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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후계자’ 김정일이 협상테이블에 나선 이유?

  • 손정우 songmh@donga.com

‘은둔의 후계자’ 김정일이 협상테이블에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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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과 관련한 김정일의 계산법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김대중 대통령이 지금 서 있는 지점과 김정일이 서 있는 지점을 한번 점검 해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렇게 하면 남북 양측이 궁극적으로 무 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좀더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김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부도난 경제를 단기간에 회생시켰고, 정치 개혁과 경제개혁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어 가는 단계에 있다. 김 대통령은 주요 4대국을 비롯한 다각적인 외교를 통해 실추된 한국의 이미지를 제고했고, 경제·정치·사회의 전반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매기는 미국 신용평가회사의 한국신인도도 ‘안정적 투자가능’으로 높여 놓았다. 이제 김대통령이 재임기간에 해야 할 최대 과제는 남 북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남북문제와 관련한 김대통령의 전략은 3단계 통일론, 즉 평화공존- 평화교류-평화통일이다. 북한 포용정책은 이와 같은 전략에서 나온 전술이라고 볼 수 있다. 김대통령은 98년 제임스 울퍼슨 세계은행 총재가 내한했을 때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내가 재임 중 할 일은 실질적인 평화공존과 평화교류다. 남북이 서로 오가고 경제협력 등 교류가 활발해지면, 그것이 바로 통일적 상황 아니냐. 그 다음 통일문제는 내 후임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김대통령이 구상하는 이번 정상회담의 큰 방향은 이 발언 속에 함축 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김대통령이 생각하는 정상회담의 근 본 목적은 ‘남북이 50년간의 냉전체제를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교 류하는 것을 쌍방간에 실질적으로 합의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 를 위한 대원칙과 방법론은 이미 7·4 남북공동성명, 91년 남북기본 합의서에 제시돼 있다. 김대통령의 통일방안은 첫단계가 남북연합 체, 둘째 단계가 연방제, 셋째 단계가 완전한 사회통합이다. 김대통 령은 첫 단계인 남북연합체로 가는 스타트라인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김대통령은 그동안 지속적인 대북 포용정책으로 남북간에 신뢰를 구 축하는 한편,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길목까지 쓸어놓았 다. 이번 정상회담은 이와 같은 햇볕정책의 큰 성과물인 것이다. 이 제 김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궁극적으로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김정일이 지금 서 있는 곳

한편 김정일이 지금 서 있는 지점을 알려면 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부터 점검해봐야 한다.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에게 부과된 지상 최대과제는 체제생존이었다. 90년대 이후의 식량난과 미국과 벌인 위험한 핵게임은 김정일에게는 최대의 위기였다. 96년 12월 김정일 은 김일성종합대에서 한 연설을 통해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을 직접 언급했다.

“천리마 제강연합소 쪽으로 가보니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길가에 쭉 늘어섰습니다. 다른 지방에 가 보아도 어디에나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로 넘치고 있으며, 역전과 열차칸은 식량을 구 하러 다니는 사람들로 혼잡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지난 3년동안 연이어 흉년이 들어 국제기구에서 주는 식량을 받아먹 고 있습니다. 쌀이 없어 군량미도 보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식량문제로 하여 무정부상태가 조성되고 있는 데는 정무원을 비롯한 행정경제기관 일꾼들에게 책임이 있지만, 당일꾼들에게도 문제가 있 습니다. 도, 시, 군 당일꾼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95년 이후 북한에서는 수많은 아사자가 나왔다. 탈북자를 위한 민간 단체인 ‘좋은 벗들’과 미국의 존스홉킨스대 부설 연구소 등이 조 ·중 국경 현지에서 집계한 아사자 수는 95년부터 98년까지 무려 30 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김정일은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벌이는 위태위태한 핵·미사일 게임 을 통해, 국내적으로는 선군(先軍)정치를 통해 최대한의 긴장을 조 성하면서 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돌파구를 찾았다. 김정일은 핵과 미 사일 문제를 국제문제화하면서 체제생존을 연장하는 한편,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으로 철저히 남한을 배제하면서 남한 미국 일본과 중국, 서방세계로부터 타낼 수 있는 최대한의 원조를 타냈 다. 핵과 미사일문제를 동원한 ‘갈취전략’과 외부원조로 근근이 버틴 것이다.

지난 1월 김정일은 2000년 신년사설을 통해 ‘사상·총대·과학기술 의 중시’를 내걸었다. 사상은 김일성·김정일주의, 총대는 군사력, 과학기술은 생산력 증강을 의미한다. 따라서 김정일의 향후 국정방 향은 한마디로 “사상을 틀어쥐고, 군사력을 중시하며, 경제를 회생 시킨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다른 한편 대외적으로 다각적인 접촉도 진행하고 있다. 북·일 수교 회담(4월), 이탈리아와 수교(1월), 백남순 외상 베를린 방문(4월), 필리핀과 수교교섭, 홍콩 총영사관 개설(2월), 호주와 외교재개 추 진, 김영남 방중(99년 6월), 백남순 방중(3월), 김영남 쿠바 77회의 참석(4월) 등 대외접촉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대외접촉의 활발한 재개는 95년 이후 기아로 떼죽음하는 극심한 식 량난에서는 벗어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식량을 찾아 떠 나는 탈북자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거나, 김정일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는 아직 찾을 수 없 다.

김정일의 정상회담 계산법

요약하자면, 지금의 북한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비교적 활발해진 남북경협과 외국의 원조로 극심한 식량난을 넘긴 상태, 그러나 본격 적인 경제회생으로 가는 길은 아직 요원한 상태, 그리고 대외적으로 는 미국·중국·일본 등과 관계개선을 통해 좀더 유리한 입지를 확 보하려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또 총체적으로 볼 때 김정일 체제는 김일성 사망 후 체제생존의 위 협에서 벗어나 이제 어느 정도 안정화의 길에 접어들었고, 이에 김 정일은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 금 김정일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짧은 시간내의 경제회생과 대외 관계 개선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은 이상과 같은 지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면 김정일은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해타산’을 하 고 있을까.

먼저 북한의 대외관계에서 얻어지는 김정일의 이득부터 살펴보자. 첫째, 이번 정상회담은 김정일로서는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위상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다.

그동안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깡패’ ‘골칫덩어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테러지원국, 핵·미사일 공갈, 대남도발, 인권탄 압, 외국인 납치, 외채상환 거부, 거기에 극심한 기아사태까지…. 한마디로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신인도는 ‘정크본드’ 이하였던 것 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한반도의 평화’라 는 세계 모든 국가가 바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걸려 있는 회담이다.

둘째, 정상회담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복귀할 수 있는 좋은 카드라는 점이다. 그동안 북한이 무작정 외국과 관계 를 단절한 것은 아니다. 최근 관계복원을 서두르고 있는 국가들과도 사실상 북한이 그동안 수교를 계속 추진해왔지만, 재정문제 등 북한 의 사정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이 다른 서방국가들과 국교를 재개하는 데 큰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북한은 자기를 지지해주는 나라가 많을수록 대외관계 입지가 그만큼 유리해지는 것이다.

셋째, 남북정상회담을 받아들임으로써 김정일은 북한이 평화적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현재 진행중인 핵·미사일 문제를 둘러 싼 북·미 고위급 회담과 식민지 배상금 문제가 걸린 북·일 수교협 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김정일로서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남북대화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고,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정일의 정상회담 수락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정일은 정상회담을 수용함으로써 미 의회 내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북한 포용정책에 대한 지지세력을 넓혀주고, 이런 같은 기류를 이용하여 미국으로부터는 양보를, 남한 으로부터는 더 많은 지원을 받아내는 틈새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김정일이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을 수락한 것도 4월중으로 잡힌 북· 미 고위급 회담을 의식했기 때문일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이 추진중인 강택민·김정일 간의 정상회담 성 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김정일은 지난해부터 중국과 정 상회담을 강력히 추진해왔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을 수용함으로써 중 국이 바라는 ‘한반도의 안정적 평화’에 기여한다는 점을 보여주 고, 조·중간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를 복원하는데 힘을 얻을 수 있 다.

마지막으로, 정상회담은 김정일 개인이 갖고 있는 ‘베일에 싸인 이 미지’를 세탁할 수 있는 기회다. 그동안 김정일은 스스로를 ‘베일 에 싸인 인물’로 연출해왔다. 베일에 싸인 인물로 연출한다는 것은 그만큼 숨겨야 할 것이 많다는 뜻도 된다.

김정일은 “적들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안개를 자욱 히 깔아놓아라”는 말을 자주 해왔다. 이는 근본적으로 힘이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 하는 전술이다. 미국에 적대적인 카다피나 후세 인, 김정일이 그런 점에서 유사성을 갖는다. 그러나 국제적인 분쟁 가능 지역인 남북한 사이에 ‘평화’를 주제로 열리는 회담에서는 그런 연출이 필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김정일은 이번 회담을 통해 전세계에 자신을 매우 평화를 사랑하는 인물로 포장해서 비춰줄 가 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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