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형 운영체제MS왕국에 도전하는 리눅스의 위력 9년 전, 21세의 헬싱키대학생 리누스 코발즈가 ‘재미삼아’ 만든 컴퓨터 운영체제 리눅스. 인터넷을 통한 소스코드 공개로, 이제 리눅스는 윈도의 독점적 횡포에 맞서는 정보공개운동의 메시아로 떠올랐다. 과연 리눅스는 마이크로소프트 왕국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인가.》
황제는 죽었다?
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 운영체제로 대표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조직적으로’(Systematically)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운영체제(OS, Operating Syst em)는 컴퓨터를 켰을 때 가장 먼저 실행되는 일종의 플랫폼, 혹은 마당 같은 것이다. 워드프로세서, 웹브라우저 등 모든 응용프로그램은 그 위에서 돌아간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응용프로그램이라도 특정 운영체제가 요구하는 표준 규약에 따르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압도적 시장 장악력을 가진 윈도 응용프로그램을 이용, 컴퓨터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업체들이 특정 경쟁사의 응용 소프트웨어를 쓰지 못하게 압력을 가해온 셈이다.
판결을 보고 쾌재를 부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오라클 같은 반(反)마이크로소프트 진영이었다. 스코트 맥닐리(선 회장), 래리 엘리슨(오라클 회장) 등은 오랫동안 골수 반마이크로소프트주의자로 꼽혀왔다. 시장 분석가들도 이들의 ‘네트워크 컴퓨팅’ 개념이나 ASP(초고속네트워크를 이용, 다양한 응용프로그램을 빌려 쓸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 아이디어가 이번 판결에 힘입어 시장을 적잖이 잠식하리라는 데 동의한다. 스리콤사의 팜톱(휴대용 디지털 단말기), 애플의 매킨토시 등 비(非)윈도 계열의 운영체제를 쓰는 기업들도 만만찮은 이득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것도 리눅스(Linux) 진영이 누릴 반사이익에 견주기는 어렵다. 분석가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리눅스가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의 주류(主流)에 진입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에 맞서는 ‘잠재적’ 대항세력, 혹은 다크호스의 지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리라는 것이다.
이제 리눅스라는 말은 인터넷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친숙해졌다. 컴퓨터 사용에 그리 익숙지 않은 사람들조차 리눅스라는 단어에 친근감을 느낄 정도다. 대체 리눅스가 뭘까? 시장분석가나 전문가, 뭇 언론의 장밋빛 전망처럼, 곧 윈도 운영체제를 밀어내고 새로운 ‘스타’로 부상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는 아직 불확실하다. CD롬을 넣으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메시지에 따라 버튼을 꾹꾹 눌러가며 손쉽게 설치하던 윈도 운영체제나 다른 응용 프로그램들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설치하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어렵사리 설치했다고 해도 그 환경에서 쓸 만한 응용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또 하나. ‘로마는 결코 하루 아침에 건설되지 않았다’라는 격언을 잊지 말 일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영체제는, 그를 둘러싼 온갖 험담과 불평, 비난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PC 운영체제 시장의 90% 이상을 석권하고 있는 최강자다. 용산 전자상가의 게임용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윈도용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1세 대학생이 ‘재미삼아’ 만들다
그렇다고 리눅스의 발흥을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리눅스는 분명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서 리눅스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주목할 만하다. 국내 몇몇 리눅스 관련업체들이 가진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다.
“9년 전, 나는 아무런 비전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이지 우연에 불과했다.”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30)는 한 컴퓨터 잡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핀란드 헬싱키대학 컴퓨터학과 학생이던 리누스는 1991년, ‘우연히’, 그것도 ‘재미삼아’ 새로운 컴퓨터 운영체제(OS)를 만들었다. 그때까지 써오던 유닉스(UNIX) 계열의 한 운영체제를 그의 취향에 맞게 이리저리 주물러본 것이다. 이전 것이 지루하고 따분해서, 순전히 개인 용도로 쓸 심산으로 시작한 작업이었다.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한 최고라고 자신하던 그로서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토발즈는 미닉스(Minix) 운영체제로 리눅스(자신의 이름에다 미닉스를 조합한 것) 코드를 작성하고, 이를 ‘comp.os.m inix’라는 인터넷 뉴스그룹에 올렸다. 그와 함께, 이 새로운 운영체제의 개발에 동참할 사람을 구한다는 메시지도 올렸다. 뉴스그룹은 인터넷으로 확장된 일종의 전자게시판(BBS)이다. 따라서 여느 한정적인 전자게시판과 달리 그 독자와 필자의 범위는 전세계로 확장된다.
전세계의 수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그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온 것도 그런 위력의 일단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4년, 리눅스 1.0이 나왔고, 10년도 채 안된 지금은 140종 이상의 서로 다른 리눅스 버전으로 진화·발전했다.
리눅스가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얻게 된 데는 여러 가지 ‘행운’과 우연이 작용했다. 그중 결정적인 것은 소프트웨어업계의 공룡인 마이크로소프트의 과민반응이었다. 한 해커에 의해 만성절(萬聖節) 전야인 10월31일 전격 공개됨으로써 ‘핼러윈(Halloween) 문서’라는 이름을 얻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내 기밀문서는 리눅스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 그에 대한 적극 대처와 고사(枯死) 작전을 주문하고 있다.
사내 이메일을 통해 배포된 이 문서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개소스 프로젝트(Open Source Project)’와 리눅스가 급속도로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종래의 마이크로소프트 기술 규약을 더욱 개선·보완해 리눅스 등 대안 운영체제들에 대한 비교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이용, 공개소스 프로젝트와는 다른 마이크로소프트의 규약을 표준이 되도록 유도함으로써 이들을 무력화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공개소스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특정 소프트웨어나 플랫폼의 원천적인 프로그래밍 코드를 100% 공개함으로써, 그에 대한 수정 및 변형, 피드백의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두는 새로운 시도다.
리눅스 성공의 비밀
이 문서가 공개되면서 리눅스는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으로, 그에 반해 마이크로소프트는 반드시 쳐부수지 않으면 안 되는 ‘악의 제국’으로 더욱 선연하게 구별됐다.
인텔, IBM, 오라클, 코렐 등 내로라하는 컴퓨터 관련 대기업들이 잇따라 지원을 표명한 것도 리눅스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인텔은 여러 벤처자본가들과 함께, 1994년부터 리눅스 운영체제 및 응용 프로그램을 패키지로 만들어 팔아온 ‘레드햇(Redhat) 소프트웨어’에 투자했다. 그 덕택에 레드햇은 업계의 깜짝 스타로 급부상했다.
IBM 오라클 인포믹스 시그너스 컴퓨터어소시에이츠 코렐 등 주요 컴퓨터 회사도 리눅스용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발표, 리눅스에 힘을 실어주었다. 인터넷을 통한 컴퓨터 판매로 일약 PC 시장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한 델(Dell)사는 리눅스를 운영체제로 쓴 제품을 함께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윈도에 밀려 자사의 운영체제인 OS/2를 포기해야 했던 IBM은 올해 1월10일 리눅스를 IBM 제품의 기본 운영체제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리눅스를 ‘21세기형 운영체제’, 혹은 ‘윈도를 대체할 가장 강력한 운영체제’로 꼽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바로 리눅스 운영체제의 모든 핵심 코드가 철저히 ‘공개’돼 있다는 사실이다. 100여만 개의 명령어로 구성된 리눅스 코드는, 그 문법을 아는 이라면 누구라도 변형·수정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무려 3000여만 줄의 소스코드로 구성된 윈도 운영체제는, 잘 알려져 있듯 ‘비공개형’이다.
1991년 리눅스가 핀란드에서 처음 만들어질 때만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 만족의 폐쇄회로에 갇힌 조잡한 프로그램이었을 뿐이다. 그러한 사실은 리누스의 회고에서도 잘 드러난다. “리눅스 프로그램을 짤 때 나는 스물한 살이었고,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내가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라고 생각했다. 스물한 살짜리 프로그래머라면 누구나 갖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짜기 어렵다고 해도, 기껏해야 운영체제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프로그램을 인터넷의 뉴스그룹에 공개한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 스스로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로 자처하는 해커들이 앞다퉈 몰려들었다. 프로그램의 소스까지 낱낱이 공개된 그의 운영체제를 받아 열정에 가득 찬 세계 각국의 일급 프로그래머들이 이리 깁고 저리 고쳤다. 인터넷을 통해 작업에 참여한 사람이 5명에서 25명으로, 100명으로, 나중에는 수천 명으로 불었다. “나는 네티즌들의 온갖 다양한 기호와 기발한 아이디어에 놀랐고, 또 그것을 즐겼다. 리눅스 개발은 순전히 개인적인 취미에서 시작한 일이었으므로, 그들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거나 고집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결국 인터넷이 리눅스를 키운 것이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리눅스 이용자는 1500만~2000만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도 해마다 급속히 느는 추세다. 세계의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 기업이 리눅스를 쓰고 있다. 독일에서는 유닉스 계열의 운영체제 중 리눅스가 제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세계를 통틀어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솔라리스에 이어 2위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는 다른 경쟁사의 중대형 서버(몇 대, 혹은 수십 대가 연결된 PC들에 컴퓨터 프로그램과 정보를 제공하는 고성능 컴퓨터)들에 비해 안정성이 뛰어나면서도 값은 상대적으로 싼 솔라리스 제품군을 통해 그 위세를 떨쳐왔으나 리눅스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적잖은 부담을 안게 됐다. 최근 솔라리스의 소스코드를 공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그러한 부담의 일단으로 보인다. 한편 스티브 잡스의 경영 수완에 힘입어 급속히 회생하고 있는 애플사도 차세대 운영체제인 ‘맥OS X 서버’를 오픈소스로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리눅스가 위세를 떨치고 있는 곳은 일반 개인용 데스크톱 시장이 아니라 서버용 운영체제 시장이다. 1998년만 해도 전체 서버용 운영체제 시장에서 16% 정도를 차지하던 리눅스는 이듬해 25%로 그 세력을 불렸다. 한창 물오른 기세로 중대형 컴퓨터 시장을 공략해온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NT는 같은 기간 38%로 제자리 걸음을 해 좋은 대비를 이뤘다(전문 시장조사 기관인 IDC의 자료). 넷웨어, 유닉스 등은 리눅스의 기세에 밀려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리눅스가 이처럼 빠른 속도로 시장을 넓힐 수 있는 또 다른 무기는 바로 ‘공짜’(혹은 공짜에 가깝다)라는 사실이다.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설령 패키지로 상용화된 것을 구입한다고 해도 다른 워크스테이션이나 서버용 운영체제의 10분의 1 값도 채 안 된다. 더욱이 이 경우에도 리눅스의 모든 소스코드를 공개하기 때문에 구입 기관이나 사용자에 맞게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공짜라고 해도 성능이 뒤떨어지면 인기를 끌 수 없는 법이다. 리눅스가 성가를 더욱 높이는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다. 일반 PC 운영체제인 윈도 95나 윈도 98은 물론, 중대형 컴퓨터에 쓰이는 윈도 NT보다도 더 뛰어난 안정성과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텔 386급 이상의 저가형 컴퓨터에서도 잘 돌아간다.
IDC도 리눅스의 약진 이유를 ▲저렴한 가격 ▲뛰어난 업무 수행 능력 ▲사용자의 필요에 맞게 수정할 수 있는 기능 등에서 찾았다. 특히 기업의 네트워크 관리자들은 리눅스의 ‘사용자 정의성’에 큰 호감을 표시한다. 사용자의 특성에 맞춰 독특하게 정의된 운영체제는 윈도NT나 윈도 2000처럼 한 가지만으로 다 통하는 식의 운영체제에 비해 일반적으로 안정성과 신뢰성이 더 높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한 국내 벤처기업가는 “내가 공부하던 4년 동안 리눅스는 단 한 번도 다운된 적이 없었다. 아마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기록일 것”이라고 자랑한 적이 있다.
리눅스가 지지층을 급속히 넓혀가는 데는 다분히 ‘감정적인’ 대목도 없지 않다. 바로 ‘반마이크로소프트’ 기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렇게 나쁜 기업은 결코 아닐 터이다. 그러나 적어도 리눅스 애호가들에게, 또 ‘해커’임을 자처하는 몇몇 프로그래머 그룹에 마이크로소프트는 타개해야 할 걸림돌이자, 악의 세력이다. 자사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무지막지한 세력, 제국인 것이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소비자 운동(CPT)’의 제임스 러브 소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당신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당신은 반드시 리눅스를 써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CPT는 미국의 유명한 소비자 운동가인 랠프 네이더가 조직한 비영리 민간 단체. 그 동안 일관되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컴퓨터 독점과 불공정 행위를 맹렬히 비판해 왔다.
빌 게이츠는 1981년 첫선을 보인 IBM PC에 MS-DOS라는 운영체제를 공급하면서 ‘제국’ 건설에 첫발을 내디뎠다. 오늘날 전세계 PC의 97%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 위에서 돌아간다. 미 법무부와의 치열한 법정 공방, 그리고 지난 4월1일 유죄 평결을 계기로 그 기세가 주춤지만 여전히 개인용 컴퓨터 시장은 빌 게이츠의 손아귀에 있다.
한편 AT·T는 유닉스의 원조다. AT·T 산하 벨연구소는 1969년 중대형 컴퓨터용 운영체제인 유닉스를 처음 개발했다. 이해는 공교롭게도 리눅스의 창시자인 리누스가 태어난 해다. 1991년 대학에서 논문을 준비하던 리누스는 유닉스가 너무나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유닉스는 일단 설치하고 나면 이용자에게 아무런 지적 즐거움도 주지 않는다. 솔라리스든 HP든 일단 시스템에 설치하고 나면 일반 PC 이용자에게는 그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고 그는 말한다. 리눅스는, 이를테면 유닉스 운영체제에다 ‘쓰는 즐거움’을 더한 새로운 운영체제인 셈이다.
러브 소장은 “사람들이 리눅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인터넷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한다. “리눅스에는 소프트웨어 시장을 독점한 빌 게이츠 같은 독재자도 없고, AT·T 같은 대규모 통신회사도 없다.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있을 뿐이다. 마치 인터넷처럼.”
리눅스의 경쟁자들
컴퓨터 운영체제 시장은, 특히 PC가 아닌 중대형 서버용 운영체제로 그 범위를 넓힐 때, 다소 복잡해진다. 단순히 윈도 대 리눅스의 구도가 아닌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군소 후보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들은, 비록 영향력은 윈도 2000(마이크로소프트가 올 2월 선보인 중대형 컴퓨터용 운영체제)에 미치지 못하지만 만만찮은 ‘열성분자’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얼마든지 치고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그중 몇 가지만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매킨토시: ‘아이맥’(iMac), ‘아이북’(iBook) 등과 함께 화려하게 복귀한 스티브 잡스 사장 덕에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받았다. 지금까지 맥(Mac)OS 9.0판이 나왔으며, 아이맥과 G3 시리즈의 성공에 힘입어 위축됐던 매킨토시 시장도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윈도 2000과 리눅스를 넘어서지는 못하겠지만 그 나름의 ‘틈새시장’을 확고하게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올해 하반기로 예정된 새로운 운영체제 ‘맥OS X’는 “운영체제에 대한 기존 통념을 완전히 뒤집은 걸작”(PC매거진의 평가)이라는 찬사를 들을 만큼 획기적인 디자인과 인터페이스, 기능을 갖추고 있다. 또 한 번 ‘잡스 돌풍’이 일 것으로 기대된다.
② 넷웨어: 새로운 최고경영자 에릭 슈미트의 공격적인 경영방식에 맞춰 넷웨어 5.0판까지 선보였다. 사용자들의 반응도 좋다. 1999년 현재 윈도 NT(38%), 리눅스(25%)에 이어 유닉스 계열 운영체제 시장에서 19%의 시장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넷웨어가 기대고 있는 자바(Java)가 서버 응용프로그램의 주류로 자리잡지 못하는 한 윈도 2000이나 리눅스에 비해 상대적 열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③ 비오에스(BeOS): 일부 컴퓨터 전문가와 언론의 열광적인 반응 속에 등장했으나 뒷심 부족으로 점차 밀려나는 형국이다. 응용프로그램도 별로 풍부하지 못하다. 기술적으로는 우수하지만 주요 컴퓨터 기업들과 제휴하지 않는 한 ‘내일은 없다’고 볼 수 있다. 4.0판에 이르러 사용자 편의성이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지만 윈도 2000이나 리눅스, 넷웨어 등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일 듯싶다. 다른 운영체제용으로 개발된 응용 프로그램도 쓸 수 있게끔 호환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비오에스 진영의 복안이다.
④ OS/2: PC 운영체제 싸움에서,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응용 프로그램 부족으로 윈도에 패퇴한 IBM의 운영체제다. 지금은 터미널 서버 분야에서 윈도의 대안으로 이따금 거론되고 있다. 안정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IBM이 OS/2에 미련을 버린 이상 새로운 전성기를 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IBM은 이미 리눅스를 기본 OS로 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리누스는 “리눅스가 일반 PC의 운영체제로도 널리 활용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바람은 점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리눅스는 온전히 워크스테이션이나 서버 같은 중대형 컴퓨터에서나 통용되는 운영체제였다. 주로 텍스트 기반이었으므로 유닉스 명령어나 유닉스 프로그램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써보고 싶어도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었다.
리눅스, 어떻게 쓰나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바뀌었다. 리눅스에 그래픽 사용자 환경(GUI)이 도입되고, 이를 좀더 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개선한 상용(商用) 버전이 속속 출시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미지리눅스, 알짜리눅스, 앨릭스 리눅스 등 다양한 한글용 리눅스 버전이 나와 있다.
무엇보다 리눅스용 응용 프로그램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10만여 개의 응용 프로그램을 가진 윈도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증가 추세만은 대단하다. 예컨대 코렐은 리눅스용 워드프로세서인 ‘워드퍼펙트 포 리눅스’를 선보였으며, 수백 개의 게임 소프트웨어도 개발되어 인터넷에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런 응용 프로그램을 제때 찾아 이용하자면 인터넷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리눅스는 보통 사람들에게 적합한 운영체제인가.
컴퓨터를 막 쓰기 시작한 초보자라면 대답은 아직 ‘아니오’다. ‘파티션 설정’이나 ‘디바이스 드라이버’ 같은 단어에 가슴이 벌렁벌렁해지는 사람도 욕심 부리지 말고 지금 쓰는 윈도나 매킨토시에 만족하는 편이 안전하다. 데스크톱이 아닌 노트북 사용자도 마찬가지다. 각종 주변기기나 드라이버를 잡는 일이 결코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투르게나마 이것저것 건드려보기를 좋아하는 ‘모험가형’이라면, 새로운 실험을 위해 공들여 깔아놓은 여러 응용 프로그램을 다 날려버릴 각오를 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윈도나 매킨토시만 쓰는 것은 너무 진부하다며 뭔가 새로운 선택을 하고 싶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한번 소매를 걷어붙이고 대들어볼 만하다.
지금까지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돼온 리눅스 버전은 레드햇 소프트웨어가 만든 패키지 제품이다. 레드햇은, 어떤 면에서 (상용화된) 리눅스와 동의어이기도 하다. 몇몇 소수 엔지니어나 해커 사이에서만 통용되던 이 운영체제를 균형 잡힌 상용 제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레드햇이 리눅스만으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리눅스 운영체제와 관련 응용프로그램을 묶은 패키지 값은 실제 개발 비용 정도로 최소화하는 대신, 그에 대한 유지 및 관리, 지원 사업으로 수익을 얻는다는 것이 레드햇의 기본 비즈니스 모델이다. 소프트웨어 사업에 관한 한 그 모델은 매우 낯설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됐으나, 레드햇의 ‘실험’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수많은 벤처캐피털에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레드햇은 가장 ‘뜨거운(Hot)’ 기업으로 꼽힌다.
리눅스 운영체제와 그에 대한 소스코드, 웹브라우저와 그래픽툴 등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을 CD롬 3장에 담아 50달러에 판매한다. 현재 6.2판까지 나와 있으며, 안정성과 애프터서비스 양쪽에서 가장 뛰어난 제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터넷 홈페이지(www.linux. co.kr)를 통해 레드햇을 구입할 수 있다. ‘시험삼아’ 리눅스를 사용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미지리눅스, 알짜리눅스, 앨릭스 리눅스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이 좋다. 여러 컴퓨터 잡지에서 부록으로 주기도 하므로 공짜나 다름없다. 최근에는 보안 기능을 높인 ‘시큐어드 리눅스’도 선보였다. 무엇을 쓰든 한 가지 명심할 일은 리눅스를 설치할 컴퓨터에 담긴 개인용 파일을 꼭 백업해두라는 것이다.
싸움은 지금부터다
이런저런 맥락에서 살펴볼 때, 리눅스가 윈도 운영체제를 전복(顚覆)하리라 예측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것인지도 모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성장사야말로 그처럼 전복을 꿈꾸다 허무하게 스러진 수많은 경쟁 운영체제의 목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성능과 안정성은 더 뛰어났으나 응용 프로그램 부족으로 도리어 패퇴한 IBM의 OS/2, 웹브라우저 시장의 80% 이상을 독식하다 속절없이 무너져 AOL에 팔려간 넷스케이프 등도 당연히 그 목록에 포함돼 있다.
그럼에도 ‘가능성’을 버릴 수 없는 건 리눅스가 이들과 전혀 다른 문법과 메커니즘 - 인터넷의 힘을 빌린 공동 개발 - 으로 끊임없이 개선·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힘, 네트워크에 의해 집적(集積)된 수많은 전문 프로그래머의 지식으로 진화하는 것이 리눅스의 문법이자 메커니즘이다. 인터넷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세는 고스란히 리눅스의 인지도, 성능 등이 높아지는 추세이기도 하다. 어쩌면, 리눅스는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진정한 다윗이 될지도 모르겠다.
CPT를 이끌고 있는 러브 소장의 기대는 일반인들의 그것보다 더 급진적이다. “우리는 리눅스에서, 인터넷의 풀뿌리 이용자들이 진행하는 기술 혁명의 폭발을 보고 있다.” 리눅스를 받치고 있는 공개 소스 정책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리눅스가 더 많은 개발자와 사용자를 꾸준히 끌어모을 수 있는 추진력만 계속 제공한다면, 또 리눅스의 기본 정신인 ‘개방성과 다양성, 모든 정보의 공유와 평등한 제공’이라는 새 흐름을 제대로 정착시키기만 한다면, 리눅스는 진정한 ‘21세기형 운영체제’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