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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죽고 나 살기’ 20년 싸움

  • 이종찬 아주대 교수·의학사상 및 보건정책

‘너 죽고 나 살기’ 20년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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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논쟁의 양쪽은 ‘추상적인’ 정책 가치를 위해 ‘비효율적’으로 싸웠다. 통합론자들은 통합이 되면 보험료 부담에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효율적인 관리운영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반해 조합론자들은 통합이 오히려 계층간에 역형평을 초래하며 보험재원 조달 방식과 보험 의료비 관리 측면에서 조합론이 더 효율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둘 다 맞는 이야기인 듯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근거로 내세우는 형평과 효율은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실험실에서 하는 연구가 아닌 바에야 실시하지도 않은 통합방안을 조합모형과 비교하여 어느 쪽이 더욱 공평하고 효율적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겠는가. 예측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필자가 볼 때, 양쪽 논자들은 서로 다른 형평의 잣대로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고 있다. 효율성의 잣대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동질적 차원에서 비교할 수 없다. 이렇게 비교 입증이 불가능한 양쪽의 주장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둘째, 양쪽은 조합의 관리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치열하게 싸우면서 실제 의료보장 문제의 본질인 진료비 지불방식을 소홀히 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는 진료 행위별로 점수를 매겨 보험수가를 책정하는 행위별 수가제(Fee-for-Service)를 채택하고 있다. 의료인에 대한 행위별 수가제 지불방식에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방식은 필연적으로 보험재정의 안정성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럴까?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행위별 수가제는 똑같은 질병이라도 치료방식에 따라 진료비에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의료보험 수가가 싼 한국 현실에서 의사들은 단위 시간 내에 보험수가가 비싼 진료 행위를 선택할 것이다. 이와는 달리, 곧 시행될 포괄수가제는 맹장염처럼 똑같은 질병에 대해선 일정한 의료보험 수가가 책정된다.

다음으로 한국의 의사인력은 80% 이상이 전문의인데, 전문의는 자신들이 투자한 교육 및 수련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을 보상받고자 한다. 그들은 현재의 보험 수가제로는 자신들의 기회비용을 보상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행위별 수가제에서 단위 시간에 가능한 한 보험수가가 높은 진료 행위를 하려 한다.

이와 같이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 제도에 작용하는 여러 가지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국민 의료비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양쪽 주장자들은 조합의 관리운영 체계를 진료비 지불방식부터 심도있게 연구했어야 한다.

또한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 1·2차 기관을 거치지 않고 대학병원 등 3차 의료기관으로 직접 가는 것이 허용된 상태에서 환자들은 첨단의료기술을 갖춘 대형 병원으로 몰려들고, 이 또한 진료비의 가파른 상승으로 나타난다. 1990년대 중반 의료보험 적립금이 3조원을 상회했지만, 95년부터 평균 20%가 넘는 진료비 상승으로 보험재정이 흔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재정경제부가 보험료와 보험수가에 대한 정책결정권을 갖고 있는 현실에, 당분간 낮은 수가와 낮은 보험료가 유지될 것이다. 이는 보험급여를 확대하는 데 장애요인이 되며 보험재정을 불안하게 한다. 결국 환자들의 본인 부담금만 증가하게 되어(외래 환자의 경우 67%, 입원 환자의 경우 40%를 넘는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는 의료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비를 할인’해 주는 제도로 전락해버렸다. 이것이 20년간 지겹도록 싸운 조합론 대 통합론 논쟁의 전리품이다.

정확한 소득파악이 우선

셋째, 도시지역 자영자 중에 소득자료가 파악되는 가구가 25%에 불과한 현실은, 조합론이든 통합론이든 지역의료보험 재정이 의료보험에 덫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무시하고 재정통합을 하면, 소득이 높은 도시 자영자가 소득이 낮은 직장 근로자보다 보험료를 적게 내는 소득역진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통합론자들은 지금도 애초에 정부가 지역의료보험 재정을 지원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고 시위한다. 설사 정부가 지원한다 해도 이 구조로는 단기간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인 불균형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국세청도 파악하지 못하는 도시 자영자 소득을 보험자 단체가 어떤 기준으로 파악하고 평가하겠다는 것인가.

조합론 대 통합론으로 백날 대립해봐야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방법은 조세제도 개혁에 있다. 조세제도를 개선해 자영자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문제는 국민연금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조합론자와 통합론자, 그리고 양쪽 주장을 열렬히 지지하는 이익단체들이 의료보험 논쟁에 쏟은 힘과 자원을 차라리 자영자 소득 파악에 투입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

넷째, 통합론자들이 최근 제시하는 의료보험 향후 과제들은 의료보험 통합 이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통합 이전에 해결했어야 할 정책이다. 현 정부의 보험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는 통합론자들은 통합 이후의 과제로 진료비 지불 방식 개편, 보험재정 안정화 및 재정운영방식에 대한 점검, 적정한 보험 급여와 보험료 부과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 등을 이야기했다. 의약분업, 국민의 의료 이용 행태 변화, 진료비의 급격한 상승, 의료인의 수가 인상 요구 등으로 통합의료보험에 대한 새로운 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과제들은 조합론이나 통합론과는 무관하게 의료보장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풀어가야 할 사안이지 통합 이후의 과제가 될 수는 없다. 의료보험료와 보험수가가 낮은 것은 명백한 사실인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조합론과 통합론으로 맞서 싸우는 데 전력을 소모해버리고, 정작 피보험자인 국민에게 진료비 상승과 보험수가 인상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알리고 설득할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리고 이제 와서 사회적 합의 운운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아울러 몇몇 새로운 변수도 조합론이나 통합론과 무관하다. 의약분업의 경우, 1977년 의료보험 제도가 부분적으로 실시됐을 때 이를 의료보험에 접목해 실시했어야 한다. 또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이 실시됐을 때 조합론이냐 통합론이냐로 논쟁하지 말고 의료보험 내 의약분업을 적극 검토했어야 한다. 정부가 중요한 시점에 두 차례나 실기(失機)를 하는 바람에 이제 와서 추진되고 있는 의약분업은 극단적인 대결구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책은 간 데 없고 정치만 나부낀다

이처럼 관리운영체계가 조합론이거나 통합론이거나 국민에게는 별 차이가 없는데 양측은 왜 ‘총력전’을 펼치는 것일까? 사실 1980년 초 조합의 재정적자를 이유로 통합론이 대두했을 때는 정부 담당자들 사이의 찬반 논쟁 정도로 가볍게 출발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대결구도가 확대됐다. 정부와 보험자 조직은 물론이거니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조직, 농민단체, 여기에 의료인 집단과 시민단체까지 가세했다. 이처럼 총력전 체제가 된 데 대해, 각각의 집단에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런 이해관계는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한 것이 아니라, 논쟁을 주도한 논자들에 의해 첨예한 방식으로 만들어져왔다.

양쪽 논자들은 자신들의 정책적 타당성을 입증하고 홍보하기 위해 기회손실(opportunity loss) 또는 기회이득(opport-unity gain)전략을 구사했다. 원래 이 개념은, 기회비용(opportunity cost)과 달리 비교가 불가능한 정책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함으로써 다른 쪽이 입게 될 손실 또는 이득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합론자와 통합론자들은 자기 쪽 정책이 시행됐을 때 이해관련 당사자들이 얻게 될 이득을 홍보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 상대쪽 정책이 시행됐을 때 입게 될 손실도 적극적으로 알렸다.

이런 전략은 관련 이해단체들을 통합론과 조합론의 깃발 아래 모여들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논자들은 자기쪽 주장을 지지할 개연성이 높은 이해단체들을 찾아다니며 이런 방식으로 설득했고 결과적으로 갈등은 점점 첨예한 구도가 됐다. 급기야 조합론 지지를 서명한 한국노총 노동자 수가 500만 명을 넘어섰다는 발표가 있자 진짜 서명이니 가짜 서명이니 따지는 웃지 못할 사건이 연출됐다.

여하튼 이것은 정책 결정자에게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됐다. 어느 쪽 손도 들어줄 수 없이, 양쪽 눈치만 보게 된 것이다. 기회손실 혹은 기회이득 전략이 힘을 발휘할수록 정책 결정자는 급변하는 의료현실에 대해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한약사 제도의 신설이다. 경실련의 중재로 한약사 제도를 신설했지만, 한약 분쟁은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2차 한약 분쟁의 도화선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즉 새로운 분쟁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책은 왜곡, 변질되는 실패의 악순환을 겪게 된다. 한약사 제도는 앞으로 한약 분업 과정에 갈등을 일으킬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전략에 따라 논쟁이 가열될수록 의료보장제도를 개선하려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는 약해지고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가려는 전술만 난무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수시로 바뀌는데 - 김영삼 정부에서만 장관이 9번의 차관이 5번 바뀌었다 - 정부내 어느 고위 공직자가 차분히 앉아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겠는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권 책임자들은 정책적 목적과 정치적 목적 사이에서 어느 쪽을 쟁취할 것인지 저울질한다. 두 개의 서로 대립된 정책(A와 B) 중에 A의 정책적 목적이 상대적으로 B의 그것보다 타당하더라도, A가 정권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B보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A 대신 B를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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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아주대 교수·의학사상 및 보건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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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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