를 거쳐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지난해 12월30일 국고로 환수했다는 보도였다. 검찰은 보도 당일인 이날에도 노씨가 한보그룹에 묻어뒀던 6100만원을 추가로 추징했다.

    이는 노씨가 나라종금에 차명으로 예탁했던 248억5000여만원을 2001년 2월 환수한 것에 뒤이은 조치. 이로써 노씨에게 선고된 추징금 2628억9600만원 중 환수액은 2073억8200만원으로 전체의 78.88%에 이른다. 미환수 금액은 555억1400만원. 하지만 검찰은 노씨의 비자금 은닉처가 비교적 쉽게 노출돼 추가 추징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하는 분위기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크게 두 가지다. 노씨와 함께 추징금을 선고받은 전두환 전대통령의 추징금은 왜 제대로 환수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환수조치가 과연 가능하기나 한 걸까.

    두 전직 대통령에게 추징금이 선고된 때는 1997년 4월. 당시 대법원은 이들이 대통령 재임중 재벌총수들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에 대해 특가법상 뇌물수수죄를 적용, 무기징역과 함께 전씨에게 2205억원, 노씨에겐 2628억9600만원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이들은 확정판결 후 8개월 만인 같은해 1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추징금은 사면대상이 아니어서 그후 7년째인 지금까지도 환수대상으로 남아있다. 2003년 1월 현재 전·노씨의 미납 추징금 합계는 2445억1685만원. 이중 1890억285만원이 전씨가 내야 할 몫이다.

    지금까지 검찰이 전씨로부터 환수한 금액은 314억9715만원. 전체 추징금 2205억원 중 14.3%에 불과하다. 이는 노씨의 경우와 비교할 때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다. 2000년 10∼12월 전씨의 중고 벤츠 승용차와 용평 콘도회원권에 대한 경매를 통해 1억1200만여원을 강제집행한 이후로는 전씨에 대한 추가 추징은 전혀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드러나지 않는 은닉재산

    검찰이 전씨의 비자금에 대해 전혀 손을 쓰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뭐니뭐니해도 전씨의 비자금 추적 자체가 어려워 그의 재산상황을 파악조차 못하는 이유가 가장 크다. 검찰은 수사요원 5명으로 구성된 전담추적반을 편성해 은닉재산 추적을 계속해왔지만, 비자금 대부분이 노출되지 않는 무기명 채권 등의 형태로 은닉된 것으로 보이는데다 강제로 계좌추적을 할 수 없어 전씨 본인 명의의 재산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지검의 한 관계자는 “아직 별다른 성과가 없다”고 답했다.

    한때 전씨의 장남 재국씨(44)의 을지서적 인수와 관련해 전씨 비자금이 서점 인수자금으로 유입됐다는 설(說)이 나돌고, 논란거리로 떠올랐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가회동 빌라의 실소유주가 전씨의 셋째 며느리라는 사실이 밝혀져 전씨가 사준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지만, 검찰이 전씨의 가족이나 관계인의 명의로 된 재산을 추징하려면 재산을 고의로 위장한 사실을 입증해야만 한다. 이 또한 지극히 어려운 작업이다. 게다가 현행법상 납부하지 못한 액수에 대해 노역장 유치(환형유치·換刑留置)를 할 수 있는 벌금과 달리, 추징금의 경우 강제책이 없는 ‘내재적 한계’ 때문에 이래저래 추징금 징수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는 형편이다.

    속 앓는 검찰

    전씨의 비자금 추징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일까. 예단하긴 어렵지만, 물거품으로 스러질 공산이 크다. 문제의 핵심은 추징작업이 답보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전씨에 대한 추징금 징수 시효의 만료시점이 임박했다는 데 있다.

    형법상 ‘추징’이란 범죄와 관련된 물건으로 범인이 가진 물건이나 제3자가 얻은 장물을 몰수할 수 없을 때 그에 해당하는 금전을 강제로 받아내는 재산형. 추징 대상엔 추징 선고를 받은 본인 명의의 부동산이나 동산·채권만 포함된다. 추징금 징수 시효는 3년이다.

    따라서 1997년 4월17일 대법원의 선고를 받은 전씨의 추징금 징수 시효는 당초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2000년 4월16일에 만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법원의 판결 직후 전씨 비자금에 대한 추적을 벌여 1997년 10월5일 예금·채권·현금 등 추징금 일부인 312억여원을 국고에 귀속시켰고, 이 환수조치에 따라 당초의 추징금 징수 시효는 중단됐다. 그리고 그때부터 3년의 추징금 징수 시효가 새로 개시됐다. 두 번째로 시작된 추징금 징수 시효의 예상 만료시점은 2000년 10월.

    그러나 검찰은 이 두번째 시효 만료에 대비, 이보다 앞선 2000년 5월 법원에 전씨의 벤츠 승용차와 콘도회원권에 대한 강제집행 신청을 낸 뒤 추징금 징수 시효 만료가 임박한 같은해 10월과 12월 차례로 경매했다. 이는 이전의 시효가 중단되고 또다시 3년의 추징금 징수 시효가 개시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책’으로 분석된다. 현행 형법 제80조는 추징의 경우 강제처분을 개시하면 시효가 중단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시효중단 사유가 되는 이 강제처분은 검찰의 강제집행 신청과 법원의 인용여부 결정, 경매 등 민사소송법의 강제집행절차를 따르도록 돼 있다.

    이와 관련, 서울지검 총무부의 한 검사는 “추징금 징수 시효의 만료시점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다소 논란이 있다”며 “다만 전·노씨의 비자금 추징이 전국민적 관심사로서 중요한 사안이니만큼, 만에 하나 법적인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만전을 기하기 위해 추징금 징수 시효중단을 강제집행절차가 완전히 종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통상적인 검찰 내부지침을 따르지 않고 대신 강제집행 착수시점을 기준으로 해왔다”고 답했다.

    검찰이 말하는 ‘착수시점’에 따르자면, 서울지검이 전씨의 추징금 징수 시효 연장효과를 얻기 위해 전씨를 상대로 마지막 강제집행(벤츠 승용차와 콘도회원권) 신청을 서울지법 서부지원에 낸 시점이 2000년 5월12일이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으므로(5월20일) 이때 새로 개시된 추징금 징수 시효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3년 5월11일 만료된다. 그러나 검찰의 말대로 이 시점의 문제와 관련해선 법해석상 이설(異說)이 없지 않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종료시점’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강제집행 대상인 벤츠승용차와 콘도회원권이 낙찰돼 실제 국고에 환수된 시점이 2001년 3월이므로 결국 추징금 징수 시효는 아무리 늦어도 2004년 3월이면 만료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시점이 지나면 거액의 추징금 환수는 고스란히 물 건너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추징금 환수 사실상 불가능

    현재로선 전씨의 추징금 징수 시효를 다시 중단할 수 있는 새로운 은닉재산을 찾아내 강제집행 절차를 밟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검찰이 새롭게 찾아낸 전씨 명의의 재산은 전무하다. 서울지검 관계자는 “검찰이 파악한 전씨 명의의 재산이라곤 예전부터 그의 소유로 밝혀진 서울 연희동 자택 별채뿐”이라 답했다.

    감정가 9억여원인 연희동 자택의 별채는 전씨 소유. 하지만 본채는 부인 이순자씨 명의로 돼 있어 강제집행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검찰은 강제집행이 가능한 별채만 경매에 부치는 방안을 예전에 검토한 적도 있다. 하지만 별채만 사들일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아직 강제집행 신청은 하지 않고 있다. 현재 유일한 추징보전 재산인 별채에 대해서 강제집행 신청을 내더라도 다른 은닉재산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추징금 징수 시효만 다시 3년 연장될 뿐, 실제로 거액의 추징금을 징수할 방법은 없다는 본질적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설령 연희동 자택 전체에 대해 강제집행 신청을 낸다 해도 이씨측에서 이의신청을 낼 것으로 예상돼 이 역시 쉽지 않은 실정이다.

    다급함에 ‘속앓이’를 하는 검찰과는 대조적으로 전씨측은 느긋해 보인다. 전씨의 측근이자 그의 변호인을 지낸 이양우 변호사는 “이미 검찰이 비자금 수사 당시 몇 달에 걸쳐 전두환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 측근들의 재산상황을 정밀추적한 바 있어 더 이상 새롭게 나올 재산이 없을 것”이라며 “검찰이 말하는 거액의 비자금은 막연한 추정치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꼭꼭 숨긴 뒤 버틸 수 있는 한 버텨라.’ “낼 돈이 없다”면서도 여유로운 생활을 즐겨온 전씨의 탁월한 ‘재테크’ 앞에서,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추징금을 내지 않은 채 ‘법치허무주의’를 조장하는 중범죄자 앞에서 대한민국 최고 사정기관 검찰은 너무도 무력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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