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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부적격 의원’인가

  • 김당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누가 ‘부적격 의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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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정치권의 차가운 반응과 달리 창당을 추진중인 민주노동당 같은 신생 정당과 시민들은 열띤 반응을 보여 대조를 이뤘다. 명단 공개 이후 경실련 사무실에는 수백통의 전화가 걸려오는 바람에 전화가 불통되고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정치권의 항의와 명단에 오른 정치인들의 해명 전화도 있었지만 일반 시민들의 격려전화가 대다수였다. 또 경실련 인터넷홈페이지에서 ‘부적격 후보’ 명단을 확인하려는 접속이 폭주해 인터넷망이 불통되기도 했다.

명단 발표 이후 경실련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경실련이 정치권을 봐주고 있다”며 선정 기준과 누락자를 추가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국민들의 정치 혐오증을 가중시킨 ‘방탄국회’를 야기한 ‘세풍사건’의 서상목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자, 의사당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이 TV로 방영되어 온 국민을 아연실색케한 김영선 의원(게시자 서상목-김영선) ▲한나라당 집회에서 99년말까지 나라경제가 제대로 되면 내 열손가락에 장을 지진다고 맹세했던 이기택 전의원(게시자 윤성욱) ▲과거 민중당 활동시절 누구보다도 과격한 정치활동을 하다가 180도 돌아서서 오히려 국보법 개정을 적극 반대하고 있는 이우재 의원(게시자 신동민) 등을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그러나 경실련의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 의견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경실련은 이미 시민단체로서의 진보성보다는 정치성에 치중하고 있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에 불참하는 척하면서 몰래 명단을 작성해 ‘시민연대’보다 먼저 발표하는 모습에서 기성 정치인의 얍삽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게시자 이민우)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경실련은 현재 당사자들의 해명자료와 반론 등을 반영해 몇 차례 수정을 거쳐 완성한 ‘출마 예상자 1차 정보공개’ 대상 164명의 명단과 그 사유를 인터넷 홈페이지(www.ccej.or.kr)에 싣고 있다. 경실련은 또 1차 정보공개에 이어 1월말까지 독자적으로 전현직 의원의 공약이행 여부를 조사해 발표하고, 국회 속기록을 검토해 의정활동 불성실 의원들의 순위를 매겨 그 명단(워스트 리스트)을 공개하는 한편 출마 예상자 2차 정보공개에 나설 방침이다.

경실련의 이번 발표는 부작용과 미비점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 보편화된 ‘유권자 운동’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동안 4년에 한 번 투표권을 행사하는 데 그쳐야 했던 유권자들은 정당과 후보자가 벌이는 선거운동의 객체에 머물렀으나 이제 주체적으로 나서 후보자에 대한 당락을 심판하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이다. 또한 후보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공개는 후보들이 제공하는 일방적인 정보(선전) 속에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투표를 해온 유권자들에게 다양한 판단의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선진적인 투표행위를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흔히 ‘1인 보스 정치판의 밥상론’에 비유된다. 그동안 유권자들은 입맛에 안 들어도 1인 정당의 보스가 자신의 입맛대로 차려준 밥상(선거)의 반찬(후보)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보공개는 입맛에 맞는 반찬을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넓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런 움직임은 1인 보스 중심의 정당운영 행태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유권자들이 중심이 된 시민단체가 부적격 후보를 가려내 공천과정에서부터 적극 개입한다면 정치 지망생들의 ‘보스 지향성’도 점차 사라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역의원 ‘물갈이’ 지지율 60%

정치권 일부에서는 제2건국위에 관여하기 이전부터 신사회공동체와 흥사단 같은 시민단체에서 오래 활동해온 서영훈씨가 새천년 민주당의 대표로 임명된 것도 시민단체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서씨를 대표로 임명한 것 자체는 보스 정치 중심의 정당운영 행태의 변화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그러나 비정치권 인사이며 시민단체 지도자인 그를 정당 대표로 앉힌 것은, 정치인들이 정치를 독점하던 시절에서 시민세력을 포함한 다양한 세력들이 정치를 공유하는 쪽으로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NGO가 당락을 좌우할 거대한 세력으로 등장한 데는 정치권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많다. 1월1일 공식 출범한 총선시민연대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1월8일~9일)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의 현 정치권에 대한 평가는 낙제점(평균점수 46.9점)이다. 조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의 정치개혁에 대한 만족도:만족하는 편이다(9.5%) 불만족이다(48.7%)

▲조직책 선정의 민주성:민주적이다(22.5%) 민주적이지 않다(71.0%)

▲부패·무능 정치인 탈락 가능성:탁락될 가능성이 없다(51.9%) 탈락될 가능성이 높다(43.6%)

▲현역의원 교체율:어느 정도 교체돼야 하는가(평균 60.85%)

▲여야 정치개혁 협상안 평가:개혁적이지 못하다(38.6%) 개혁적이다(11.5%)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찬반여부:찬성한다(79.8%) 반대한다(15.5%)

▲낙선 대상자 발표의 정치개혁 도움 정도:도움이 된다(74.8%) 도움이 되지 않는다(22.2%)

▲낙선운동 발표의 유권자 판단 도움 정도:도움이 된다(81.1%) 도움이 되지 않는다(15.1%)

▲지역구의 지지후보가 부패·무능 정치인으로 발표시 지지도:지지를 철회하겠다(49.6%) 그때 가봐야 알겠다(27.1%) 기권하겠다(12.2%) 그래도 반드시 지지한다(8.5%)

▲선관위의 불법 판정시 낙선운동 강행에 대한 평가:불법이므로 자제해야 한다(20.8%) 부패·무능 정치인 청산을 위해 강행해야 한다(71.8%)

▲현행 선거법상 낙선운동 금지 조항에 대한 평가:지지·낙선운동은 국민의 권리이므로 제재사항을 철폐해야 한다(65.1%) 혼탁선거와 불공정시비를 조장하므로 제재사항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22.9%)

이런 비관적인 결과와 시민단체들의 ‘총선 개입’은 이미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 예견됐다. 지난해 9월 경실련, 녹색연합,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여성연합, 참여연대, 환경련 등 40여 개 시민단체는 처음으로 ‘국정감사모니터시민연대’를 구성해 국정감사를 감사했다.

국감시민연대의 완승

처음 국감시민연대가 의원 평가기준을 공표하고 170여 명에 이르는 각 단체 활동가, 전문가로 구성된 전담 모니터요원을 발표할 때만 해도 국방위·통일외교통상위 같은 ‘상원’을 제외한 국회의 반응은 비교적 협조적이었다. 그러나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국감에 대한 방청 결과가 발표된 10월1일 첫날 이후 상황은 돌변했다. 각 상임위마다 의원들은 “시민단체가 무슨 근거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을 평가하고 점수와 등급을 매기느냐”고 반발했고, 모니터요원들은 국감장 밖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10월7일 KBS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 ‘국감 방청 허용 문제’에 관한 공개토론은 국감시민연대의 노력이 정당함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여야 의원 3명과 국감시민연대측 대표 3명이 참석한 공개토론을 거친 후 ARS 설문을 실시한 결과 6만여 명(약 95%)에 가까운 시민이 방청 ‘완전허용’을 지지한 반면 3000여 명(약 5%)만이 방청의 ‘일부제한’을 지지했다. 사실상 국감시민연대의 완승이었다. 그러나 국회는 요지부동이었다. 공개토론 이후에도 국회는 국감시민연대의 방청을 추가로 불허해 총 16개 상임위 중 9개 상임위에서 방청이 봉쇄당했다. 결과적으로 국회는 시민단체의 의정평가를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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