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호

‘은둔의 후계자’ 김정일이 협상테이블에 나선 이유?

  • 손정우 songmh@donga.com

    입력2006-10-16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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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정상회담은 서로가 뜸들이지 않고 ‘화끈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만큼 이번 정상회담을 대하는 김정일의 관점 역시 우리가 미처 예측하지 못하는 ‘게임’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김정일은 남북 정상회담을 놓고 도대체 어떤 계산을 하고 있을까? 》
    다소 엉뚱한 이야기부터 먼저 해야겠다. 지난해 6월 서해 북방한계 선 부근에서 남북간에 교전이 있었다. 결과는 아는 대로 씩씩한 우 리의 신세대 군인들이 압승을 거뒀다. 서해교전은 우리 해군전사에 ‘연평해전’으로 기록됐고, 이 ‘해전’은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러면 완패를 당한 북한은 이 서해교전 결과를 어떻게 보았을까. 당시 짤막하게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우리는 엄청난 인내심을 가 지고 참아왔으나 남조선과 미군이 끝까지 도발을 감행해와 이를 단 호히 응징했다”고 언급돼 있다. 최근 탈북한 사람들은 모두 서해교 전을 북한의 압승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새삼 거론할 게 못 될지 모른다. 어느 전쟁사를 보아도 상대방에게 완전히 지기 전까지는 서로 자기가 이기고 있다 고 주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중요한 것은 북한이 왜 도발을 감행했느냐 하는 점과 서해교전의 결과를 김정일은 어떻게 계산했을까 하는 점이다.

    서해교전과 김정일의 계산법

    김정일의 ‘서해교전 대차대조표’는 과연 어떠했을까. 이를 이해하 려면 서해교전을 단순히 서해상에서 일어난 남북간의 ‘국지전’으 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동북아 전체의 군 사 역학관계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김정일은 서해교전이라는 국지전에서는 패했지 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체 국가운영 관점에서 보면 적 지 않은 실익을 챙겼다고 볼 수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 북한을 둘러싼 급박한 대외정세 하에서 김정일의 머리를 짓누 르고 있던 것은 대강 네 가지였다. 첫째, 코소보 사태에 보여준 미 국의 태도였다. 코소보 사태는 미국이 언제든 국제분쟁에 끼어들 수 있고,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 무렵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금창리 핵시설 의혹 문제가 불거져 있었 고, 미사일 협상이 진행중이었다.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27이 남 한 언론에까지 공개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미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을 결정할 페리 보고서가 과연 어떤 방향으로 정해질 것인가 하는 문제는 북한의 체제생존과 직결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김정일로서는 핵이나 미사일과는 전혀 관계 없는 문제를 들고 나와 외곽에서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에 담긴 진 의를 탐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둘째, 미국과 일본 간에 새로 맺어진 신안보조약이었다. 신안보조약 에서 김정일이 궁금해한 점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제한된 범위에 서나마 과연 단독으로 군사 지원행동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 다.

    셋째, 김정일은 새롭게 짜인 미·일 안보조약에 따른 중국의 대응 태도가 궁금했다. 즉 한반도 유사시 중국의 대응과 전통적인 조·중 관계를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넷째, 김대중 정부가 펼치는 햇볕정책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햇볕정책이 흡수통일을 위한 전술인지, 진짜 남북 평화공존 평화교류 정책인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 다. 또 그동안 남측이 지속적으로 증강해온 군사력이 과연 어느 정 도 되는지도 시험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정전협정 이후 계속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는 서해 북 방한계선 문제를 건드린 것은 김정일로서는 북방한계선에 대한 미국 의 공식 정책까지 점검해볼 수 있는 절묘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 다. 물론 2억 달러짜리 꽃게 어장도 놓칠 수 없는 외화벌이 수단이 었다.

    북한의 북방한계선 도발은 김정일의 이러한 복합적인 계산 아래 나 온 매우 조심스러운 응수타진이었다고 볼 수 있다.

    ‘화끈한’ 합의의 이면

    그러면 서해도발을 통해 김정일은 무엇을 점검할 수 있었을까?

    첫째, 미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이 적어도 미·북간의 전쟁까지 염 두에 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북방한계 선이 ‘공해(公海)’라는 미국의 견해를 알았고, 따라서 클린턴 정 부 하에서는 자기네 체제 유지에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 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서해교전과 함께 태평양 주둔 미 항공모함이 발진함으로써 남 북간의 분쟁은 역시 남한 단독으로는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아울러 일본은 여전히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묶여 있 고, 따라서 한·미·일 공조체제가 과거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셋째, 한반도 문제를 보는 중국의 태도는 남북 어디에도 경사되지 않고 객관적이라는 사실을 점검할 수 있었다. 따라서 김정일은 전통 적인 조·중관계의 복원이 가장 시급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 다(이는 곧 경제지원 문제를 포함하여 포괄적인 조·중관계 복원을 위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중으로 이어진다).

    넷째, 비록 서해교전에서 패퇴해 망신을 당하긴 했지만 김대중 정부 의 햇볕정책을 시험할 수 있었고, 또 김정일이 마음먹기에 따라 햇 볕정책을 둘러싸고 남한 내 국론분열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점을 부수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섯째, 북방한계선 문제를 지속적으로 건드림으로써 이 해역에 대 한 영유권 문제를 미·북간의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는 방향으로 몰 고갈 수 있고, 아울러 이 해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의 수위를 계속 높여갈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23일 북한의 해군사령부가 ‘서 해 5도 통항질서’를 발표한 것은 지난해 북측이 일방적으로 그어놓 은 북방한계선에서 한 단계 수위를 높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총체적으로 놓고 보면, 서해교전에 따른 김정일의 계 산이 결코 손해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거론하면서 다소 엉뚱한 이야기부터 늘어 놓는 이유는, 남북관계에서는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그 이면을 추적해보면 중층적이고 다의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는 경 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분단 50년만에 첫 남북간의 정상 회담이고 보면 그 의미는 매우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김정일이 예상 외로 짧 은 기간 내에 수락한 것도, 총선기간에 정상회담 일정을 발표한 것 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분단 50년 동안 당국자 회담은 적지 않았 지만 정상회담이 합의된 것은 무산된 김영삼 대통령·김일성 주석간 의 합의 외엔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서로가 뜸들이지 않고 매우 ‘화끈한 ’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만큼 이번 정상회담을 대하는 김정일의 관점 역시 우리가 미처 예측하지 못하는 ‘게임’ 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하고, 또 이에 충분히 대비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김정일은 왜 그토록 빨리 정상회담 제의를 받아들였을까? 김정일은 남북정상회담을 놓고 도대체 어떤 계산을 하고 있을까. 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주판알을 튕길 것이며, 어떤 대차대조표를 작성 하고자 하는 것일까.

    망명한 황장엽씨는 그간 언론을 통해 김정일의 특징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중 주목되는 대목이 “다른 것은 몰라도 김정일이 이해타산 을 하는 데는 매우 빠르고 정확하다”는 증언이다. 94년 그 어려운 정세 하에서 미국과 제네바 협정을 이끌어내고 경수로 건설을 받아 낸 배후 인물도 김정일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김정일이 이번 정상회담을 받아들일 때에는 이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이해타산’을 끝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정상회담과 관련한 김정일의 계산법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김대중 대통령이 지금 서 있는 지점과 김정일이 서 있는 지점을 한번 점검 해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렇게 하면 남북 양측이 궁극적으로 무 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좀더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김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부도난 경제를 단기간에 회생시켰고, 정치 개혁과 경제개혁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어 가는 단계에 있다. 김 대통령은 주요 4대국을 비롯한 다각적인 외교를 통해 실추된 한국의 이미지를 제고했고, 경제·정치·사회의 전반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매기는 미국 신용평가회사의 한국신인도도 ‘안정적 투자가능’으로 높여 놓았다. 이제 김대통령이 재임기간에 해야 할 최대 과제는 남 북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남북문제와 관련한 김대통령의 전략은 3단계 통일론, 즉 평화공존- 평화교류-평화통일이다. 북한 포용정책은 이와 같은 전략에서 나온 전술이라고 볼 수 있다. 김대통령은 98년 제임스 울퍼슨 세계은행 총재가 내한했을 때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내가 재임 중 할 일은 실질적인 평화공존과 평화교류다. 남북이 서로 오가고 경제협력 등 교류가 활발해지면, 그것이 바로 통일적 상황 아니냐. 그 다음 통일문제는 내 후임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김대통령이 구상하는 이번 정상회담의 큰 방향은 이 발언 속에 함축 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김대통령이 생각하는 정상회담의 근 본 목적은 ‘남북이 50년간의 냉전체제를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교 류하는 것을 쌍방간에 실질적으로 합의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 를 위한 대원칙과 방법론은 이미 7·4 남북공동성명, 91년 남북기본 합의서에 제시돼 있다. 김대통령의 통일방안은 첫단계가 남북연합 체, 둘째 단계가 연방제, 셋째 단계가 완전한 사회통합이다. 김대통 령은 첫 단계인 남북연합체로 가는 스타트라인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김대통령은 그동안 지속적인 대북 포용정책으로 남북간에 신뢰를 구 축하는 한편,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길목까지 쓸어놓았 다. 이번 정상회담은 이와 같은 햇볕정책의 큰 성과물인 것이다. 이 제 김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궁극적으로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김정일이 지금 서 있는 곳

    한편 김정일이 지금 서 있는 지점을 알려면 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부터 점검해봐야 한다.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에게 부과된 지상 최대과제는 체제생존이었다. 90년대 이후의 식량난과 미국과 벌인 위험한 핵게임은 김정일에게는 최대의 위기였다. 96년 12월 김정일 은 김일성종합대에서 한 연설을 통해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을 직접 언급했다.

    “천리마 제강연합소 쪽으로 가보니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길가에 쭉 늘어섰습니다. 다른 지방에 가 보아도 어디에나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로 넘치고 있으며, 역전과 열차칸은 식량을 구 하러 다니는 사람들로 혼잡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지난 3년동안 연이어 흉년이 들어 국제기구에서 주는 식량을 받아먹 고 있습니다. 쌀이 없어 군량미도 보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식량문제로 하여 무정부상태가 조성되고 있는 데는 정무원을 비롯한 행정경제기관 일꾼들에게 책임이 있지만, 당일꾼들에게도 문제가 있 습니다. 도, 시, 군 당일꾼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95년 이후 북한에서는 수많은 아사자가 나왔다. 탈북자를 위한 민간 단체인 ‘좋은 벗들’과 미국의 존스홉킨스대 부설 연구소 등이 조 ·중 국경 현지에서 집계한 아사자 수는 95년부터 98년까지 무려 30 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김정일은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벌이는 위태위태한 핵·미사일 게임 을 통해, 국내적으로는 선군(先軍)정치를 통해 최대한의 긴장을 조 성하면서 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돌파구를 찾았다. 김정일은 핵과 미 사일 문제를 국제문제화하면서 체제생존을 연장하는 한편,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으로 철저히 남한을 배제하면서 남한 미국 일본과 중국, 서방세계로부터 타낼 수 있는 최대한의 원조를 타냈 다. 핵과 미사일문제를 동원한 ‘갈취전략’과 외부원조로 근근이 버틴 것이다.

    지난 1월 김정일은 2000년 신년사설을 통해 ‘사상·총대·과학기술 의 중시’를 내걸었다. 사상은 김일성·김정일주의, 총대는 군사력, 과학기술은 생산력 증강을 의미한다. 따라서 김정일의 향후 국정방 향은 한마디로 “사상을 틀어쥐고, 군사력을 중시하며, 경제를 회생 시킨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다른 한편 대외적으로 다각적인 접촉도 진행하고 있다. 북·일 수교 회담(4월), 이탈리아와 수교(1월), 백남순 외상 베를린 방문(4월), 필리핀과 수교교섭, 홍콩 총영사관 개설(2월), 호주와 외교재개 추 진, 김영남 방중(99년 6월), 백남순 방중(3월), 김영남 쿠바 77회의 참석(4월) 등 대외접촉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대외접촉의 활발한 재개는 95년 이후 기아로 떼죽음하는 극심한 식 량난에서는 벗어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식량을 찾아 떠 나는 탈북자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거나, 김정일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는 아직 찾을 수 없 다.

    김정일의 정상회담 계산법

    요약하자면, 지금의 북한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비교적 활발해진 남북경협과 외국의 원조로 극심한 식량난을 넘긴 상태, 그러나 본격 적인 경제회생으로 가는 길은 아직 요원한 상태, 그리고 대외적으로 는 미국·중국·일본 등과 관계개선을 통해 좀더 유리한 입지를 확 보하려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또 총체적으로 볼 때 김정일 체제는 김일성 사망 후 체제생존의 위 협에서 벗어나 이제 어느 정도 안정화의 길에 접어들었고, 이에 김 정일은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 금 김정일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짧은 시간내의 경제회생과 대외 관계 개선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은 이상과 같은 지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면 김정일은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해타산’을 하 고 있을까.

    먼저 북한의 대외관계에서 얻어지는 김정일의 이득부터 살펴보자. 첫째, 이번 정상회담은 김정일로서는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위상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다.

    그동안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깡패’ ‘골칫덩어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테러지원국, 핵·미사일 공갈, 대남도발, 인권탄 압, 외국인 납치, 외채상환 거부, 거기에 극심한 기아사태까지…. 한마디로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신인도는 ‘정크본드’ 이하였던 것 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한반도의 평화’라 는 세계 모든 국가가 바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걸려 있는 회담이다.

    둘째, 정상회담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복귀할 수 있는 좋은 카드라는 점이다. 그동안 북한이 무작정 외국과 관계 를 단절한 것은 아니다. 최근 관계복원을 서두르고 있는 국가들과도 사실상 북한이 그동안 수교를 계속 추진해왔지만, 재정문제 등 북한 의 사정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이 다른 서방국가들과 국교를 재개하는 데 큰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북한은 자기를 지지해주는 나라가 많을수록 대외관계 입지가 그만큼 유리해지는 것이다.

    셋째, 남북정상회담을 받아들임으로써 김정일은 북한이 평화적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현재 진행중인 핵·미사일 문제를 둘러 싼 북·미 고위급 회담과 식민지 배상금 문제가 걸린 북·일 수교협 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김정일로서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남북대화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고,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정일의 정상회담 수락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정일은 정상회담을 수용함으로써 미 의회 내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북한 포용정책에 대한 지지세력을 넓혀주고, 이런 같은 기류를 이용하여 미국으로부터는 양보를, 남한 으로부터는 더 많은 지원을 받아내는 틈새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김정일이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을 수락한 것도 4월중으로 잡힌 북· 미 고위급 회담을 의식했기 때문일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이 추진중인 강택민·김정일 간의 정상회담 성 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김정일은 지난해부터 중국과 정 상회담을 강력히 추진해왔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을 수용함으로써 중 국이 바라는 ‘한반도의 안정적 평화’에 기여한다는 점을 보여주 고, 조·중간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를 복원하는데 힘을 얻을 수 있 다.

    마지막으로, 정상회담은 김정일 개인이 갖고 있는 ‘베일에 싸인 이 미지’를 세탁할 수 있는 기회다. 그동안 김정일은 스스로를 ‘베일 에 싸인 인물’로 연출해왔다. 베일에 싸인 인물로 연출한다는 것은 그만큼 숨겨야 할 것이 많다는 뜻도 된다.

    김정일은 “적들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안개를 자욱 히 깔아놓아라”는 말을 자주 해왔다. 이는 근본적으로 힘이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 하는 전술이다. 미국에 적대적인 카다피나 후세 인, 김정일이 그런 점에서 유사성을 갖는다. 그러나 국제적인 분쟁 가능 지역인 남북한 사이에 ‘평화’를 주제로 열리는 회담에서는 그런 연출이 필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김정일은 이번 회담을 통해 전세계에 자신을 매우 평화를 사랑하는 인물로 포장해서 비춰줄 가 능성이 높다.

    여기에서 잠깐 김정일이라는 인물이 어떤 유형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수령의 지위는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김정일 의 개인 퍼스낼리티나 통치 스타일이 정상회담에 곧바로 영향을 끼 칠 수도 있다.

    김정일의 공식적인 생일은 42년 2월16일이다. 올해 58세. 김대중 대 통령과는 20년 가량 차이 난다. 아버지 김일성, 생모 김정숙의 장남 이다. 소련 극동지역인 하바로프스크에서 태어나 어릴 때 이름은 소 련식인 ‘유라’였다. 남동생 슈라(김만일)가 있었으나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그의 유일한 친동생은 김경희로, 그녀의 남편이 김정일의 오른팔인 장성택이다. 장성택은 현재 중앙당 조직부 제1부부장을 맡고 있다 (조직부장은 총비서 김정일이 겸직). 김일성과 계모 김성애 사이에 태어난 김정일의 이복동생으로 김평일, 김영일, 김경진(여)이 있다. 이들은 일찌감치 ‘곁가지’로 분류돼 권력에서 멀어졌다.

    김정일은 74년 2월13일 정치국 정치위원으로 선출되면서 공식적으로 아버지 김일성의 권력을 승계했다. 이때 그의 나이 32세였다. 따라 서 김정일이 북한을 통치한 기간은 26년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의 통치 스타일은 수령주의에 의한 철저한 독재. 96년 12월 김일성 종합대에서 그는 당일꾼들을 앞에 놓고 “지금 나의 사업을 똑똑히 도와주는 일꾼이 없다. 나는 단신으로 일하고 있다. 당 중앙 위원회 책임일꾼들이 나의 사업을 도와주지 못할 바에야 있으나마나 하다”고 언급, 이와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늦은 밤에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새벽 3∼4시경에 건 설현장이나 행사준비장에 갑자기 나타나거나 간부들에게 전화를 거 는 등 거의 잠자지 않고 일한다는 것을 과시한다. 김정일은 특별히 신임을 주는 측근들을 통한 정치를 선호하며, 능력과 당성이 비슷할 경우 당성을 우위에 두는 인사를 한다.

    또 궁지에 빠진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거나, 상대방을 궁지에 몰 아넣은 다음, 다시 구출하는 방식으로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 다. 모택동과 김일성으로부터 배운 이른바 ‘이따이라이’(一打一 來) 방식이다. 87년 김일성의 당번병 출신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곧바로 모스크바에서 명의를 불러다 치료해주어 혁명 1세대인 오진우의 충성을 받아내기도 했다.

    사람을 버릴 때는 냉혈한 같지만, 대외적으로는 ‘광폭(廣幅)정치’ 와 ‘인덕(仁德)정치’를 내세우며 ‘통 크고 자상한’ 스타일로 이 미지 메이킹을 하기도 한다. 취미는 영화감상과 사냥, 승마. 영화취 미는 거의 광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 하기도 했다.

    자기 현시욕이 강하며,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는 자기 연출력을 과시 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놓고 늦은 밤 거의 포기할 때 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불쑥 찾아간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가면 한번쯤 이와 같은 감동적인 연 출을 할 가능성도 있다. 혹은 매우 통이 크거나 지극히 소박한 모습 을 보여 남측의 대통령 수행원들을 감동케 할 수도 있다. 실제 김정 일은 국가 명절인 자기 생일날(2월16일) 소박한 생일상을 받고, 일 찍 현지지도를 나가기도 해 주변으로부터 감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김정일의 두 가지 전략

    그러면 김정일이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 은 무엇인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골자는 합의서 전문에 등장하고 있듯이, “민 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것 이다. 이는 크게 정치군사적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으로 나눌 수 있 을 것이다. 이중 김정일은 경제적 측면을 통해 실리를 챙기려고 할 것이다.

    김정일이 정상회담을 수용한 가장 큰 배경은 김대중 정부를 ‘인정 ’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그동안 햇볕정책을 격렬히 비난하면서도 북한에 이익이 되는 남측의 제안에는 과거처럼 심한 어조로 비난하 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은 김대중 정부를 역대 남한정부 가운데 가장 호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김정 일로서는 자신을 경제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국가로 남한과 미국· 일본·중국 중 결국 남한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은 가장 호의적인 김대중 정부로부터 최대한 많은 것 을 얻어내자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김정일은 이를 위해 두 가 지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경제지원을 더 받아내기 위해 남측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정치·군사문제를 실무회담 의제에 많이 올리도록 하는 경우를 상정 해볼 수 있다. 여기에는 주한미군 철수, 미·북 평화협정 문제, 국 가보안법 완전철폐, 국가정보원 해체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면 서 실무회담을 통해 이러한 의제에서 조금씩 양보해가면서 경제적 실리를 많이 챙기는 방법이다.

    김정일은 그런 문제를 조금씩 양보해가면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 면 남측이 정상회담 자체를 무산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계산할 것 이다. 더구나 북측의 정상회담 합의문에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라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김정일로서는 “싫으면 관두라 ”는 식으로 책임을 남쪽으로 떠넘길 수 있는 여지가 마련돼 있다.

    둘째는 거꾸로 실무단계에서부터 가능한 한 정치·군사적인 문제보 다는 경제협력에 관한 의제를 많이 올려놓도록 지시할 가능성도 있 다. 왜냐하면 남한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많이 받으려면 우선 경제협 력에 관한 의제를 대폭 늘려 실무논의 자체를 경제지원 쪽으로 몰고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중 가능성이 높은 것은 전자다.

    그러나 김정일의 이른바 ‘광폭(廣幅)정치’ 스타일이 발휘되면, 사 태는 예상치 못한 데로 흐를 수도 있다. 남북간에 생각할 수 있는 의제는 안보와 평화체제, 교류와 협력, 통일문제 등으로 볼 수 있는 데,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지만 김정일이 안보문제와 경제문제를 일 괄타결하자고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즉 북측이 남 측의 민족경제공동체안을 받아들이고, 남측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안을 김정일이 던져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괄타결안은 김일성 시대 북한의 남북회담 단골메뉴이기도 하다.

    이럴 경우 누가 이익인가. 당연히 북한이다. 김대통령의 민족경제공 동체안의 밑그림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단정하긴 힘들지 만, 주한미군 철수는 곧바로 남측의 ‘무장해제’를 의미한다. 북한 이 남북회담마다 들고 나온 것이 ‘정치문제 우선 해결’이었다. 즉 외세(미국)를 배제하고 민족 대단결의 원칙에 따라 자주적으로, 평 화적으로 정치문제를 먼저 해결하자는 것은 북한의 변하지 않는 주 장이다.

    남북간의 정치문제는 곧바로 군사문제와 직결된다. 군사력이 약한 경제강국과 경제력이 약한 군사강국간의 게임은 결국 ‘군사’ 쪽에 서 이니셔티브를 쥐게 마련이다.

    김정일은 개혁·개방으로 나올까?

    그리고 민족경제공동체안이 던져졌을 경우, 북한이 어떤 기준에 따 라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다. 이와 관련한 모델로는 나진 ·선봉지역을 들 수 있다. 나선지역은 북한 내륙지역과 철조망으로 차단돼 있다. 북한이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해놓 은 것이다.

    나선지역은 한마디로 실패한 경제특구다. 도로·항만·철도·전기 등 인프라가 전혀 갖춰지지 않아 투자해서 이윤을 내기에는 너무 오 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외국 투자자들이 대부분 외면했다. 따라서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이 제안한 SOC(사회간접자본) 확충은 실질적인 남북경제교류 활성화를 위한 큰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은 SOC 확충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어떤 식으로 받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남한을 비롯한 서방세계와의 경제교 류에서 북한이 보여준 원칙은 ‘자본은 환영, 사람은 반대’였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 자본과 시설을 들여오는 것은 환영하지만, 인력 이 대거 들어와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반대하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기술수준이 매우 낮은데도 인력이 필요하면 자기네들 이 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김대통령의 표현대로 “중동특수 버금가는 북한특수가 이뤄지게“ 될 경우 북한으로서도 이를 ‘관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로서는 북한의 ‘관리 능력’이 따라주는 범 위 내에서 점진적인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할 것이 다.

    남북정상회담으로 김정일은 또 다른 부수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남한 국민들에게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사 실을 보여주고, 이에 따라 남한 내 반(反) 김정일 세력을 약화시키 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는 탈북자 문제와 북한 내 인권 탄압 문제 등이 같이 덮여버리는 효과도 가져다 줄 수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궁극적인 의문은 “김 정일의 북한은 과연 개혁개방으로 나올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4월12일자 ‘동아일보’의 ‘말 말 말’ 난에는 남북정상회담을 보는 두 가지 재미있는 견해가 실렸다.

    “남북정상회담은 권좌에 오른 뒤 적대 진영의 지도자는커녕 외국인 을 거의 만나지 않았던 김정일의 공식적인 국제사회 데뷔무대가 될 것이다.”(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 11일 기고에서 김대 중 대통령의 일관된 ‘햇볕정책’은 오랜 남북문제 연구와 경륜으로 부터 나온 것이라며).

    “이솝우화에나 나오는 고전적인 내용을 북한에 적용시키려는 것은 우리를 모르는 것이다.”(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77그룹 정상회의에 참석한 북한대표단 직원. 11일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소감을 묻 자 햇볕정책으로 우리가 기본노선을 바꾼다는 것은 꿈도 꾸지 말라 며).

    브루스 커밍스의 발언은 김대중 정부의 일관된 햇볕정책이 북한으로 하여금 국제사회에 나오도록 했다는 뜻을 담고 있고, 북한대표단 직 원의 발언은 “햇볕정책이 지금까지의 북한의 노선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에서 ‘기본노선’이란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칭하는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 두 견해는 어쩌면 현 김정일의 북한과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두 관점을 압축해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두 가지 관점 은 상반된다.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관점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뉠 것 같다. 한쪽은 궁극적으로 북한은 바뀌지 않을 도리가 없다 는 희망적인 견해를, 다른 한쪽은 그래도 북한은 바뀌지 않는다는 경험에 의한 견해를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그 누구도 자신있는 견해를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이제 게임이 시작됐다”는 것만 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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