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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안기부 동원해 제네바 합의 막으려 했다”

94년 강명도·조명철 기자회견 내막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YS, 안기부 동원해 제네바 합의 막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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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은 1993년까지 핵폭탄 5개를 이미 만들었으며 최소한 10개 제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 1994년 7월, 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간 대화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시점에 터져나온 탈북자 강명도씨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미국은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표시했고, 서울 외교가에서는 ”안기부 내 보수파의 고의적인 플레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그러나 9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핵심관계자들은 이 날의 기자회견이 청와대의 직접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YS, 안기부 동원해 제네바 합의 막으려 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으로 불거진 이른바 ‘제2차 북핵 위기’는 6자회담이라는 돌파구를 마련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분위기다. 계속되는 미국의 선제폭격론→당황하는 한국 정부→극적인 해결 단초의 마련→지루한 밀고 당기기까지, 2003년 늦가을 한반도의 풍경은 9년 전 여름 ‘제1차 북핵 위기’ 해결국면의 모습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상상해보자. 지금의 한반도 상황에서 한국 국가정보원이 북한 고위관계자의 망명을 발표하고, 이 망명자가 기자회견장에서 “북한에 숨겨진 핵폭탄이 여러 개 있다”고 증언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연 2차 6자회담은 열릴 수 있을까. 평양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며, 베이징과 워싱턴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더욱이 이 기자회견이 청와대의 직접지시에 따른 것이라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재 한반도를 감싸고 있는 해빙 기류는 단숨에 사그라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1994년 7월27일 북한에서 망명한 강명도씨(강성산 정무원 총리의 사위)와 조명철 김일성대 교수(조철준 전 건설부장(장관)의 아들)의 기자회견은 당시 상황에서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사건이었다.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의 직계가족이 망명을 택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북한의 ‘과거 핵전력’이 초미의 관심사였던 시점에서 터져 나온 ‘핵폭탄 보유 증언’은 전세계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안기부 1특보 해임, 3국장 대기발령

우선 기자회견장에서 강명도씨가 했던 ‘핵폭탄 발언’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북한은 핵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으로 보느냐, 북한이 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강명도씨는 “1993년 10월 영변 핵시설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국가안전보위부 책임자 조문백으로부터 관련정보를 들었다”며 다음과 같이 전한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 5개를 만들었다고 들었다. 장거리미사일도 개발중인데 1994년 내에 실험에 성공할 것이며, 잘하면 핵폭탄도 10개까지 확보가 가능하다고 했다. 당초 목표는 20개였지만 최소한 10개만 만들면 이를 국제사회에 공개하고 유리한 위치에서 북미 회담이나 남북 회담에 임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최소한 핵탄두 10개가 완료될 때까지 김정일은 지연전술을 펼 것으로 생각한다.”

기자회견장은 발칵 뒤집어졌고 이 소식은 외신을 타고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이 다섯 개에 달하는 핵무기를 이미 갖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강씨 발언의 신뢰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나섰고, 미국 또한 “강씨의 발언을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정작 당황한 것은 한국 정부였다. 이튿날 청와대 관계자들은 “강씨의 발언은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정부의 종전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문제의 기자회견을 준비한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고위관계자 역시 “강씨의 이야기는 제3자로부터 전문(傳聞)한 사항이고 이를 뒷받침할 다른 정보가 없어 현단계에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첩보의 하나로 평가한다”며 “이 발언으로 안기부의 정보판단이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수선한 분위기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듯 중요하지 않은 ‘첩보’라면 정부와 안기부는 왜 기자회견을 열어 분란을 일으켰느냐”는 비난이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쏟아졌다. 특히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한국측은 (강씨 등의)귀순사실은 물론 이에 대한 발표 및 회견계획도 우리측에 알려주지 않았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안기부가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 통일원이나 외무부 등과 상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 외교안보라인 간의 조율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소리도 높아졌다.

결국 청와대는 익명의 고위관계자 입을 통해 “대북 관련부처의 사전 의견조율을 보다 강화함으로써 더 이상 혼선이 빚어지지 않도록 할 방침”이라고 언론에 흘렸다. 김영삼 대통령이 관계기관 책임자들과 실무자들을 강하게 질책했다는 이야기도 보도됐다. 안기부 1특보가 사태에 책임을 지고 해임되었고 담당간부인 3국장은 대기발령 조치를 받았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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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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