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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문화 기행

차도르와 할례의 땅에도 본능은 불타오르고

  • 권삼윤 문명비평가

차도르와 할례의 땅에도 본능은 불타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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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스톡홀름의 한 가게에서 거리의 여자를 두고 영업을 하려 했다가 문을 처음 열던 날 사람들이 몰려와 이것 던지고 저것 던져대는 바람에 문을 닫은 뒤로는 아무도 그런 가게를 내려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그들은 부부 사이라 해도 사랑이 오갈 때만 그 관계가 유지될 뿐, 어느 한쪽에서 “내게 새 애인이 생겼어”라고 하면 이유도 묻지 않고 그 순간 모든 것을 끝내고 만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부부관계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리섹스는 아무하고나 난잡하게 성관계를 갖는다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다시 말해서 사랑이 주인이 되는 섹스를 뜻하는 것이다.

그곳 사람들이 부부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자녀까지 낳아 기르면서도 결혼식은 물론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많은 것은 결혼이라는 형식에 얽매이기보다는 사랑이 있는 부부관계를 갖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부부는 서로에게 늘 긴장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은 그걸 오히려 삶에 활력소로 받아들인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결혼식을 치르지 않고 남녀가 함께 사는 가정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아이를 낳으면 아이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어머니 성을 따른다. 모계사회의 성격이 강하다.



또한 그들은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자녀양육 휴가제도를 갖고 있다. ‘파파레직(papaledigt)’이 그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대개 출산 전후에 일정 기간 출산휴가(한국은 60일)를 갖는데,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는 출산휴가 외에 아이가 두 살이 될 때까지 1년의 양육휴가를 별도로 준다. 이 휴가는 유급이며 부모 모두에게 제공된다. 어머니가 갖는 휴가를 흔히 ‘마마레직’이라 하고, 아버지의 휴가를 ‘파파레직’이라 부른다.

이런 휴가 동안 생계에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서 자녀 양육에만 신경쓰게 함으로써 산모의 건강을 도모함은 물론, 생활에 활기를 되찾게 해준다. 이때 아내는 독서를 한다든가 평소 시간을 내지 못해 미뤄뒀던 취미활동을 하며, 남편은 집안일을 거들면서 아내의 그런 활동을 도와준다.

일찍부터 여성할당제를 실시해 여성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온 그곳에선 이미 여성장관과 국회의원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탄생시켰으며, 총리도 여럿 배출했다. 핀란드에선 올해 여성 대통령까지 나왔다.

같은 유럽인데도 대륙의 서쪽 끝을 지키고 있는 포르투갈 여성들은 다른 유럽 국가 여성들과는 달리 매우 동양적이다. 생활력이 강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 같은 포용력이 있다. 포르투갈은 유럽문명의 발상지인 ‘갇힌(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 사이에) 바다’ 지중해가 아니라 탁 트인 대서양을 끼고 있다. 그곳의 사내들은 민족시인 카몽이스의 서사시 ‘루지아디스’에 나오는 “보라, 유럽의 끝에 포르투갈이 있다. 거기서 대지는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구절을 읊조리며 바다로 떠나가곤 했다. 지리상의 발견은 그렇게 해서 이뤄졌다.

포르투갈 여인들의 포용력

남자가 모두 떠나버린 포르투갈 땅에는 홀로 된 여자들만 남았다. 그들은 사내가 돌아올 때까지 모든 고난을 견디며 살아가야 했다. 집안의 생계 역시 그들이 책임졌다.

바다로 떠난 사내들은 항해가 끝났다고 곧장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닻을 내린 곳에서 낯선 여인의 품에 안겨 살림을 차리고 아이도 낳으며 살다가 나이 들어 문득 고향이 생각나고 두고 온 애인이나 아내가 그리워지면 그때서야 돌아온다. 그들은 떠날 때처럼 건강한 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손에 무언가 들려 있지도 않았지만, 포르투갈 여인들은 말없이 그들을 맞아주었다.

혹시 20세기 최고의 파도(fado) 가수 아마리오 로드리게스가 한창 때 부른 ‘검은 돛배’란 노래를 들어보았는가. 항구에 나가 연인을 실은 검은 돛배가 이제나 저제나 돌아올까 애타게 기다리는, 한 많은 여인이 부르는 그 애절한 파도의 선율을. 포르투갈 여인들은 가슴에 사무친 한을 흐느끼는 듯한 파도 가락에 띄워 보내며 그렇게 떠나간 사내의 귀향을 기다렸다.

수다스럽고 제스처가 큰 이웃 스페인 여자들과는 달리 얼굴에 감정을 싣지 않는, 그래서 억척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포르투갈 여자들이 파도를 부르며 고향 땅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기에 포르투갈은 해양대국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다와 배에 대해 잘 알고,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어하는 방랑기 많은 포르투갈 남자들의 작품이 아니었다. 그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말없이 기다려주고, 설령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따뜻하게 받아주는 포르투갈 여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양적’이라는 말을 하고 나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과테말라의 산 안토니오 마을에서 만난 인디헤나 여인들이다.

영어의 ‘인디언’에 해당하는 스페인어 ‘인디헤나’는 중남미에 사는 원주민을 일컫는데, 과테말라는 전체 인구 중에서 인디헤나가 차지하는 비율이 아주 높다. 인구 950만명 중 70%인 650만명이 인디헤나다.

마야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강한 인디헤나는 언어나 생활습관 등 문화적인 이유 때문에 퀴체, 켁치, 포콘사, 맘 등 여러 종족으로 나눌 수 있다. 인디헤나의 자주와 자존, 독립을 위해 투쟁한 공로로 92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여성지도자 리고베르타 만추는 퀴체 출신이다.

정치권력은 물론 경제권까지 거머쥔 소수의 백인들이, 인디헤나가 조상대대로 갖고 있던 땅을 빼앗고 혹사하자 인디헤나들은 문명의 손길이 닿기 힘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백인들을 물리칠 궁리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가난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난은 문맹을 불렀고 무지는 다시 빈곤으로 되돌아왔다.

강인한 인디오 여인들

산 안토니오는 18세기 말까지 과테말라의 수도였던 안티과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인구 1000명 정도의 순수 인디헤나 마을이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던 정류장은 원색의 물결로 일렁거렸다. 인디헤나 여자들과 아이들이 입은 털스웨터 때문이었다.

버스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렸고, 차 안은 발디딜 틈이 없을 뿐 아니라 고개도 가누기 힘들었다. 승객 대부분은 여자들이었는데, 어린이에서부터 처녀, 아주머니,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노소가 다 모여 있었다. 웬만큼 나이 먹은 여자는 모두 아이들과 함께였다. 포대기에 싸 업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이 손을 꼭 쥔 사람도 있었다. 산아제한과 무관한 곳이라 능력이 닿는 데까지 출산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여인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피부는 까무잡잡하지만 곱다. 머리카락은 직모인데 길게 길러 두 가락으로 곱게 땋았다. 깨끗한 눈망울은 물기를 머금고 반짝거려 순박하기 이를 데 없어 보였다.

다른 차는 보이지 않고 자전거만 가끔 지나갔다. 길을 가는 사람은 꼭 무언가를 들고 다녔다. 남자들은 어깨에 올려놓고, 여자들은 머리에 이고 다녔다. 60년대 우리의 시골을 보는 듯했다. 같은 몽골족 피를 나누어서인지 생긴 모습에서부터 감정 표현방식, 물건을 나르는 동작까지 닮은점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었다.

산 안토니오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 한모퉁이 공동 빨래터에선 알록달록한 스웨터 차림의 젊은 여자들이 빨래에 열중해 있었고, 거기에서 멀지 않은 가게에선 주인여자가 색색의 털실로 스웨터며 벽걸이를 짜기에 바빴다. 외국관광객이 다녀가면서 사진을 찍어줬는지 그녀는 예쁜 액자 안에서도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어릴 때 고향에서 늘 보던 이웃집 아주머니였다. 동양은 아시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몽골족 후예는 남미 땅에도 살고 있었다. 그 땅의 원주민인 인디오가 그들이다. 이들 역시 인디헤나처럼 식민지배자의 위력에 눌러 주인 노릇을 못 하고 외딴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페루와 에콰도르, 볼리비아에선 그 숫자가 인구의 절반을 넘을 정도로 많다.

재미있는 것은 인디오 사회에선 여자들이 경제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디오 여자들도 인디헤나처럼 머리가 길고 두 가닥으로 땋아 엉덩이에 닿긴 하나 그 외에는 다르다. 인디오는 창이 둥근 모자를 쓴다. 어깨에는 포대기를 둘러 아이든 무엇이든 담아 나르며, 아랫도리엔 발레복처럼 길이는 짧으나 펼쳐놓은 우산처럼 부푼 치마를 입는다.

일도 여자들이 도맡아 한다. 밥 짓고, 빨래하는 일이야 당연한 것이고, 털옷을 짜는 일, 그리고 생계의 근본가 되는 양이나 알파카, 라마 등 가축을 기르는 일과 밭일까지도 여자들의 차지다. 그러니 그들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고 얼굴은 늘 검게 그을어 있다.

농사일을 할 수 없는 도회지의 인디오 여인들은 전통복장 차림으로 알파카나 라마를 끌고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출근한다. 거기서 관광객들에게 풍물사진의 모델이 되어주고 돈을 받는 것이다. 옛 잉카 제국시대의 수도 쿠스코의 대성당 앞이나 저 유명한 12각돌이 있는 하툰투미요크 골목이 바로 그런 곳이다.

이렇게 여자들이 생계를 책임지니 남자들은 하는 일이 없어 빈둥거린다. 그러니 그들은 집안 일에 대해 아무런 결정권도 행사할 수 없다. 돈주머니는 실제로 돈을 버는 안사람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디오 성인 남자의 직업은 대개 ‘남편’일 뿐이다.

인디오 여인들의 강인함에는 내력이 있다. 옛 잉카제국 시대에도 나라를 끝까지 지킨 것은 ‘태양의 처녀’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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