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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광장

추하고 섬뜩해서 좋다? 눈에 띄네! 엽기광고

  • 글: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khongt@cheil.co.kr

추하고 섬뜩해서 좋다? 눈에 띄네! 엽기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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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엽기광고가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혐오스러운 이미지가 좋은 느낌을 주는 이미지보다 더 주의를 끌기 때문이다. 광고에서 엽기풍 이미지가 범람하는 것은 우리가 엽기적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으로 증명해준다.
2년 전에 히트한 016-NA광고(사진1)를 보면 놀라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흔히 츄리닝이라 불리는 운동복과 슬리퍼 차림에 무스로 머리를 마음껏 세운 불량배 같은 아이들이 다닥다닥 게딱지처럼 집들이 붙어 있는 달동네의 골목길에 모여 있다. 그뿐인가. 주인공의 아버지는 속옷차림으로 창 밖을 내다보며 침을 뚝 흘리면서 “나두 잘 몰라” 하고 외쳐댄다. 첨단 텔리커뮤니케이션의 서비스를 알리는 광고의 톤 앤 매너(tone & manner)는 그것과는 대척점에 놓인 의도적인 촌스러움과 불편함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로 치장돼 있다.

요즘에는 잘나고 멋진 사람이 아니라 평범하다 못해 볼품없어 보이는 사람이 등장해 아름답고 황홀한 세상보다는 음침하고 괴기스러운 세상을 보여주는 광고가 늘고 있다. 멋진 모델이 등장해 환상적인 상황에서 제품을 주인공으로 부각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고전적 광고문법이었다. 그 문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네거티브 접근법이 각광받는 것이다.

하위문화의 중심 코드, 엽기



지금까지 광고에서 네거티브 접근법은 터부였다. 우선 네거티브로 접근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포지티브로 결말을 맺는 것이 관례였다. 예를 들어 자신의 차에 대담하게 ‘불량품(Lemon)’이란 헤드라인을 사용한 자동차 광고의 고전 폴크스바겐 비틀 광고도 결국은 수많은 검사 중 단 하나라도 통과하지 못하면 불량품 판정을 받아 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는 포지티브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네거티브 접근법이었다.

그러나 이젠 네거티브한 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광고들이 주류에 편입됐다. 추하고 악한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광고가 세를 불리고 있는 것이다. 광고인들은 좋은 감정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것 못지않게 인간 내면의 악한 면을 연구하고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광고를 소비하는 인간은 선과 악, 양쪽의 감정을 동시에 지닌 동물이기 때문이다.

네거티브 접근 광고의 선두에 엽기를 표방하는 광고가 자리하고 있다. 알다시피 엽기는 2000년 한국 대중문화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면서 갖가지 이미지를 만들어 전파했다. ‘기괴한 것이나 이상한 일에 강한 흥미를 가지고 찾아다니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엽기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골 때린다’ ‘깬다’ ‘썰렁하다’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의미의 용어로 정착됐다. 다시 말해 괴기가 됐건 개그가 됐건 간에 재미있고 색다르게 보이는 것은 모두 엽기라는 그물망에 건져 올려진다.

불과 1,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엽기는 조직폭력배의 엽기적 살인행각과 같이 인간으로서는 차마 저지를 수 없는 비도덕적인 범죄 행위를 수식하는 용어로 쓰였다. 그러나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멱살을 잡고 싸우는 해프닝도 엽기이고 똥 모양의 기념품을 선물로 주고받는 행사도 엽기다. 이처럼 엽기는 단순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 ‘괴이하고, 메스껍고, 촌스럽고, 그러면서도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새로운 사회·문화적 의미를 획득하면서 하위 문화의 코드를 형성하고 있다.

더 이상 엽기는 엽기적이란 한정적 수식어의 활용 패턴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이제 엽기 자체가 소비되는 시대다. 그 엽기를 활발히 소비하는 집단은 말할 것도 없이 10대, 20대다. 예쁘고, 바르고, 합리적인 것을 표방한, 그러나 알고 보니 거짓투성이었던 기존 가치관에 대한 대항문화로서 존재하기에 젊은 층일수록 엽기에 열광한다.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엽기란 단어의 영어 표현은 그로테스크(grotesque)에 가깝다. 필립 톰슨(Philip Thomson)의 저서 ‘그로테스크’에 따르면 그 의미는 ‘기괴하고 메스꺼우면서도 희극적이고 즐거운 반응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막연히 괴이한 어떤 것이 그로테스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해 그로테스크는 괴이하고 역겨운 내용과 희극적인 표현 양식 사이의 충돌이 빚어내는 야릇한 감흥을 말하는데, 지금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사회·문화적 의미를 획득한 엽기가 그와 비슷한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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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khongt@che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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