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5만 도시에 100만 관광객 찾는 이유
도서관의 파격에서 만나는 영감
리노베이션 반대하는 시민 의견도 반영
“좋은 공간이란 ‘편안한 공간’”
히와타시 게이스케 전 일본 다케오시 사장. [다케오=허문명 기자]
중심 역인 ‘다케오온천역’이란 명칭이 말해 주듯 온천 말고는 이렇다 할 관광자원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다케오를 찾는 관광객이 연간 1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바로 ‘도서관’ 때문이다.
시내 중심에 있는 ‘다케오 도서관’은 나지막한 산들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현대식 벽돌 건물이다. 기자는 몇 년 전 휴가차 다케오시를 들렀다가 도서관에 반했다. 두 번째 방문 때는 아예 책을 싸들고 이곳으로 출퇴근하다시피 하며 며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1층에는 스타벅스가 있는데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이 많다. 히잡을 둘러쓴 아랍인 여행객들이나 배낭여행 온 듯한 젊은 서양인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잠시 대화를 나눈 한 일본인 주부는 “후쿠오카에 살다가 은퇴하고 도서관 때문에 다케오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다케오 도서관이 주는 미덕은 단지 공간에 대한 편안함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도서관은 조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무너진다.
도서관의 틀을 깬 도서관
다케오 도서관 내부. 음악도 들리고 1인용 2인용 다인용 열람실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다케오=허문명 기자]
이곳은 시립이지만 도서관을 운영하는 주체는 시가 아니라 세계적 서점 ‘쓰타야’를 만들어낸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이다. ‘쓰타야’ 창업주 마스다 무네아키는 일본 내 혁신적 비즈니스 정신을 상징하는 경영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한때 중심 도시였으나 인구 5만의 소멸 도시로 전락한 지방 도시를 도서관 하나로 관광지로 만든 주인공이 히와타시 게이스케(53) 전 다케오시 시장이다.
기자는 지난해 그가 사가현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고 해서 무작정 찾아갔다. 혹시 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는데 예감은 적중했다. 카페 한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던 그에게 다가가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했더니 호기심을 보였다. 그가 시장 시절 다케오 도서관과 함께 규슈 내 첫 올레길을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이걸 화제로 삼아 대화를 시작했다.
다음 날 그와 함께 도서관을 찾았다. 그리고 곧 그가 서울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와의 집중적인 인터뷰는 9월 서울에서 진행됐다.
서울은 오랜만인가.
“14번째 방문으로 코로나로 못 오다가 7년 만에 왔다.”
좀 달라진 게 있나.
“전체적으로 조용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옛날에는 식당에 가도 큰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오히려 일본보다도 조용해진 것 같다. 타인에 대해 그만큼 신경 쓰는 문화가 된 것 같다. 일본이 더 시끄러워졌다. 일본 사람들이 남에 대한 배려가 줄어들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의 변화를 묻는 질문에 “너무 발전해 놀랐다” 같은 상식적인(?) 대답을 생각했던 기자에게 그의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소음’을 기준으로 도시의 변화를 읽는 시선이 신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남과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그의 시선이 읽혀지는 대목이기도 했다.
바로 도서관 이야기로 넘어갔다.
세상에 없던 도서관을 향한 집념
다케오 도서관을 기획한 의도가 있다면.
“더도 덜도 아니다. ‘내가 가고 싶은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다. 기존 도서관은 시립이지만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쉬는 날도 너무 많았고 열람실에 들어서면 내가 보고 싶은 책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어려웠다. ‘도서관이니 조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옆 사람과 이야기하면 사서가 바로 다가와 ‘조용히 하라’고 하고 했다. 한마디로 가고 싶지 않은 도서관이었다.
하지만 ‘도서관은 조용해야 한다’는 건 과연 누구의 생각인가. 나는 시장이 된 뒤 도서관을 시민들의 공간으로 바꾸고 싶었다. 그러다 2011년 어느 날 우연히 TV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쓰타야 서점을 보고 ‘바로 저거다!’ 하는 확신이 섰고 저런 분위기를 가진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로 했다.”
‘쓰타야’는 서점을 통한 복합문화공간 사업으로 성공한 마스다 무네아키 CCC 회장이 만든 브랜드다. 마스다 회장은 1983년 고향 오사카에 1호점을 냈는데, 책·비디오·음반을 팔거나 빌려주는 새로운 개념의 매장으로 인기를 끌다가 점점 진화해 현재는 일본을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발돋움했다. 일본은 물론 중국과 말레이시아 등 해외 지점까지 모두 29곳이 있다.
히와타시 전 시장은 마스다 무네아키 사장을 만나기 위해 도쿄 본사를 무작정 찾아갔다고 한다.
“빌딩 앞에서 마스다 사장을 무작정 기다렸다. 두세 시간 정도 길거리에 서서 뚫어지게 빌딩 정문만 바라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가 빌딩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여 무조건 다가가 ‘나는 다케오 시장인데 우리 도서관의 위탁 경영자가 돼주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마스다 사장은 그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검토하자고 했다.”
일이 너무 쉽게 된 것 아닌가.
“내가 어떤 도서관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마스다 사장이야말로 고객 중심 마인드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업해 성공한 사람 아닌가. 사실 의기투합하는 데 많은 말이 필요한 건 아니다. 눈빛과 말투에서 느껴지는 열정이 중요하다.”
뭐라고 설명했나.
“과거에는 번창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지방 도시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도서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서 책 진열에서부터 조명, 인테리어까지 일본에는 없는 것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결국 쓰타야와의 협업으로 도서관 리노베이션에 시동이 걸리게 됐지만 예상치 못한 지뢰를 만난다. 시민 반발이었다.
도서관을 좋게 만든다는데 반발이라니.
“변화는 무조건 싫다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조용한 마을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독재자는 물러나라’는 시위도 했다. 그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시민들과 소통해 도서관을 더 좋게 만드는 성과도 있었다. 조용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 공간을 따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가장 안쪽에 개인 독서실처럼 꾸민 공간이 그렇게 만들어진 거다.
내부 직원들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다 같이 함께 만들었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한명 한명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자고 결심했고 실천했다.”
흔히 한국은 스피드에 강하고 일본은 디테일에 강하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당신은 일본인이면서도 ‘스피드’한 사람 같아 보인다(웃음). 도서관도 4년 정도 걸리는 공기를 무려 5개월로 단축해 공사를 끝냈다고 들었다.
“나는 스피드가 가장 중요한 부가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 스타일이 좋다. 음악도 비트가 빠르고 드라마도 스토리 전개가 빨라서 좋다.”
조용하고 느린 일본 문화에서 그는 분명 이단아처럼 보였다. 개혁 과정에서 반대에 부딪힌 건 도서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2007년에 시민병원을 민영화할 때 살해 위협도 받았다. 주민소환도 됐었다.”
그는 이때 시장직을 사퇴하고 다시 출마해 재선했다.
스트레스가 많았겠다.
“노(No). 다케오시와 내가 주목받아서 오히려 기뻤다. 나는 언론에 나오는 게 너무 좋다. NHK 아침 뉴스에도 나왔다.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받는 것도 좋지만 비난받는 것도 즐긴다.”
다케오 도서관 건물. 나지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에 들어앉은 현대식 건물이다. [다케오 도서관 홈페이지]
좋은 공간이란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공간’
그는 “한국 사람들이 세계 보편적 정서를 읽는 데 일본보다 앞서 있다”고도 했다.
“넷플릭스에서 ‘오징어게임’ ‘이태원 클라스’ 같은 드라마를 보면 한국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들을 일본 사람들도 재미있어 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예전에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일본인이 그 정도로 공감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그만큼 한국 콘텐츠가 보편성을 갖게 됐다는 거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을 다룬 택시기사 이야기 ‘택시운전사’나 ‘효자동 이발사’ 같은 콘텐츠는 문화적 거리감이 있었지만 ‘기생충’은 전혀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은 이처럼 심화하고 발전하는 듯한 느낌이 있지만 일본은 갈수록 시대에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일본이 다시 시작하리라고 믿고 있다. 물가나 주식도 올라가고 있지 않은가(웃음).”
그에게 ‘요즘 일본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했더니 “변하지 않고 가만 있었더니 그게 매력이 된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일본을 빗대 변하지 않고 고립된다는 의미로 ‘갈라파고스’라고들 하는데 이게 오히려 매력을 주는 것 같다. 역으로 말하면 세상이 너무 빨리 많이 변하니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곳이 있는 게 신선감을 주고 있다는 느낌도 받고 있다. 글로벌화에 역행한 게 경쟁력이 된 느낌이라고 할까.
한국은 지금 BTS가 상징하듯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보편성이나 유니버설리티를 갖고 나아가고 있다. 한국이 ‘유니버설리티의 킹’이라면 일본은 ‘갈라파고스의 퀸’이 되고 있다. 아이폰이나 한국의 BTS는 장소를 불문하고 유통되지만 일본은 오지 않으면 체험할 수 없는 그 뭔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36세에 시장이 됐다. 일본 역사상 최연소 시장이었는데.
“돌이켜 생각하면 좀 반성하는 대목도 있다. 내가 지금 50대 중반인데 젊었을 때는 경험이 별로 없어서 반대자 처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 했다면 ‘모드’를 바꿨을 것이다. 일은 비록 천천히 되겠지만 선후배 관계라든지, 인간관계를 따져가며 했을 것이다. 그때는 투쟁 모드밖에 없었다. 지금은 하이브리드 모드로 했을 것이다.”
그는 도서관뿐 아니라 다양한 기획으로 시를 모티프로 한 관광상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태국에 직원들을 보내 다케오와 전혀 인연이 없는 레몬그라스(허브 종류) 재배 노하우를 배워 지금은 시를 대표하는 특산품으로 만들었다. SNS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던 시절 전 직원에게 트위터 계정을 갖게 하고 전국 유명 트위터 유저들이 모이는 ‘트위터 소사이어티’ 행사를 열기도 했다. 시 웹사이트를 아예 페이스북 페이지로 개편해 오픈 4개월 만에 접속 횟수가 1000만 회를 넘기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역풍(비판)일지라도 불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거듭 말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눈에 띄는 것이 좋다”고 했다.
히키코모리에서 ‘플레이스 메이커’로
그의 개인적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도쿄대를 졸업하고 총무성에 들어가 촉망받는 공무원으로 인생을 시작한 그는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스펙이지만 청소년기 심한 정신적 방황을 겪었다고 한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왕따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 거의 히키코모리 생활을 했다. 친구가 없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음악만 듣거나 책을 읽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정신이 나서 이왕이면 일류대에 들어가자 해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힘들었다. 결국 재수해서 도쿄대에 들어갔지만 역시 획일적 교육 방식이 내겐 별로였다.
학교도 안 가고 집에만 있던 어느 날 집에 시청료를 걷으러 온 NHK 시청료 접수원을 만났는데 내게 징수 아르바이트를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그가 열심히 돈을 걷으러 다니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실제로 너무 재미있었다. 내손으로 처음 돈을 벌어보고 그 돈을 모아 세계여행도 했다.”
그는 자신을 ‘플레이스 메이커(공간 창조자)’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장소를 만들겠다’는 건 내 좌우명이기도 하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현장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해결책이 나왔다.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거의 매일 시민들이 모이는 ‘장소’에 나간다.
공간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데 있다. 거기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교류가 이어진다. 페이스북이나 레몬그라스 아이디어도 모두 직원과 시민들의 의견 교환에서 나온 것들이다.
조직의 활력은 다양성에 달려 있다. 일이나 세상이나 균형이란 건 없다. 혼돈이야말로 활력의 원천이다. 아무리 큰 조직이라도 인적 교류와 자유로운 의견이 끊기면 결국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이는 획일적 정책으로 지방을 통제하는 중앙정부에 대한 강력한 대립이기도 하다.”
공간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편안한 공간이 제일 좋은 거다.”
한국도 지방 소멸, 도시재생이 화두다. 다케오시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지자체들은 중앙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얼마나 받을지가 주안점이었는데 그건 틀렸다. 지자체마다 획일적으로 통하는 아이디어는 없다. 병에 걸린 것과 똑같아서 병마다 증상도 다르고 처방도 다르다.
그래서 나는 마케팅이란 말도 싫어한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모두를 위해서’라고 하는 게 오히려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뭐든 자기가 있는 공간에 대한 애정과 열정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