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문건의 양식이 보고용으로 적절치 않다는 점도 사직동팀의 진술 내용을 의심케 한다. 최초문건 3개는 상부 보고용으로 믿기 어려운 몇 가지 ‘요건’을 갖추고 있다.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데다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문장도 보고용으로 적합지 않다. 그중 2개의 문서는 첩보를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팀장에게 보고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안 되겠지만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보고하기엔 너무 ‘거친’ 문서들이다. 게다가 일부 문서엔 작성 날짜도 잘못 적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정보 부서의 한 직원은 이에 대해 “첩보 수준의 문서를 청와대에 그대로 보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초문건 수준의 문서라면 내부 보고용일 가능성이 높고 청와대에 보고했다면 팀장이 보고서 형태로 ‘손질’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한층 심각한 논쟁거리는 박씨가 최초문건을 김태정씨에게 전달한 혐의. 이는 박씨가 사직동팀으로부터 최초문건을 보고 받았다는 점과는 별개의 문제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의 특수한 친분관계와 최종보고서를 전달한 점에 비춰 최초문건도 박씨가 유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두 사람 관계를 잘 아는 사직동팀이 박씨를 젖혀두고 김씨측에 직접 전달하는 일이 가능했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부분에 관한 한 검찰의 공소유지는 위태로워 보인다. 문서를 받았다는 사람이나 줬다는 사람 어느 쪽도 이를 시인하지 않은 탓이다. 증인도 없다. 박선주 변호사는 이에 대해 “최초문건을 (사직동팀으로부터) 받았다는 혐의는 그렇다 치자. 최광식의 진술이 있으니까. 하지만 김태정에게 문서를 건넸다는 혐의는 뭘로 입증할 것인가. 아무런 증거가 없지 않은가”라고 꼬집었다.
“박주선에게 안 받았다”
사실 김씨가 입을 열면 ‘박주선 미스터리’의 핵심은 거의 풀린다. 만약 그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댄다면 법정 공방은 검찰의 완패로 끝날 것이다. 박씨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공용문서 및 증거 은닉 혐의도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씨는 알쏭달쏭한 얘기를 되풀이해왔다.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박주선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는 게 그 요지. 구치소에 찾아온 수사검사에게도 똑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김씨의 한 측근은 “그토록 중요한 문서의 전달자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에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아니겠나. (전달자가) 박주선은 아니라고 하면 증거가 없으니 (박씨를) 잡아넣지는 못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1월6일 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전화통화에서 박씨가 전달자가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줬다.
“박주선은 아니다. 이제 와 내가 누군가를 거론하면 새로운 파장이 일지 않겠는가. 그것이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기고 나라가 그 사건으로 다시 시끄러워지지 않겠는가. 내가 그만큼 아니라고 그랬는데도 박주선을 잡아넣었으니….”
김씨의 침묵에 대해 옷사건 특검수사에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이렇게 진단했다.
“(최초문건 유출자가) 박주선씨가 아니라면, 김태정씨는 자신의 여죄가 드러날까봐 입을 열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만약 김씨와 사직동팀이 박씨를 젖혀두고 직·간접으로 접촉했다면, 김씨로선 이 사실을 절대 밝힐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건 주임검사인 박만 검사는 이런저런 의문점에 대한 기자의 확인 요청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우리 조직원이 관련된 사건이어서 말하기가 몹시 불편하다. 재판을 앞두고 증거에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검찰의 입장을 이해해달라.”
박씨의 변호인단에 참여한 변호사 수는 80여 명. 개인 변호인단 규모로는 사상 최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박씨의 변호인인 박선주 변호사는 “법조인들은 다 말도 안 되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 많은 변호인들이 무료 변론을 자청한 것은 검찰에 대한 집단 항의 표시로 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여론에 떠밀린 검찰이 김태정·박주선씨 두 사람을 사법처리하지 않고선 옷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으며 그렇게 해야만 국민들에게 투명한 수사로 비친다는 압박감 속에 수사를 진행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검찰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울며 마속 베기’를 한 검찰의 고민이 법정에서 당혹감으로 바뀌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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