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여럿이 함께하면 길은 뒤에 생긴다”

신영복과 27년 교유한 ‘더불어숲’ 사람들

  •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여럿이 함께하면 길은 뒤에 생긴다”

1/2
  •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독자 모임
  • ● “이웃에 대한 관심과 애정 특별했던 분”
  • ● 소주 ‘처음처럼’ 글씨로 ‘처음처럼’ 장학회
“여럿이 함께하면 길은 뒤에 생긴다”

신영복 교수와 함께한 ‘더불어숲’ 회원들. 사진제공·더불어숲

신영복(1941~2016)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가 많다. 1월 15일 그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이 8500여 명에 이르렀고, 성공회대 추모전시관엔 추모엽서 1800여 장이 내걸렸다. ‘일반인’으로선 특별한 장례였다.
신 교수의 족적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남아 있다.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인 그의 책을 아끼고 그의 생각을 따르던 ‘더불어숲’ 회원들의 마음은 특히 더 애틋하다. 20년 넘게 그와 교유해온 더불어숲 회원들은 고인의 부인과 외아들 곁에서 상제(喪制) 노릇을 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자녀를 친척에게 맡기고 달려와 조문객을 맞고, 시신을 운구하고, 영정사진을 들었다.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처럼 고인이 좋아하던 글귀가 적힌 현수막을 성공회대 외벽에 건 것도 그들이다.

나이 불문 ‘친구 사이’

1월 28일 서울 중구 남산골공원 근처에 있는 더불어숲 사무실에서, 그리고 2월 3일 종로구 낙원동에 있는 ‘이문학회’에서 모임에 참여해온 이들을 만났다. 김범회(41), 배기표(45), 심은하(44), 유연아(42), 윤미연(46), 이윤경(41), 장영주(60), 좌경숙(66) 씨가 그 ‘나무’들이다. 더불어숲에선 초창기 회원들을 ‘오래된 나무’, 갓 들어온 이들을 ‘어린 나무’라고 부른다. 윤미연 씨는 “선생님(더불어숲 회원들은 신영복 교수를 이렇게 부른다)은 자신에 대한 우상화를 경계하며 ‘엑스트라도 그 사람에게 앵글을 맞추면 다 주인공’이라고 하셨다”면서 “우리는 선생님을 존경하는 제자와 독자들로, 그분과 좋은 친구 사이였다”고 했다.
더불어숲 모임은 신 교수가 출소한 뒤 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년)을 읽고 감동을 받은 독자와 지인들이 모이면서 시작됐다. 신 교수는 1989년부터 글쓰기, 서예, 강연을 계기로 그들과 만났다. 1990년부터는 주말에 북한산을 올랐고, 1996년 봄부터는 자택 근처인 서울 목동 파리공원에서 모임을 이어갔다.
모임이 확장된 건 1996년 스승의 날에 이연창 씨가 더불어숲 홈페이지(www.shinyoungbok.pe.kr)를 선물하면서부터다. 인터넷 사용이 활성화한 1998년부터 홈페이지 이용자가 늘었고, 온라인에서 만나던 이들이 그해 강원도 철원으로 소풍을 가면서 정기 모임이 시작됐다. 이후 간단한 모임은 ‘소풍’, 버스를 대절해서 가는 모임은 ‘대풍’이라 불렀다. 초기에는 동네에서부터 10여 리 산판 길을 걷고, 도르래에 매달려 오대산 자락의 내린천을 건너, 신 교수의 대학 후배인 신남휴 씨의 개인산방(開仁山房)으로 대풍을 가기도 했다. 이후 더불어숲 홈페이지에 실린 글은 2001년 ‘나무가 나무에게’라는 책으로 엮일 만큼 풍성해졌다.
좌경숙 씨는 유학생 남편과 독일에 살다 귀국한 뒤 경희대 앞의 가게에서 ‘더불어 한 길’이라고 쓴 신 교수의 글씨를 본 것을 기점으로 그의 책과 더불어숲 홈페이지의 매력에 푹 빠졌다. 1997년 용기를 내 홈페이지에 공지된 퇴촌 소풍에 동참한 인연으로 회원이 됐다. 
“소풍이라고 해서 갔더니 회원들이 빙 둘러앉아 신문지 깔고 카레라이스를 먹더라고요. 그 소박한 만남이 좋아서 ‘제가 사는 대전에 오시라’고 했어요. 홈페이지에 이 소식을 공지한 뒤 30여 분이 저희 집에 오셔서 1박2일을 보냈지요. 회원들이, 감옥에 있던 선생님께 6, 7년간 글씨를 가르쳐준 정향 조병호 선생 댁에 들른 뒤 저희 집에 와서 부럼 까먹고, 신 선생님 강의를 듣고 그랬죠. 좋은 사람들이 좋은 기운을 주니까 참 좋았습니다.”
“여럿이 함께하면 길은 뒤에 생긴다”

더불어숲 회원들이 신 교수의 스승인 노천 이구영 선생 성묘 후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제공·더불어숲

“자기 평가는 서리처럼 차갑게”

2001년 합류한 배기표 씨도 책과 홈페이지를 보다 소풍에 참여한 뒤 ‘그루터기(스태프)’ 활동을 해왔다. 김범회, 이윤경 씨처럼 신 교수의 성공회대 강의를 청강하다 모임에 들어온 이도 많다. 심은하 씨는 대학 학보사 시절 신 교수를 인터뷰한 계기로 인연을 이어온 경우.
더불어숲은 5, 6개의 소모임으로 구성된다. 글씨 쓰는 모임 ‘서여회’는 2000년대 초부터, 글 읽기 모임 ‘서삼독’은 1990년대 말부터 꾸려졌다. 새로 오는 이들과 책을 읽는 모임 ‘마중물’, 신 교수의 책을 읽으며 주제별로 분류 작업을 하는 ‘언약’은 3, 4년 전 시작됐다.
신영복 교수는 신년 산행과 같은 연중행사엔 참여했지만 소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모임의 이름을 짓거나 조언하며 ‘관찰자’로 머물렀다. 다만 서여회에서는 “글씨는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므로 날카롭지 않고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쓰되, 자기 글은 가을서리처럼 차갑게 평가하라”고 당부하며 전시를 준비하는 모든 제자의 방서(傍書, 작품 해설)를 직접 써줬다. 
현재 오프라인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더불어숲 회원은 80여 명, 신 교수의 학교장을 치를 때 자원봉사에 나선 회원은 200여 명이다. 더불어숲 다음 카페(cafe.daum.net/together.forest) 회원까지 합하면 그 수는 500여 명으로 늘어난다. 회원들의 면면은 노동운동가부터 기업 CEO까지 다양하다. 기자가 만난 이들은 대개 주부, 교사, 대학 강사와 교수다. 나무들은 “처음 나왔을 때 선생님과의 인연을 간략하게 소개할 뿐 본인의 배경에 대해선 자세하게 밝히지 않아 회원들의 직업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전했다. 유연아 씨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의 모임이라 회원들이 처음 온 분들에게도 마음을 활짝 연다”고 덧붙였다.
더불어숲은 모임에 처음 온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회비를 받지 않고, 신 교수의 옆자리 같은 ‘상석(上席)’도 양보한다. 좋은 책도, 좋은 글씨도 나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도 환영한다. 
“2008년에 처음 갔는데 애들을 데리고 갔어요. 선물교환식이 있다기에 여성회에서 만든 비누를 가지고 갔는데, 선생님과 교환하고 싶은 마음에 선생님 앞으로 허겁지겁 뛰어가 제 비누와 선생님의 ‘처음처럼’ 글씨가 쓰인 종이를 맞바꿨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회원들이 신입인 제가 그 자리에 가도록 배려해준 것이었어요(웃음).”(윤미연)
이런 태도는 나무들이 신 교수의 면모를 보고 배우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나무들은 자신들이 신 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 경험한 ‘배려’를 신입 회원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했다.
“2003년 대학원에 다닐 때 성공회대에 청강 가서 처음 뵈었어요. 인사를 드리니 반겨주시면서 연구실에서 손수 복숭아를 깎아주시더라고요. 과도가 없어 커터로…. 그러고는 복숭아 대가 맛있다면서 그건 본인이 드시고, 진짜 맛있는 부분은 저희한테 주시더군요.”(이윤경)
“선생님이 신입 회원들에게 주는 선물로 애용한 것은 쥘부채예요. 지난해에만 건강이 안 좋으셔서 다른 제자가 써줬고, 그전까지는 선생님이 직접 부채를 사와서 글씨를 써주셨죠.”(좌경숙)
회원들 누구나 신 교수의 ‘보살핌’에 대한 기억이 있다. 여성학자 오한숙희 씨가 그를 ‘모성(母性)을 가진 남자’라고 표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유연아 씨는 “선생님을 잘 모르던 남편이 2006년 선생님과 바이칼 호수 여행을 다녀오곤 ‘선생님은 책보다 실제 모습이 더 좋다’ 하더라”고 전했다.

1/2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여럿이 함께하면 길은 뒤에 생긴다”

댓글 창 닫기

2017/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