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호

연말 생존 3원칙 연줄, 전설, 홍보

감원 한파의 정치학

  • 이종훈 |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5-11-19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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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마다 연말이면 감원이 추진된다. 글로벌 경제 위축에 따른 것이지만, 경기가 호전 국면일 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송년회, 크리스마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하는 따뜻한 세밑? 그런 건 연말에 살아남은 자들의 몫일 뿐이다.
    연말 생존 3원칙 연줄, 전설, 홍보

    동아일보

    7월 전 직원의 7%에 해당하는 7800명 감원 계획을 발표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추가로 1000명을 해고할 예정이다. 3M도 올해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면서 1500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미국에선 휴렛팩커드 3만 명, 캐터필러 4000~5000명, 월마트 450명, 트위터 336명 등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다. 업종 불문에 실적 불문이다.

    업종 불문, 실적 불문

    자원 신흥국도,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브라질 국영 석유업체 페트로브라스는 최근 협력업체 직원 5000명과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했다. 러시아 국영 자원기업 가스프롬과 로스네프트에서도 대규모 감원이 예상된다. 스위스의 광물기업 글렌코어는 상반기 6억76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한 끝에 잠비아의 광산 직원 4300명을 해고했다. 영국 로열더치셸 역시 일자리 6500개를 줄일 예정이다.

    금융권도 예외가 아니어서 독일 도이체방크가 최근 10개국에서 철수하면서 3만5000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최대 은행 유니크레딧도 1만 명 정도 해고할 계획이다. HSBC도 향후 2만5000명을 정리하기로 했다.

    더 차가운 한반도 칼바람



    우리나라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반도의 칼바람은 더 차갑게 느껴진다. 대규모 적자를 낸 조선업체가 연말 감원을 주도할 움직임이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이 임원을 30% 이상 줄이고 직원도 2000~3000명씩 총 1만여 명을 줄일 계획이다. 잘나가는 삼성전자도 매출 감소 전망에 따라 본사 지원부문 인력을 10% 줄인다는 소식이다. 건설 중장비 제조업체 두산인프라코어는 사무직 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기로 했다.

    금융업계의 감원도 늘 하던 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2010년 말 4만3364명이던 증권사 임직원 수는 이미 3만678명으로 감소했다. 보험사와 은행은 각각 2000명 내외를 해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실 연초 인사를 앞두고 진행되는 연말 감원은 우리나라 모든 직종에 걸쳐 이뤄진다.

    그래도 살아남는 자 있다!

    연말 연례행사가 된 감원바람 속에서 살아남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올해 무사했다고 내년까지 그러리란 보장도 없다. 나이가 들수록, 상위직으로 오를수록, 한 해 한 해 버티기가 더 힘들어진다. 그래도 누군가는 살아남아 임원이 되고 CEO가 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존의 핵심은 연줄

    2002년 4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소개한 감원에서 살아남는 5가지 생존 방법은 이렇다. ①매출 향상에 기여하라 ②연줄을 확실히 만들라 ③회사의 간판 얼굴이 돼라 ④정치적 인간이 돼라 ⑤대안을 마련해두라.

    하나같이 천금 같고 주옥같은 말이다. 특히 매출 향상에 기여하고, 연줄을 만들라는 말, 연말을 앞둔 직장인에겐 복음과 같은 중대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듣고 새기고 실천해야 한다. 합리주의와 개인주의로 똘똘 뭉친 미국에서, 그것도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 ‘연줄’을 이야기하니 연줄이 이만저만 중요한 게 아닌 셈이다. 그러나 요즘엔 이 5가지 생존 방법만으로도 부족하다.

    중세 회귀, 무한희생

    2012년 미국 ‘포춘’이 제시한, 구조조정에서 살아남는 처신법은 10가지다. ①연봉인상 요구 자제 ②승진 요구 자제 ③업무 자청 ④개인 홍보 ⑤재택근무 지양 ⑥조기 출근 ⑦늦은 퇴근 ⑧잡담 자제 ⑨정장 착용 ⑩상사의 고민 공유.

    거의 칠거지악(七去之惡) 수준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이미 대한민국 직장인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진 직장생활 상식이다. 최근에는 오히려 이런 생활로부터 벗어나는 신입사원이 늘어나던 터다. 그런데 다시 과거로 회귀하라고? 목 잡고 뒤로 쓰러질 노릇이다.

    한국 직장도, 미국 직장도 중세시대로 확실히 되돌아간 것 같다. 신분제도 이런 신분제가 없고 계급제도 이런 계급제가 없다. 그러나 혁명은 불가능하고 오직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만 있을 뿐이다.

    가짓수도 5개에서 10개로 늘었지만 개인적으로 희생해야 할 것도 크게 늘었다.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하는 것은 물론이다. 돈 더 달라거나 승진시켜달라고 해서도 안 된다. 대신 아부는 열심히 해야 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해야 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무한희생을 하라! 아니면 잘릴 각오를 하라!

    실력은 변수가 아니다

    연말 생존 3원칙 연줄, 전설, 홍보

    동아일보

    대규모 감원 소식이 들려도 의연한 직장인이 많다. 실력을 믿는 자들이다. 나처럼 실력 있는 인재를 누가 감히 내쫓으랴 생각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실력이 밥 먹여주나? 회사가 위기에 처한 때는 실력조차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 실적 불문하고 감원을 하는 마당에 솔직히 실력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얼마간 고려되긴 하겠으나 절대적 변수는 아니다.

    주관적 판단 = 착각

    더욱이 윗사람 눈에 실력은 도긴개긴일 때가 많다. 공채로 들어와 중간관리자 이상에 오른 경우는 더하다. 장단점이 있을지언정 누가 더 탁월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스스로 내가 가장 출중하다고 굳게 믿겠지만 그것은 주관적 판단, 곧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설령 실력이 경쟁자에 비해 조금 낫다 하더라도 결정적 장점으로 봐주진 않는다.

    실력 80점, 충성심 100점

    나의 실력이 100점이고 경쟁자의 실력이 80점일 때, 하지만 나의 충성심은 80점이고 경쟁자의 충성심은 100점일 때 상사는 누구를 택할까. 당연히 경쟁자, 그 ‘나쁜 놈’이다. 왜 그럴까. 경쟁자의 충성심을 나는 아부라고 주장한다. 맞다, 아부가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아부도 충성심이다. 나는 ‘충성심이 강하다. 그러나 아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사는 나에 대해 충성심이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장에선 표현하는 것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시로, 반복적으로, 확실하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것은 상사의 생리를 잘 모르기에 그런 것이다. 상사는 끊임없이, 그리고 수시로 부하의 충성심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충성한다는 사실을 수시로, 반복적으로, 확실하게 표현해야 한다.

    “자기 나 좋아해?”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나 또한 부하에 대해 동일하게 행동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연애할 때도 연인 간에 가장 자주 또 지속적으로 오가는 대화는 애정 확인이다. “자기 나 좋아해?” “그럼 좋아하지!” “얼마나?” “하늘만큼 땅만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이지만, 이것을 아부라고 매도하는 사람은 없다. 상사와 부하 사이의 애정 확인, 충성심 확인도 감정이 오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빼도 박도 못할 명분

    실력은 기본에다 충성심에도 차이가 없다면 어떤 것이 변수로 작용할까. 명분이다. 나를 해고할 수 없는, 빼도 박도 못할 논리적 근거다.

    구조조정이나 승진에 수동적으로 임하는 직장인이 많다. 연공서열에 따라 이뤄질 때, 부장급까지 ‘자동 빵’일 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연공서열이 파괴되고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무한경쟁 시대에 이래선 곤란하다. 적극적으로 임해도 자리를 보장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쟁이 심해지면 홍보전도 치열해진다. 루머가 난무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재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사권을 행사하는 상사들로서도 판단이 힘들어진다. 아무개는 이 점이 뛰어나고 아무개는 저 점이 뛰어난 식이기 때문이다. 장점이 많은 순서로도 비교해보고 단점이 많은 순서로도 비교해보지만, 판단이 힘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판단력조차 희미해지면 직관 또는 감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은 살리는 게 맞다’

    직관적으로 ‘아무개는 살리는 것이 맞다’는 판단을 내린 순간, 인사권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대외적으로 설득이 가능한 명분이다. 단지 포장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이 약하면 당당하게 고집할 수 없다. 그래서 영리한 이들은 바로 그 명분을 만들어 인사권자에게 제공한다.

    그 명분은 왜 나를 살려야 하는지, 왜 나를 승진시켜야 하는지를 홍보하는 논리와 더불어 단점을 방어하는 논리다. 그것은 누구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간결하게 정리돼 있어야 한다. 한 페이지 이내로!

    기업에서도 공천 전쟁

    내가 믿고 따르는, 다시 말해 충성하는 상사가 조직 내에서 실력자라면 내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 경우 그 실력자 휘하의 부하 가운데 내가 몇 순위로 평가받는지가 관건이다. 선순위라면 안심이지만 후순위라면 실력자 간에 자기 사람 챙기는 과정에서 희생 카드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감원은 실력자들 간의 자기 사람 챙기기와 일정한 자리 주고받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정치권에서 선거철이 되면 가능한 한 공천권을 많이 확보해서 자기 사람을 심고 그것으로 계파를 형성하려 드는데, 구조조정 때 기업에서도 유사한 일이 빚어진다.

    TO에 우연히 포함되기만…

    내가 충성하는 상사가 실력자고 그 휘하의 선순위라면 그 상사 1명만으로도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충성을 바치는 상사가 조직 내 서열이 낮다면, 나의 서열이 낮다면, 그만큼 감원 대상이 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나마 충성할 상사가 없다면, 좋게 말해 줄을 서지 않는 성향이라면, 내 운명은 천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실력자들이 자기 사람 다 챙기고 남은 TO에 우연히 포함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무리는 공정한 기준과 절차로?

    실은 이런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객관적 기준, 곧 실력이다. 충성심 높은 부하들을 이런 명분, 저런 명분으로 모두 구제한 다음 객관성과 공정성을 강조하면서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실력자들이라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언제나 감원이나 해고는 공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른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돼 마무리되는 것이기도 하다.

    전설은 중요하다!

    비로소 실력이 고려의 대상이 될 때, 누가 더 유리할까. 역시 전설을 지닌 인물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름의 전설을 만들어내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장생활 10년 차 이상에 사내외에서 일 잘한다는 평판마저 획득하지 못했다면, 사실 감원 대상에 오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숨죽여 지내야 한다.

    1만 시간의 법칙

    1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듯이, 10년 동안 업무에 집중하면 달인의 경지에 오르고 남는다. 하루에 3시간씩만 투자해도 1년이면 1000시간, 10년이면 1만 시간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 반드시 맞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1만 시간이면 솔직히 업무에 달인이 돼야 정상이다.

    1만 시간이 지났는데도 업무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하루에 3시간 정도조차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반문해봐야 한다. 매일 6시간을 집중했다면 5년 차 정도에 벌써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을 것이고, 5년 차와 10년 차 사이에 전설 하나쯤은 만들어냈을 것이다.

    셀프 홍보는 필수

    자신 나름의 전설이 있어도 상사들이 기억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자신의 성과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남김없이 기억하고, 틈날 때마다 자랑질해대는 상사도 정작 부하들의 성과는 자주 잊어버린다. 비단 상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가 기본적으로 타인의 일에 무관심하다. 유명 연예인의 일도 금방 잊는 판에 보통 직장인의 일을 끝내 기억해줄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셀프 홍보다.

    한심한 선비

    선비정신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은 직장생활에서도 겸양지덕을 실천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타인 대신에 해고를 자청할 정도가 아니라면, 셀프 홍보를 비난해선 안 된다. 실제로 누구나 셀프 홍보를 하고 있다. 다만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가장 한심한 사람은 선비인 척 점잔만 빼다가 정작 해고 명단에 오르면 그제야 셀프 홍보전에 뛰어드는 사람이다. 효과도 별로지만 그간 좋았던 이미지도 단번에 망가져버린다.

    티 나지 않게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기본은 ‘상기’다. 잊을 만하면 과거 성과, 그 전설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담담하게 당시를 회고하면서 배울 점과 고칠 점을 적당히 언급하는 식이 좋다. ‘맞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생각하게만 해줘도 충분하다.

    바닥을 확인하는 기회

    만약 올해 연말에 살아남는다면 무엇으로 살아남은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연줄? 전설? 홍보? 이렇게 생존지수를 평가하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감원한파는 나의 바닥을 확인하는 기회다.



    그래도 비빌 언덕이 있기에

    연말 감원은 미래에도 공식일 것이므로 중장기 대책도 세워야 한다. 승진이나 전직이나 창업이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지만, 굳이 어려운 순서를 따지자면 창업→전직→승진이다. 그래도 승진이 쉽다. 비빌 언덕이 있기 때문이다.

    전직도 점점 어려워지는 추세다. 감원이 사회 전 부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갈 곳이 고갈되는 탓이다. 남는 것은 창업뿐이다. 아니면 그냥 놀아야 하는데,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길다.

    창업?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창업이야말로 정답이 없다. 그래서 하라 마라 말하기도 어렵다.

    쫓겨나지 말고 먼저 버려라

    영원히 살아남는 사람은 없다. 정년퇴직 때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오히려 비정상인 시대다.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게 바람직하다. 예기치 않게 당하고 골방에서 와신상담하는 것보다는 셀프 예방주사를 놓는 것이 좋다.

    아울러 쫓겨나지 말고 먼저 회사를 버릴 것을 권한다. 인간으로서 품격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쫓겨나면 많이 망가진다. ‘찬바람이 불면 내가 떠난 줄 아세요. 스쳐가는 바람 뒤로 그리움만 남긴 채 낙엽이 지면 내가 떠난 줄 아세요.’ 이 노래가 이 연말을 끝으로 직장생활을 마치는 모든 직장인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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