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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마비형 가방들어주며 무쇠팔 키웠다

한국 테니스계의 희망 이형택 스토리

  • 글: 김종석 kjs0123@donga.com

소아마비형 가방들어주며 무쇠팔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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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택을 말할 때 어머니 최춘자씨(61)를 빼놓을 수 없다. 3형제 중 막내인 이형택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어릴 적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때문에 어머니 최씨는 생계를 위해 시어머니에게 3형제를 맡기고 홀로 서울에서 식당 일을 했다. 주감독은 “형택이는 체력을 타고났다. 특히 손목과 어깨 힘이 대단하다”고 했다. 이런 체력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했던 맏형 경택씨(35)를 도우며 자연스레 길러졌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큰형의 가방과 도시락을 대신 날라주면서 1km가 넘는 산길을 왕복해야 했던 것.

초등학교 4학년 테니스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대대로 선비·교육자 집안에서 무슨 운동이냐”며 만류했던 것. 하지만 이형택의 황소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어머니는 3만5000원의 거금을 들여 그라파이트 라켓을 사서 소포로 부쳤다. “어릴 때 우상은 없었다. TV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변변한 잡지도 구하기 힘들어 누가 잘 치는 줄도 몰랐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이형택은 라켓 휘두르고 달리는 일이 마냥 좋았다고 했다.

춘천 봉의중으로 테니스 유학을 떠난 이형택은 운동이 너무 힘들어 숙소에서 도망간 적이 있다. 당시 어머니는 아들 걱정에 숙소에서 며칠 밤을 지샜다. 이형택이 배가 고파 제 발로 찾아왔을 때 어머니는 그의 손을 붙잡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형택은 “다시는 나가지 않고 테니스만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한 뒤 그 후로 테니스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한번도 꺼내지 않았다. 춘천 봉의고에 진학한 이형택은 3학년 때 국내 무대 42연승을 거두며 6관왕에 올랐다. 탄력과 파워가 뛰어나 ‘고무공’이란 별명을 얻은 것도 이때였다. 스카우트 전쟁을 일으켰던 이형택은 자신을 잡기 위해 27차례나 춘천을 찾은 전영대 감독이 사령탑으로 있는 건국대에 진학, 대학 무대를 휩쓸었다.

이형택은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최씨는 아들의 경기를 직접 보러 간 기억이 별로 없다. 응원 가면 지는 경기가 많았던 탓이다. 최씨는 “내가 가면 엄마가 눈에 밟혀 공이 잘 안 맞는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코트 근처에도 안 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저 멀리서 아들 걱정을 하며 기도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도 아버지 산소를 다녀오면 성적이 좋다고 말하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고 한다.

최씨는 집안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으면서 2001년부터 다시 횡성에 내려와 시어머니 이옥순씨(81)와 살고 있다. “뒷바라지도제대로 못해줘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약물검사 때문에 보약도 마음껏 해줄 수 없다. 아프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건강이 나빠진 할머니 안부를 자주 묻는 걸 보니 다 컸나 보다.” 최씨에게 이형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둥이다.



“세계 50위 진입 향해 다시 뛴다”

세상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이형택이지만 계속 승승장구할 것으로 기대하는 건 속단이다. 세계 1위의 선수가 1회전에서 어이없이 무명의 상대에게 무너질 수도 있는 게 세계 테니스의 현실. 주감독은 “주니어 시절 변변한 해외대회 한번 나간 적 없는 순수 국내파 이형택이 계단 오르듯 한 걸음씩 발을 떼던 단계는 이미 지났다. 몇 계단 점프할 수도 있으며 반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자기 노력으로 현 수준을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형택도 경기마다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야수가 우글거리는 정글에서 오래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기술보다 자신감과 경기운영이 나아졌다. 랭킹 높은 선수와 붙어도 주눅들지 않고 위축되지 않는다. 전에는 한번 지고 나가면 뒤집지 못했는데 근성도 더 붙었다. 그래도 서비스 리턴과 세컨드 서브는 여전히 밀린다. 서비스의 정확도를 높이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많이 해야 한다.” 이형택이 지난 연말 기자에게 밝힌 자기진단이다. 국내 테니스 지도자들의 의견도 비슷하다.

이형택은 1월15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 2회전에서 세계 2위 안드레 아가시(미국)에게 단 1게임을 따내며 0-3으로 힘없이 졌다. 이 대회 직전 세계 10위 안에 드는 강호를 2명이나 제쳤지만 세계의 벽은 역시 높다는 냉엄한 현실에 곧바로 부딪친 것이다.

“배우는 과정으로 생각하겠다. 세계 테니스가 강하고 험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교훈을 얻었다. 언젠가 다시 이길 날이 올 것이다. 세계 50위 진입을 향해 다시 뛰겠다.”

숱한 좌절에도 꿈을 버리지 않은 이형택의 억척스런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형택은 여전히 배고프다.

신동아 200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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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종석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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