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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행복한 철학자 우기동

인문학 강좌 세상을 바꾸다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행복한 철학자 우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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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이 뭔가요?” “자유로운 거지요.” “어떨 때 자유를 느낍니까?” “혼자 있을 때요.” “그럼 언제든지 행복할 수 있겠네요. 혼자만 있으면 되지 않습니까?” “자식이 있는데 어떻게 그래요. 일해서 먹여 살려야지요.”
  • “그렇다면 일이 없고 가족이 없어지면 자유롭고 행복해질까요? 노숙인과 직장인 가운데 누가 더 자유로울까요?”
행복한 철학자 우기동
9월10일 오후 6시30분, 서울 성동지역자활센터에서 진행된 ‘성동자활 인문대학’ 강의는 질문과 대답의 연속이었다. 우기동(52) 경희대 철학과 교수는 시종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부터 소녀티가 채 가시지 않은 20대 여성, 고수머리 중년 남성까지, 강의실에 모여 앉은 21명의 학생은 굳이 손을 들지도 않은 채 자리에 앉아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발표했다. 간간이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오고, 때로는 진지한 침묵이 흘렀다.

이날 강의 주제는 ‘행복론’. 이야기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해 “자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과연 헌법상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거주이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원치 않은 일을 해야 하고, 원하는 집에 살 수 없는 현실에서 헌법 조문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까지 거침없이 이어졌다. 계속되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교수와 학생은 함께 ‘행복’의 의미와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성동자활 인문대학’ 학생들은 낮 동안 ‘자활근로’에 참여하는 기초생활수급자 혹은 차상위계층 사람들. 간신히 중학교를 마친 이부터 대학을 졸업한 이까지 학력 스펙트럼은 넓다. 하지만 모두 저소득층으로 그동안 생계에 매달리느라 ‘공부’에서는 멀리 떨어진 채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고된 일과가 끝나자마자 저녁도 거른 채 이곳으로 달려오는 것은 이례적으로 보인다.

자활사업을 통해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일하는 학생 강미자(47)씨도 “내가 이곳에서 이런 수업을 받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는 이날 저녁으로 김밥 한 줄을 먹었다. 일주일에 두 번 ‘대학’ 강의가 있는 날 저녁 메뉴는 언제나 김밥이다. 하지만 지난 5월 강의가 시작된 뒤부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결코 수업을 빠지지 않았다.

“처음엔 호기심에 왔어요. 대학교수님들이 역사, 철학, 문학, 예술을 가르쳐준다니까 궁금하더라고요. 막상 강의를 듣고는 생각보다 훨씬 좋아서 계속 나와요. 교수님 말씀이 우리 수업이 대학교 1학년 학생 수준이래요. 하지만 어려운지는 모르겠어요. 수업을 통해 뭘 배운다기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세상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우 교수는 2005년부터 노숙자, 빈민, 재소자 등을 대상으로 인문학을 강의해온 철학자다. 단발성 특강이 아니라 보통 12주짜리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강의 주제는 정체성, 삶과 자유, 자아실현, 욕망, 개인과 사회 등. 그동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경제적 지원이 급한 사람들한테 인문학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였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똑같은 얘기를 듣겠지요. 제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그분들의 인격을 모독하지 마십시오.’ 인문학은 삶의 조건 가운데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품격과 관련된 것이에요. 경제적 성과 이전의 문제지요. 한 사람이 가난하다고 해서 인문학을 공부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를 ‘비인간’으로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우 교수가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시작한 것은 미국의 ‘클레멘트 코스(Clemente Course)’에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가 겸 사회평론가 얼 쇼리스는 1995년 뉴욕 남동부에 노숙인, 마약중독자, 재소자, 전과자 등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교육과정 ‘클레멘트 코스’를 만들었다. 교육과 인문학에서 소외된 채 살아온 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철학과 문학을 배웠고, 이것은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가난한 이들의 인간성을 가장 적절하게 존중하는 방식은 공적인 삶의 영역에서 시민으로 대우하는 것”이라는 얼 쇼리스의 주장이 널리 알려지면서 2005년 우리나라에도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교육과정 ‘성프란시스 대학’이 문을 열었다. 우 교수는 이곳에서 노숙인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며 처음 ‘거리의 인문학’에 뛰어들었다.

“저는 철학자로서 늘 ‘사람의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한 사상이며, 이념이다. 우리 삶에서는 우리 자신이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기반 위에서 다른 사람의 삶도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나인 우리, 우리인 나’라는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게 인문학의 출발점이라고 믿어왔지요.”

노숙인에게 철학을 가르치던 첫 학기에 그는 학생들에게 평소 생각을 말했다. “인문 정신의 요체는 내 삶의 존엄을 아는 거고, 나만큼 존엄하고 동등한 가치를 가진 타자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그때 자신의 강의를 귀 기울여 듣던 한 학생의 대답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저를 바라보면서 ‘세상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어요’라고 하더군요. 그때 왜 이 수업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지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게 하는 것, 오랫동안 사회에서 외면받아온 이들에게 자신과 공동체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인문학의 사명이라는 걸 알았지요.”

실천하는 인문학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복지 정책도 언제나 배고픈 이들에게 빵과 일자리를 주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하지만 우 교수는 “가난한 이들을 살게 하는 것은 먹을거리가 아니라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얼 쇼리스에 따르면 빈곤의 두 가지 특징은 결여와 억압이다. 돈의 결핍과 교육의 결핍은 필연적으로 일생 동안, 그리고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지는 영속적인 패배를 낳는다. 위압에 대한 복종, 힘 있는 사람에게 받는 멸시도 가난한 이들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다.

“그 과정에서 억압된 분노는 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의든 아니든 체념에 가까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 주체의식을 상실하게 돼요. 이건 노숙인이나 재소자도 마찬가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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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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