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호

꼼꼼하게, 강단 있게 그리고 우아하게

이혼의 정치학 <2부> 실행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4-09-18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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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결심이 섰다면 이제 실행하는 일이 남았다. 잘 만나는 것 못지않게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결심과 실행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실행은 말 그대로 실질적 변화를 수반하는 액션이다. 이혼에 도달하려면 힘겨운 정치적 관문을 거쳐야 한다. 혼인신고에 비할 바가 아니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5만7066쌍이 이혼했다. 이 가운데 협의이혼이 81.8%, 재판이혼이 18.2%다. 협의이혼은 흔히 합의이혼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절차가 간단하다.

    법원은 이혼숙려제도를 실시한다. 부부가 이혼에 합의하고 재산권과 양육권 문제를 순조롭게 해결했다 하더라도 1~3개월 동안 다시 생각해보라는 의미다. 부산가정법원은 2012년 협의이혼 전 의무상담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미성년 자녀를 둔 부부는 이혼 전에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 이후 협의이혼 신청자 8093명 가운데 2715명이 이혼신청을 취하했다. 이렇게 효과가 나타나자 지난 2월 인천지방법원, 5월 의정부지방법원과 서울남부지방법원도 이 제도를 뒀고 10월 서울가정법원도 도입하기로 했다.

    협의이혼 하는 처지에선 숙려기간도 가져야 하고 의무상담도 받아야 하는 셈이다. 그래도 협의이혼은 상대적으로 정신적 물질적 비용이 적게 드는 편이다.

    협의이혼과 재판이혼

    협의이혼의 반대는 재판이혼이다. 소송으로 가는 것이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려는 경우 당장 변호사 선임비용이 들어간다. 그밖에 소소하게 법원 인지대나 송달료가 들어간다.



    재판이혼은 조정이혼과 이혼소송으로 나뉜다. 조정이혼은 양측 변호사가 만나 합의를 도출하는 것으로 끝난다. 빨리 이혼절차를 마무리 짓고자 하는 부부가 선호하는 방식이다. 합의가 신속하게 이뤄지면 협의이혼보다 이혼이 빠르게 성립한다.

    이혼소송은 정신적 물질적 비용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방식이다. 통상적으로 6개월에서 1년이 걸리지만 2심과 3심까지 가는 경우에는 3년 정도를 투자해야 한다. 이혼소송을 거쳐서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대략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경북대 오정일 교수팀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가정법원 1심 합의부 이혼소송 판결문 1098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위자료는 평균 3000만 원이다. 평균 재산분할 비율은 46%였다. 참고로 이혼소송 제기자의 90%가 여성이었다. 주로 아내가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일단 정보부터 챙겨라

    협의이혼이건 재판이혼이건 이혼을 결행하려면 가장 먼저 재산권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역시 정보! 배우자가 가진 재산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장 관리를 비롯한 재산 관리를 본인이 하는 경우라면 손쉽다. 하지만 배우자가 재산 관리를 하는 경우에는 본인이 모르는 재산이 있을 수 있다.

    통장을 따로 관리한다면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 통장이나 재산 관리를 아예 따로 하곤 하는데, 이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배우자의 재산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할 때까지 이혼 의사를 내비치지 않는 것이 좋다. 배우자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런 의사를 숨기고 관련 정보를 확보해야 한다.

    배우자로부터 차제에 재산 관리권을 인계받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재산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협의이혼 과정에서는 물론 재판이혼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앞서 이혼소송 가운데 90%가 아내가 제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재산분할 비율은 50%보다 다소 떨어지는 46%라 했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낮을지 모른다. 남편의 재산 상황을 정확하게 모르는 탓이다.

    아울러 빨리 이혼 절차를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에 포기하는 것도 한 요인이다. 지긋지긋한 결혼생활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고 남부끄럽기도 하고. 특히 이혼소송에 돌입해 치열한 다툼이 이어지면서 소송기간이 길어지면 생활고 등으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대충 정리해버린다.

    안 주고, 늦게 주고

    꼼꼼하게, 강단 있게 그리고 우아하게

    이혼문제를 다룬 TV드라마 한 장면.

    재산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있거나 재산 관리권을 장악한 경우에는 이혼 이후 재산권 확보에도 유리하다. 이혼 이후 전 배우자의 자세는 확연히 달라진다. 남이기 때문에, 자신의 것을 더 챙기려든다. 줘야 할 것도 가능한 한 안 주려 한다. 주더라도 최대한 늦게 주려고 한다. 이때는 강제집행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것 역시 정보력이 뒷받침될 때 힘을 발휘한다.

    양육비를 받아내는 일도 녹록지 않다. 2012년 한부모 가족 실태조사 결과, 한 번도 양육비를 받지 못한 한부모가 무려 83%였다. 이때 한부모는 주로 여성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까지 2월 제정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양육비를 받아내려 할 때도 상대방 재산 정보는 중요하다.

    이혼 통보 방법

    재산 정보를 충분히 확보했다면 배우자에게 이혼 의사를 밝혀야 한다. 이 순간 반응이 나뉠 것이다.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경우와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경우.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경우에도 반응이 다시 나뉜다. 수용하거나 반발하거나.

    반발이 의외로 거셀 수 있다. 폭력 행위가 뒤따를 수도 있다. 극단적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미리 수립하는 것이 좋다. 이와 관련해 이혼 선언 후 곧바로 별거에 들어가는 것이 안전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별거자금이다. 이혼소송까지 가면 3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적어도 그 정도 버틸 수 있는 거처가 필요하다. 주거비와 생활비를 충분히 마련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능하다면 이혼소송 비용까지 준비한 뒤 실행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변호사를 만나 무료상담을 하면 대략의 비용을 산정할 수 있다. 그 산정치보다 넉넉하게 축적해두는 것이 안전하다. 소송비용 때문에 2심과 3심까지 못 가고 중도포기하면 억울할 터다. 이혼소송은 배우자의 악행에 따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응징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받아낼 것도 온전히 받아내지 못하면 한이 많이 맺힌다고 한다. 여생을 한으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논리전과 심리전

    이혼 과정에서 상대방은 당연히 방어 전략에 돌입한다. 창과 방패의 싸움이 된다. 논리에 밀려서도 안 되지만 심리에 밀려서도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마음을 강고하게 먹어야 한다. 이혼소송 3심까지 갈 결연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

    전략을 잘 세우면 논리전에서도 유리하고 심리전에서도 우위를 누릴 수 있다. 사전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이 좋다. 재판이혼으로 갈 때에는 변호사들이 도움을 줄 것이다. 문제는 협의이혼으로 갈 때다. 지인의 조언을 참고로 스스로 이혼 절차를 밟기 마련인데 이때 실수가 잦으면 손해 볼 수밖에 없다.

    처음엔 이혼소송을 염두에 두고 재판이혼과 협의이혼 두 가지 모두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기 어려울 경우에는 이혼상담사의 도움을 받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앞서 법원이 의무상담제를 도입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때 상담전문가에게 관련 조언을 받을 수 있다. 변호사를 두면 여러모로 편리하고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그러나 변호사에게 지급하는 수임료가 만만치 않다. 1000만~2000만 원이 넘어가는 건 다반사. 게다가 1, 2, 3심 재판마다 수임료를 별도로 내야 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우호적 이혼’ 분위기 조성

    결국 이혼하려 한다면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협의이혼이 최상이다. 협의이혼으로 가려면 이혼 선언 직후 배우자와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혼하는 마당에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우호적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면, 굳이 별거에 들어갈 필요도 없다.

    동거하면서 대화로 이혼 절차를 논의하고 재산 분배와 양육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최상이다. 이때 부모형제를 비롯한 주변의 개입이 활발할 것이다. 그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도 필요한데, 각자가 이것까지 잘 해낸다면 협의이혼은 훨씬 원활해진다. 이런 점에서는 황혼이혼이 더 순조로울 수 있다. 부모형제로부터 훨씬 독립적인 상태기 때문이다.

    달래보라

    동거하면서 우호적 분위기하에서 협의이혼! 최상이기 때문에 당연히 시도해야 한다. 이것은 첫 반응에서 어느 정도 감지해낼 수 있다. 이혼 선언에 대해 수용적 자세라면 일단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발이 심하면 그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므로 냉큼 별거로 들어가야 한다.

    첫 반응이 ‘반발’이었다고 하더라도 단박에 포기하지 말고, 달랠 필요가 있다. 달래서 최대한 우호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이혼 선언을 ‘당하고’ 나면 심리 상태가 매우 불안정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에 따라 일종의 패닉 상태가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수용과 반발 사이를 수시로 오가기도 한다.

    이혼을 선언한 당사자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연히 감정의 기복이 심해진다. 심리적으로 냉·온탕을 오가다보면 강대강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결과 협의이혼으로 가던 분위기가 이혼소송 쪽으로 급격히 쏠리기도 한다.

    갈 데까지 갈 각오는 하되…

    아주 힘든 일이지만 가능한 한 심리적 평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더 차분해져야 한다는 의미다. 재산 정보 수집 같은 이혼 준비 과정을 충분히 거치면 이 평상심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역시 준비하는 자를 이기기 어렵다.

    협의이혼에 실패해 재판이혼으로 갈 때, 특히 이혼소송으로 갈 때는 정말 갈 데까지 갈 각오를 해야 한다. 인간성의 밑바닥까지 경험할 생각을 해야 한다. 법률적으로는 인정사정없이 대해야 하겠지만 극단적 언사는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상대에 대한 인격 모독성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 이때도 변호사가 나서도록 하는 게 좋다. 그래야 또 다른 법적 분쟁을 피할 수 있다. 명예훼손, 모욕 등으로 쟁점이 번지면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실익이 적어진다.

    극단적 언사를 피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혼 이후 관계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 일은 정말 모른다. 자녀 문제로 협조를 구해야 할 일이 생길지 모른다. 너무 막 나가버리면 관계를 복구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친구 같은 이혼 부부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일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혼 후에 친구로 남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양육권을 갖지 못한 사람이 재혼한 전 배우자 집에 가서 자녀를 만나거나 데리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광경을 보는 것은 불가능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조만간 매우 흔한 광경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본다. 얼마나 걸릴까. 대략 10년 정도? 이런 추정을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서구 문화를 따라잡는 속도가 대략 그 정도까지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감정 대립 아닌 거래로

    이혼하면서 재결합까지 염두에 둘 수도 있다. 이 말은 다소 초현실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재결합을 염두에 두면 감정 대립 수위가 한결 낮아진다. 그렇게 수위를 낮춘 상태에서 이혼을 철저하게 거래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서로에게 이점이 많다. 정치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기술은 거래의 기술이다. 거래를 잘하면 전쟁으로 갈 일도 말로 끝낼 수 있다. 이혼할 때도 가능하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재결합하면 다시 결혼하는 것을 떠올린다. 이것도 고정관념이다. 황혼이혼 이후의 황혼동거를 생각해보자. 전 배우자와 친구가 될 수 있고, 친구라면 동거생활이 가능해진다. 과거의 배우자와 동거생활? 황혼재혼보다 덜 위험할 수도 있다.

    이혼 실행 과정에서 물론 ‘원위치’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이혼을 줄이기 위해 이혼숙려제도와 의무상담제를 두는 이유도 우발적 이혼을 방지하려는 데 있다. 확신범인 경우에는 이런 제도가 별 의미가 없긴 하다. 그러나 확신범조차 다시 생각하기 마련이다. 철저한 계산을 마쳤음에도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상대방의 반응이 예상과 달라 흔들릴 수도 있다.

    이혼 대신 동거?

    이혼 실행 중에 ‘꼭 이래야 하나’라는 회의감이 든다면, 주저 없이 이혼을 재고해야 한다. 이혼을 하지 않는 대신 사실상 결혼생활을 마감하고 동거로 들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꼼꼼하게, 강단 있게 그리고 우아하게
    이종훈

    성균관대 박사(정치학)

    국회도서관 연구관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 진행자

    現 아이지엠컨설팅(주) 대표, 시사평론가

    저서 : ‘정치가 즐거워지면 코끼리도 춤을 춘다’ ‘사내정치의 기술’


    젊은 부부도 이혼하는 대신 결혼을 동거로 바꿀 수 있다. 자녀 탄생 이후 아내가 양육에 매달리면서 각방을 쓰는 ‘사실상 동거’ 부부가 적지 않다. 결혼을 했는데 실제로는 결혼생활이 아니라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사는 것보다는 동거생활로 새로이 정의 내리는 편이 마음이 편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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