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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한국정치 대변화

탈주·거부·전복…한국사회 껍질 깬 영파워

대해부 중견 사회학자가 분석한 ‘2002년 세대’의 얼굴

  • 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탈주·거부·전복…한국사회 껍질 깬 영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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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이 일을 냈다. ‘영상세대’ ‘미디어세대’ ‘인터넷세대’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그들이, 평소에는 사회 각 영역에 흩어져 있던 그들이, 그러면서 어떤 중요한 계기마다 깜짝 놀랄만한 정치, 사회적 동원력과 방향성을 연출하는 그들이 한국사회의 중앙무대에 등장했다. 정계에서 주변인으로 떠돌던 노무현을
  •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힘의 배경에 그들이 있다.
  • 그것은 한국사회의 주류가 만들어낸 단단한 껍질을 깨는 대변혁의 신호처럼 보인다. 비주류의 주류 선언. 그 전복(顚覆)의 묘미에 감동하고 환호하는 풍경에 ‘5060’은 망연자실하다. 변화는 과정이 아니라
  • 현실이 돼 다가왔다.
탈주·거부·전복…한국사회 껍질 깬 영파워

2002년 12월19일 밤 민주당사 앞에 몰려들어 환호하는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

◇ 전복(顚覆)의 감동과 ‘2002년 세대’

1997년이 ‘좌절의 해’였다면, 2002년은 ‘전복의 해’다. 좌절과 전복 사이에는 정상회복이라는 중간 단계가 놓여 있기에 두 단어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거리가 먼 두 단어를 잇는 가교가 놓였다. 적어도 사회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김대중 정부 내내 지루한 구조조정 과정에 처해 있던 정치와 경제가 정상 회복됐다고 단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좌절과 전복이 하나로 연결됐다.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 12월, 학기 마지막 강의에서 학생들이 맛보았던 낭패감과 곧 차단될 취업시장에 대한 불길한 예감으로부터 ‘2002년’을 읽어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5년 뒤 그들은 ‘붉은 악마’와 ‘노사모’와 ‘인터넷 세대’로 돌아왔다. FIFA 랭킹 40위 수준의 한국 축구가 월드컵 준결승전까지 진출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2002년 봄 경선이 시작될 때만 해도 동교동계가 장악한 민주당의 주변부를 맴돌던 풍운아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세계는 한국 축구의 승승장구보다 붉은 함성으로 도핑한 ‘붉은 악마’에 경악했고, 한국인들은 노무현의 당선보다 ‘노무현 상징’을 현실화한 인터넷 세대의 힘에 주목했다. 1997년의 좌절이 전복의 힘을 분출시킨 것인지, 그 속에 이미 전복의 가능성이 숨어 있었는지는 정확치 않다.

유동성 문화의 형성

한국인들은 2002년에 한국사회가 이미 변화했음을 실감했다. 전쟁의 상처와 성장시대를 아직도 금과옥조로 품고 있는 기성세대에게 2002년은 충격 이상의 것이었다. 광화문의 거리응원에 덩달아 흥이 났고, 촛불시위에 은근히 걱정을 내비치고,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에 아찔해한 기성세대에 그것은 변화의 과정이 아니라 변화 그 자체였다.

이런 점에서 젊은 세대 역시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교장 훈화’에 반기를 들면 체벌이 돌아온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이들에게 거리 응원과 인터넷 유세는 세대적 연대감과 숨어 있는 역동성의 확인이었을 것이다.

‘2002년의 전복’을 통해 한국사회는 기존의 경계를 넘었다. 새로운 사회로의 진입. 필자는 한국사회를 가두었던 울타리를 넘게 해준 이 힘을 ‘2002년 세대’로 부르고자 한다.

변화의 물결은 기성세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어느 사이에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는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해야 할지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반면 젊은 세대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냈지만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앞으로 그것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떤 결실을 이룰지는 잘 모른다. 이 변화의 내용과 방향을 읽어내는 것은 사회학자의 몫이다. 이 작업은 곧 한국사회 가치관의 변화를 분석하는 일인데, 이 글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그것이다.

이 글의 요지는 ‘성장시대 가치관의 퇴조와 유동성 문화의 형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유동성 문화 속에는 자유주의, 개인주의, 고정적이고 불변적인 것에 대한 반감, 권위와 거대담론에 대한 혐오감, 탈출에의 끊임없는 욕구, 이성(理性)과 일사분란함에 대한 거역, 감성과 감성적인 것을 향한 욕망 등이 뒤섞여 있다.

유동성 문화는 현란한 TV 광고, 인터넷 콘텐츠,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고, 월드컵을 통해 세대적·집단적 문화의식임을 증명해 보였으며, 2002년 대선에서 기성세대의 정치질서를 뒤집었다. 해방 후 한국이 왜곡된 근대를 살아왔다는 점에서 유동성 문화의 등장은 본격적인 근대를 출범시키는 징후라고도 해석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성, 권위, 거대 담론 같은 근대적 전유물들을 혐오한다는 점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흔히 말하듯 한국 특유의 포스트 모던(post-modern)한 현상일 수도 있겠으나, 공공성을 거부하지도 않으며 출세지향적 의식과 물질주의의 적극적 수용이라는 특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에 딱히 유럽식 포스트 모던의 범주에 들어맞지도 않는다. 아무튼 가변성(fluidity), 유연성(flexibility), 이동성(mobility)의 의미를 모두 함축한 이 유동성 문화는 성장시대의 고정적 목표 추구의식과 규칙 준수적 행위양식에 대한 대립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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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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