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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宗家|必敬齋

전통 궁중음식점으로 거듭난 세종대왕 후손의 명문가

  • 글: 박재광 parkjaekwang@yahoo.co.kr 사진: 정경택 기자

전통 궁중음식점으로 거듭난 세종대왕 후손의 명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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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경재(必敬齋)는 조선조 제9대 성종 때(15세기) 건립된, 500년 역사를 간직한 전통가옥이다. 1987년 전통건조물 제1호로 지정된 필경재엔 ‘반드시(必) 웃어른을 공경(敬)하는 자세를 지니고 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전통 궁중음식점으로 거듭난 세종대왕 후손의 명문가
필경재는 세종대왕의 다섯째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증손 정안부정공 이천수(定案副正公 李千壽)가 건립해 지금까지 19대째 그 종손들이 살아오고 있다. 집 뒤로는 13만평 부지에 700여기를 모신 묘지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조선시대 상류층의 장례법을 구경할 수 있는 ‘묘지 박물관’인 셈이다.

필경재는 북한산성을 축조한 숙종 때의 영의정 혜정공 이유(惠定公 李濡), 효종 때 우의정을 지낸 충정공 이후원(忠貞公 李厚源), 헌종 때 우의정을 지낸 희곡 이지연(希谷 李止淵) 등 3정승을 배출했다. 순종 때 장원급제해 도승지를 지낸 후천 이윤종(後川 李胤鍾)을 비롯 15명의 종손이 모두 과거급제했다. 특히 지금의 서울시장 격인 한성판윤을 20명이나 배출했다는 것이 이 집안의 자랑이다.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철기 이범석(鐵驥 李範奭) 장군, 고종 때 네덜란드 헤이그 특사였던 이준·이상설 열사와 함께 망국의 한을 품고 장렬하게 산화한 이위종(李瑋鐘) 열사도 직계후손이다. 필경재는 일제치하에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민족혼을 심어주기 위하여 설립된 중앙고등학교(中央高等學校)의 광주분교(廣州分校)로도 사용됐다.

이 집안이 배출한 인물들 중 명문가 정신을 대표하는 이는 바로 광평대군의 10대손인 녹천(鹿川) 이유(李濡, 1645∼1721). 그는 숙종 때 한성판윤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는데, 대표적인 업적은 서울을 방어하는 북한산성 축조다. 지하철 1호선 ‘녹천역’은 이유의 호를 따서 지은 역명이다. 그는 북한산성 축조 당시 이곳에 살다시피 하면서 공사를 독려했다. 녹천의 가족과 친인척, 노비들도 인부들의 밥을 해주고 생필품을 대느라 이곳을 자주 드나들었다. ‘녹천골’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 때문이다.

녹천의 11대 종손인 이병무(61)씨에 따르면 북한산성 축조에 들어간 이 집안의 사재가 대략 쌀 300섬 규모라고 한다. 녹천이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북한산성 축조를 고집한 배경에는 왕가로서의 긍지와 사명감, 도덕적 책무가 상당부분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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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재광 parkjaekwang@yahoo.co.kr 사진: 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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