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자동차들이 한국 상륙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차와 유럽차가 들어올 때는 눈도 깜빡하지 않던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일본차 진출에는 아연 긴장하고 있다. 일본차의 경쟁력이 그만큼 탄탄하다는 의미다.》
72년 신진자동차와 합작을 청산하고 한국시장을 등진 도요타로서는 28년 만에 다시 한국시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는 지난해 7월 일본 자동차에 대한 전면 개방이 이뤄진 뒤 일본차 본격 진출의 신호탄이란 점에서 한국과 일본자동차 업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70년대 이후 일본은 세계적인 자동차 강국의 위치를 고수했다. 일본은 현재 세계 2위의 자동차 생산국이고 북미, 유럽과 함께 세계 3대 자동차 생산거점이자 판매시장으로 성장했다. 80년에 미국을 앞지른 이후 94년에 다시 추월당할 때까지 14년 동안 세계 최대의 자동차생산국으로 성가를 높였다.
일본은 97년 기준으로 11개 업체가 108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 내수시장에 650만 대를 팔았고 430만 대를 수출했다. 여기에 해외 생산분 620만 대를 합치면 일본의 총생산량은 1700만 대로 늘어난다.
일본이 생산한 자동차 1호는 1904년에 만든 승합 증기차로 기록돼 있다. 이듬해인 1905년에 최초의 휘발유차가 나왔다. 1903년 우리나라에 고종황제의 어차로 쓰기 위해 캐딜락 1대가 처음 도입된 것과 비교하면 빠른 출발이 아닐 수 없다. 이어 1914년에는 닛산의 전신인 콰이신샤(快進社)에서 닷도(DAT)를 선보였고, 1917년에는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피아트를 기본으로 한 모델A를 만들었다.
20년대는 미국차의 전성시대였다. 24년에 GM, 27년에 포드가 각각 조립생산을 시작해 매년 2만 대 이상 만들어냈다. 이 무렵 일본의 차 생산대수는 연간 300∼400대에 머물렀다. 일본 정부는 미국차의 도약에 자극받아 1926년 상공성에 국산진흥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자동차 생산을 독려했다.
6·25전쟁으로 재기 발판
이를 바탕으로 일본 자동차공업은 3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싹을 틔웠다. 닛산자동차(33년) 도요타자동차(37년)가 잇따라 설립됐고, 생산량은 연 1만 대 수준에 다가섰다. 그러나 39년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자동차의 생산과 공급, 가격제도 등이 엄격하게 통제됐고 자동차업체들은 군용트럭을 주로 생산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배로 끝나자 자동차산업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업계는 전후 미군사령부의 통제하에 들어갔고, 49년에야 승용차 제조허가가 내려지면서 자동차판매 통제조치도 해제됐다.
50년에 터진 6·25전쟁은 일본 자동차업계가 재시동을 거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미국은 6·25전쟁이 장기화하자 가까운 일본에서 군용트럭을 조달했는데, 이에 힘입어 도요타 닛산 등 경영위기를 맞은 일본 메이커들이 전쟁특수에 힙입어 쓰러져 가는 회사를 다시 세웠다. 일본 업체들은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축적한 비행기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자동차 엔진을 만드는 등 나날이 기술력을 키워갔다.
50년대 중반부터 일본 자동차산업은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는다. 처음에는 닛산이 업계를 주도했다. 닛산은 영국 오스틴과 기술제휴를 하고 승용차(오스틴 A50)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기술제휴 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독자 모델인 블루버드를 개발했다.
60년대 들어서도 도쿄올림픽(64년)을 기점으로 한 고도의 경제성장 속에 급속한 모터리제이션 시대를 맞이했다. 60년대 초 기업마다 대량 생산을 위한 시설 확장이 경쟁적으로 벌어져 여러 종류의 국산차가 소개됐고, 엔지니어들은 매일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일본차의 수준은 미국이나 유럽차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지만, 일본인 특유의 민족성이 반영된 서비스만큼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57년 코로나로 입지를 다진 도요타는 66년작 카롤라를 계기로 일본 제일의 메이커로 떠올랐다. 4기통 1.1×60마력 엔진을 얹은 카롤라는 3년 만에 100만 대를 판매하는 대성공을 거뒀고, 미국 소형차 시장에서도 인기를 모았다.
닛산은 블루버드의 성공에 이어 64년 인기 대중모델 서니를 내놓았다. 모터사이클로 인정받은 혼다는 63년 소형 2인승 스포츠카 S360, S500을 발표했다. 66년에 나온 첫 승용차 N360은 20개월 동안 20만 대가 팔리며 주목받았다. 마쓰다의 전신인 동양공업은 64년 후륜구동차 파밀리아로 인기를 끌었다. 66년 베르토네 디자인의 루체 1500이 그 뒤를 이었고, 이듬해 최초의 로터리 엔진차인 코스모 쿠페를 내놓으며 기술력을 세계에 알렸다.
소형차에서 경쟁력 다져
일본의 자동차산업은 60년에 세계 8위, 66년에 6위로 올랐고, 60년대 말에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제치고 세계 3위의 자동차 생산국으로 떠올랐다. 70년대에는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소형차 판매 증가에 힘입어 급부상, 독일마저 누르고 2위로 나섰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으로 수출을 본격화, 77년에 400만 대를 해외에 수출하며 수출고가 70년보다 4배나 늘어났다.
이후 세계적으로 소형차 수요가 늘어나면서 일본차의 경쟁력은 고속 질주를 거듭, 마침내 80년에는 1100만 대를 생산해 800만 대에 그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동차 생산국으로 떠올랐다. 일본은 소형차의 성공에 머무르지 않고 어큐라(혼다), 렉서스(도요타), 인피니티(닛산) 등 고급 브랜드를 잇따라 선보이며 고급차 시장에서도 벤츠를 위협하기에 이른다. 혼다의 어코드, 도요타의 캠리 같은 중형차는 지금도 미국시장에서 베스트셀러를 다투고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일본은 미국과 빚은 무역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해외에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85년의 플라자협정으로 엔화 가치가 50% 이상 높아진 덕에 일본에서보다 적은 비용으로 공장을 지을 수 있었다. 해외공장 출고분 수출은 95년부터 일본에서의 수출보다 더 많은 양을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일본차를 철저히 분석한 미국의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가 본격적으로 반격하면서 일본은 94년 미국에 다시 1위 자리를 내줬다. 또한 치열한 내수 판매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마쓰다의 경영권이 포드로 넘어간 것을 비롯, 닛산은 르노, 미쓰비시는 다임러크라이슬러로 넘어가는 등 업계가 재편됐다. 경기 침체에 따른 내수 감소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세계시장에서 일본차의 위상은 여전히 높다.
60년대 KD방식(부품조립생산)으로 차 생산에 들어간 한국 자동차업계는 당시 일본의 기술과 설비를 받아들였다. 최초의 승용차공장은 62년 새나라자동차가 부평에 세운 연산 6000대 규모의 조립공장이었다. 새나라자동차는 닛산에서 블루버드를 SKD(Semi Knock Down) 방식으로 들여와 조립한 다음 ‘새나라’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그러나 새나라는 모처럼 우리 기술로 뿌리를 내리던 국산차 ‘시발’을 몰아내면서 기술축적보다는 돈벌이에 급급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남겼다. 결국 새나라는 특혜비리 의혹과 외화 부족으로 부품을 수입하지 못해 다음해인 63년 7월 문을 닫고 만다.
한편 독자적으로 ‘신성호’를 제작한 신진공업사는 65년 새나라를 인수하고 이듬해 신진자동차공업(주)로 새출발했다. 그러나 신성호를 만든 경험만으로는 제대로 된 차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기술과 부품을 공급해줄 자동차회사를 찾았다. 처음에는 미쓰비시와 접촉해 소형차 콜트 100대를 들여와 조립했으나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도요타와 협정을 맺고 코로나를 생산한다.
코로나는 66년 7월부터 판매에 들어가 그해 3000대, 67년 5000대, 68년에는 1만1000대를 팔았다. 신진은 새나라와 달리 처음부터 부품의 21%를 국산품으로 썼고 차츰 더 많은 부품을 국산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대만과 교류하는 나라와는 거래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이른바 ‘저우언라이 4원칙’이 발표되자 중국 진출을 원하던 도요타는 신진과 기술제휴를 중단하고 한국시장에서 철수했다. 도요타의 기술과 부품 공급이 끊긴 신진은 이후 GM코리아, 새한, 대우로 유전하는 운명을 겪었다.
한편 ‘삼천리호 자전거’로 유명한 기아산업은 59년 마쓰다의 전신인 동양공업과 삼륜차에 대한 기술제휴를 맺고 자동차사업에 뛰어들었다. 62년 소형 삼륜차 K360을 생산한 데 이어 74년에는 마쓰다 파밀리아의 보디를 기초로 한 첫 승용차 브리사를 내놓는다. 81년 마쓰다에서 들여온 원박스카 봉고는 ‘봉고 신화’를 탄생시키며 당시 경영위기를 겪던 기아를 소생시키는 데 큰 몫을 하게 된다. 마쓰다는 83년부터 기아에 자본참여를 해왔다.
후발국이 처음부터 독자적으로 차를 개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기술력을 쌓을 동안에는 남의 차를 조립하는 방식을 택하는 게 보통이다. 일본도 처음에는 수입한 외제차를 모방하거나 조립하면서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의 자동차업체들도 초기엔 이 조립방식을 택했다. 문제는 일본 메이커들이 일찌감치 모방과 조립단계를 벗어난 데 비해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 일본차 개방에 대해 한 자동차 전문가는 “걱정할 게 뭐가 있나. 우리나라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가 일본차인데…”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조금 과장되기는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티코 엑셀 세피아 엘란트라 캐피탈 쏘나타 콩코드 그랜저 아카디아 포텐샤 갤로퍼 싼타모 등 한때 베스트셀러였거나 지금까지도 잘 팔리는 차의 상당수가 일본차를 그대로 들여왔거나 엔진 등 주요 부품은 일제를 가져다 썼기 때문이다. 미국차와 유럽차가 한국시장에 상륙했을 때는 별로 동요하지 않던 우리 자동차업계가 일본차 진출에 대해서는 바짝 긴장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일본의 자동차업체들은 세계 각국에서 판매가 급증하자 지난해까지 미국과 유럽에 대한 수출물량을 자율적으로 규제했다. 수출물량이 너무 많을 경우에 발생할 부작용을 막기 위해 미리 손을 썼던 것. 하지만 일본 업계는 이 틈을 메우기 위해 해외 생산으로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으며, 2000년 이후 더욱 치열해질 경쟁에 대비해 해외 공장을 꾸준히 증설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에 따라 일본 업계는 83년에 해외 생산 100만 대를 처음 돌파한 뒤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 96년 이후에는 연 600만 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메이커 별로는 도요타(130만 대), 닛산(107만 대), 혼다(105만 대) 등 일본 빅3가 엇비슷한 수준. 지역별로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280만 대가 생산된다. 특히 캠리 어코드 알티마 등 수출물량이 많은 차종은 어김없이 현지 생산을 통해 판매량을 늘리는 게 특징이다.
‘고객이 원하는 차를 만든다’
판매 면에서도 해외시장, 특히 북미지역에서 활약이 눈부시다. 97년 한 해 미국시장에서 판매된 일본차는 모두 357만 대. 시장점유율은 승용차 기준으로 31%에 이른다. 이는 미국차의 절반 수준이며 유럽차(6.1%)에 비하면 5배나 많은 수치. 승용차 부문 베스트셀러에 오른 도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 등 중형 세단이 호조를 보였고 도요타 RAV4, 혼다 CR-V, 인피니티 QX4 등 RV(레저용 차량)도 강세를 이어갔다. 고급차도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등 전차종에서 일본차는 미국시장의 맹주로 인정받았다.
일본차는 EU 연합권에서도 성가를 높이고 있다. 일본차 회사들이 97년 이 지역에서 판매한 차는 157만대로 시장점유율은 11.7%였다. 특히 서유럽에서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소형차와 RV가 많이 팔렸다. 닛산이 40만 대로 1위, 도요타와 혼다가 각각 37만 대와 21만 대로 뒤를 이었다.
이렇듯 부동의 세계 정상권을 유지하는 일본 자동차업계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많은 국내외 자동차 전문가들은 일본차 특유의 철저한 서비스 마인드를 첫손에 꼽는다. 일본차는 초기의 모방단계를 거쳐 ‘실용적인 차’라는 독창적인 이미지와 싼 값으로 세계시장을 파고들었다. 여기에는 진출하는 나라의 고객 취향에 맞춰 오밀조밀하게 고안된 마케팅 전략과 철저한 품질관리를 뒷받침하는 기술력이 보태졌다.
일본차의 특징은 한마디로 ‘고객이 원하는 차를 만든다’는 것이다. 실용적이면서 잔 고장이 거의 없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또한 차종이 매우 다양하며 편안한 운전을 즐길 수 있도록 갖가지 편의장치를 구비했다. 또한 생산성도 높다. 최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조사기관 EIU가 발표한 세계 승용차공장의 생산성 순위에서 미쓰비시의 오카마현 제작소가 1위를 차지하는 등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일본 메이커가 차지했다.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차를 낮은 가격에 공급한다. 차는 잔 고장이 없으며 메이커는 최선을 다해 고객에게 서비스한다.’ 일본 자동차업계의 한국시장 공략도 이 원칙에 따라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항상 수요자를 먼저 생각하는 생산·판매 전략을 한국시장에서도 변함없이 보여줄 것이란 게 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첨단 디자인과 기술, 판매기법 등은 오히려 그 다음 순서를 차지한다. 일본에서 20년간 근무한 한국 대기업의 한 일본지사장은 일본 기업 관계자들이 “한국시장에 진출하면 6개월 만에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고 한다. 자동차 같은 내구재도 ‘시장탈환’에 걸리는 기간을 2년 정도로 보고 있었다.
이런 자신감은 일본 최대의 전자제품 판매시장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산보다 뛰어난 디자인과 성능의 전자제품들이 한국의 절반 가격에 팔리는 그곳 말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차가 판매되기 시작되면 2년 안에 국내 수입차 시장의 30%, 5년 안에 6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주요 일본차 업체들의 한국시장 전략을 살펴보자.
2년 내 한국시장 장악 자신
도요타는 (주)한국도요타자동차를 설립하면서 서울과 부산지역 판매 및 서비스를 책임질 회사로 SK에너지판매 동양고속 매킴 등 3개 업체를 선정했다. 이 회사는 5월에 열릴 서울 수입자동차모터쇼를 통해 국내에 판매될 렉서스 LS430, GS300, IS200, RX300 등 4개 차종을 선보이고 딜러의 전시장과 애프터서비스망을 갖추는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갈 계획이다. 도요타는 내년 800대를 시작으로 차츰 판매대수를 늘려 2, 3년 안에 한국 수입차 시장 1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도요타와 함께 일본차 업계의 쌍두마차로 불리는 혼다는 98년부터 한국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진출시기는 도요타보다 조금 늦은 내년 중반기 이후로 회사측이나 업계는 보고 있다. 그러나 혼다는 “한 나라에서 시장 점유율 목표를 5% 이하로 세우는 전략은 전략이 아니다”고 장담할 만큼 큰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에 투입할 차종으로는 세단 위주의 도요타와는 달리 인기 RV인 오딧세이와 CR-V 등을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도요타의 판매 결과에 따라 고급 브랜드인 어큐라를 조기 투입할 가능성도 보인다.
다른 업체들의 사정은 조금 복잡하다. 도요타와 혼다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본 자동차 회사는 최근 급격한 합병·인수바람을 타고 있어 유동적이다. 르노, 다임러크라이슬러, 포드 등을 각각 모회사로 둔 닛산, 미쓰비시, 마쓰다 등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포드코리아는 마쓰다의 미니밴 MPV(다목적 차량)와 패밀리 세단 626을 내년부터 한국시장에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중이어서 도요타와 비슷한 시기에 판매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시기와 전략은 다르지만 일본업체들의 한국시장 진출 일성은 ‘고객만족 서비스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고객만족이란 일정한 유형이 없다. 모든 점에서 고객이 고개를 끄덕일 때 비로소 “고객을 만족시켰다”고 말한다. 한국 진출을 낙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동차의 품질은 물론 가격과 물류, 애프터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한국 고객들이 새로운 체험을 하도록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업체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두려운 시장이다. 한국시장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중에도 한·일 간의 과거사에서 비롯된 반일감정이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런 감정이 일본차에 상징적으로 투영될 경우, 더구나 그런 움직임이 조직적인 사회운동으로 확산될 때는 아무 대책이 없다는 것. 한일 어업협상,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교과서 왜곡, 일본 관리들의 망언 등 끊임없이 악재가 터져나오는 현실은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시장의 볼륨이 작다는 것도 고민스럽다. 잠재력은 크지만 현재로선 판매량이 너무 적어 수익성이 떨어지고, 따라서 적절한 투자규모를 결정하기가 어렵다. 늦게 들어오면 시장을 뺏길 것 같고, 일찍 들어오자니 투자부담이 큰 데다 차가 안 팔릴 경우 브랜드 이미지의 실추도 각오해야 한다.
독일차의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 미국차의 튼튼한 차체와 큰 배기량 같은 뚜렷한 카리스마가 부족한 것도 부담스럽다. 다양한 모델을 구비하고 있지만 모델 전부를 투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차는 물론, 다른 수입차와는 다른 초기 전략이 필요하다. 현재로선 자체검사를 인정해주는 미국차나 유럽차와는 달리 요구되는 모든 검사를 다 받아야 하는 인증제도도 장벽이다.
그런데 일본차 회사들이 한국시장에 대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는 것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당장 베스트셀러에 오를 차종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력 후보’가 너무 많아 어떤 차를 골라 보내느냐를 놓고 고심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일본업체의 진출과 동시에 수입차 시장의 등급별 판매순위가 뒤바뀔 것이라고 단언한다. 각 차종이 진출과 동시에 상위에 랭크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차종별로 일본차의 경쟁력을 따져보자.
우선 세단 부문의 경우 국내 수입차 시장에선 2000cc 이상의 중·대형 세단이 절반을 점유할 정도로 판매비중이 높다. 일본차는 뛰어난 품질에 가격경쟁력까지 갖춰 중저가의 미국차와 고가의 유럽차로 양분된 세단시장을 고루 공략할 수 있다.
미국에서 렉서스 LS400의 기본형 차값은 5만3000달러 내외. 경쟁차인 BMW 740iL과 벤츠 S420은 각각 6만2000달러와 7만4900달러다. LS400이 경쟁차보다 1500만∼3000만원 싸다는 얘기. 미국, 유럽차보다 물류비용 면에서도 유리하다. 하지만 유럽 경쟁차에 비해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자부심이 떨어지고 개성이 부족한 디자인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일본업체들은 국산차와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기 위해 한국업체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형급 이하 세단은 당분간 공략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 부문은 가격경쟁력에서도 국산차에 뒤진다. 하지만 앞으로 수입차 시장이 활발해지고 일본차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져 양적인 경쟁을 벌일 때는 저가 전략을 앞세운 중형급 이하의 차를 대거 들여올 가능성이 높다.
성장세가 두드러진 수입 RV시장은 고가 시장과 중저가 시장으로 양분돼 있다. 혼다와 미쓰비시 등은 중저가 RV시장을, 도요타와 닛산은 고급 RV시장을 겨냥한다. 최근 실용성을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미국산 중저가 미니밴,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등이 수입차 시장에서 호평받은 것을 간파한 결과다. 미니밴과 중·소형 SUV 분야에서는 일본차들이 가격과 품질 경쟁력에서 앞서니만큼 상당한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것으로 일본 업체들은 자신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판매량이 많지 않으나 부가가치가 높고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스포츠쿠페, 로드스터 등의 틈새 차종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런 차종의 출시는 특히 젊은 층이 일본차에 대해 호감을 갖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포르셰 같은 최고급 유럽 스포츠카는 워낙 고가라 접근하기 힘들고, 미국차는 성능 면에서 만족스럽지 않아 젊은 소비자들이 대안으로 일본산 스포츠카를 고려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닛산 스카이라인 GTR, 혼다 NSX, 도요타 MR2 등 세계적인 스포츠카를 보유한 일본 업체들은 당장 한국시장 판매량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아 조기 투입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래의 주요 고객인 젊은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기 위해선 고성능 스포츠카의 투입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일본은 유럽과 함께 경차 천국으로 불리지만 한국시장에서만큼은 경차의 경쟁력이 낮다고 본다. 한국의 경차 소비자들은 1000만원 이하의 차를 원하지만, 일본 경차를 이 가격대에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 경차 시장에 도전할 업체는 없어 보인다.
미국시장 휩쓸다
일본차의 경쟁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갑론을박의 대상이었다. 일부 유럽인들은 일본차를 가리켜 “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유럽차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고 혹평한다. 일본차엔 예술혼과 독창적인 이미지가 없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미국시장에서 일본차는 유럽연합 군단에 맞서 늘 판매량에서 앞선다. 고급차로도 이미지가 좋다. 일본차 업계가 고객 취향과 특성에 맞는 맞춤식 모델을 갖춘데다 품질도 정상급이기 때문. 이는 일본 업체들이 자랑하는 다양한 모델 중에도 일본차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세 가지 대표 차량의 면면을 봐도 공감이 간다.
▲렉서스 LS400
80년대 말 도요타는 도박을 감행했다. ‘일본차는 싸구려 차’라는 오명을 불식하고 해외 고급차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낸 것. 렉서스가 그 주인공이다. 전략은 적중했다. 렉서스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자마자 벤츠, BMW 등 기존 고급차 메이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붐을 일으켰다.
경쟁사보다 쌀 뿐만 아니라 첨단 편의·안전장치가 적용된 LS400은 성능 면에서도 소비자들에게 인정을 받아 고급차 전쟁의 승장이 됐다. LS400은 98년에도 미국 시장에서 2만790대가 팔려 다양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BMW 7시리즈(1만8309대), 벤츠 S클라스(1만3920대)를 여유있게 따돌렸다. GS, ES 모델을 포함한 렉서스의 전체 판매대수는 15만6260대로 경쟁사들보다 두 배 가까이 앞섰다. 오는 8월부터는 LS430으로 풀 모델 체인지된다.
▲혼다 어코드
혼다의 중형 패밀리 세단 어코드는 97년 일반 소비자 대상의 미국 승용차 시장에서 라이벌 도요타의 캠리를 누르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래 줄곧 1위 자리를 지켰다. 일본 시장에서는 도요타와 닛산에 뒤지는 혼다가 해외에서 ‘작은 거인’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
어코드는 미국시장에서만 매년 30만 대 이상이 팔리면서 혼다가 미국 시장 점유율에서 도요타와 닛산을 앞서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차는 흠잡을 데 없는 성능과 잔 고장 없는 완벽한 품질을 앞세운 대중형 세단이다. 어코드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등 해외 공장에서 현지 생산될 만큼 혼다를 대표하는 월드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닛산 스카이라인 GTR
‘독일에 포르셰가 있다면 일본에는 스카이라인 GTR가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닛산의 고성능 스포츠카 스카이라인 GTR에 대한 일본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 차는 내수용으로만 판매되고 있으나, 이미 세계의 자동차 전문가들에게 포르셰를 앞선다고 평가받은 일본의 국보급 스포츠카다.
닛산 특유의 박스형 디자인에 2.6ℓ 트윈 터보엔진을 얹어 내수시장 규제한도인 최고출력 280마력/6800rpm과 최고시속 190km에 묶여 있으나 최대토크 37.5kg·m/4400rpm에 시속 100km 도달시간 4.5초를 자랑한다. 차값은 일본시장에서 550만 엔 수준. 국내 마니아들 사이에도 인지도가 높아 닛산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너무도 조심스러운 접근
세계적 권위의 소비재 품질조사기관인 미국 JD파워는 “일본차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수준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한다.
JD파워가 매년 미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소비자 만족지수 조사에 따르면 도요타(렉서스)와 닛산(인피니티)은 품질, 애프터서비스 등에서 93년 이후 내리 1, 2위를 독식했다. 10위권 내에 일본업체가 5개나 이름을 올려놓고 있을 정도다.
고객 만족을 위한 도요타 딜러의 필수 원칙은 이런 것들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대한다 ▲사소한 부분에도 언제나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관심을 갖고 지식을 확보한다 ▲시설, 조직, 절차를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게 구축한다 ▲고객을 평생의 동반자로서 존중한다 ▲강하고 일관성 있게 훈련된 직원을 확보한다.
이와 같은 경쟁력을 지닌 딜러를 앞세워 도요타는 3년/10만km 무상 서비스와 24시간 출동 정비 서비스, 고객이 점검을 기다리는 동안 세차 및 음료·음식 등을 무료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장기 정비를 받을 경우 다른 차를 무료로 빌려줄 계획도 갖고 있다. 이 밖에 경품과 픽업 및 탁송서비스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일본차의 한국시장 성공 여부는 기존 수입차 업체들의 말과 다른 서비스 관행으로 실망이 큰 고객들에게 얼마만큼 만족감을 심어줄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도요타와 혼다 등이 너무 느리다 싶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한국시장에 접근하는 것도 한 번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실패의 나락으로 빠지는 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