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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발목 잡은 정수장학회 탄생의 비밀

부산일보· 문화방송 ‘기부 승낙서’ 인감 위조했다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박근혜 발목 잡은 정수장학회 탄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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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김지태 주식 ‘기부 승낙서’ 사본 단독입수 3개의 다른 인감과 필체, 작성된 날짜 ‘二十日’→‘三十日’로 조작
  • ●박용기 전 중정 부산지부장 회고록 “박정희, 1962년 1월2~3일 김지태 조사하라 지시했다” “김용순 사령관, “부산일보, 문화방송 헌납조건 절충 요구”
  • ●1963년 10월21일 국방장관 명의 공문 “1962년 4월11일 10만평 기부출원 이사진 결의에 감사”
  • ●일본 병원진단서 기록 - 1962년 4월2일 김지태 입원사실 확인, 김씨 & 유가족 “이사회 결의 없었다”
  • ●고원증 변호사 “김지태 혐의는 구속 사안 아니었다”
  • ●5남 영철, “박정희의 반환 약속 박근혜 대표도 알고 있다”
박근혜 발목 잡은 정수장학회 탄생의 비밀
《장면 ①》

1962년 6월20일 부산 군수기지사령부내 법무관실. 부산일보 사장 겸 부일장학회 이사장 김지태씨는 흰 죄수복을 입고 수갑을 찬 채 의자에 앉았다.

맞은편엔 5·16 직후 법무장관을 지냈던 고원증 장군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씨가 자리에 앉자 고 장군은 미리 작성한 서류를 꺼내놓았다. 김씨가 14년간 애지중지 가꿔놓은 부산일보와 4년간 막대한 재산을 들여 이제 막 자리잡기 시작한 한국문화방송 및 부산문화방송을 자진해 국가에 무상 기부하겠다는 기부승낙서였다.

아버지 김씨로부터 연락을 받고 인감도장과 인주까지 챙겨들고 달려온 장남 영구씨는 바로 옆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씨와 고 장군 사이에 실랑이가 오갔다. 김씨는 도장을 찍을 수 없다며 버텼고 고 장군은 설득과 협박을 병행했다. 한동안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때 영구씨가 김씨에게 다가갔다.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웠고, 구속돼 있는 회사간부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구씨는 눈물을 흘리며 김씨에게 말했다. “아버지, 우리 이거 없어도 살아요. 그냥 포기하세요.”

김씨는 더 버틸 생각이었지만 아들의 눈물에 가슴이 아파왔다. 김씨는 결국 고 장군이 원하는 서류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그리고 이틀 후 김씨와 함께 구속돼 있던 회사 임원들은 군 검찰의 공소취하로 풀려났다.

《장면 ②》

1962년 6월20일 부산 대신동 교도소 면회실.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지시에 따라 5·16장학재단 설립을 준비하던 고원증 장군과 교도소에 수감중이던 김지태씨가 마주앉았다. 김씨는 수갑이나 포승줄에 묶이지 않은 채 하얀 모시옷 차림으로 자유스런 상태였다.

고 장군은 박 의장으로부터 김씨가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기로 약속했으니 그 재산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하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관련 서류가 미비했다. 무엇보다 장학재단 설립을 위해 교육부에 제출할 김씨의 기부승낙서가 필요했다. 일종의 요식행위였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날 고 장군이 김씨를 찾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마침 김씨의 장남 영구씨가 도장을 들고 그 자리에 와 있었다.

고 장군은 김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미리 준비돼 있던 서류에 도장을 찍어줄 것을 부탁했다. “김 사장, 이미 중정에 재산을 헌납하기로 약속했다면서요? 필요한 서류가 있으니 좀 찍어줘야겠어요.”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던 김씨는 “내가 기증했으니 (도장을) 찍어야죠”라며 순순히 응했다. 그리고 이틀 후 김씨와 임원들은 모두 풀려났다. 군 검찰이 공소를 취하했기 때문이다.

중정 발표 김지태 혐의는 8개 항목

장면 ①은 김지태씨 유가족측의 주장대로, 장면 ②는 고원증 변호사의 진술을 토대로 1962년 6월20일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날짜만 같을 뿐 장소는 물론 상황이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한쪽은 강압에 의해 재산을 강탈당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본인 스스로 순순히 재산을 헌납했다는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3년 전의 일인 만큼 어느 쪽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섣불리 단정짓기 어렵다. 당시 관계자들의 상당수가 고인이 된 상태여서 객관적 진술을 얻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수장학회의 전신 5·16장학회는 과연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수장학회의 탄생배경과 성격, 박 대표와 정수장학회와의 관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 정수장학회 진상조사단 조성래 단장은 “김지태씨 사건은 군사정부에서 시나리오를 가지고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한 언론사 사주의 제보를 빌미로 확대 시나리오를 짰다는 말도 있다”며 “철저히 조사해 반드시 그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고 김지태씨가 기부승낙서에 도장을 찍을 당시의 외압 여부, 만일 있었다면 누구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느냐는 것, 그리고 부일장학회에서 5·16장학회로의 석연치 않은 재산이동 과정이다.

‘신동아’는 이 같은 주요쟁점을 명확히 정리할 수 있는 새로운 문건들을 단독 입수하는 한편 현존하는 관계자들의 증언과 기록을 확보했다.

먼저 김씨의 재산기부가 외압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뤄졌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1962년 김씨가 구속되는 과정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2년 3월27일 중앙정보부(이하 중정) 부산지부는 부정축재처리법 위반, 국내재산해외도피 등의 혐의로 김씨를 비롯한 회사간부 10명에 대한 구속수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김씨가 사업차 독일을 방문한 후 신병치료를 위해 일본에 머물러 있던 시점에 벌어진 일이었다. 김씨에게는 무려 8개항의 혐의가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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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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