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호

‘불법 호텔건축 美軍’에 “NO”하는 성장현 용산구청장

  • 조성식 mairso2@donga.com

    입력2006-10-25 11: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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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산구가 관내 주한미군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정부가 외면하는 외로운 싸움이다. ‘사마귀와 전차의 대결’에 비유되는 이 ‘전쟁’은 한 민선구청장의 민족주의적 소신에서 비롯됐다.》
    ‘주한미군은 한국인에게 무엇인가’라는 해묵은 의문을 새삼 들춰낸 사람이 있다. 바로 성장현 용산구청장(45). 국방부 관재보상과의 한 관계자는 최근 서울 용산구와 주한미군 사이에 벌어진 싸움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번 일은 SOFA(한미행정협정)가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용산구의 싸움이 작은 변화의 불씨가 되길 바라는 심정입니다.”

    희망보다는 체념이 강한 이 관계자의 말 속엔 주한미군 문제에 관한 한 어깨를 펴지 못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원망과 비판이 담겨 있다.

    용산구의 ‘외로운 투쟁’이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 3월 중순. 언론은 “주한미군이 불법건축물 시공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중장비를 동원해 강제철거에 나서겠다”는 용산구의 강경 방침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주한미군이 국내에서 갖는 위치를 감안할 때 용산구의 이런 태도는 미군에 대한 ‘전쟁 선포’라 할 만한 것이었다. 그간 대학가와 시민운동권 법조계를 중심으로 SOFA 개정 요구가 있었지만 용산구와 같은 행정기관이 나선 것은 처음이다.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이 싸움의 배경엔 한미행정협정에 대한 민족적 공분이 자리잡고 있다. 제정된 지 20여 년이 지난 이 협정은 국방부 관계자의 말마따나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조항으로 채워져 있다. SOFA는 주한미군이 한국 땅에서 사실상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국내법을 따르지 않아도 제재를 받지 않도록 보장하고 있다. 용산구의 문제 제기는 바로 이에 대한 항의이자 시정 요구다. 말하자면 주한미군측에 ‘하고 싶은 것을 다 해선 안 되며 국내법을 따라야 한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용산구와 주한미군 사이의 현안은 크게 세 가지. 첫째는 용산 기지에 주둔하는 미군의 건축법 적용 여부. 용산구에 따르면 미군은 국내 건축법을 무시한 채 영내에 호텔을 짓고 있다. 둘째는 주한미군 소속차량의 불법 주·정차 단속 및 과태료 징수 문제. 또 하나의 쟁점은 관내 이태원에 있는 아리랑택시 차고지 반환 문제. 용산구에 따르면 미군은 군사용으로 제공받은 이 땅을 국내 한 택시회사에 대여해 ‘부당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용산구가 미군측에 이 땅 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이곳을 관광특구로 개발하기 위해서다.

    민선구청장의 뚝심일까. 주한미군과의 ‘전쟁’을 지휘하고 있는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SOFA 개정에 소극적인 외교통상부를 성토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국익과 민족의 자존심을 내팽개친 ‘책임 회피’라는 것. SOFA 개정에 대한 그의 소신은 확고했다. 그에 따르면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이 개정되지 않고선 대한민국은 진정한 주권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용산구와 관내 미군부대는 매분기에 한 차례, 1년에 네 차례 정도 한미친선협의회라는 모임을 갖는다. 용산구청장은 이 협의회의 한국측 위원장이다. 위원은 모두 14명. 경찰서장 소방서장 세무서장 등 지역 기관장이 주요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밖에 의사협회장, 여성계 대표, 용산구 행정관리국장 등이 참석한다. 34지원단장인 용산부대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미군측에선 8군 공병대장, 8군 병원장, 헌병대장 등 11명이 참석한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이 미군의 호텔 증축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바로 이 모임 덕분이다.

    “지난해 연말 제가 미군 부대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포장을 쳐놓고 공사를 하더라고요. 처음엔 타일을 붙이는 외벽공사 정도로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날 보니까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겁니다. 직원들을 통해 알아보니 98년 3월 미군측 요청에 따라 외교통상부가 서울시에 이 문제(드래곤호텔 별관 신축)에 대한 의견을 물은 적이 있더라구요. 당시 서울시가 외교통상부에 보낸 공문에 ‘건축행위를 할 때는 관할 허가권자인 용산구청장과 협의해야 한다’고 명확히 답변했더라구요. 그래서 국방부에 물어보니 서울시의 의견과 같았습니다. 이를 근거로 미군측에 협의를 요청했죠.”

    ―미군측 반응은 어땠습니까.

    “1월에 처음 시정을 권고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신통한 반응이 없어 2월에 공문을 보냈더니 답변이 왔어요. SOFA 제3조(합중국은 시설과 구역 안에서 이러한 시설과 구역의 설정, 운영, 경호 및 관리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다)를 내세우며 협의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해요. 그러나 우리가 자세히 검토해보니 SOFA 어디에도 마음대로 건축해도 된다는 규정은 없었습니다. 3월에 2차 공문을 보내 시정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3월 말까지 시정조치하지 않으면 강제철거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통보했죠. 그 전에 한미친선협의회에서도 논의하고 협의회의 그쪽 위원장인 34지원단장과 제가 따로 만나 얘기도 했지만 미군측 태도가 바뀌지 않더라고요. 자기는 군인이기 때문에 협상할 수 없고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발을 빼는 겁니다.”

    ―외교통상부는 관련 SOFA 규정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외교통상부는 SOFA 3조를 들어 미군측이 건축과 관련해 자율권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국방부도 우리와 시각이 같아요. 지난 2월 국방부가 우리에게 보내온 공문을 보면 국방부는 SOFA 제7조에 근거해 미군측에 국내 건축법을 따를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서울시도 의견이 같은데 외교통상부만 견해가 달라요.”

    외교통상부의 불리한 해석

    SOFA 제7조엔 ‘합중국 군대의 구성원, 군속과 제15조에 따라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 및 그들의 가족은 대한민국 안에서 대한민국의 법령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와 관련, 국방부가 2월21일 용산구에 보낸 공문엔 다음 내용이 있다.

    ‘미8군에서는 SOFA 제3조에 의거해 국내 건축법을 적용하기를 거부하고 있고 당부(국방부)에서는 SOFA 제7조에 의거해 국내법을 적용하도록 요청하고 있으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상호 해석상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협의를 미측에 요청했음을 양지 바라며….’

    이 공문은 국방부 관재보상과에서 작성한 것이다. 한미 양국은 1년에 한두 차례 SOFA 합동위원회(한국측 위원장: 외교통상부 북미국장, 미국측 위원장: 미8군 부사령관)를 여는데 건축에 관련한 사항은 시설·구역 분과위원회 소관이다. 이 시설·구역 분과위원회의 한국측 위원장이 바로 국방부 관재보상과장이다(미군측 위원장은 미8군 공병대장).

    한편 외교통상부는 3월20일 서울시에 보낸 공문을 통해 ‘현행 SOFA 규정상 주한미군측이 우리 건축법에 따라 용산구청에 협의 또는 허가를 받을 법적인 의무는 없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밝힘으로써 용산구의 문제 제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용산구청 관계자들은 이 공문 내용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공보과장을 겸임하고 있는 박효주 문화체육과장은 “한국 정부의 공문인지 미국 정부의 공문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공보팀의 또 다른 관계자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외교통상부를 비난했다. 주택과의 한 관계자는 “건축법에 따르면 미군이 짓고 있는 호텔 별관은 무허가 건축물인데, 부대 안에 들어갈 수 없으니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길이 없다”며 법 적용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용산구의 이런 울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외교통상부는 느긋하다. 주무부서인 북미국의 송봉헌 북미3과장은 “SOFA는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맺은 것”이라며 “지방자치단체가 일방적으로 국내 건축법을 적용하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용산구의 문제 제기 방식을 비판했다.

    “이런 식의 문제 제기는 처음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감독 기관인 서울시를 통해 외교통상부에 구체적 내용을 알려줘야지요. 지금 용산구청장의 태도는 ‘무조건 내 허가를 받아라’는 식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언론에 알리니 미군측도 감정이 상해 있어요. 서울시를 통해 용산구측에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는데 아직까지 답변이 없습니다.”

    이에 대한 성장현 구청장의 반박은 통렬하다.

    “생각 같아선 심하게 얘기하고 싶지만 참겠습니다. 외교통상부의 태도가 좀더 분명했으면 좋겠습니다. 관심만 있다면 우리 구의 담당 직원을 불러 알아볼 수도 있고 직접 구청에 와 확인해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뭐가 문제인지 몰라서 묻는 게 아니잖아요. 문제는 일을 해결하려는 의지입니다. 외교통상부가 뭐 하는 데입니까. SOFA 규정을 왜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게 남의 나라 일도 아닌데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정부 청사에 앉아서 ‘뭐가 문제냐’ ‘문제점을 말해달라’. 이게 외교통상부가 취할 태도입니까.”

    ―외교통상부의 견해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까.

    “전혀라기보다는 보편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외교통상부 논리대로라면 왜 과거에 미8군이 그 호텔을 지을 때 국방부와 협의했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34지원단장(한미친선협의회 미국측 위원장)이 제게 말하길 10년 전 처음 그 호텔을 지을 때 국방부와 협의했는데 그때 국방부의 문제 제기로 호텔 높이를 애초 계획보다 낮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10년 전 국방부와 협의했으니 증축 문제에 대해선 더 협의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10년 전엔 정부 소관이었지만 지금은 지방자치시대이고 미국에서도 연방정부법과 주법이 다르듯 건축허가권은 관할 구청장에게 있기 때문에 용산구와 협의해야 한다’고 말해 줬지요. 국방부도 우리 주장에 동의하는데 외교통상부가 그런 유권해석을 내놓는 바람에 일을 진전시키지 못하게 됐습니다.”

    ―외교통상부는 용산구의 문제 제기 절차를 문제 삼는데요.

    “절차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는 거죠. 그대 앞에만 서면 고개가 절로 숙여져 어떻게 해보지 못하겠다는 뜻이겠죠.”

    ―주한미군 차량의 불법 주·정차 실태는 어떻습니까.

    “도로 아무데서나 멋대로 차를 세워 교통 흐름을 방해하고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습니다. 구청 단속요원들이 차에 스티커를 붙여놓으면 미안한 마음이라도 가져야 하는데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고 맙니다. 지난 5년 동안 우리가 적발한 불법 주·정차 사례가 약 1만 건입니다. 그중 과태료를 징수한 것은 겨우 380여 건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 법이므로 자기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안하무인의 태도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SOFA 규정에도 한국법을 존중하라고 나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존중은커녕 깔아뭉개는 모습을 보면서 일선 행정을 책임진 기관장으로서 심한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우리의 행정력이 너무나 무기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용산구 교통지도과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주한미군 소속차량에 부과한 과태료는 3억8588만원에 이르지만 징수액은 1558만원에 그쳤다. 납부율은 4%. 공보과 담당자에 따르면 미군이 과태료를 내지 않아도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SOFA 규정에 이와 관련된 조항이 없는 탓이다. 그저 ‘양심껏’ 내기를 기대할 뿐이다. 미군 중엔 본국으로 돌아갈 때 주·정차위반 딱지를 ‘한국 방문 기념품’으로 갖고 가는 이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태원에 있는 아리랑택시 부지 반환 문제는 SOFA 공식 의제가 된 지 2년이 지났는데, 그간 진전된 내용이 있습니까.

    “과거엔 이런 문제를 협의조차 할 수 없었는데 협의를 통해 타협점을 찾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진전입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미군측이 원하는 것은 첫째 대토입니다. 부지를 돌려주는 대신 그만한 땅을 달라는 요구죠. 그런데 줄 땅도 없지만 주위에 그런 땅이 있다면 차라리 우리가 그 땅을 이용하지, 굳이 미군측과 마찰을 일으키며 아리랑택시 부지를 내놓으라고 하겠습니까.

    용산가족공원에 짓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주변 미군 헬기장 철거 문제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헬기장을 옮겨야만 건물 준공허가를 받을 수 있는데 미군측은 새로운 헬기장 터를 요구하고 있어요. 협의과정에 한강 둔치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곳에 헬기장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거기서 용산기지에 이르는 미군 전용도로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한편으로 가장 합리적인 척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제시하니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가지요. 그나마 아리랑택시 문제에 대해선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편이에요. 그 부지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우리가 미군측에 해줄 수 있는 건 미군부대 안에 대체 시설을 지어주는 것이죠. 군사 목적의 건물이든 아파트든. 둘 중 하나밖에 해줄 수 없다고 미군측에 통보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에 걸림돌이 된 미군 헬기장 이전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 용산구 정경성 도시관리국장에 따르면 미군측의 이촌동 둔치 요구에 대해 용산구를 비롯해 국방부 서울시(공원녹지과) 건설교통부 국토관리청 등 관련기관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흔들고 있다. 한강 주변의 미관을 해치는 것도 문제지만 둔치 한가운데 헬기장이 들어서면 수심이 높아지는 홍수 때 위험하다는 것.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소음을 이유로 집단민원을 제기할 가능성도 높다. 전용도로 요구는 더더욱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런데도 미군측은 이를 고집하고 있다. 정국장은 “미군 부대 안에 골프장도 많은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용산구에 따르면 아리랑택시 부지는 미군이 우리 정부로부터 군사용으로 제공받은 땅이다. 그런데 이를 민간 택시업자에게 빌려줘 부당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 원래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으므로 마땅히 반환해야 한다는 게 용산구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미군측은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아리랑택시 부지를 한국 택시회사에 빌려주는 조건으로 임대료나 사용료를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용산구에 따르면 미군은 이 택시회사 매출액의 6.8%를 챙긴다. 연간 4억∼5억원에 이르는 수입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한국 정부로부터 공짜로 받은 땅으로 한국 택시회사를 상대로 수익을 올리는 셈이다.

    ―미군측에선 어떤 명분으로 아리랑택시 부지의 대토를 요구하는 겁니까.

    “미군은 최근 이 문제와 관련한 보도자료를 통해 ‘용산 지역에 있는 주한미군 요원 및 민간인들에게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한 택시회사와 계약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들 말대로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서비스를 위해서라면, 미국인이 경영하고 운전하는 택시회사여야 이치에 맞는 것 아닙니까. 참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자기들 이익을 위해선 이런저런 명분을 대며 끝까지 집착하는 겁니다. 이런 문제들이 차근차근 해결되지 않으면 필리핀 수비크만에서처럼 미군이 기지 사용료를 내겠다는데도 ‘필요없으니 물러가라’고 거절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남북이 대치한 특수한 상황이고 저 또한 미군 주둔의 당위성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이 자꾸 쌓이고 뭉치면 나중에 한꺼번에 폭발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군산에서는 미군이 항만과 공항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쓰고 있는데 우리 민항이 그 시설을 이용하면서 미군측에 사용료를 내고 있어요. SOFA 규정 어디에 그렇게 돼 있습니까. 어째서 그런 일에 대해 우리 정부가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미군기지 임대료 받아야

    ―미군기지의 무상임대에 대해 외교통상부에 물어보니, 우리가 필요해 미군이 주둔하는데 어떻게 임대료를 받느냐고 반문하던데요.

    “미국은 큰 나라고 우리는 미국의 어떤 주보다도 작은 나라입니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미군이 과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와 있는지,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미국이 얻는 것은 전혀 없는지, 미국으로부터 사들이는 엄청난 양의 무기부터 미군 장병들의 급여, 한미공동방위분담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은 평화를 위해 참으로 많은 보험료를 내고 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힘없는 약소민족의 설움이겠지만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헌법도 몇 차례 고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SOFA가 무슨 금과옥조라고. 문제가 있다면 시대에 맞도록 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한미군으로부터 임대료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입니까.

    “그래야죠.”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우리처럼 미군이 주둔하는 일본이나 독일에서도 미군기지 임대료는 받지 않는다는데요.

    “미군의 해외 파견은 말 그대로 세계평화 유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국민의 고용 창출 효과도 있는 것입니다. 직업군인들이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도 한 번쯤은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거죠.”

    용산구에 따르면 이태원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는 연 160만명. 용산구는 3300평에 이르는 아리랑택시 부지를 돌려받아 관광특구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지하에 대형 주차장을 만들어 이 관광객들의 차량을 소화하는 한편 대형 쇼핑몰과 호텔 등을 세워 새로운 상권을 만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미군측이 대가를 원하는 만큼 원만한 합의가 쉽지 않을 듯싶은데요.

    “우리가 우리 땅을 돌려받는 데 대가를 지불해야 하니… 아마도 돈을 준다고 하면 얼씨구나 하고 받을 겁니다. 우리가 돈을 안 주니까 대토를 요구하는 것이고 그것도 안 된다고 하니 시설을 지어주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아파트든 대피시설이든 시설은 나중에 우리 것이 되므로 돈을 주는 것과는 다르죠. 만약 미8군이 끝내 돌려주지 않으려 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미군들이 아리랑택시를 이용하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이를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우리 복안은 지하에 대형 주차장을 건설해 아리랑택시도 수용하겠다는 겁니다. 다만 지금과 달리 우리가 돈을 받고 빌려주겠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얘기하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하고요.”

    ―말하자면 그 부지에 대해 용산구가 재산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지요.

    “여러 가지 계획이 있습니다만 협상 기술상 다 공개할 수 없습니다. 미군측에선 아리랑택시 부지를 빨리 돌려주지 않으니 드래곤호텔 건축을 문제 삼는 것 아니냐, 구청장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 때문에 일을 크게 벌이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데 이는 그쪽에 정보를 주는 한국측 인사들이 멋대로 지어낸 얘기입니다. 미군이 부지를 돌려준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방부와 소유권 문제를 협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그 땅을 용산구가 갖든 국방부가 갖든 미군측으로부터 돌려받는 게 급한 일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쟁점은 드래곤호텔 건축 문제를 비롯한 세 가지지만 용산구가 단지 이 세 가지를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은 아니다. 그 배경엔 미군부대의 존재가 용산구의 발전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용산구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0만평을 미8군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선 교통문제가 심각합니다. 알다시피 동작대교가 미군부대에 막혀 더 뻗지 못하고 끊겨 있습니다. 서빙고동이나 보광동에 사는 사람들은 구청이나 삼각지 쪽으로 나올 때 돌아서 나와야 합니다. 주거환경의 제약도 큽니다. 미군부대 주변의 집들은 사유재산인데도 부대 건물보다 높게 지으면 안 됩니다. 전국 90여개의 자치단체가 직·간접으로 미8군과 관련돼 있지만 용산구처럼 관내 한가운데 미군부대가 자리잡아 도시 발전을 가로막는 데는 없습니다. 현안에 대한 용산구와 미군측의 협의는 바로 이런 문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 흥미를 끄는 것은 서울시가 98년 3월 외교통상부에 보낸 공문(용산기지 드래곤힐 라지 별관신축협의 회신) 내용. 이 공문엔 미군의 건축물 신축을 반대한다는 서울시 의견이 담겨 있는데 미군기지 이전과 용산구 발전의 함수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기 도시계획상 미군부대 이전 후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므로 건축물 신축은 반대하며 지형이나 임상을 훼손하지 않도록 협조 요망 ▲숙소 신축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장래 동작대교와 후암동 방면을 연결하는 간선도로 계획이 있으니 예정노선을 피해줄 것 ▲공용건축물인 경우 허가권자인 용산구청장과 협의를 거칠 것. 그러나 결국 미군측은 이를 무시한 채 건축을 강행했고 외교통상부는 팔짱만 끼고 있었다.

    ―SOFA를 어떻게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서민의 집은 한 평이 아니라 반 평만 불법으로 지어도 건축법에 따라 철거당합니다. 그런데 미군이 우리 건축법을 따르지 않고 우리 땅에 공공시설을 건축하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군사시설도 아닌 95개의 객실이 들어서는 호텔을 자기들 마음대로 짓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이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또 미군 병사든 군속이든 한국 도로에서 도로교통법을 위반하고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 걸 언제까지 지켜만 봐야 합니까. 범칙금 납부를 하지 않으면 차량이나 재산을 압류한다든지 뭔가 조처를 해야 하는데 현행 SOFA 체제에선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그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공항에서 범칙금 납부 여부를 확인해 내지 않은 사람에게는 출국을 허용하지 않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SOFA 개정을 통해 명문화돼야 합니다. 친구 사이에 잘못된 점은 서로 지적해 고쳐야 참된 우정이 이어지듯 말로만 우방이라고 할 게 아니라 서로 지킬 것은 지켜야 합니다.

    SOFA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간 협정 중 하나로 꼽힙니다. 66년 제정된 후 91년에 단 한 차례 개정됐을 뿐입니다. 시대에 맞도록 전반적으로 고쳐야 합니다. 얼마 전 용산에서도 미군이 저지른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만 현행 SOFA는 미국인이 한국에서 저지르는 범행에 대한 한국 당국의 재판권 행사를 제약하고 있습니다. 미군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수사나 재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심지어 살인범의 사진조차 찍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주권국가간 평등한 협약입니까. 이런 문제들을 명명백백히 가리고 개선해야 합니다.

    아리랑택시 부지 문제도 그렇습니다. 우리 땅을 받아 우리한테 장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것이 한국과 미국의 공동방위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거죠. 호텔 증축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엔 갑자기 미군 병력이 증강된 것도 아니고, 아마도 그 호텔은 미군 영내의 카지노 식당 클럽하우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쓰일 텐데 사용자 대부분은 한국인입니다. 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호텔을 증축하는 걸로 보이는데 그것이 한미공동방위와 무슨 연관이 있느냐는 겁니다. 미국은 한국에서 특권만 누릴 생각을 하지 말고 SOFA 개정 협의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협정

    ―미군측에 3월말까지 건축을 중단하지 않으면 강제로 철거하겠다고 통보하지 않았습니까. 향후 대책은 무엇인지요.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더불어 미군측을 압박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을 겁니다. 먼저 강제이행 부담금을 부과할 계획입니다. 국내의 불법 건축물에 대해서도 철거 대신 강제이행 부담금을 부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법으로 지은 것이니 돈을 내라는 것이죠. 물론 미군측이 안 낼 가능성이 높지요. 그러면 철거반을 보내는 겁니다. 미군 부대는 치외법권 지역이므로 아마도 우리 철거반이 마음대로 못 들어갈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를 못 들어가게 하고 우리는 들어가려고 하면 충돌이 벌어질 테고 그 광경이 우리 매스컴을 타고 전 세계에 전파될 거란 말이죠. 미국은 사태가 그런 식으로 확산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도 그렇게까지 가는 건 원하지 않지만 미국에도 전혀 득이 안 되는 일이죠. 그러면 우리 정부가 SOFA 개정작업에 적극 나설 테고 미군측도 응하지 않을 수 없겠죠. 이와는 별개로 미8군과 관련된 전국 90여개 지방자치단체들과 협의체를 구성해 SOFA 개정 운동을 펼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성구청장은 최근 이 문제로 고건 서울시장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고시장은 용산구의 문제 제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외교통상부의 유권해석을 감안해 용산구가 정부에 공문을 보내 SOFA 개정을 건의할 것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따라 용산구는 4월7일 외교통상부에 관련 공문을 보냈다. ‘미군기지 내 건축행위 관련 SOFA 규정 개정 건의’라는 제목의 이 공문에서 용산구는 논란이 되는 SOFA 제3조 1항을 개정할 것을 건의했다. 아울러 향후 미군기지 이전에 대비해 미군측이 건물을 신·증축할 경우 허가권자와 미리 협의토록 하는 내용을 SOFA에 명시해줄 것을 요구했다.

    ―용산구가 보낸 공문에 대해 외교통상부가 어떤 답변을 보내오는지에 따라 용산구의 대응책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까.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정부에서 뭐라 하든 원칙적으로 우리 계획대로 나아갈 것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얘기하는 것과 별개로 불법 건축물에 대해선 용산구가 나서겠다는 겁니다. SOFA는 미국과 우리 정부가 약속한 협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국내법에 앞서는 국제법도 아닙니다. 그들이 우리 땅에 있는 이상 국내법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SOFA가 우리 법보다 위에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국방부도 이런 관점에서 미군측과 끈질기게 협의를 하려 했어요. 외교통상부가 그런 이야기(유권해석)만 하지 않았더라면….”

    국방부가 용산구에 보낸 공문 내용을 보더라도 이번 사태에 관한 국방부의 시각이 외교통상부와 다른 것만은 분명하다. 주무부서인 관재보상과의 담당자는 “미군측이 용산구청과 협의할 의무가 없다”는 외교통상부의 유권해석에 대해 “현 SOFA 체제에선 그럴 수밖에 없다”면서 SOFA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협의를 해야 하는데 미측이 더 이상의 논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우리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국민에겐 우리가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비치겠지만 SOFA 규정이 바뀌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동안 쌓인 게 얼마나 많나”

    국방부 대변인실의 한 관계자는 “국방부로선 나서기가 껄끄러운 처지”라며 “외교통상부가 그런 의견을 내놓은 만큼 지금으로선 관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할 말을 다 못해서 그렇지 그동안 쌓인 게 얼마나 많습니까. 무기 구매만 해도 그렇고…”라는 말로 용산구의 ‘외로운 싸움’에 동조하는 국방부 분위기를 내비쳤다.

    용산구는 4월7일 미8군 수도권사령관 앞으로 미군 소속 차량의 불법 주·정차행위를 자제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서 용산구는 먼저 주한미군 부대원들에 대한 교통질서 교육을 당부했다. 아울러 견인지역에 불법 주·정차한 차량은 현장에서 곧바로 끌어가는 한편, 불법 주·정차 행위로 적발돼 5회 이상 과태료를 체납한 차량도 견인 조치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용산구의 ‘외로운 싸움’이 어떤 결실을 보게 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미군측은 SOFA를 방패 삼아 여전히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4월말에 열리는 SOFA 개정협상에서 이 문제가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태 해결의 전망이 결코 밝지 않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용산구의 의지 못지않게 우리 정부, 특히 주무부서인 외교통상부의 태도가 이 일의 성패를 가름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되리라는 점이다.

    “SOFA의 문제점에 대해선 외교통상부가 가장 잘 알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미군 주둔 실태와 우리 실정을 비교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분석하고 문제점을 개선해야 해요.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지금 내딛는 우리의 첫걸음이, 남들 눈에는 사마귀 한 마리가 전차와 맞서는 모양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양국 관계를 바람직하게 정립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입니다. 언론보도 방향도 SOFA 개정의 당위성에 초점을 맞췄으면 합니다. 우리 땅에서 우리가 주인 행세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이런 일을 계기로 국민 의견이 결집돼 남북통일에 이바지할 수도 있을 겁니다. 온 국민의 의지를 담은 튼튼한 통일의 배를 띄웠으면 합니다.”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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