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스포츠 화제

‘무등산 호랑이’의 화려한 부활

김응룡 선동열 없지만…조범현 김상현 있었다

  • 김도헌│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무등산 호랑이’의 화려한 부활

2/3
‘무등산 호랑이’의 화려한 부활

타이거즈 돌풍을 주도하고 있는 거포 김상현.

세대교체 이룬 팬들

9월5일 두산-KIA전이 열린 광주구장. 게임은 오후 5시 시작이었지만 정오를 넘어서자 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경기시작 1시간10분을 앞둔 3시50분에는 1만3400석 좌석 티켓이 모두 팔려나갔다. 이 중 9000장은 일주일 전에 이미 인터넷을 통해 팔려나갔고 뒤늦게 도착해 표를 구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린 팬도 상당히 많았다.

과거 타이거즈 팬들은 아저씨 위주였지만 지금은 성별과 연령이 모두 달라졌다. KIA 김경욱 마케팅팀장은 “예전 해태 시절 팬의 80% 이상은 남자였다. 30대 후반부터 40대 이상 팬이 주를 이뤘다”면서 “그러나 요즘은 달라졌다. 젊은 여성 팬이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구단 자체 평가로는 여성관중 비율을 최대 40%로 잡고 있다”고 했다.

광주 게임이 끝나면 KIA 선수들이 나오는 출구는 카메라를 들고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젊은 여성 팬들로 북적인다. 나이 어린 고교생부터 대학생, 직장 여성까지 나이대도 다양하다. 선수들이 한 명씩 모습을 드러내면 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무리지어 몰려드는 등 KIA 선수들은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젊은 팬, 여성 팬의 증가는 프로야구 8개 구단의 공통적 현상이지만 KIA가 유독 더 심한 것은 지역 대학과의 ‘네이밍 마케팅’ 등 연고 대학과의 연계 마케팅이 큰 힘을 발휘한 덕도 있다.



한국시리즈에서 19년간 9번 우승했던 ‘해태 신화’는 1997년을 마지막으로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10여 년간 새로운 신화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해태 타이거즈 팬이라는 자존심은 조금씩 무너졌고 챔피언에 대한 갈증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해만 갔다. 한때 이기는 데 익숙해 있던 팬들은 2001년 8월부터 타이거즈의 명맥을 이어온 KIA의 무기력함에 등을 돌렸다. 여기에는 최근 4년간 꼴찌를 두 번이나 한 성적 부진이 결정적 이유가 됐다.

관중 폭발의 이유는?

‘타이거즈 광풍’은 정치적 관점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까지 호남 사람들이 ‘승자의 입장’에서 마음껏 소리칠 수 있는 곳은 야구장이 유일했다.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1980년대,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호남 사람들은 야구장에서 ‘해태’를 외치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때론 일체감을 느꼈다. 어쩌면 당시 타이거즈는 호남인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자랑거리이자 위안거리였는지도 모른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잠시 잊혔던 ‘호남의 한(恨)’이 두 대통령의 퇴임, 그리고 잇따른 서거를 겪으면서 다시 찾아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해태 신화’의 재현을 보며 호남인들이 쓰린 속을 달랜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했을 때, 개인 통산 500도루라는 대기록을 앞두고 있던 KIA 이종범은 “큰 슬픔을 느낀다”며 “대통령 서거 추도 기간에는 기록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노 전 대통령의 추모기간이 다 끝난 6월5일에야 대기록에 도전해 그 뜻을 이뤘다. 호남인에게 ‘타이거즈’는 어쩌면 ‘야구단’이기보다 ‘잃었던 자아(아이덴티티)’인지도 모를 일이다.

뭐니뭐니 해도 ‘타이거즈 광풍’을 촉발한 것은 KIA의 빼어난 성적이다. 시즌 초반 한때 꼴찌까지 추락했던 KIA는 막강한 선발 마운드의 힘을 밑바탕 삼아 차곡차곡 승수를 만회하며 전반기를 3위로 마쳤다. 7월28일, 후반기 시작과 함께 무서운 힘을 내더니 8월2일, 시즌 첫 4연승을 올리며 2516일 만에 페넌트레이스 1위에 올라섰고 이후 거침없는 페이스가 이어졌다. 최근 2년간 양강 체제를 형성했던 SK(21~23일), 두산(28~30일)과 벌인 원정 3연전을 나란히 싹쓸이하는 등 ‘찬란한 8월’을 보냈다.

9월 들어 KIA의 상승세는 꺾였지만 ‘연승 후유증’을 그렇게 심하게 겪지는 않았다.

시즌 초반, 붙박이 톱타자 이용규가 불의의 부상으로 낙마하고 믿었던 마무리 투수 한기주가 연이은 불쇼를 펼치는 등 4월까지만 해도 KIA의 행보는 불안했다. 에이스인 윤석민의 보직을 어쩔 수 없이 잠시 마무리로 돌리는 등 진통도 겪었다. 그러나 구톰슨과 로페즈, 두 빼어난 용병 투수와 시즌 개막전 ‘트레이드 카드’로 거론됐던 양현종 등 선발 마운드의 막강한 힘을 원동력 삼아 차즘 힘을 냈다. 불펜에선 ‘소리 없이 강한 남자’ 유동훈과 손영민이 힘을 보탰다. 조범현 감독은 풍부한 선발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불펜진을 최강 컨디션으로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는 기용’을 했고, 이는 한기주 부진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KIA가 긴 연패 없이 시즌을 치를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지난해 시즌 뒤, ‘은퇴 압박’에 시달렸던 베테랑 이종범의 부활 역시 큰 힘이 됐다. “단돈 1원을 받더라도 선수생활을 더 하고 싶다. 잃었던 명예를 다시 찾고 싶다”고 지난 겨울 절치부심했던 이종범의 땀은 세월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는 덕아웃에서 후배들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도 마다하지 않았다. 풀타임을 치를 수 없는 체력적 한계를 갖고 있는 김원섭은 외야 요원으로 이용규의 빈자리를 채우며 기대 이상의 역할을 했고, 서울고 출신의 신인 안치홍은 요긴할 때 한방을 쳐주며 미래 KIA를 이끌 유망주로서 충분한 가능성을 입증했다.

한국 무대 복귀 3년째를 맞은 최희섭의 분전도 돋보였다. 지난해 극도로 부진한 성적을 보인 그는 시즌 후 동계훈련 때 하루도 빠짐없이 산을 타는 등 ‘올해 안 되면 옷을 벗겠다’는 배수진을 쳤고 결국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했다. 시즌 초반 상승세를 타다 6~7월 호된 슬럼프에 고전하기도 했지만 8월 한 달간 24게임에서 타율 0.391에 8홈런을 몰아치면서 중심타자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그가 풀타임 시즌을 치른 건 시카고 컵스 트리플 A 아이오와 컵스 시절이던 2002년 이후 7년 만이다.

광풍의 원인은 무엇보다 성적

‘KIA 타이거즈 광풍’을 몰고 온 중심인물은 역시 김상현이다. 4월 중순, LG에서 트레이드된 김상현은 2000년 신인 2차 지명 6번(전체 42번)으로 해태에 입단한 ‘원조 타이거즈 맨’이다. 2002시즌을 앞두고 LG로 이적했다 7년 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고, 이후 KIA의 상승세를 주도했다. 그가 가세하기 전까지 KIA는 최희섭 외에는 이렇다 하게 장타를 때릴 수 있는 거포가 없었고 최희섭 역시 상대팀 견제가 집중되면서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김상현의 가세는 팀의 운명을 바꾸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

2/3
김도헌│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목록 닫기

‘무등산 호랑이’의 화려한 부활

댓글 창 닫기

2019/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