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중소기업인 성공학|서부산업 회장 윤만희

‘닥터위콤’으로 세계 어학실습기 시장 평정

  • 곽희자 자유기고가

‘닥터위콤’으로 세계 어학실습기 시장 평정

3/3
부도 후 그는 집을 처분하고 가족과 함께 가재도구를 챙겨 아예 공장으로 이사했다. 그리고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정관리는 위기를 맞은 기업이 규모가 아주 크거나 중요한 업종이어서 그 기업의 파산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될 때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의 부채 상환을 유예해주는 일종의 특혜다. 30억원의 ‘푼돈’을 막지 못해 무너진 서부산업 같은 기업의 법정관리 신청을 받아줄 리 만무했다.

윤회장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변호사 사무장 시절의 솜씨를 발휘, 직접 신청서를 써서 담당 판사를 찾아갔다. 그는 판사 앞에서 “우수한 기술을 갖췄고 회생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라면 규모에 상관없이 기회를 줘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판사는 “일리 있는 얘기지만, 당신이 낸 신청서를 받아줬다간 망한 중소기업들이 모두 법정관리를 받겠다고 몰려들 게 아니냐”며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도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귀찮을 만큼 판사를 설득하는 한편, 당시 대법원 기획실장이던 한 대법관의 집으로 ‘위콤’을 들고 찾아가 밤늦게 귀가하는 그에게 큰절을 하며 눈물로 호소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며칠 후 법원 조사단은 그의 공장을 둘러보고 법정관리를 결정했다. 중소기업으로는 처음 있는 법정관리였다. 윤회장은 “그때 3가지 기록을 세웠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그때껏 법정관리를 받은 회사 중 가장 규모가 작았다는 것, 부도를 낸 사주가 법정관리인을 맡았다는 것, 법원이 정한 기간보다 6년이나 앞서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는 게 그것.

부도가 난 후 그는 3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공장에서 생활하며, 눈만 뜨면 일을 했다. 그렇게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한다. 그는 “기술로 먹고 사는 사업은 하루 세 끼 밥 먹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지, 일에서 해방돼 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런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렇듯 일을 일로 여기지 않는 자세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체득한 것이다. 그는 1944년 충남 서천에서 4남 6녀의 셋째로 태어났다. 중농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거들어야 했다.

“아침 동이 트면 창호지 위로 햇살이 살짝 비쳐요. 그러면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시죠. ‘얼른 일어나라’는 사인이죠.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오면 곧장 들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새벽장이 열리면 한 손에는 책가방을, 다른 손엔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을 들고 학교를 가기도 했죠. 일이 싫다거나 좋다거나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요. 그저 당연한 일과였으니까.”

그는 땀 흘려 일하는 일상을 통해 뿌듯한 성취감을 맛봤다.

“오뉴월 뜨거운 땡볕이 내리쬘 때 2000평쯤 되는 보리밭 앞에 서면 막막해요. 언제 저걸 다 베나 싶어서. 그런데 낫을 들고 베 나가다 보면 온몸에 땀이 쫙 흐르면서 그 넓은 보리밭이 어느새 다 베어지죠. 그때 기분이 얼마나 짜릿하던지… 그런 쾌감 때문에 아직도 일을 지겨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 보리를 베듯 그저 앞만 보고 묵묵히 일한 덕에 그는 10년 만인 96년, 법정관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법정관리가 끝나던 바로 그날 금탑산업훈장을 받아 기쁨은 더 컸다.

법정관리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88년 서울올림픽과 그 후 일련의 국제행사에서 활동할 외국어 통역가이드들을 ‘닥터위콤’으로 교육시키면서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기술력을 인정받아 수출의 길이 트였기 때문이다.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중국도 대회를 앞두고 통역가이드 교육을 위해 ‘닥터위콤’을 대량 수입해갔다. ‘위콤’이라는 상표가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그 무렵 미국 UCLA 어학실에 기기를 설치했는데, 오프닝 행사에 오라고 연락이 왔어요. 가서 보니 절반쯤이 동양 학생들이고 그중에 3분의 1은 한국 학생들이더군요. 그 아이들더러 ‘여러분은 이곳에 미국말을 배우러 왔지만, 미국말을 가르치는 기계는 한국산이니 긍지를 가지고 배우라’고 했습니다. 뜨거운 박수가 터져나왔어요. 가슴이 뿌듯해지더군요. 사업하는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어요.”

해외에서는 이렇게 인정을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국산 제품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외면당하기도 했다. 지방의 한 고등학교에 어학실을 설치했더니 시설을 둘러본 교장이 “야, 이 기계 참 좋다”며 감탄했다. 그래서 “내가 이 기계 만들면서 엄청나게 힘들었다”고 했더니 교장은 깜짝 놀라면서 서무과장에게 “누가 국산 사라고 했느냐”며 듣기 민망할 만큼 역정을 냈다. 그는 설비를 뜯어갈 생각으로 “교장선생님 아들은 미제입니까, 일제입니까” 하고 내뱉었다. 그 말에 교장은 입을 다물었지만, 돈을 받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특허 기술은 생존의 전제

‘닥터위콤’의 명성이 알려지자 대기업이 유사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전자회사는 OEM으로 계약을 하자며 접근했다가 기술만 가로채고는 “가격이 안 맞는다” “기술을 신뢰할 수 없다”며 계약을 파기했다. 그리고는 유사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윤회장은 특허침해라고 따졌지만, 이 회사는 막무가내였다.

그는 이 회사에 전화를 걸어 “우리가 당신네를 상대로 싸워봐야 질 게 뻔하다. 아예 우리 회사를 줄 테니 다 가져가라. 대신 나는 중앙청이 바라보이는 우리 회사 앞에 ‘○○전자가 망해야 중소기업이 산다’는 플래카드를 써붙이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 회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생산을 중단했다.

서부산업 총판을 하던 사람과 공장장이 ‘닥터위콤’의 기술을 도용, 자기들끼리 제품을 만들어 판 적도 있다. 윤회장은 이들을 특허침해로 고소했는데, 최근 이들의 기술 도용 사실이 인정돼 승소했다. 그는 “특허를 침해해서 만든 제품은 절대로 원래 제품보다 성능이 좋을 수 없다. 특허기술을 피해서 만들려다 보니 물건이 조잡해지고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이렇게 남의 기술을 도용해 만든 제품을 정부와 소비자들이 사주면 누가 애써 발명을 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 기술의 싹을 잘라버리는 자살행위예요. 우리가 우리 기술을 보호해줘야 해외에 나가서도 우리 특허가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인에게는 불굴의 기업가 정신도 필요하지만, 특허기술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거든요.”

발명문화재단 설립하고파

윤만희 회장은 앞으로 ‘닥터위콤’을 이용한 외국어 교육사업을 펼 계획이다. 이제는 중국어 수요가 영어에 못지않게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 아래 95년 서울 고척동에 5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북경어언문화대학 한국사무소를 설립, 중국어를 가르쳐 왔다.

이곳에서 1년간 공부한 학생들은 중국의 랭귀지 스쿨인 북경어언문화대학 2학년생으로 편입할 수 있는데, 그동안 200여명이 편입했다.

올해부터는 ‘닥터위콤 폰랩’을 통한 영어 교육사업도 벌일 생각이다. 그러나 계획은 그저 계획일 뿐, 그 실천 여부는 거래은행의 결정에 달려 있다.

윤회장은 “한국에서 중소기업을 한다는 것은 사막에서 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며 향후 회사를 확고한 위치에 올려놓기만 하면 기꺼이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는 그 시점을 3년 후쯤으로 보고 있다. 그 후에는 그간 일에만 매달리느라 한 번도 오붓한 시간을 함께 갖지 못한 아내의 손을 잡고 여행을 떠나려 한다.

아들이 회사를 경영할 능력이 있고 본인도 원한다면 물려주겠지만, 둘 중 어느 한 조건이라도 맞지 않으면 물려줄 생각이 없다. 사업이란 게 너무 힘든데다 많은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발명문화재단을 설립해, 재능은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발명가들을 지원하겠다는 포부도 있다.

이한우 사장은 “그 동안 서부산업은 제품을 개발하고 회사를 키우는 데만 주력했지, 수익성을 높이는 데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며 “앞으로 광고와 홍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창구를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판촉활동을 전개하면 회생은 물론, 괄목할 만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양심대로 살면 법이 필요없다’는 좌우명으로 평생 우직하게 일만 하며 살아온 윤회장의 재기는 수많은 중소기업인과 가난한 발명가들에게 힘을 줄 것이다.

신동아 2000년 2월호

3/3
곽희자 자유기고가
목록 닫기

‘닥터위콤’으로 세계 어학실습기 시장 평정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