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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 리포트

‘쩐’ 앞에선 가족애도 실종

경제난에 급증한 ‘상속전쟁’

  • 박은경 객원기자 | siren52@hanmail.net

‘쩐’ 앞에선 가족애도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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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의 ‘권리 찾기’ 늘어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법률구조1부장에 따르면 유류분 관련 상담건수는 2010년 40건, 2011년 44건, 2012년 48건, 2013년 31건에 달했다. “강의를 나가봐도 유류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과거보다 높아졌음을 느낀다”는 조 부장은 “부모(또는 생존 배우자)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보다 형제를 상대로 한 소송이 많다. 또 재산이 많을수록 많이 다툰다. 가족 사이에 분쟁이 생긴 사람들이 주로 상담을 받으러 오지만 ‘특별수익(생전증여)’이 문제가 돼서 오는 경우도 많다. 그 외 부모가 장남 또는 아들만 챙기는 것 같아 앞으로 재산 상속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궁금해서 찾아오는 여성도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이하 유류분 소송)이 급증하는 이유는 뭘까. 법조계 사람들은 한결같이 “60대 이상 부모 세대에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남아선호 사상과 남녀차별 의식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류분 소송에서 여성 원고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번 재산을 ‘대물림한다’는 생각과 생전에 장남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고 노후에 부양을 받으려는 심리도 작용한다.

50대 여성 김모 씨를 비롯한 3명의 자매는 오빠 2명을 상대로 유류분 소송을 심각히 고민했다. 수백억 원대 재산가였던 아버지가 유언을 통해 대부분의 재산을 두 아들에게 남기고 딸들에겐 집 한 채를 나눠 가지라고 했기 때문. 김 씨 자매는 “아버지가 생전에 장남과 아들이라고 해외유학을 보내주고 사업자금을 대준 것까진 이해한다. 그런데 유언이 공개되고 우리가 불만을 표시하자 오빠들조차 ‘출가외인이 왜 친정 재산을 탐내느냐’고 몰아붙였다. 그게 더 화가 났다”고 했다. 오빠들과 갈등 끝에 아파트 한 채를 자신들의 몫으로 더 받기로 한 자매들은 “돈도 중요하지만 정당한 우리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게 더 억울하다”고 했다.

조경애 부장은 “상속을 많이 받은 자식들이 부모와 형제에 대한 도리를 다 안 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과거 장남은 부모로부터 재산을 혼자 다 물려받아도 나머지 형제들 집안에 결혼과 이사 등 큰 일이 있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 보태주고 도와줬다. 일반 정서상 많이 가지게 된 쪽이 좀 나눠줄 법한데 그걸 안 하니 소송까지 간다. 형제간 정이나 부모자식 간 사랑보다 자기 손에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많이 쥐는 게 더 중요한 세상이 됐다”며 씁쓸해했다.



유류분 제도는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남녀차별에 따른 상속 패턴도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왔지만 10년 전에 비해 소송이 급격히 는 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여성이 늘어났기 때문.

지난해 유류분 소송 3건을 맡았던 법무법인 세종 최명호 변호사는 “최근 2~3년 새 유류분 소송 상담이 늘었다. 상담 과정에서 소송을 포기하거나 보류하는 경우는 절반 정도다. 이들을 포함해 유류분 소송에서 원고가 되는 이들의 연령대는 대체로 40~50대다. 사망한 피상속인(부모)의 나이가 대부분 70세를 넘기 때문이다. 원고 측은 아무래도 여성이 많다”고 했다. 그는 “장남이나 아들이 부모 생전에 재산을 물려받은 경우 부모를 잘 챙기면 괜찮은데 오히려 딸들 쪽에서 살뜰히 부모를 챙기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사망한 뒤 남은 재산마저 아들에게만 돌아가면 딸들의 감정이 좋을 리 없다”고 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유류분 관련 사건이 8.5배 급증했음에도 그에 따른 소송물가액은 약 6.3배 증가에 그쳤다. 소송물가액은 원고가 소(訴)로써 달성하려는 목적이 갖는 경제적 이익을 화폐단위로 평가한 금액을 말한다. 과거에 비해 적은 돈이라도 소송을 통해 끝까지 받아내겠다는 사람 수가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지속되는 경기불황도 소송을 부추기는 데 한몫한다.

‘쩐’ 앞에선 가족애도 실종

지난해 5월 24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강당에서 열린 상속법 개정 촉구 심포지엄.

‘적은 돈도 받아내자’

황혼재혼, 황혼동거가 늘면서 전처 자식과 계모, 전처 자식과 사실혼 배우자 사이에 상속재산을 둘러싼 분쟁도 덩달아 늘고 있다. 40대와 50대 초반 여성 김모 씨 세 자매는 유언을 통해 아버지가 계모와 이복남동생에게만 재산을 물려주자 두 사람을 상대로 유류분 소송을 제기했다. 김 씨 자매는 “이복남동생은 어릴 때부터 소위 ‘귀족학교’라 불리는 사립학교에 다니면서 온갖 호사를 누렸지만 우리는 계모에게 식모 취급을 받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왜 아버지 재산마저 그들에게 다 빼앗겨야 하느냐”며 억울해했다.

사실혼 배우자와 동거하는 60대 중반 남성 이모 씨는 자식들과의 불화로 인해 상속재산에 대해 고민하다 상담소를 찾았다. “내가 죽은 후 10억 원가량의 재산을 자식들에겐 한 푼도 주고 싶지 않다”는 그는 유언을 통해 자식들을 상속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지, 사실혼 배우자에게 모든 재산을 줄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이 씨 경우와 반대로 재혼한 상대를 못 믿어 부인과 둘 사이의 자식은 외면한 채 전처 자식에게만 재산을 상속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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