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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세현 통일부 장관

“진보도 보수도 北 한 단면만 보고 있다”

  • 글: 송문홍 동아일보 논설위원 songmh@donga.com

정세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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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9절에 군사 퍼레이드를 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미국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동안 장관급회담 등으로 북한 사람을 많이 접해본 경험에 비춰볼 때 정장관께선 북한이 현 상황을 제대로 읽고 있다고 보십니까?

“북한의 상황인식이 점점 정확해지고 있다는 느낌은 받아요. 이건 외교부도 브리핑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6자회담 첫날 미국측 발언 뒤에 자연스럽게 북미간 접촉이 이뤄졌고, 남북 외교당국자간 접촉에도 호응해왔어요. 특히 미국측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문의한 것은 커다란 변화라고 봅니다.

나는 1984년 남북대화 운영부장을 할 때부터 현장 감각을 익히기 시작했어요. 첫 경험이 그 해 LA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회담이었습니다. 그 후 1995년 북경 쌀회담, 1998년 4월 베이징 비료회담, 2002년부터 나간 장관급회담, 그 외에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담과 실무 국장급 경제회담들을 돌이켜보면 북한도 이제는 선전 차원의 공허한 힘겨루기에서 점차 실무적인 대화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이건 너무 앞서가는 평가인지 모르지만 회담 당국자 사이에 뭔가 테두리가 그어져 그 안에서 대화가 이뤄지는, 그래서 이젠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리기 어려운 시절은 지나갔다고 봐도 좋지 않느냐는 겁니다.”

-일전에 제가 외교부 장관을 지내고 나서 다시 통일부 장관까지 역임한 분을 만났을 때 국가들 사이의 외교협상과 남북대화는 왜 이렇게 달라야 하는지를 놓고 한참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남북대화도 이젠 일방적인 주장과 힘겨루기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대화와 거래가 이뤄져야 한다는 건데, 그런 점에서 꽤 고무적인 말씀입니다.

“외교라는 것은 말 그대로 주고받는 거래입니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는 서로 넘지 못할 선이 있고, 건드려서는 안 될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까 외교관계는 신사적으로 할 수 있고, 철저하게 상호주의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남북관계는 요즘 들어 겨우 협상이나 거래라는 말이 나오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외교와는 달라요. 지금까지 남북대화는 민족사적 정통성을 놓고 경합을 벌이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었어요. ‘한 지붕 두 가족’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판문점에서 유엔기와 인공기가 키 높이기 경쟁을 벌였던 것이 남북관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습니다. 상대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식이었으니까 당연히 치열할 수밖에 없었어요. 1990년대까지도 그런 제로섬적 요소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북한도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혁명과 건설을 내세워 모든 것을 전투적으로만 생각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실리라는 개념을 매개로 좀더 실제적·실용적으로 바뀐 겁니다.

국제무대에서 외교협상을 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보기에 남북대화는 이상한 대화이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남북대화에서는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쪽이 지는 겁니다. 외교무대에선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남북대화에서 그렇게 행동하면 회담을 재개할 때 부담을 안게 되고 불리해지기 때문에 서로 버티기를 합니다. 그런 특수성이 있어요.”

“북한의 군사적 변화는 두고 볼 문제”

-북한이 실리를 추구하게 됐다고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우리가 그런 북한의 태도에 부응해서 그들의 요구를 너무 쉽게 들어준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어요. 물론 대승적 견지에서 북한에 조건 없이 지원을 해줄 필요는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북한에게 주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북한의 변화를 요구하는 데는 미온적이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준 만큼 북한의 변화는 없었어요. 우리는 많이 줬다, 그런데도 북쪽은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짜증이 나는 거예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난 정부 때부터 국민에서 소상하게 설명했어야 하는데 때를 놓친 게 아닌가, 지금 와서 설명하겠다고 나서면 변명처럼 들릴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 국민이 바라는 북한의 변화라는 건 북한사회 밑바닥에서부터 일어나는 변화의 바람이 아니라 대남정책이나 군사적 상황의 변화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불만이지요. 그런데 정부 입장에선 바로 그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일종의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투자를 해서 바로 효과가 나오는 사업이 있고, 결실을 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업이 있습니다. 예컨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경제학적으로 말해 자본의 회임기간이 긴 사업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부고속도로를 만들 때 반대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당시 정치지도자들 대부분이 반대했어요. 그 때 고속도로 건설에 들어간 돈은 곧바로 효과를 낼 수 있는 투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항만 건설에 대해서도 반대가 심했지요. 지금은 오히려 너무 작은 것이 문제가 되고 있어요. 북한사회의 질적 변화와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업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이건 자본의 회임기간이 긴 프로젝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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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문홍 동아일보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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