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한편에선 이러한 투자유치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는 데 있다.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다’ ‘정전협정 파기’ ‘보복은 백 배, 천 배가 될 것이며 발포에는 발포로 응수할 것이다’ ‘북한 인민군은 가까운 시일 안에 보복할 것이다’ 등의 살벌한 대남 발언들이 그 예다. 안정을 투자요건의 제1항목으로 인식하는 기업인들로서는 이러한 정치·사회적 불안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95년 8월부터 시작된 북한의 해외 투자유치 활동 당시에도 투자자들의 반응은 극히 냉담했다. 투자자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 이하의 참가자들이 허다했고 자리를 채운 이들은 대부분 우리 교민들이었다. “북한보다 투자여건이 좋은 곳은 얼마든지 있다. 구태여 정국이 불안한 북한까지 가서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게 투자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중국의 경우 전체 외국인 투자 가운데 ‘삼포(三胞·대만 교포, 홍콩 및 마카오 교포, 기타 화교)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한다. 북한도 외자 유치 실적의 90%가 조총련계 기업에 의한 이른바 ‘조조(朝朝)합영’으로 이뤄진 것이다. 둘 다 민족자본 중심의 투자라 얼핏 보기엔 두 나라의 외자 유치 형태가 비슷한 것 같지만 그 내용은 판이하다.
삼포자본의 중국 진출은 순수한 투자 동기에 따라 이뤄진 게 대부분이지만, ‘조조합영’은 경제적 의미의 직접투자라고는 보기 어려운, 동포애 차원의 투자 성격이 짙다. 조총련계 이외, 즉 한국 자본과 재미동포, 민단 재일동포 자본의 대북 진출이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 이를 잘 설명한다. 삼포자본이 중국 진출에 적극적인 반면 한국과 재외동포 자본이 북한 진출에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대만 관계와 남북한 관계는 정도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치적 적대관계’라는 면에서 기본적으로 같은 처지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은, 중국과 대만은 정경분리의 원칙을 암묵적으로 고수해온 데 비해 남북한은 거의 명시적으로 정경분리 원칙을 배제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기업들의 대북투자는 정치적 관계 여하에 따라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 재미동포들의 북한투자 역시 미국 정부의 적성국 교류 통제조치에 묶여 있었다.
중국인들은 해외에 살면서 중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을 ‘화교’, 사는 나라의 국적을 취득한 사람을 ‘화인’이라고 부르며 구별하는데, 이들의 수는 2억8000만 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약 85%가 동남아시아에 거주한다. 그밖에도 홍콩과 마카오에 600만 명, 대만에 2100만 명의 중국 동포가 살고 있다.
이들의 경제력이 중국 경제발전에 원동력이 됐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특히 광둥성(廣東省)과 푸젠성(福建省)의 눈부신 발전은 이들 ‘화교’ ‘화인’ ‘동포’들의 경제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것 또한 북한과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남한에 4700만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지만, 이들은 화교나 화인들이 중국에 투자하듯 독자적으로 투자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정부와 조율해야 한다.
일본과 중국 등지에도 교민들이 살고 있지만, 그 수는 다 합쳐도 수백만 명에 지나지 않고, 더욱이 이들 가운데 기업가로 성공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재일동포 중에는 자본가가 소수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을 통해 자산을 모았기 때문에 북한에 진출할 만한 여건이 못된다. 북한의 경제개발 과정에 해외교민들이 큰 몫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동포 투자 우대조치도 없어
중국은 대만 홍콩 마카오 교포 및 화교와 화인들에 대한 특별우대법을 제정해 전국 차원에서 적용하고 있다. 각 지방에서도 이들에 관한 별도의 우대 법규를 만들어 시행한다. 삼포자본이 대중국 투자에 중심이 되어온 데는 이와 같은 우대조치가 결정적 요인이 됐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공화국 영역 밖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 동포들도 합영법에 근거하여 투자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동포들의 투자는 가능하지만, 중국처럼 동포들에 대한 우대법규는 두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조선 동포’에 한국의 기업과 개인도 포함되느냐를 놓고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인과 한국 기업의 투자 자체가 가능한 것인가를 놓고 법조문 해석에 매달리고 있는 북한과, 대만 교포에 대한 투자 우대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중국의 상황은 말 그대로 천양지차다.
전체적으로 볼 때 북한은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투자 환경에 머물러 있다. 북한의 외자 유치가 아직도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견됐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외자 유치가 전혀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몇몇 부문의 정책이 수정된다면 의미있는 결실을 볼 가능성이 충분하다. 앞서 언급했던 당·정·군의 일치된 개혁·개방의지 표명, 개방과 함께 적극적인 개혁정책 실시, 정치·외교적 안정 추구, 민족자본에 대한 우대정책 실시, 한국과 화해 등이 그 예다.
남북 정상회담은 이처럼 산적한 과제 가운데 적어도 북한의 정치·외교적 안정 추구와 한국과 화해하는 면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 과제들이 후속조치로 단행되지 않는 한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경제협력에 관한 남북한간의 토의도 결국 단발성 행사로 끝나버릴 것이다.
따라서 남북경협이 일방적 지원 위주의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서로에게 ‘윈윈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이번 만남을 계기로 상호 신뢰를 회복함과 동시에 북한 당·정·군의 개혁·개방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감당할 수 있는 투자’를
북한의 경제개혁 정책은 부문별로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 우선 농업체제 개혁의 경우 북한 당국이 진정한 의미에서 농민들의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려면 지금의 협동농장체제를 개혁, 농가에 경영을 위탁하는 체제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기업구조 개혁의 열쇠는 ‘기업다운 기업’으로 재탄생하는 데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기업을 직접 관리하고 기업소가 국가 행정기관의 단순한 지부기구, 국가계획서 달성을 목적으로 한 생산단위에 머무르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는 기업소에 경영관리의 자주권을 부여하고, 기업소를 국가 경제정책의 틀 속에서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경영체로 바꿔나가야 한다.
가격구조 개혁의 기본 과제는 시장가격의 확대와 계획가격의 축소다. 시장가격은 그 조절범위와 상대적 규모의 부단한 확대에 따라 갈수록 그 중요도가 높아지게 만들고, 반대로 경제운용에 대한 계획가격의 영향은 그 조절범위와 상대적 규모의 점진적 축소에 따라 갈수록 그 중요성을 줄여야 한다.
재정구조의 개혁을 위해서는 기업의 자주권 확대와 함께 기업을 지금처럼 직접 관리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관리하는 새로운 재정체제가 하루 빨리 수립돼야 한다. 금융개혁에서는 국가 단일은행이 중앙은행 업무와 상업은행 업무를 독점적으로 수행하는 지금의 일원적 은행제도에서 중앙은행 기능과 상업은행 기능을 분리하는 이원적 은행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협력의 제공자인 우리 정부나 기업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내의 투자’라는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대기업의 부채감소와 금융기관의 자산 건전성 증진이 중요한 경제개혁 과제로 남아 있으니만큼 북한에 대한 무분별한 대규모 투자는 한국의 경제개혁을 지금 단계에서 중단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 재정을 통해 북한에 과도하게 지원하는 것 역시 재정 부담을 증가시키고 국가신용도를 하락시킬 위험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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