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호

통일은 오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고려 통일 역사를 복원하라

광복 70년! 100년 국가전략을 세우자

  • 홍면기 |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hongmkey@hanmail.net

    입력2014-09-19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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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은 오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고려 통일 역사를 복원하라
    사가(史家)들이 20세기를 어떻게 기록할지 알 수 없지만, 한반도에서 전개된 질곡의 반(半)세기와 성취의 반(半)세기는 분명‘위대한 반전(反轉)의 역사’로 기록할 것이다. 그러나 숨 가쁘게 ‘산업화와 민주화의 길’을 달려온 한국의 추동력이 20세기 말 이후 둔화되고, 안팍의 도전 앞에 우리의 미래는 심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보인다.

    적잖은 심리학자는 “50대 후반 이상의 한국인은 그동안 성취해온 것들이 다음 세대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을 두려워한다”고 진단한다. 사회학자들은 우리의 현실에서 불길한 ‘망국’의 조짐을 읽어내며 참담한 심정으로 대안을 호소한다. 다음은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의 진단이다.

    ‘오늘날 한국 상황은 구한말 망국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 (…) 오히려 덧붙이고 싶다. 그때보다 더 열악하다고. 한국을 두고 벌어지는 극동 정세가 그렇고, 그와는 아랑곳없이 터지는 내부 분열이 그렇다. 누군가는 항변할 것이다. 그래도 백 년 동안 힘을 길렀는데 오늘의 한국은 구한말 조선이 아니라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4강은 한국이 커진 것보다 더 커졌고, 북한 변수가 돌출한 이 시대 역학구도에서 한국의 입지는 한없이 쭈그러졌다고. 내부 분열? 당시에는 분열상이 조정(朝廷)에 한정되었지만 지금은 시민사회 전반을 갈라놓고 있다고 말이다.’

    불길한 데자뷰

    광복 70년을 목전에 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성취에 대한 자부와 눈부신 미래를 향한 강한 기운을 느끼기 어렵다. 국민의 얼굴에서는 한반도에서 해양과 대륙세력이 치열한 힘겨루기를 다시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묻어난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불길한 역사가 재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어른거리는 것이다.



    내외의 정세가 격동하자 1592(임진왜란), 1894(청일전쟁), 1904(러일전쟁), 1950(6·25전쟁), 심지어 백강전투(백제·왜 연합군과 신라·당 연합군의 전투)가 벌어진 663이라는 연대가 난수표 처럼 유포되며 불길함을 부채질한다. 역사에 대한 ‘데자뷰’가 일고 있는 것이다. 그런 틈새에 고조선과 고구려사를 비롯한 우리 역사의 위대함을 그리려는 ‘회고주의적 심리’도 광범위하게 유포된다.

    망국론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한반도 위기론은 그 뿌리가 매우 깊다. 냉전질서 해체 이후 지구적 차원의 지정학적 변동이 한반도에 들이닥쳤지만, 대륙과 해양세력의 이음새에 있는 남북한은 이 균열선을 넘어설만한 화해와 협력의 결합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G2의 대치가 첨예해지는 가운데 중국의 한국 껴안기, 북일의 관계 개선, 북러 간 접근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동아시아의 앞길을 예측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각국에서는 대중의 민족주의적 감정이 그 나라 정치에 깊이 개입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중국의 자만, 일본의 초조함, 한국의 두려움이라는 대중심리가 등장한 것이다. 이 대중적 심리가 동아시아 역사 인식이라는 문제를 놓고 정서적인 충돌로 발전한다.

    한국인은 중국의 대국적 민족주의와 일본의 호전적 민족주의가 충돌한 불행했던 역사를 기억해내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이다. 100년의 역사적 설계도는 물론이고 평화와 통일에 대한 뚜렷한 전망을 갖지 못한 지금 남북관계의 긴장과 갈등 또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위험을 더하는 요인이 된다.

    ‘거대한 전쟁’ 피해갈 수 있나

    “거대한 전쟁이 닥쳐왔다. 희생자가 수백, 수천 명이 아니라 수만 명이 될 것이다.”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 앞에 선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겔레테이의 절규다. 이 절규가 남의 일만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는 두 가지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국제정치에서는 여전히 힘의 논리가 정의와 도덕의 논리를 압도한다는 점과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약소국의 생존문제를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밀당’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제국 아테네가 복종을 거부하는 소국 멜로스를 위협하는 장면을 생생히 그린 ‘멜로스의 대화’를 다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당신들이 제국에 대한 의무를 갖는다는 식의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당신들이 스파르타를 돕지 않았다거나 우리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다는 식의 말로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상상하지 말라.(…) 잘 알겠지만 이런 문제들이 실제적으로 논의될 때 정의의 기준은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의 질에 달려 있다. 사실상 강자는 그들이 할 힘이 있는 것을 하는 것이며, 약자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한국의 상황을 멜로스의 그것으로 환치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물론 역사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진 않는다.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상과 국력이 뚜렷이 상승한 것도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거대한 전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과 국가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 한, “전쟁은 패권국과 신흥강국 사이에 일어난다”고 한 투키디데스의 명제는 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wishful thinking

    미-중, 일-중이 대립하는 현실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갈등과 충돌의 위험이 높아졌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7월 14일 미국의 퓨리서치센터가 조사한 것에 따르면 아시아 11개국 중 9개국이 ‘중국발’ 전쟁을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일본의 집요한 역사왜곡과 독도 도발, 집단자위권의 법제화, 징집제 검토 등에 대한 보도가 이어져 한반도는 무력충돌 개연성이 매우 높은 위험지대로 꼽히게 됐다. 그런데 역사는, 충돌의 양상과 도화선을 예고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조성되는 이러한 위험은 분단이 표상하는, 혹은 분단의 현실이 안겨주는 지정학적 조건과 긴밀히 맞물렸다. 핵심은 ‘위험한 도발자’ 북한을 어떻게 제어하고 이들을 어떻게 협력과 공생의 파트너로 통합해낼 것인지의 문제로 이어진다.

    광복 70년에 이르는 동안 남북한 관계는 강대국 관계에 크게 영향을 받아왔다. 1971년 핑퐁외교로 시작된 미-중 데탕트와 이듬해의 7·4 남북공동성명, 1991년 동유럽 공산국가와 소련 붕괴 후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그리고 세계적인 탈냉전 무드 속에서 이뤄진 남북정상회담 등이 좋은 예다.

    이러한 사건을 겪으면서 국민은 통일의 길이 금세 열릴 것처럼 환호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달구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반도를 궁극적인 평화와 통일의 길로 인도하지 못했다.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면서, 비관적으로 본다면 상대에 대한 불신과 경계 의식을 조장해 통일문제에 대한 피로감만 가중된 면이 없지 않다. 냉전의 종식으로 통일과정을 진전시킬 수 있는 역사적 계기를 잡았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해갈 동력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음을 드러낸 것이다.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은 통일이다. 그러나 통일은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이뤄나가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통일은 엄청난 회오리를 몰고 올 개연성이 높다.

    통일은 장대한 역사의 과정이기에 담대한 전략을 요구한다.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전개될 역사를 통찰하는 능력을 반드시 요구한다.

    ‘멜로스의 대화’가 보여주듯 국제정치는 도덕적인 가르침과 설득, 약소국의 정의가 존중되지 않는 권력투쟁의 장이다. 음모론을 신뢰하는 일부 논자들은 강대국(제국주의 국가)들은 자국의 ‘신성한’ 국가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전쟁을 조작한다고까지 믿는다. 1937년 일본의 중국 침략 도화선이 된 노구교사건, 1964년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부른 통킹만 사건 등이 그들이 거명하는 예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약소국의 국경과 이익이 강대국 간의 ‘밀당 게임’으로 쉽게 침해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우리 모두는 겉으로 좋은 것만 말하고 속으로는 거짓말하는 ‘숨은 마키아벨리’일지 모른다. 현실주의가 약해질 때 도덕적인 것도 타락한다. 정치 담론이 이상적이라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실제로는 권력론적이고 수사적일 뿐이다. 도덕 담론을 이원론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이상적인 규범과 현실세계 가운데 어느 하나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당면한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정적 판단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외면하고 싶은 것은 보지 않으려는 ‘허위의식’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밀려오는 역사의 파도를 감당할 수 없다.

    지난 시기 우리의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이 차질을 빚은 것은 ‘북한은 붕괴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귀중한 시간과 비용을 낭비했다.

    동북공정을 다시 본다

    중국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고, 현관을 내주면 집이 위험하다(脣亡齒寒 戶破堂危)”는 논리로 연인원 300여만 명을 북한에 보냈다. 그때 마오쩌둥은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한 아들 마오안잉을 평양에 묻었다.

    ‘순망치한 호파당위’는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때마다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사용해온 논리였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우리는 ‘희망적 사고’에 젖어 이런 역사를 애써 외면해온 게 아닐까.

    동북공정(東北工程)은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사지(邊疆史地)연구중심’등 중국의 연구기관들이 2002년 초부터 2007년 초까지 추진한 ‘중국 동북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대한 일련의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는 110여 항목의 연구주제가 설정됐다.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의 ‘역사’ ‘현실’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가 포함됐다.

    이 사실이 알려졌을 때 한국 사회에서는 중국이 고구려사를 비롯한 한국의 역사주권을 침탈한다며 벌집을 쑤신 듯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중국의 잘못된 역사관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인식과 현실정책에 투사된다는 것을 간과했다. 이것이 동북공정이 제기하는 본질적인 도전이다. 다음은 역사학자인 여호규 한국외대 교수의 지적이다.

    “중국 남북조 말기의 북제(北齊)와 그 뒤 중국대륙을 통일한 수·당은 삼국을 분할통치하기 위해 백제와 신라가 각각 대방군과 낙랑군을 점령하거나 계승한 것으로 이해했다. 당은 이런 논리를 앞세워 고구려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정벌하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이런 잘못된 인식 탓에 지금도 중국인들은 중국의 군·현(郡縣)이 한반도 중남부까지 있었던 것으로 이해한다.”

    필자는 우리의 인식과 대응에 적지 않은 허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역사주권 침해에 대한 우리의 경각심과 학문적 대응은 상당히 축적됐다. 하지만 고대사 특히 고구려사 침탈에 너무 매몰돼, 중국의 ‘보이지 않는’ 미래 전략에 대한 대비는 매우 미흡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국’ 만들어가는 중국

    최근 중국은 ‘신형 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와 ‘친(親)·성(誠)·혜(惠)·용(容)’이란 외교전략과 방침을 연이어 내놓았다. 신형 대국관계를 통해 냉전 때와는 다른 식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정립하고자 한다. 친·성·혜·용의 방침을 내세워 중국과 주변국들의 관계가 ‘운명공동체’임을 강조한다.

    학술적인 차원에서도 ‘성세중국(盛世中國)’을 뒷받침하기 위한 준비가 활발하다. 국제정치학계에서는 중국의 가치와 경험, 전략을 녹인 ‘중국학파(Chinese School)’ 수립에 부심한다. ‘창조적 개입(Creative Involvement)’의 논리를 다듬으며 전 세계에 중국 이익을 관철하는 논리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중국은 세계 460여 곳에 설치한 ‘공자학원(孔子學院)’을 거점으로 한 문화외교에 엄청난 자본과 공력을 투입하고 있다. 이러한 공세적 조치에 동북공정 같은 ‘역사 만들기’를 톱니처럼 물려 넣어, ‘새로운 제국’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변강(변방)과 소수민족을 원만히 통합해야 한다는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공정은 변방·소수민족의 원심력을 제어하고 구심력을 높여, 내부 통합을 하자는 논리를 만들려는 역사수정주의적 노력이다.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고조선과 고구려 같은 특정 시기의 우리나라 역사를 지키는 것만이 동북공정에 바로 대처하는 길이라는 주장은 일면의 진실만 반영한다. 중국이 북한을 동북의 ‘제4성(省)’으로 만들려 한다는 주장 역시 동북공정을 피상적, 자의적으로 이해한 데 불과하다.

    동북공정식 중국의 역사·현실 전략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중국의 역사정책과 국가전략을 균형 있게 이해해야 한다. 다양한 학문 분과의 성과를 국가정책에 투입할 수 있는 지식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과거를 기억하되 미래를 상상하는 ‘전략적 신중함’을 발휘해야 한다. 잘못된 ‘명예의 감각’으로 역사의 길을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현실 반전시키는 역사 인식

    역사가는 참여자가 아닌 관찰자의 시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해석한다. 홉스봄이 말하듯 역사가가 회고적이라면, 역사가는 늘 ‘회고적인 예견(retrospective foreseeing)’을 하는 셈이다.

    역사는 과거에 관한 회고와 미래를 향한 조망 간의 변증법적 수렴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는 ‘과거의 사건’과 ‘미래의 목적’ 간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역사가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현실 참여자가 될 자격을 갖는다.

    그렇다면 100년 안에 우리가 이뤄야 할 목적은 무엇인가. 한반도에서 비극적인 무력충돌을 방지하며 평화와 통일을 일궈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한국사에 대한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중국과 일본, 대륙과 해양 사이의 ‘섬’처럼 포위된 공간인식을 뛰어넘는 전략구상을 발굴해야 한다. 국가발전 전략을 세우려면 특히 역사인식의 중요성에 착목해야 한다.

    독일의 경험이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프로이센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틸지트 조약(1807)을 맺었다. 명목상으로는 독립을 유지했으나 실제로는 프랑스의 속국이 됐다. 프랑스의 심각한 간섭을 받은 프로이센은 사대주의에 휩싸였다. 엘리트가 돼야 할 남성들은 ‘파리의 방탕아(Pariser Roues)’로 자처하며 퇴행을 일삼아 프로이센은 2등국가로 전락했다.

    그러자 프로이센 국정을 책임진 슈타인 등이 일련의 개혁으로 국가 면모를 일신하고자 했다. 특히 근대 역사연구의 틀을 세우고 민족의식과 조국애를 가진 독일인을 주조해, 국가 발전의 디딤돌로 삼고자 했다.

    두려움을 용기로

    실천적 차원에서 역사는 담대한 ‘전략구상의 지적(知的)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거칠게 보았을 때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세 개의 균열선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북·중 변경지역, 휴전선 지역, 그리고 한국과 일본 사이의 해협이 그것이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한반도 분열을 상징하던 이 지역들이 ‘초국경 협력(transborder cooperation)’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북·중 변경을 무대로 한 광역두만강개발구상(GTI), 부산·후쿠오카 초광역권 구상, 비무장지대(DMZ) 평화지대 구상이 어젠다가 되면서 대치와 압력의 공간을 ‘공생을 실험’하는 공간으로 바꿔 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된다.

    이러한 노력이 한반도에 대한 역사적 압력을 완화하는 빅 카드가 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지정학적 충돌선을 공생의 공간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이 갖춰지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북·중 변경지역을 보자. 그곳은 북한발 위기가 고조되거나 북·중관계가 긴장될 때마다 한반도를 역사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먹구름이 끼는 곳이다.

    안보전문가들은 ‘우발계획 5029’ 등이 상정하는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중국이 이 지역을 통해 북한에 군사적인 개입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그러나 군사주의적 시각만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곳은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이 협력적 게임을 펼쳐나갈 수 있는 곳이며, 북한 급변상황을 완충하면서 변화를 추동해낼 수 있는 전략공간이라는 시각에서, 구체적인 협력 방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더 주목할 곳이 개성지역이다. 개성은 다양성·개방성·국제성·다문화성 등 통일과정과 이후 우리가 구현해야 할 역사상을 체현했던 고려의 수부(首府)다. 개성은 우리 기억에서 사장돼버린 고려의 통일력을 복원하고, ‘통일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역사정신을 제시할 수 있다’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다.

    가동 중인 개성공단에 더해 이곳에 남북한 역사문화 교류센터를 설립하고, DMZ의 생태 개념을 더한 공간을 조성한다면, 남북관계 발전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의 국제정세가 격동하는 과정에서 광복 70년을 맞게 된 지금, 한국의 미래상을 그린 원대한 국가전략이 없다는 얘기가 많다. 이런 인식의 저변에는, 우리에게는 미래 전망적 역사의식이 없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대중은 고대사에 대한 회고적 감상이나 일본과의 악연에 대한 정서적 대립구도에 익숙해 있으나, 통일이나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할 것인지에 대한 ‘역사하기(doing history)’에는 매우 미숙하다.

    우리는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지만 역사인식은 분절적이다. 타자에 대한 분개는 있으나 치밀한 대안적 역사 설계는 해본 적이 드물다. 한마디로 역사비전의 부재, 이것이 광복 70년을 맞는 한국인의 역사상이 아닐까 싶다.

    ‘남한 젊은이들에게 통일의 꿈이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영국의 일간지‘가디언’이 지난해 5월 작가 이응준의 소설 ‘국가의 사생활’을 소개하면서 꼬집은 말이다. 통일이 가져올 문화적·사회적·경제적 효과가 사회를 붕괴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반 시민에게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의심, 그리고 반대를 증식한다는 지적이다.

    북한의 불확실성, 남북한 갈등과 통일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 육박해 오는 중국과 일본의 공세에 대한 부담감에 ‘불길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문제다. 오도된 역사인식에 근거한 데자뷰는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자충수일 뿐인데.

    역사는 기억의 구성체다. 그러나 그것이 기억의 회로에 갇힌 골동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미래를 억압하는 족쇄가 되어서도 안 된다. 모든 역사가 성찰의 역사라면, 우리는 시대정신에 맞는 역사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온 시공간의 인식구조를 타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앞서 얘기한 고려시대 역사상의 복원이나 한반도에 드리워진 지정학적 단층선을 견고히 묶어내려는 의지와 노력이 ‘미래 100년 역사전략’의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顚覆的으로 해석할 수도 있어야

    통일은 오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고려 통일 역사를 복원하라
    홍면기

    1958년 경기 포천 출생

    한국외대 정외과 졸업, 중국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박사(정치학)

    대만 국립정치대학 국제관계 연구중심 방문연구원, 베이징대 초빙교수

    통일부 근무(1989~2007)

    저서 : ‘영토적 상상력과 통일의 지정학’ 등


    오늘날 한국 상황은 구한말 망국 때와 ‘절대로’ 일치하지 않는다. 문제는, 역사에 대한 전복적(顚覆的) 해석과 이를 실천하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명예와 안전을 동시에 지켜낼 역사의지를 확인하고 그를 지혜롭게 실천해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은 고뇌한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용기가 몇 배의 힘을 낼 텐데”라고.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낼 수 있는, 미래 100년을 통찰하는 ‘역사하는 힘’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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