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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총장에게 듣는다

“투쟁 이미지 벗고 호남 명문사학으로 재도약”

양형일 조선대학교 총장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투쟁 이미지 벗고 호남 명문사학으로 재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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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6년, 광주시민 7만여 명의 성금으로 설립된 ‘민립대학’ 조선대. 끈질긴 학원민주화운동 결과, 투명성·민주성이 도드라지는 ‘ ‘청정대학’으로 거듭났다. 실용교육의 기치를 내걸고 지역 명문으로 재도약하고 있는 조선대의 오늘과 내일.
광주시 동구 서석동. 무등산 한 자락을 밟고 선 조선대학교 본관 건물은 위풍당당함을 자랑한다. 웬만한 대학 건물을 서너 채는 이어 붙여놓은 듯 거대한 규모다. 건립 연도는 1948년. 처음에는 그리 큰 건물이 아니었으나 교세 확장에 따라 차차 평수를 넓히다보니 지금처럼 우람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왜 이 건물이 조선대의 상징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본관 건립 연도에서도 알 수 있듯 조선대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946년, 4학부 12학과 1194명의 정원으로 시작해, 오늘날 단일교로는 전국 두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종합대학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간 국민들에게 각인된 조선대의 이미지는 ‘전통 명문사학’보다는 ‘민주화 투쟁의 현장’에 가까웠던 것이 사실이다. 1960년대에 시작해 198 7~1988년 정점에 달했던 학원민주화 운동의 인상이 워낙 강렬했던 까닭이다. 1988년, 조선대는 40여 년간 재단 이사장과 총장을 번갈아 맡으며 전횡을 일삼았던 박철웅씨 일인체제로부터 벗어났다. 그리고 13년. 이제 조선대는 지역 명문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되찾아가고 있다. 조선대 양형일(梁亨一, 52) 총장을 만나 그 현황과 성과, 지방 대학으로서의 고충과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종합대학 총장으로는 젊은 편에 속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총장에 선출된 것이 1999년 11월인데 그때 나이가 만48세였으니까요. 젊은 사람이 나서 학교에 새바람을 일으켜달라는 뜻으로 알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조선대는 출발부터가 독특한 학교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학교는 1946년 광주시민 7만여 명의 성금을 바탕으로 설립된 민립대학입니다. 해방 직후, 너나 없이 어렵고 혼란스런 상황이었지만 교육만이 살길이란 신념으로 팔을 걷어붙인 거지요. 이와 같은 설립 배경을 가진 대학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기 힘들 것입니다.

교명을 ‘조선’이라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당시 상황에서 ‘조선’은 우리나라의 국호나 진배없었습니다. 사실상의 국호를 학교 이름으로 가져올 만큼 충만한 자부심과 간절한 소망을 담아 출범한 학교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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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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