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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정보통신·벤처기업 대특집

벤처기업 옥석가리기

  • 이강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벤처기업 옥석가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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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열기가 후끈하다. 이름에 ‘컴’ ‘텔’ ‘통’이 들어가 있으면 투자자가 줄을 서는 형국이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처럼 조건이 완벽한 곳에서도 벤처기업의 성공률은 10% 정도. 이 혼탁한 시장의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
올해로 8년째 예비 벤처 창업자를 상대로 컨설팅 활동을 하고 있는 A컨설팅 L사장(42)은 작년 한해동안 57개의 회사가 문을 여는 데 참여했다. IMF의 직격탄으로 온나라가 수렁에 빠진 상태에서 출범한 새정부가 벤처 창업을 독려하던 재작년과 비교하면 근 30%가 늘어난 수치다.

일감이 늘어난만큼 그의 사무실은 생기가 돈다. 밀리지 않고 직원 월급도 줄 수 있게 됐고, 삼겹살로 때우던 회식자리에서는 소갈비나 회도 먹는다. 하지만 요즘 그의 솔직한 심정은 즐겁다기보다는 허탈하다. 그의 도움을 받아 창업한 회사들이 ‘떼돈’을 번 것을 보노라면 자신이 초라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차피 그의 본업은 투자가 아닌 창업 컨설팅이고, 또 그를 거쳐간 회사가 잘된 것은 자기 덕이라고 자위할 수 있으니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다. 상대적 박탈감보다 더욱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기실 다른 데 있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그조차 시장이 돌아가는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그것이다.

작년 하반기 그가 경험한 ‘사건’ 하나. 무선통신을 응용한 서비스를 하겠다는 한 업체로부터 투자자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사업 계획서를 세밀히 살펴본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사업 불가. 그리고 회사 사장에게 업종을 바꾸라고 권했다.

계획대로 사업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장비업체와의 합의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고, 무엇보다 비슷한 아이템의 기존업체들도 놀고 있는 데가 많았던 것. 그러나 그에게서 ‘빠꾸’를 맞은 이 업체는 얼마 뒤 인터넷 공모를 통해 투자자를 모집, 보란 듯이 9억9000만원의 자금을 모았다(현행법상 자금 공모 금액이 10억원 미만일 경우 기업은 유가증권 신고서를 금감위에 내지 않아도 된다).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재무제표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일반 투자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투자환금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저 정보통신업이라면 돈을 싸들고 달려든다. 회사 이름에 ‘컴’ ‘텔’ ‘통’자만 들어가면 단기간에 10배 20배로 투자금이 뻥튀기되는 것으로 아는 게 요즘 분위기다. 물론 일단 자금이 확보됐으니 다른 사업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자계획서의 사업을 보고 돈을 댄 사람들은 심하게 말해 사기당한 것이다.”

벤처투자시장의 돈 돈 돈

작년 한해동안 이 나라에는 월평균 250개의 벤처기업이 탄생했다. 그 결과 중기청에 등록된 벤처기업의 숫자는 12월말로 5000개에 육박한다. 우리가 벤처 선진국이라 부르던 대만(1200개)이나 이스라엘(1000개)을 능가하는 수치다. 인터넷기업의 약진을 중심으로 벤처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전세계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우리 같은 성장은 유례가 없다.

무엇보다 창업이 활발해진 데는 벤처기업으로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한 정부의 정책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98년 중반, 코스닥지수는 70선을 오르락내리락 했고, 하루 거래량이라 해봐야 1400만여주, 그나마 300여 종목 가운데 70여개만이 거래될 뿐이었다. 상장사 주식시장조차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 코스닥은 관심거리조차 못됐던 것. 이 무렵까지만 해도 벤처를 살리겠다고 내놓은 각종 정책은 ‘벤처대란’에 대한 우려감만 안겨줄 뿐 효과가 없었다. 당시 벤처캐피털 관계자들의 주문은 한 가지였다. “코스닥을 살려내라.”

그런데 작년 3월, 이들의 말대로 정책 방향이 코스닥 활성화로 바뀌면서 시장상황은 급변했다. 벤처기업에 돈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코스닥 시장이 활발해지면서 이전의 투자 자금을 회수한 벤처캐피털이 경쟁적으로 또다른 투자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금 벤처시장 주변에는 돈이 넘쳐나고 있다. 이 시장에 흘러 다니는 돈의 규모가 얼마나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표적인 벤처캐피털인 창투사는 작년 말 현재 90개를 넘은데 이어 올 1월 말 100여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은 투자조합 결성과 정부의 벤처자금 지원 등에 힘입어 회사별로 대개 100억원 이상의 투자여력도 확보해놓고 있다.

또 대기업이 조성했거나 할 예정인 1000억원 이상 규모의 대형펀드만도 20여개나 된다. 이들과 함께 은행 투신사 등은 물론이고 종금사, 파이낸스, 신용금고도 저마다 수백억원의 자금을 벤처투자 용도로 책정해놓은 상태다. 벤처투자가 황금알을 낳는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비상장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유행처럼 번졌고, 덩달아 요즘 명동 사채시장의 큰손들마저 가장 좋아하는 투자처로 벤처기업을 꼽고 있을 정도.

덕분에 창업 환경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졌다. 전국 40개 대학 벤처동아리의 모임인 한국대학생벤처창업연구회 정연수 회장(전남대 대학원)은 “요즘 대학생들의 희망 1순위는 벤처기업가가 되는 것”이라며 “아직 학생들의 창업은 무리가 많지만, 자금 조달이 쉬워졌고 대기업들이 아이디어경진대회나 벤처과거(科擧) 등을 열어 창업을 독려하고 있어 올해 안에 상당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투기 광풍 시절과 유사

원래 벤처기업의 고향인 실리콘밸리에서는 일반적으로 각 단계에 따라 투자자가 정해져 있다. 엔젤은 창업단계의 종자돈을 제공하고, 벤처캐피털은 주식공개를 향해 7부능선을 넘어선 기업에, 투자은행은 기업상장 후에 투자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할 분담이 불분명한 우리나라에서 요즘 시장에 뛰어든 주체들은 투자단계를 가리지 않는다. ‘먼저 돈 대는 쪽이 임자’인 것이다.

시중에 투자자금이 풍부해지면서 투자시장의 주도권은 돈 쥐고 있는 쪽이 아닌 판매자, 즉 기업으로 옮겨졌다. 벤처캐피털과 ‘흥정’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더 쳐주겠다는 쪽으로 발을 돌린 벤처기업의 얘기를 듣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갓 창업한 회사가 몇차례 언론을 탄 뒤 10배 이상의 프리미엄을 붙여 자본 참여를 요구했다는 얘기도 마찬가지.

시장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상황은 가장 ‘섹시한’ 업종으로 불리는 인터넷 기업 주변에서 발견된다. 작년 중반까지 회원 1인당 1만원의 가치를 인정받던 것이 하반기로 들어오면서 10만원으로 올랐다. 이 사업에 자본금은 의미가 없다. 인터넷사업은 성격상 당장의 매출액이나 자본금 같은 전통적 잣대로 회사를 평가하지 않는다. 기업 쪽에서도 자신들의 시장성을 확인시키기 위해 내놓는 자료는 가입 회원수나 페이지 뷰 정도. 작년 여러 인터넷기업이 억대의 경품을 걸고 회원모집에 혈안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의 요즘을 보여주는 또 한가지 지표는 한 기업에 대한 투자자금의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평균 5억원 정도에 머물던 것이 요즘에는 스타트업 단계의 회사에도 10억원 단위까지 올라가고 있다. 여러개의 벤처캐피털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공동투자를 하기도 하지만, 아예 ‘몰빵을 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와 함께 순자산이나 본질가치를 통해 기업의 내재가치를 평가하던 방식도 요즘은 유사기업의 주가가 가장 큰 고려사항이 됐다.

이런 현상을 두고 앞의 L사장은 “서울 강남에 부동산투기 열풍이 불던 70년대 후반이 연상된다”고 말한다. 마치 영동 땅값이 뛰니까 양재동 땅값이 덩달아 뛴 것처럼, 비슷한 업종이면 미래가치를 거론하며 같은 값을 받으려 한다는 것.

이 곳으로 돈이 몰린 이유는 자명하다. 아직 ‘먹을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들은 벤처기업에 대한 사회의 높은 관심이 궁극적으로는 쉽게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것으로 이어질 거라고 본다. ‘돈 없어 사업 못하겠다’는 얘기가 쏙 들어간 상태에서, 창업이 성공으로 이어지고 이 성공이 또 다른 창업을 독려하는 선순환을 이룸으로써 투자자와 기업이 모두 이익을 거두는 윈윈 게임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무늬만 벤처’에 ‘묻지마 투자’

그러나 비교적 업력이 쌓인, 특히 코스닥이 문을 열 무렵 이 시장에 있었던 관계자들의 태도는 확실히 조심스럽다. 뜨거운 맛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코스닥이 처음 개장한 96년 7월을 전후해 약 1년 간도 지금과 유사한 상황이 연출됐다. 하이테크 붐이 일었던 당시, 해당 회사의 주식 가격이 폭등하면서 투자시장은 갑작스레 폭발했다.

코스닥 등록 기업의 주가가 규모나 성적과 무관하게 오르는 것을 보고 기업들은 너나 없이 ‘가자 코스닥으로!’를 외쳤다. 여기에는 등록 이전 액면가의 10배 이상을 프리미엄으로 지불하고 지분을 산 창투사들의 거품 넣기가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하지만 이 잔치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소수의 시장 참가자끼리 북치고 장구치는 사이, 일반 투자자들은 혼탁한 이 시장을 떠나버렸고, 곧 IMF의 된서리를 맞았던 것이다.

이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그래서 지금처럼 좋은 시절이 도래한 것을 보며 즐거워하기보다 ‘이후’를 더 걱정한다.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지금 시장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보수적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C창투사 N씨는 현재의 벤처기업 주가는 기업의 내실과 역량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상태라고 평가했다. ‘고위험 고수익’이 벤처기업 투자의 속성이라지만, 수익에 대한 기대보다는 위험 요소가 더 큰 기업이 대부분이란 얘기다.

작년 12월 중소기업특별위원회가 개최한 벤처기업지원 시책 평가 및 발전방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벤처정책이 벤처붐 조성에 기여하긴 했지만 ‘무늬만 벤처’를 양산하고 ‘묻지마 투자’로 이어지는 등 벤처거품 현상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고 한 벤처시책평가위원회 이언오 위원(삼성경제연구소 이사)의 진단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우려다.

특히 N씨가 걱정하는 것은 게임 참가자들의 태도다. “이 세계에 ‘먹튀’라는 용어가 난무하고 있다. 시장의 승세를 틈타 치고 빠진다는 뜻이다. ‘기본’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복권 당첨되듯 사업을 벌이는 것이 가능한 이 시장은 분명 미쳐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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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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