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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정보통신·벤처기업 대특집

벤처기업 옥석가리기

  • 이강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벤처기업 옥석가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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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회사 내용보다 분위기에 휩쓸린 투자가 이어지고 사이비 벤처가 발호하는 현실에서, 과연 벤처기업이 일반 기업과 무엇이 다른지부터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현행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르면 벤처기업이란 ▲연구개발 투자비 비중이 총매출액의 5% 이상 ▲특허권과 실용신안권 등을 이용해 생산한 제품의 매출이 총매출액의 50% 이상 ▲벤처캐피털의 투자총액이 기업 자본금의 20% 이상이거나 ▲벤처캐피털이 인수한 주식 총액이 자본금의 10% 이상인 기업을 말한다.

그러나 법적 요건과 별개로 일반적으로 정의되는 벤처기업은 ‘개인 또는 소수의 창업인이 위험성은 높으나 성공할 경우 높은 기대수익이 예상되는 신기술의 개발 아이디어를 독자적인 기반 위에서 사업화하는 기술집약적 중소기업’이다(벤처기업협회). 따라서 벤처기업이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차별화된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

벤처기업 업종이 정보통신과 멀티미디어 등 첨단장비, 생명공학산업, 환경산업에 집중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중기청이 작년 10월 4008개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도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벤처기업 경영자는 대졸 이상(77%)의 학력에 공학(49%)을 전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 당장 높은 주식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벤처기업들이 과연 시장을 창출하고 독점할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이다. 업계 사정에 밝은 이들은 “최근 투자를 이끈 벤처기업들 가운데는 활황을 기회삼아 기술개발은 뒷전으로 미루고 ‘재테크 실력’만 키우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한다.



특히 기술보다 아이디어에 승부를 거는 쪽인 인터넷 비즈니스는 외국에서 인기를 끈 컨텐츠를 국산으로 포장한 경우가 많아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IBM의 e비즈니스 엔지니어 김국현씨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미국 내에서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시장을 형성하고 전지구 규모의 브랜드와 시장을 선점했으며, 참신한 리더십을 지니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조차 냉혹한 거품론을 퍼붓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물며 고만고만한 실력과 미국산 아이디어의 재탕에 불과한 기획으로 국내시장만을 상대로 하는 우리의 경우는 어떻겠느냐는 얘기다.

지금은 이름을 바꾼 인터넷 소프트웨어업체인 W사는 한창 잘나가던 시절 업계 주변에서 “파워포인트를 개발도구로 쓰는 회사”란 소리를 들었다. 파워포인트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 주가 관리에 매달려 제품개발보다는 홍보에만 열을 올린다는 비아냥이었다. 핵심 기술보다 포장에 매달리는 현상은 투자시장이 미인대회 비슷한 양상을 보이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물론 기술이 벤처기업의 전부는 아니다. 좋은 기술만 보유하고 있으면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을 뜻하는 ‘쥐틀의 오류(mousetrap fallacy)’란 최신 경영학 용어도 있다. 페스트가 창궐하던 중세에는 좋은 쥐틀(기술)이 성공을 보장해주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실제 기술과 아이디어만 믿고 자신만만하게 창업의 길에 들어섰다가 곳곳에서 장애물과 만나 지뢰를 밟고 장렬히 산화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실리콘밸리처럼 환경이 완벽한 곳에서도 벤처기업은 10곳 중 한 곳만이 성공한다는 것이 ‘정설’이기도 하다.

벤처기업의 핵심은 기업가 정신

그렇다면 이 난세에 ‘될 성 부른 떡잎’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이진주 원장은 제대로 된(될) 벤처기업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기준으로 창업자의 ‘기업가 정신’을 살핀다. 벤처 비즈니스에서 말하는 기업가 정신이란 현실적인 자원의 제약을 무릅쓰고 포착한 기회를 사업화하려는 행위와 과정을 말한다. 다시 말해 업종에 대한 전문성과 기술력, 창의력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조직의 내부자원을 총가동하는 힘의 바탕이 기업가 정신인 것이다.

기업가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경영자 자신에 대한 냉철한 판단도 빠질 수 없다. 이를테면 사업 규모가 커져 자신의 능력에 부친다면 과감히 새로운 사람을 불러오는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자신보다 더 유능한 사람을 불러들일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정말로 유능한 사람”이라는 PSIA 박상일 사장의 말도 이를 지적한 것이다.

76년 25세의 나이에 워즈니액과 함께 애플컴퓨터사를 창업한 스티브 잡스는 경영보다 컴퓨터 자체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에게 ‘경영을 모르는 컴퓨터 천재’라는 비웃음섞인 별명이 붙은 것도 이런 연유였다. 97년 7월 길버트 아메리오 회장이 경영 부실로 물러난 이후 이사회의 요청으로 다시 복귀하긴 했지만, 그는 85년 에는 ‘경영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이 채용한 존 스컬리에 의해 회사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창업자=오너=CEO’란 등식이 굳어버린 우리 나라에서 이런 장면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다. 94년 국내 처음으로 인터넷 접속서비스를 제공한 아이네트의 허진호 사장이 작년 말 “이 회사는 더 이상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말을 남기고 새 인터넷 기업을 설립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그에게 박수를 보낸 것은 ‘벤처정신’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벤처기업에 유독 기업가 정신이 더 강조되는 이유에 대해 이원장은 “기업가 정신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조직’에 의해 움직이는 대기업과 달리 벤처기업은 ‘사람’, 특히 창업자에 의해 기업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것. 기보엔젤클럽의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창업자에게 필요한 것은 선천적인 에너지나 지능이 아니다”라며 “기업가의 성실성(integrity)을 투자의 필요조건이라고 한다면, 상품의 시장성과 경쟁력은 충분조건, 기업가정신에 충만한 경영능력은 필요충분 조건”이라고 정리했다.

벤처캐피털에서 투자심사를 담당하는 이들 역시 예외 없이 가장 중요한 투자 결정 요소로 ‘사람’, 즉 경영자의 자질을 꼽는다. 이들은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벤처기업에서는 경영자 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도’ 절반 이상이라고 본다. 더욱이 변화무쌍한 벤처기업의 경영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에 대한 적응이 필수이며, 이는 전적으로 CEO의 역량에 달려 있다는 것.

업종이 정보통신이나 생명공학 등 첨단이라고 벤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벤처기업이란 말그대로 강한 성취욕과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모험심을 가진 기업이다. 이 모험심을 잃고 다른데 눈을 돌린다거나 전시를 위한 치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더 이상 벤처 기업이란 훈장을 달 자격이 없다. ‘크기의 신화’에 매달려 몸집 불리기에 치중하고, 경영 성과를 나누는데 인식하며,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안중에도 없다면 재벌과 다를 게 없다. 성공한 벤처기업과 실패한 벤처기업이 극명히 대비되는 부분도 이 점이다.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요즘 인터넷과 리눅스 관련기업인 ‘드림위즈’를 설립해 재기에 성공한 이찬진 전 한글과 컴퓨터사 사장. 그가 98년 6월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원을 받는 대신 아래아한글 개발을 포기하기로 했을 때, 업계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야전침대에서 잠을 자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너무 쉽게 잊어버려 화를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첫손에 꼽히는 모범 기업인 미래산업이 오늘의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한 해 순이익이 100억원이 넘고 부채가 자본금의 60%에 불과하다는 등의 경영지표 때문만은 아니다. 시장이 이 회사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이와 같은 숫자 때문이 아니라 회사를 움직이는 경영진의 치열한 기업가 정신이다.

이 회사 창업자인 정문술 사장은 원광대학교 종교철학과를 졸업한 기술 문외한이다. 46세의 늦깎이로 사업에 뛰어든 그의 창업 전 이력(중앙정보부 부이사관 퇴직)도 벤처기업과는 무관하다. 또 개발과 영업 등 내부 업무를 총괄하는 백정규부사장(48)은 공고 출신이다. 이들은 자신의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 또 이를 어떻게 발휘하는지를 알았다. 사장은 기술을 가진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고, 자신은 그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투명한 경영에 대한 정사장의 집착은 유명하다. 그는 친인척은 물론이고 물론이고 아들도 회사 일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렇게 하면 직원들이 장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영자세는 94년 부천에서 지금의 천안으로 회사를 옮길 때 직원 136명 중 단 1명을 제외한 전직원이 생활터전을 옮긴 진기록을 세우게 했다.

미국의 인터넷 컨설턴트인 게리 맥거번은 그의 책 ‘경제 다스리기’에서 인터넷 비즈니스원칙 10가지를 소개하며 직원을 포함해 사업과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권한의 분배를 첫째로 꼽았다. 이는 “앞으로는 시장, 고객과 더불어 사원에 대해서도 편집광적인 관심을 유지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인텔사의 앤디 그로브 회장의 예견과도 일맥상통한다.

‘회사는 내 개인소유가 아닌, 함께 일한 모든 사람과 사회의 공동소유물’이라는 정사장의 말은 “머슴들이 무얼 안다고…” 운운하던 어느 패망한 재벌총수의 태도와 극명하게 구별된다.

신동아 200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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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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