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호

남북 이산가족 인터넷 상봉 작전 임박

  • 송문홍 songmh@donga.com

    입력2006-10-16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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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단 이래 우리 민족의 최대 현안인 이산가족 문제를 일개 민간 기업이 풀겠다고 나섰다. 더욱이 이산가족 문제의 해법으로 남북교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터넷이라는 ‘신병기’가 등장했다. 이건 과연 실현 가능한 일일까?》
    오는 6월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계기로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에 해빙의 봄바람이 불어닥칠 조짐이다. 정치·군사적 긴장완화의 훈풍과 함께 대규모 경협의 돈바람이 불어올 듯한 기운도 사방에 가득하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1000만 남북 이산가족의 기대감도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가 얼마나 진전될 수 있을지, 그 구체적인 성과는 그 때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한 중소기업이 인터넷을 통한 남북 이산가족 생사확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특기할 것은, 이 기업의 ‘인터넷 이산가족 상봉사업’은 남북 정상회담이 물 밑에서 논의되기 훨씬 전인 지난 1월 경부터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에 따라서 진행돼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계기로 급조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먼저, (주)시스젠(대표이사·권오홍)이 구상하고 있는 이 사업의 개요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① 국내·해외 이산가족이 북한의 가족에게 유언을 남기는 사이트(www.wishbank.net)를 한국 내에 개설한다. 이는 표현상으로는 ‘유언’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북한 내의 가족을 찾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② 유언 사이트에 올려진 자료들은 북한의 공식 인터넷 사이트인 ‘조선인포뱅크(www.dprkorea.com)’를 운영하는 범태평양조선민족경제개발촉진협회(이하 ‘범태’로 약칭)로 넘겨져 북한측 관계당국이 이산가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한다.

    ③ 북측에서 확인된 이산가족 정보는 다시 유언 사이트로 넘겨져 당사자에게 개별 통보된다.

    즉, 인터넷을 통해서 남북 이산가족의 생사를 확인해주고, 나아가 제3국이나 대북투자와 연계된 정례적인 고향방문단 등을 통해서 상봉을 주선하겠다는 게 이 사업의 골자. 남측 당사자인 시스젠과 북측 당사자인 범태는 이르면 5월부터 이 사업을 본격 시작한다는 계획 하에 그동안 철저한 보안 속에서 중국과 남·북한에서 프로그램 개발 등 막바지 준비작업을 벌여왔다.

    물론 이 계획의 실현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정밀하게 검토해봐야 할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남북 양측의 정치적 계산 뿐 아니라 이산가족 관련자료를 온라인 상에서 주고받는 과정에 파생할 기술적인 문제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분단 이래 우리 민족의 최대 현안인 이산가족 문제를 일개 민간 기업이 풀겠다고 나섰다. 더욱이 이산가족 문제의 해법으로 남북교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터넷이라는 ‘신병기’가 등장했다. 이건 과연 실현 가능한 일일까? 그동안 온탕과 냉탕을 오락가락해온 남북관계, 편법과 무리수가 횡행해온 남북경협 사업에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도구는 과연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인터넷, 남북경협의 새로운 도구

    시스젠의 권오홍 사장에 따르면, 애초에 인터넷 사업에 관한 제안은 북쪽에서 먼저 나왔다고 한다. 지난 1월 중순 범태 측에서 자기네 조선인포뱅크의 한국내 미러 사이트(mirror site) 개설과 관련해 시스젠 측에 제휴를 제안해왔고, 권사장은 이 제안에 이산가족 아이디어를 덧붙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미러 사이트’란 말 그대로 거울이 되는 사이트를 말한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 있는 공개 자료를 다른 호스트에 복사해두는 것을 ‘미러링(mirroring)한다’고 하는데, 원래의 호스트에서 자료를 받는 것보다 접속이 잘 되고, 속도도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올해 들어와 남북경협에서 전자상거래를 비롯한 인터넷 기술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한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북한 국호를 딴 도메인 www.dprk.com을 외국인에게서 사들여 북한과 이산가족 사업 및 전자상거래를 시도하고 있는 조선인터넷, 지난 10여년간 남북간을 연결하는 매개 역을 해온 금강산국제그룹 박경윤 회장과 국정원 간부 출신 정모씨가 손잡고 지난 3월경에 설립한 ‘유니언 커뮤니티’ 등 중소기업들이 그런 이들이다. 여기에 더해서 국내 몇몇 대기업도 최근 남북 경협에 전자상거래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 기관과 인터넷 사업에 대한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실제로 사업을 준비중인 업체로는 아직까지 시스젠이 유일하다.

    시스젠은 지난 1월 중순 북측과 최초 접촉 이후 ▲ 2월 초 북한측 의향서 정식 접수 및 통일부에 ‘남국한간 인터넷 협력사업에 관한 승인요청’ 제출 ▲ 2월 중순 북한측과 ‘유언 사이트’ 등 국내외 사이트 개설에 대한 업무합의서 체결 ▲ 법인설립 및 사이트·프로그램 개발 준비 등 남북 협력사업으로는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일을 진행시켜오고 있다. 또, 법인 설립에는 몇몇 실향민들의 대표기구도 상당한 액수를 자본 출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이 사업의 실현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북측은 왜 국내 대기업이 아니라 일개 중소기업을 인터넷 사업의 동반자로 점찍었을까? 이와 관련, 권오홍 사장은 “북한 당국은 지난 1년 여 금강산 관광사업을 해오면서 대기업과 거래하는 데 따른 이득 뿐 아니라 나름의 한계와 불만 또한 느껴왔고, 인터넷이라는 새 영역에서는 대기업이 아닌 파트너를 원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권사장 개인에 대한 북측의 신뢰가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게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권사장은 국내 북한전문가 그룹이나 대북교역 기업가들 사이에서조차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베일 속의 인물’이지만, 지난 10여년간 중국·북한 교역과 컨설턴트 사업을 꾸준히 해오면서 북한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 깊다는 평을 들어온 인물. 그는 대한무역진흥공사(KORTA) 출신으로 우리 나라에서 북방교역을 개척한 첫 세대에 속한다.

    한편 시스젠의 북측 파트너인 범태평양조선민족경제개발촉진협회(회장 이도경)는 북한이 작년에 해외 인터넷 사업을 위해서 설립한 기구로, 조선인포 사이트를 통해서 회원(연회비 2000달러)들을 대상으로 북한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대남 경협창구 노릇도 모색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모습을 드러낸 이 기구가 과연 북한의 인터넷 사업을 담당하는 공식기구인지를 놓고 한동안 국내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최근 국내 모 대기업이 북측 아태평화위원회(아태)에 인터넷 사업을 문의한 결과 “범태가 북한의 인터넷사업 주무기관”이라는 사실을 간접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아태는 인터넷 사업 담당부서가 아니므로 해당 기관에 문의해보라”는 답변이 나왔다는 것.

    “북한의 경제·산업정보를 독점 공급”

    사실 인터넷 이산가족 상봉사업은 시스젠이 북한측과 추진중인 사업의 일부분일 뿐이다. 시스젠측이 통일부에 제출한 대북 경협사업 신청에 의하면 시스젠의 사업내용은 ① www.dprkorea.com의 경제·산업 부문에 대한 한국내 미러 사이트 개설과 서비스 ②인터넷 이산가족 찾기 ③ 북한산 수의(壽衣) 판매 사이트 개설 ④ 인터넷을 매개로 한 고향투자방문단 알선 등 크게 네 가지로 돼 있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사업은 내용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것.

    먼저, 조선인포뱅크(www.dprkorea.co m)의 한국내 미러 사이트 개설에 대해서 권사장은 “북한의 경제·산업과 관련된 수준 높고 신뢰성있는 정보를 국내의 북한 연구자, 기업 등에 제공하는 게 일차적인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은 시스젠의 전체 사업에서 핵심 부분인데, 양측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근간으로 이산가족 생사확인을 비롯한 그밖의 다양한 사업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내 미러 사이트를 통해 제공될 북한 경제정보의 질과 관련, 권사장은 “최근 베이징에서 북한의 기업 현황, 기술수준 등 범태가 보유한 자료 전반을 검토해본 결과 상당히 수준높고 정확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은 경제정보에 관한 한 공개 가능한 자료는 모두 공개한다는 방침 하에 북한 내 모든 경제관련 통계와 출판물을 범태측에 제출하기로 돼 있으며 인터넷 사업은 최우선 순위로 돼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온라인 상에서 제공되는 북한의 경제·산업 정보는 우리 기업의 향후 대북경협 행태를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대북사업에 관심을 가진 국내 기업들은 ‘개별적으로 북한쪽 라인을 뚫는’ 게 일반적이었고, 그 과정에 음성적 거래, 의사결정의 불투명성과 지체 등 온갖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게 사실. 그래서 심지어 “대북사업을 해온 기업인치고 제대로 돈 벌었다는 사람 못 봤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서 북한의 경제정보가 제공되고 나아가 온라인 상에서 북한과 협상이 진행된다면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신속성, 교역 빈도 등의 면에서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즉 개별 기업들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정상적인’ 환경에서 대북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권사장은 “애초에 범태측이 조선인포뱅크 사이트의 연회비를 2000달러라는 고액으로 결정했던 것은 회원확보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과였다. 다시 말해 북한으로서는 그 사이트를 여는 데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인터넷 사업에 대해서 아직 충분한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만간 공개될 한국내 미러 사이트는 가입 회비를 현실성 있게 낮추고, 수요자에게 정말로 도움이 될 정보를 올리는 등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와 함께, 이를 통해 북한측도 인터넷 비즈니스의 속성을 배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몇몇 국내 대기업들은 최근 몇 달간 북한과의 경협사업에서 시스젠이 지금 추진하고 있는 것과 같은 방안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모 대기업은 베이징 지사에 “비용이 얼마나 들든 간에 북한측과 전자상거래 개설 협상를 성사시키라”는 특명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모두 인터넷이 기존 상거래 관행에 가져오고 있는 혁명적 변화를 남북 경협사업에 접목시켜보고자 하는 시도다.

    시스젠측도 이산가족 사업 이외에 인터넷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한 가지 예가 최근 북한측과 합의서까지 교환한 남북 인터넷 바둑시합. 이건 남북 대표가 인터넷 상에서 바둑시합을 한다는 아이디어인데, 시스젠측은 현재 오는 5월 단옷날 첫 번째 시합을 치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북측 이산가족 자료, 2년 전에 데이터베이스화

    초미의 관심사인 이산가족 생사확인·상봉문제는 앞의 네 가지 중 ② ③번 항목과 관련된다. 그러나 이산가족 문제는 경제문제에 국한된 북한정보 제공 및 전자상거래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 남측은 시종 인도주의적 사안으로, 북측은 정치적 사안으로 규정지어온 데서도 이것이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임을 말해준다.

    북한에 있어 이산가족 생사확인·상봉 문제는 체제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북한 주민이 남한 주민과 대규모로 접촉하게 될 때 북한 주민들이 자기네 체제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성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북한에서 이산가족 문제는 지금까지 대남 정보·공작기관에서 주로 담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의 인터넷 사이트(www.nis. go.kr)에 따르면, 북한 내에서 공식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주선해주는 기관은 없다. “다만 ‘남조선 연고자’를 관리하는 통일전선부를 중심으로 비공식적인 상봉을 주선하고 있으며, 사상 및 주민생활 통제를 담당하는 국가안전보위부와 사회안전성에서도 관련자료를 보유·활용하고 있고 (…) 특히 사회안전성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98년 3월1일 ‘이산가족 주소안내소’를 설치해 북한 내부의 이산가족들과 해외동포들에 대한 이산가족 상봉을 알선해주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북한은 98년 이산가족 주소안내소를 설치한 후 북한 내 이산가족 현황을 조사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놓고 있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서 일단 이산가족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하면 언제든 응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

    그러나 북한 측에서는 남측의 이산가족 사업 요청에 응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안전판’이 필요하다.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도 안에서”라는 단서가 붙는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에서 시종 요구해온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문제는 지역과 상봉대상의 범위 등에서 상당한 제한 조건이 따라붙지 않는 한 성사가 쉽지 않으리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터넷은 북한 측에도 이산가족 문제에 접근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인터넷을 활용하면 북한 당국이 이산가족 문제를 나름대로 관리·통제할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 있어 이산가족 사업은 정치적 사안이면서 동시에 경제문제이기도 하다. 90년대 이후 극심한 경제난을 겪어온 북한으로서는 “생사확인·상봉 건당 얼마”라고 생각하는 것이 체질화됐다는 것인데, 실제로 90년대 이후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아태평화위원회 등 북한의 대외조직이 해외동포나 국내 재력가에게 대가성 방북초청이나 가족 상봉을 알선해준 사례는 숱하게 있었다.

    시스젠의 인터넷 이산가족 사업에서 경제적 대가 부분과 관련해서 개설된 것이 북한산 수의 판매 사이트(www.lifesuit. com). 이는 북한산 수의를 한국에 판매함으로써 북한측에 일정 수익을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다. 권사장은 “수의 판매대금이 이산가족을 찾아주는 직접적인 대가는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에 애써주니만큼 자연스럽게 경제적 혜택도 돌아가게 하자는 의도에서 수의 사이트를 만든 것”이라며 이산가족 생사확인을 원하는 사람이 반드시 수의를 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지금까지 다뤄온 남북교역 소비재 품목들이 건강식품 등 호기심 차원을 넘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수의는 한국내 이산가족 1세대 등 국내에서 수요가 확실한 품목이며, 따라서 향후 본격적인 남북교역 활성화를 위한 ‘상품 개발’의 첫번째 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반드시 이산가족 당사자가 수의를 사지 않더라도 국내에 북한산 수의의 시장성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시스젠측이 이처럼 이산가족 사업과 수의 사이트의 관계를 모호하게 설정하려는 것은 무엇보다 이산가족 사업이 갖는 민감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나아가 상봉이 성사되려면 북한측이 여기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적 대가라는 측면과 북한측의 자존심을 해치지 않는 방안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산가족 사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양측이 무리없이 시작할 수 있게 여건을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다. 시스젠이 ‘이산가족 생사확인’이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 ‘유언’이라는 우회적인 방법론을 도입한 것도, 이런 예민한 부분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배려인 것으로 보인다.

    일개 민간기업인 시스젠이 이산가족 사업을 벌이기 위해서는 사전에 남북 양쪽 정부와 일정 부분 사전 교감을 나누었으리라는 것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나 권사장은 “민간차원의 이산가족 사업이 어느 한 쪽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거나 정치적 변수에 영향을 받으면 곤란하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현 상황으로 보면 이산가족 문제가 제한적으로나마 풀릴 수 있는 객관적인 여건은 과거 어느 때보다 좋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김대중 정부는 98년 2월 출범 이래 줄기차게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북측에 촉구해왔다. 올해 들어서만도 김대통령은 1월3일 신년사에 이어서 5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더 많은 이산가족이 상봉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을 비롯, 여러 차례 이산가족 문제를 강조해왔다.

    이산가족 생사확인·상봉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조치도 나왔다. 통일부가 지난 3월 초에 발표한 ‘이산가족 교류촉진 지원계획’이 그것인데, 이에 따르면 정부는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때 80만원(종전 40만원), 상봉 때 180만원(종전 80만원), 서신교환 때 40만원(신설) 등 최고 300만원까지 지원하기로 했고, 생활보호대상자 및 국군포로 가족 등은 ‘특별지원’ 대상으로 일반 이산가족에 대한 지원금의 2배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밖에 이산가족 생사확인·상봉을 위한 북한주민 접촉 승인기간을 2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정부 승인 없이 신고만으로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대상자를 60세 이상에서 모든 이산가족 1세대로 확대하는 조치도 취했다.

    김대중정부가 출범 초기에 ‘이산가족 정보통합센터’를 설치하고, 남북 이산가족 관련자료의 통합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을 벌여온 것도 향후 이산가족 사업 본격화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스젠도 자신의 유언 사이트에 이산가족 생사확인 신청자가 개별적으로 유언을 올리는 것 외에 이북5도민회 등의 협조를 얻어 상당량의 자료를 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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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이런 전향적인 자세에 힘입어 김대중정부 집권 이후 이산가족 상봉 건수도 대폭 증가했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제3국을 통한 이산가족 상봉건수는 98년 108건, 99년 195건으로 90년부터 97년까지 8년간의 155건에 비해 볼 때 비공식·민간 차원의 상봉이 활성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북한주민 접촉신청 역시 98년 3726건에서 99년 6847건으로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남쪽에 거주하는 이산가족의 수는 2, 3세대를 포함해서 약 767만명(북한 전문 연구소인 동화연구소가 내놓은 추정치). 이중 죽기 전에 생사확인이나 상봉을 바라는 60세 이상만 해도 69만명에 달한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여러 전문가들은 이산가족 문제의 ‘시효’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산가족 2, 3세대의 가족찾기 열망은 1세대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1세대가 사망하고 나면 그런 열기 자체가 식어버릴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산가족 사업은 가급적 짧은 기간 안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측이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냈을 인터넷 이산가족 사업을 받아들이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이 부분과 관련해 국내 일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북한 지도부의 최근 변화를 일차적인 요인으로 꼽는다. 한 북한전문가의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요즘 정보통신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인터넷 서핑을 즐긴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인데, 이에 따라 측근 인사들 사이에서도 정보통신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의 당연한 귀결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보통신 분야에서 북한이 지금이라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외부로부터 지원받아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등을 찾아보라는 지시를 각 경제부문에 보냈다고 한다. 심지어 최근 한국내 벤처 열풍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는 또 오는 5월 중국의 인터넷 시장이 본격 개방되는 것을 계기로 중국에 남북합작 벤처타운을 건설하는 일이 일각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으로서는 개방에 따르는 부담감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 벤처를 일으킬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에 나와서 남북합작 사업을 벌이는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 북한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이른바 ‘국가주도형 벤처’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북한 지도층 사이에서도 ‘벤처 배우기’가 거세다는 것인데, 이는 올해 북한이 경제적 실용주의 노선을 강화하는 한편 대외관계 확대에 힘을 쏟고 있는 행보와도 맥락이 닿는 얘기다.

    ‘준비된 대통령’의 ‘가장 잘 준비된 부분’

    북한은 지금 정보통신 붐 국내 한 연구소가 최근에 발간한 보고서도 북한 지도부의 최근 움직임과 관련해 관심을 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3월11일 발표한 보고서의 골자는 “북한이 단계적 경제발전 과정을 밟아나가는 ‘추격형’보다는 첨단산업 중심의 ‘도약형’ 개발전략이 유효하다”는 것. “현재 북한의 경제개발과 관련해 산업화 시기별 개발전략으로 경공업, 중화학공업, 첨단산업 순으로 단계적인 경제발전 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지만, 세계적으로 재래산업의 경쟁이 격화되고 디지털혁명 등 첨단기술 혁신이 빨라지는 상황에 이와 같은 방식의 경제적 효과는 미약하다”는 것이며, 차라리 북한은 “전자·정보통신의 경우 단기적으로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 가전제품을 생산한 뒤 중장기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발달돼 있는 수학·물리학·생물학 등 기초과학 분야를 활용해 정보통신 인프라 개발 및 첨단 디지털기기의 제작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정보통신분야 진출에는 원천적인 한계가 있다. 다시 앞의 전문가 말이다.

    “정보통신 분야는 대부분 1996년에 기존 대공산권 수출제한품목(COCOM)을 대신해 출범한 바세나르 협정에 따라 수출이 제한되는 품목들이고, 이 쪽은 미국이 세계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정보통신 쪽에 진출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미국의 용인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장벽을 넘을 출구로 북한은 지금 남쪽을 지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결국 북한 지도부의 이런 분위기가 인터넷 이산가족 사업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오는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통큰 정치’를 지향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측에 줄 수 있는 ‘선물’로서 이산가족 문제가 첫 번째로 거론되고 있는 마당이고 보면, 이산가족 생사확인·상봉사업은 어떤 형태로든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간 ‘윈-윈 게임’

    시스젠의 인터넷 이산가족 사업은 지난 1월 이래 지금까지 정부 안에서도 극소수 관계자들만이 그 내용을 알고 있었을 정도로 극도의 보안 속에 추진돼왔다. 사안이 사안이니만치 밥이 되기도 전에 솥뚜껑을 열면 판 자체가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권오홍 사장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추진해왔는데도 모 대기업이 그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는 등 외부세력의 견제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사업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이나, 신뢰도와 관련해서 충분히 밝히지 못하는 부분도 아직은 많다. 그러나 권사장은 “이제 웬만한 작업은 마무리되고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산가족 생사확인은 일단 북측에서 부담감을 덜 느낄 상대를 대상으로 시작될 것이다. 예컨대 남북 이산가족의 형편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거나, 지역적·정치적으로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사람은 북쪽에서 배제하려고 할 게 분명하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시작해서 규모와 접촉 범위를 확대해나가면서 그 다음 단계로 정례적인 고향투자 방문단을 보내는 문제도 곧 드러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북측이 인터넷 비즈니스의 무한한 가능성에 눈을 뜬다면 남북교류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의 주장처럼 인터넷은 남북교류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수단임에 틀림없다. 인터넷을 통해서 이산가족, 경제협력이 활성화되면 내용 면에서 더 견실하고, 절차 면에서는 훨씬 투명하고 신속한 교류가 가능해질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남북간 신뢰구축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인터넷은 남북한간 윈-윈(win-win) 게임의 도구인 것이다.

    올해는 분단 55년, 6·25전쟁 50년이 되는 해다. 광복 때 10살이던 아이는 지금 60 환갑을 넘긴 노인이 됐다. 그들의 평생 소망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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