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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기대하는 ‘젊은 피’ 한국

  • 기 소르망

세계가 기대하는 ‘젊은 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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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

김세원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문명비평가, 사회평론가, 정치학자, 칼럼니스트….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프랑스의 기 소르망에게는 붙여야 할 적당한 타이틀이 딱히 없다. 현재 그가 가진 공식적인 직함은 파리교외 남서쪽 블로뉴 비양쿠르의 부시장이자 소르망 출판사의 대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직함만으로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규정하기는 힘들다. 파리 2구의 뒤제스 거리 13번지 건물 4, 5층에 자리잡고 있는 소르망 출판사에서 만난 그는 특유의 자유분방함으로 20세기 인류 문명을 명쾌하게 정의하고 21세기의 비전을 밝혔다.

― 미국의 세계 지배는 21세기에도 계속될 것인가.

“물론이다. 그 경향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미국의 세계지배는 정치·경제적 측면보다도 기술면에서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투명한 푸른색의 애플사 제품인 E-mac 데스크톱 컴퓨터를 가리키며) 이 컴퓨터도 미국의 기술지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본체는 한국이나 대만에서 만들었겠지만 소프트웨어는 미국 것이다. 미국이 전세계 컴퓨터에 쓰이는 소프트웨어를 지배할 수 있는 까닭은 세계적으로 뛰어난 기술자들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갔기 때문이다. 일본, 중국, 한국 등 전세계의 뛰어난 과학자와 연구원들도 미국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하기를 원한다. 바로 이들이 미국의 기술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지 제국주의를 꿈꾸던 구소련과는 다르다.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의도가 없다. 각국이 필요에 의해서 미국의 기술과 전략을 도입하는 것이다. 아프리카를 보라. 아프리카는 미국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성이 없으니까 미국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미국에의 종속은 오히려 선진국일수록 두드러진다. 미국은 중심부이고 나머지 선진국은 주변부인 셈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반미(反美)주의는 옳지 않다고 본다.”

‘문명의 충돌’은 허구다

― 21세기 유럽연합의 발전은 미국을 위협할 것으로 보는가.

“경제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유로화가 강해진다고 해서 그것이 미국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군사적으로 유럽이 독자 방위체제를 갖춘다 해도 미국이 전세계적으로 갖고 있는 확고한 지위에 대한 도전이 될 수는 없다. 유럽연합은 미국처럼 중동 등 주변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군사적으로 개입할 능력이 없다. 중동, 아프리카는 고사하고 유럽 내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미국에 요청하지 않고 분쟁에 개입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프랑스는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독립을 희망하고 있으나 독일, 영국, 이탈리아가 모두 미국 쪽에 기울어 있어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진행중인 체첸내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러시아는 10∼20년 후에 호전적인 국가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발트해 국가들을 러시아가 다시 정복하려 할 경우 유럽연합은 이를 막아낼 능력이 없다. 결국 냉전시절 유럽이 미국의 우산 속에서 보호받아왔던 역사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

― 21세기에는 이슬람문명권과 기독교문명권의 충돌이 더욱 심화될 것인가.

“이슬람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전세계 이슬람 인구가 10억이란 얘기는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미국의 새뮤얼 엘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이란 ‘멍청한’(그는 주저없이 멍청한, 바보같은 이라는 뜻의 ‘imbecile’이란 표현을 썼다) 주장을 하는데 전세계 무슬림은 분열돼 있다. 아랍, 인도, 자바, 아프리카의 무슬림들은 제각기 다르다. 그들 사이에는 어떤 공통분모도 없다. ‘이슬람세계’란 말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나 서구인들이 만든 신화일 뿐이다.

이슬람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문명권도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스만 해도 일요일마다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은 전인구의 3%에 불과한데 이를 두고 가톨릭 국가라고 얘기하는 것은 난센스다.”

― 중국은 21세기에 강대국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중국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다. 이미 중국의 경제발전 속도는 상당히 느려지고 있다. 중국은 역사적·문화적 유산이 파괴된 나라다. 그런 나라가 그동안 이룩한 경제발전은 기적에 가깝다. 그러나 이제 중국의 기적은 끝났다. 중국공산당 정부는 경제적으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인터넷이 만드는 보편적 문화

― 영국의 석학 에릭 홉스봄은 시장자본주의의 전면적 지배는 21세기에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민주주의와 시장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견해는?

“그는 마지막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다. 나는 그에게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그의 주장은 30~40년대에는 인기를 끌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우리는 이미 50년 동안 역사적 경험을 통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검증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한 토론은 이론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끝났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에는 많은 카테고리가 있다.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의 자본주의를 보자. 종업원 주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벤처기업의 구성원들은 월급쟁이이면서 동시에 주주다. 여기에는 노동과 자본, 노동자와 경영주의 구분이 없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래의 자본주의는 그런 모양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가 강한 것은 진화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산주의의 가장 큰 약점은 진화능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공산주의를 개혁하려다가 결국 소련 공산주의 정권 자체를 무너뜨리지 않았던가. 공산주의는 모두 비슷하다. 지역적 특수성을 존중하는 적응능력이 없다.”

― 인터넷과 디지털로 대표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인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이 대목에서 그는 아주 흥미있는 주제지만 동시에 답하기가 매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다면서 눈을 반짝였다.

“이제 초기 단계에 불과한 인터넷혁명은 정치·경제·문화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탄생시킬 것이다. 19세기 공산주의도 산업혁명의 결과로 탄생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사상의 태동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선 인터넷이 진화하면서 만들어가는 사이버 컬처는 전통적인 국가공동체의 의미를 퇴색시킬 것이다. 웹사이트와 디지털 전자제품 덕분에 전세계의 개인들은 서로 자유롭게 연결된다. 여기서 국적이나 지리적 원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각 개인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유토피아와 공통적 관심사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거나 이미 만들어진 공동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편적인 인류문화가 형성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인터넷으로 이뤄지는 상거래와 주식거래 각종 정보교환에 대해 국가는 통제능력이 없다. 전통적인 시민(시티즌)의 개념은 무너지고 이보다 훨씬 더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네티즌이 탄생한다. 인터넷은 문화의 생산과 소비에도 절대적인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TV와 라디오로 대표되는 매스미디어는 사라지고 개인이 선택하고 맞추는 수천수만개의 마이크로 미디어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문화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쌍방향 소통도 활발해진다.”

그는 20세기초 전화와 전기가 발명됐을 때 유럽국가 중에서 프랑스가 이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가장 느렸다며, 21세기의 인류는 인터넷을 거부하거나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두 부류로 나뉠 것이라고 예견했다.

정치모델로서의 사회주의는 죽었다

― 당신은 많은 저술을 통해 문화의 힘을 강조해왔다. 문화는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잣대이며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근거는 무엇인가.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문명이 사라졌다. 20세기 초만 해도 3000개가 넘었던 언어가 20세기 말에는 300개로 줄었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통용되는 언어와 문화의 숫자는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문화는 살아남을 것이다.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면서 동시에 보편적이고 현대적인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 시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문화는 살아남을 수 있다. 나에게 문화란 살아 있으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문화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 인터넷 시대의 개막이 미국문명의 세계 지배를 강화하면서 문화의 획일화를 초래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특히 유럽에서 인터넷의 발달로 독일어나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이 영어에 밀려 국제공용어 지위를 상실할 것이란 우려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려할 일이 아니다. 인터넷에 의한 세계화가 진행되면 모든 사람은 두 개의 문명에 속하게 될 것이다. 한국이나 프랑스 같은 특정 국가의 시민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이고 동질적인 세계문명의 주민이 되는 것이다.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개념 정의도 달라질 것이다. 이미 인터넷용어와 기술용어는 영어로 굳어졌다. 유럽인들은 바이링구얼리즘(2개어 병용주의)의 전통으로 돌아가면 된다. 18세기 말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자기 나라 말과 함께 라틴어나 그리스어를 배우고 사용했다. 19세기 중반부터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되면서 라틴어 그리스어 교육이 폐기됐다. 다민족이 사는 인도나 중국을 보라. 지방언어와 표준어를 같이 쓰고 아랍 국가들도 아랍 고전어와 자기 나라말을 병용한다. 지리적으로 오랫동안 고립돼온 한국과 일본이 예외다.”

― 그래도 프랑스 언론들은 프랑스어권 국가 정상회담의 참석대표 수가 매년 줄어든다고 걱정하던데.

“그건 정치가가 걱정할 문제다. 그들은 아직도 18,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프랑스가 누렸던 영화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개방이 진행될수록 위협받는 것은 문화가 아니라 바로 권력이다. 지식인들은 세계시민(코스모폴리턴)이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시애틀각료회의에서나 각종 국제무대에서 늘 ‘문화적 예외’를 주장하고 있지 않는가.

“문화적 예외는 웃기는 얘기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영화 분야에서만 유독 문화적 예외를 떠든다. 영화제작은 많은 돈이 드는데 프랑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해 프랑스영화는 2,3편만 흥행에 성공하고 나머지 20∼30편은 관객이 2000명도 들지 않았다. 극장이 텅텅 비는데도 영화제작자와 극장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막대한 정부보조금 덕분이다. 내가 아는 영화제작자는 영화의 흥행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미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작가들은 정부보조금을 받지 않으니까 아무도 문화적 예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 영국과 독일에서 시험중인 제3의 길은 사회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 사회주의는 가치가 있으나 사회가 추구해야 할 정치모델로서의 사회주의는 죽었다. 새 시대에 맞는 정치적 이념을 만들어내야 하는 고민에 빠진 사회주의자들이 제3의 길이란 표현을 빌려 자본주의를 시행하고 있지만, 21세기를 사회주의가 지배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유럽은 오랫동안 사회민주주의 전통을 유지해 왔으나 사회주의로는 더 이상 경제가 가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됐다. 블레어 총리나 슈뢰더 총리는 제3의 길이란 이름으로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유럽의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돈은 프랑크푸르트, 국가운영전략은 워싱턴, 기술은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돼 전파되는 세계화된 세상에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여기서 정통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프랑스만은 예외다. 조스팽 총리의 사회당 정권이 사회주의 정책에 충실한 이유는 프랑스가 관료국가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회당 정권은 관료의 이익을 대변하고 수호한다. 프랑스의 공무원은 경제활동인구의 25%로 유럽 국가의 평균 공무원 비율 12%의 두 배 이상이다.”

기 소르망은 누구인가

대표적인 자유주의자인 기 소르망(56)은 오랫동안 사회주의 전통을 간직해온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예외적인 존재다.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소리높여 비판하는 프랑스 정부와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는 자유무역에 의한 세계화와 미국 지배의 불가피성을 당당하게 주장한다.

‘르피가로’ ‘렉스프레스’ ‘렉스팡시옹’ 등 프랑스 언론과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기 소르망은 70년부터 국립파리정치학교에서 정치철학과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75년 소르망 출판사를 설립, 경제·환경·지방행정·중소기업·도시계획 등 14개 분야의 주간소식지를 발행하고 있으며 79년에는 기아해결을 위한 국제행동단체를 창설, 인권보호에 앞장서는 행동가다운 면모도 보여주고 있다.

93∼95년 프랑스 외무부 문화자문, 95∼97년 총리 전략기획위원회 자문을 지냈으며, 95년부터 파리 교외 남서부 블로뉴 비양쿠르시의 부시장을 맡아 자신의 주장을 현실에 적용시키고 있다.

1944년 독일에서 이주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최고 명문인 파리국립정치학교와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하고 파리동양어대학에서도 수학했다.

대표적인 저서로 ‘미국의 보수혁명’(1983) ‘자유주의적 해법’(1984) ‘국가의 새로운 부(富)’(1986) ‘공산주의의 비상구’(1990) ‘우리시대의 진정한 사상가들’(1989) ‘야만인을 기다리며’(1993) ‘자본론, 그 이후와 종말’(1994) ‘프랑스에서의 아름다운 날’(1998) 등이 있다.

그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과 하루에 20~30통의 E메일을 주고받고 한 달에 40여권의 책을 읽는다. 요즘 흥미있게 읽는 것은 인도, 파키스탄 등 여러 나라의 문학작품들. 신문과 TV는 거의 보지 않는다. 대신 인터넷을 통해 하루에 10분정도 세계뉴스를 제목만 읽는다고 한다.


신동아 200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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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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