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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핫이슈|베일 벗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

‘생명의 책’ 완성으로 진시황의 꿈 이룬다

  • 김진수 (주)툴젠(Toolgen, INC) 대표이사·이학 박사

‘생명의 책’ 완성으로 진시황의 꿈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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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30억 달러를 투입해 지난 10여년간 수행해온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정보를 디지털화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2000년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지난 2월29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앞으로 두 달 이내에 내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발표를 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는 지난 10여년간 미국을 비롯한 15개국이 공동으로 수행해온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마침내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음을 의미한 것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의 예고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료 선언을 통해서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을 세계에 과시하면서 생명공학 산업에서 미국의 선도적인 지위를 굳건히 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닷컴 시대’ 다음은 ‘바이오칩 시대’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의 이런 예고에는 말못할 속사정도 있었다. 지금까지 30억 달러를 투입해 진행해오고 있는 미국 정부의 게놈 프로젝트가 한 민간 생명공학 기업의 독자적인 게놈 프로젝트에 뒤질 수도 있다는 절박한 상황이 미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미국의 생명공학 회사인 셀레라의 크레익 벤터 사장이 올 연초에 발표한 대로 셀레라가 올 상반기 중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먼저 완료하고 수만 개의 인간 유전자들에 대해 특허를 출원하게 된다면, 다국적 차원에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주도해온 미국 정부는 곤란한 지경에 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관장하고 있는 미국 국립보건연구소는 셀레라에 앞서 게놈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그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함으로써 인류 공동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게놈 정보를 일개 민간 기업이 소유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료로 상징되는 생명공학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은 이미 작년부터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나스닥 평균지수가 지난 1년간 약 2배 상승한 데 비해서 생명공학 관련 기업의 주가지수는 같은 기간 4.3배나 상승한 것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밀레니엄 제약의 주가는 지난 1년간 10배, 어피메트릭스의 주가는 9.3배 상승했고, 다국적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맞서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셀레라의 주가는 20배 이상 폭등하는 등 소위 바이오칩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과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생명공학 기업을 표방하는 마크로젠이 코스닥에 상장돼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바이오칩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이런 사실은 이제 닷컴 시대가 가고 바이오칩 시대가 개막된 것이 아닌가 하는 다소 성급한 판단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생명공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고조되고 있는 현 시점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과연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 인간 게놈 프로젝트란 무엇인가? ]

무병장수, 불로장생은 진시황제만이 아니라 유사 이래 전인류의 소망이었다. 21세기에는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이러한 인류의 꿈이 상당 부분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인간의 기대수명은 50세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100년간 의학과 생명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건강 증진과 수명 연장에 크게 기여해 이제 산업화된 사회에서 인간의 기대수명은 80세 가까이 이르고 있다.

생명공학의 기술적 진보가 21세기에도 계속된다고 볼 때 21세기 중반에는 인간의 기대수명이 120세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머지 않은 장래에 암과 치매, AIDS 등과 같은 난치병을 포함한 거의 모든 질병에 대해 적절한 치료법이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동물로부터 장기를 생산하여 환자에게 공급하는 것이 가능해질 전망이고,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세포를 채취하여 배양함으로써 필요한 장기를 만들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불과 몇 년 전에 처음 성공한 동물 복제는 의학적으로 유용한 장기와 약제의 생산에 크게 기여할 것이고, 머지 않은 장래에 일부 개방된 국가에서는 부분적이나마 인간 복제가 허용될 것이다. 아기가 유전병을 앓지 않도록 생식세포의 유전정보를 변경하는 유전자치료가 가능해질 것이고, 마침내는 부모의 취향에 맞추어 더 똑똑하고 건강하고 재능있고 잘생긴 아이를 미리 ‘설계’해서 임신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전망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구미 선진국에서 지난 10여년간 수행해온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이제 막바지에 이르러 인간의 게놈 전체가 조만간 실상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게놈 프로젝트가 처음 제안됐을 때 일부 보수적인 과학자들은 이 프로젝트가 완료되려면 수백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기술 진보에 힘입어 당초 2015년을 목표로 했던 계획이 앞당겨져 2003년에 종료될 것으로 수정됐다. 그러다가 작년에 미국의 민간 기업인 셀레라가 “2000년 상반기 중에 독자적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완료하겠다”고 발표한 후 미국정부는 계획을 더욱 앞당겨 2000년 초에 90%가 완성된 인간 게놈의 초안을 발표하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생명의 책’ 쓰기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10만개의 유전자를 포함하는 인간의 게놈을 완전히 읽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대담하고 야심찬 국제적 프로젝트다. 이는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정보를 디지털화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0과 1 두 숫자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고 영어로 기술된 책이 26개의 알파벳으로 쓰인 데 비해 인간의 게놈은 A, C, G, T라는 기호로 표기되는 4종류의 염기가 특정한 순서로 30억번 배열돼 이루어진 ‘생명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이러한 서열을 완전 구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 방대한 계획인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수행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총 30억 달러의 사업비가 소요되는 대규모 사업으로 현재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어서 금년 상반기에 90% 이상 구명될 예정이고, 이와는 별도로 미국의 민간 기업인 셀레라 역시 올 상반기중 완전히 밝힐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고도 놀라운 사실은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유전자가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아무도 몰랐다는 점이다. 멘델의 유전법칙이 발견된 19세기 이전에도 이미 사람은 물론이고 가축, 농작물 등 모든 생명체에서 자식이 어버이 세대를 닮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폭넓은 인식이 있었다. 가축이나 농작물의 종자 개량은 바로 자식이 어버이 세대를 닮는다는 자연법칙을 활용한 전형적인 예였다.

우리 나라 속담에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듯이 형질이 유전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겨 왔는데, 바로 부모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형질을 전달해주는 물질을 서구의 생물학자들은 유전자라고 불렀다. 20세기 들어와 생물학자들은 유전자가 DNA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하나의 유전자로부터 하나의 단백질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알게 됐다. 즉 유전자는 정보를 간직하고 있는 일종의 명령어라고 할 수 있고, 그 명령어의 정보를 실현하여 만들어진 것이 단백질인 것이다.

1950년대에 워슨과 크릭은 DNA 구조가 이중나선이라는 것을 밝혀내 유전정보가 어떻게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지 수수께끼에 빠진 생명과학자들에게 광명을 비춰 주었다. 워슨과 크릭이 밝혀낸 DNA 구조는 두 가닥의 긴 줄이 서로 꼬여 있는 형태이고, 두 가닥 사이에는 A, C, T, G 네 종류의 염기가 쌍을 이루고 있다.

염기가 쌍을 이루는 데는 일정한 규칙이 있어서 A는 항상 T와 쌍을 이루고, C는 항상 G와 쌍을 이룬다. 따라서 한 가닥의 염기 서열을 알면 맞은편 가닥의 염기 서열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세포가 분열할 때 각각의 가닥을 사본으로 새로운 가닥이 만들기 때문에 유전정보가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다.

유전자와 유전명

인간의 세포에 존재하는 DNA는 30억쌍의 염기서열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인간의 게놈이라고 부른다. 즉 인간의 게놈은 30억개의 글자로 쓰인 ‘생명의 책’인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30억개 모두 의미가 통하는 문장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그중 불과 10%만이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생명의 책에서 의미가 있는 문장이 바로 유전자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인간 게놈에는 약 10만개의 유전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전자는 비유해서 표현하자면 “인터페론을 만들어서 면역성을 강화하라” “성장 호르몬을 분비해서 키를 크게 하라” “지방분해 효소를 분비해서 지방을 소화하라” 등과 같은 형태의 문장으로 쓸 수 있다. 이 문장이 실현되어 만들어지는 인터페론, 성장호르몬, 지방분해 효소들은 모두 단백질 형태로 존재한다.

즉 생명의 책, 게놈은 명령어로 기술된 군사교본이나 요리책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유전병은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명령을 실행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성장 호르몬을 분비해서 키를 크게 하라”는 문장의 일부가 찢겨 나가 그 명령을 실행할 수 없게 되면 왜소증에 걸리게 된다.

지금까지 밝혀진 인간의 유전병은 3000여개에 이른다. 이런 질병은 부모에로부터 자식에게로 전달된다. 유전병 가운데에는 유년기를 넘기지 못하는 치명적인 질병도 있고, 색맹과 같이 평생 특정 색깔을 구별하지 못할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질병도 있다. 수많은 유전병 가운데 어떤 유전자가 그런 질병을 초래하는지 밝혀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유전학자들은 짧은 시간에도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다. 원인 유전자가 밝혀진 유전병은 어떻게 치료할 수 있나? 21세기에는 유전자 치료가 유전병을 치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이 방법은 바로 잘못된 유전자를 정상적인 것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즉 생명의 책을 교정하여 틀린 부분을 고쳐 쓰는 것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가장 큰 혜택은 유전병을 앓고 있거나 유전병을 앓는 자녀를 갖게 될 수많은 부모에게 돌아갈 것이다.

스핑크스의 침묵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당장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 당분간 전세계적으로 생명공학 기업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솟구칠 것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의 삶에 즉각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활용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작업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게놈 프로젝트로 완성된 생명의 책에 쓰인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게놈 프로젝트는 일단 인간의 DNA 정보를 A, C, G, T 네 글자로 옮겨 적은 것일 뿐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유전자 10만개 대부분에 대해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생명과학자들도 아직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의 책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대략 5년에서 30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마치 이집트에서 로제타 돌을 유럽으로 가져온 후 거기에 새겨진 상형문자의 의미를 해독하는 데까지 소요됐던 ‘스핑크스의 침묵’ 기간에 비유할 수 있다.

둘째, 사람들마다 생명의 책에 기록된 정보가 조금씩 다른데, 이를 파악해야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약 1000개의 글자마다 1개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만일 지구상의 두 사람을 임의로 선정해서 각각의 게놈을 완벽히 구명하면 약 99.9%가 동일하고 0.1%가 다를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은 민족에 속해 있으면 그 차이는 더 작을 것이고, 다른 민족에 속해 있으면 더 클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게놈의 서열에 차이를 보이는 것을 단일염기다형성(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이라고 부른다. 미국과 일본, 유럽의 국립 연구소와 민간 기업들은 단일염기다형성을 밝히는 작업에 이미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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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주)툴젠(Toolgen, INC) 대표이사·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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