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호

지갑없는 왕회장 토지없는 안철수

  • 이나리 byeme@donga.com

    입력2006-10-19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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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 갑부의 신화가 21세기 초입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들은 40~50년 전 거부의 기반을 닦은 재벌 총수들과 어떤 점에서 같고 또 다른가. 주제별로 살펴온 디지털 부자들의 경쟁력. 》
    1988년, 지금은 작고한 SK그룹 최종현 회장과 신입사원 간의 상견례 자리. 대화를 이어가던 중 한 사원이 이런 질문을 했다. “회장님, 어떤 차를 타고 다니시는지요.” 최 회장이 답했다. “벤츠를 탑니다. 비싸고 좋아서가 아니라 튼튼한 차로 정평이 났기 때문이지요. 내 안전이 곧 회사의 안전이고, 또 국가적 차원에서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신입사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는 자못 숙연하기까지 했다.

    2000년 4월, 당시의 최회장과 비슷한 재산을 형성한 30대 후반의 한 벤처기업 사장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사장님, 어떤 차를 타십니까.” “체로키요. 옛날부터 무척 갖고 싶던 거였거든요. 멋있잖아요. 한마디로 ‘돈 값’을 하는 차죠.” 최회장 이야기를 했더니 반응이 즉각 온다. “웃기네요.”

    세상이 변했다. 돈 버는 길이 달라지고, 돈 몰리는 곳도 달라졌다. 벤처신흥갑부로 불리는 새로운 부자들이 탄생했다. 첨단 분야에서 단기간에 엄청난 부를 쌓은, 이른바 디지털 부자들이다. 이들은 최회장과 같은 아날로그 부자들과 전혀 다른 특질을 지니고 있다. 돈을 번 방법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도 그러하다.

    얄밉도록 젊은 나이는 또 어떤가. 4월 7일 현재 코스닥 폭락으로 주식평가액이 반 토막 난 시점인데도, 여전히 로커스 김형순(39) 사장의 재산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4000억원(평가액 기준)을 저만큼 앞지른 4811억 원이다. 그 밖에 1000억~3000억원 대의 고만고만한(?) 벤처기업 사장들, 예를 들어 새롬기술의 오상수(36), 버추얼텍의 서지연(37), 다음 커뮤니케이션 이재웅(33) 사장 등도 모두 30대다. 세상이 뒤집힐 때나 가능하다는 청년 갑부의 신화가 21세기 초입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다.

    갑작스레 너무 많은 억만장자들이 생겨난 탓일까. 걱정스레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벤처 졸부’라는 말도 들린다. 해놓은 일은 없으면서 재벌 흉내부터 내고 다닌다는 비아냥이다. “세상에 착한 돈, 나쁜 돈이 따로 있나. 돈은 그저 돈, 부자도 똑같은 부자”라는 냉소적 시선이다. 디지털 부자는 거품인가, 아니면 우리 경제의 큰 틀을 바꿀 젊은 피, 21세기의 신인류인가.



    어떤 사람들인가

    구(舊)재력가의 대표격은 아무래도 재벌 사주다. 70년대 말 등장한 부동산 졸부들도 무시할 순 없지만, 이들 역시 종자돈을 움켜쥔 뒤에는 은행 빚을 얻고 공장을 지어 그룹으로 변신을 꾀했다.

    재벌 창업주들에겐 대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어린 시절, 혹은 창업 비화가 있다. 하긴 비슷한 연배 가운데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던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빈농 집안 6남 2녀 중 맏이였던 정주영 명예회장은 채 열 살이 되기 전부터 ‘새벽 별 보고 나와 저녁별 보고 들어가는’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은 15세 무렵부터 신당동시장에서 열무를 팔고 신문 배달을 해 가족의 생계를 꾸렸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역시 빈농의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양털 깎기와 돼지 사육으로 하루 하루를 연명했다.

    가난했던만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이도 드물고 또 학창시절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다. 비교적 늦게 재벌 대열에 합류한 김우중 전 회장만 경기중·고, 연세대를 졸업한 정도다. 대신 교우관계들은 좋은 편이었는데, 쾌활하건 내성적이건, 독특한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장남이라는 것도 특징이다. 위에 언급한 세 사람 외에 LG그룹 구인회, 한진그룹 조중훈, 효성그룹 조홍제, 국제그룹 양정모도 장남이다. 이는 우리나라 재벌의 성격과 기업 문화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된다. 전통사회에서 장남은 한 집안의 기둥으로 가족을 건사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권위도 막강한데, 이로 인해 대개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동생들을 불러모아 생계를 책임져주는 대신 몸을 던져 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사업이 성장하면 형 밑에 있던 동생들은 산하 기업들의 경영주가 돼 그룹 회장인 형을 보필하거나, 경우에 따라 분리해 나와 새로이 소그룹을 형성했다. 재벌 특유의 족벌 체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이들 형제간의 위계질서 뚜렷한 협업체제에 힘입은 바 크다. 경영권 계승도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장자에게 돌아갔다. 직원들이 ‘회장님’을 한 집안의 가장처럼 어려워하고 떠받드는 식의 기업 문화도 가부장적 사고에 젖은 총수들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10대 중·후반의 어린 나이에 상점 점원 등 주로 거간꾼이나 장사꾼으로 일하며 이재에 눈떴다는 사실이다. 18세부터 쌀가게 점원으로 일한 정주영, 역시 16세 때 가출해 봇짐장사를 시작한 삼호그룹 정재호, 15세 때 함흥물산 점원으로 취직한 동양그룹 이양구, 19세 때 협동조합 설립으로 소매업에 뛰어든 구인회, 일본에서 전당포 점원으로 일한 신격호. 50~60년대 물자 부족 해결과 이윤 극대화를 위해 가장 성행했던 것이 무역업임을 생각할 때, 장사에 밝은 이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거부의 발판을 마련했음은 우연이 아니다.

    빈한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찍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상술을 익힌, 성실성 남다르고 카리스마 빛나는 의지의 화신이자 조직의 절대권력자. 대강 이 정도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자수성가형 재력가의 전형이라 하겠다.

    신흥갑부의 대명사는 벤처기업가다. 이들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나이가 젊다는 것. 개중에는 40대, 50대 인사도 끼여 있지만 대부분은 30대, 심지어 20대 중·후반도 눈에 띈다. 창업 후 길게는 10년, 짧게는 1~2년 만에 웬만한 대기업 총수에 버금가는 부를 쌓아올렸다. 200억, 300억 대의 재산을 형성한 이는 셀 수 없을 정도다.

    벤처 언저리에서 부를 쌓은 이들의 과반수는 이공계 전공자다. 최근 각광받는 분야가 정보통신 등 기술집약형 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장도 60% 이상이 이공학도다. 아이월드네트워킹 허진호(39), 아이빌소프트 진교문(37), 제이텔 신동훈(39) 사장은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나왔다. 나눔기술 장영승(38), 지식발전소 박석봉(38), 새롬기술 오상수, 네이버컴 이해진 사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출신. 버추얼텍 서지현,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사장은 연세대 전산학과를 졸업했다. 경영학 전공자는 10% 안팎. 재벌 총수들이 후계자를 대부분 미국 대학의 MBA과정에 유학시킨 것과 대비되는 현상이다.

    벤처기업가들은 스스로를 ‘마니아’라 칭한다. 밥 먹는 것보다 컴퓨터 만지는 게 좋아, 소프트웨어 개발이 연애보다 더 재미있어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네트워크 게임 리니지로 유명한 엔씨소프트 김택진(34) 사장은 “대학 (서울대 전자공학과) 시절부터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했다. ‘작품’이 하나씩 탄생할 때마다 짜릿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컴퓨터가 아닌 그 어떤 것도 나를 이토록 가슴 뛰게 만들지 못한다”고 말한다. 같은 회사 송재경(34) 이사도 마찬가지다. “카이스트 재학 시절부터 컴퓨터 게임에 빠져들었습니다. 먹고 자는 최소한의 시간 외에는 모니터에 붙어 앉아 세월을 보냈죠. 그 때의 맹렬한 몰두와 열정이 오늘날의 ‘리니지’를 있게 했습니다.”

    마니아 기질 풍부한 30대 공학도. 신흥벤처갑부들의 평균상이다.

    왜 돈을 버는가

    작고한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1960년대 이미 대한민국 최고의 거부가 됐다. 이 때까지 그의 목표는 분명 부의 축적이었다. 배고프고 잠잘 곳이 없는데 실리 외면한 명분 쌓기가 무슨 소용이냐는 요지의 이야기도 가끔 했다.

    그런데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이 회장은 부쩍 ‘국가’와 ‘사회’를 내세우는 발언들을 자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으로는 자본금 1억원 이상의 회사라면 대소를 막론하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 공헌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1970년 합동참모대학 강연 중). 사업보국(事業報國), 수출보국(輸出報國)은 이회장이 가장 강조하는 삼성의 기업정신이 됐다. 마침내 이회장은 삼성과 국가를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삼성의 사장은 삼성의 사장이 아니라, 국가의 사장이라고 생각하고 일하자”(간부회의 석상에서).

    글머리에서 언급한 SK 최종현 회장의 발언도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최회장은 특히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던 말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마찰을 빚어가면서까지 ‘국가경쟁력 강화 민간추진위원회’결성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측근들은 당시 최회장이 ‘아무도 안 하니 나라도 나서야겠다’며 그 일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이렇듯 구 재력가들은 새 사업을 펼치건 어디선가 강연을 하건, ‘국가와 민족을 위해’라는 수식어를 거의 빠뜨리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겠으나, 기본적으로 나라와 자신의 기업을 일종의 공동운명체로 생각했던 것만은 분명한 듯 하다.

    문제는 대다수 재벌들이 “기업=국가”, “치부(致富)=애국”라는 등식을 내세워 정부로부터는 특혜를, 국민에게는 희생을 강요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는 사실이다. 줄기가 따로 없는 마구잡이식 사업 확장도 알고 보면 “우리 덩치가 이 정도인데 감히 홀대할 수 있겠느냐”는 배짱 퉁기기일 뿐이었다. 이쯤 되면 국민을 위한 애국인지, 자사 보호를 위한 애국인지 가리기가 쉽지 않아진다.

    반면 요즘의 벤처 사장들은 여간해선 국가나 민족 같은 무거운 단어들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누군가 ‘나라를 위해 돈 번다’며 떠들고 다닌다면, 그 동네에선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대신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재미’다. 재미있어 일에 파묻혔다,더 재미있고 싶어 창업했다, 직원들이 재미있게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 돈 버는 일은 그 다음, 또는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한글과컴퓨터의 전하진(40) 사장. 그의 인생 목표는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것’이다. “죽을 때 사람이 뭘 남긴다고 생각하세요? 돈? 명예? 아무 것도 아니죠. 그저 매일매일을 즐겁게, 열정적으로 살았다는 기억 아닐까요. 저는 사업을 ‘엔조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선지 힘든 고비도 고통이라기보다는 극복의 희열이 예비된 장애물 경주같이 느껴져요.”

    야후코리아 염진섭(46) 사장은 어떨까.

    “정체돼 심심하게 산 기억이 없어요. 첫 직장이 국제상사 수출부였는데 당시로선 첨단인 텔레비전·오디오 같은 전자제품들을 취급했지요. 럭키금성에서도 컴퓨터 수출과장으로 최첨단, 삼보 컴퓨터에서도 독일 현지법인 지사장으로 최첨단, 다시 야후 코리아에서 최첨단. 지겨울 새가 어디 있어요. 새로운 일이 자꾸 생기는데….”

    그래서일까, 벤처 사장들은 유난히 호기심이 많다. 같은 일을 2~3년씩 계속하는 걸 못 참는다. 아주 유망한 사업 아이템이라도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면 깨끗이 포기한다. 돈벌이를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다니. 대개 ‘나 좋은 일 실컷 하고 싶어 독립했다’는 벤처 사장들에겐 웬만해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벤처에 250억 원 정도를 투자하고 있는 SK주식회사 최태원 회장(42·고 최종현 회장 아들)도 측근들에게 “재미있어 죽겠다”는 말을 자주 한단다. 벤처, 재미있긴 재미있는가 보다.

    왜 돈을 버는가

    재벌 기업 성장사와 관련해서는 이미 나온 얘기들이 너무 많다. 때로는 미군, 때로는 군부정권과 밀월을 통해 기회와 시장을 독점하고 각종 특혜를 제공받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권부와 손잡지 않은 재벌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 사업하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선 로비력, 주도면밀함, 권력의 향배를 가늠하는 동물적 감각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야 했다. 좋게 말해 특유의 직관과 도전정신으로 난세를 딛고 일어선 불세출의 승부사들이다.

    2~3년 전까지 재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통용되던 믿음은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였다. ‘직원 많고 공장 크고, 문어발 경영을 하는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 기업인들은 차입을 통한 공격적 투자로 고수익 사업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외형 부풀리기에 주력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인철 박사는 “정부보호 위주의 폐쇄적 시장경제 하에서는 파산 위험이 크지 않으므로 외형이 기업 순위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된다. 주식 시장이 미발달된 가운데 은행 역시 자산, 매출 등 외형으로 기업을 평가했다. 기업 쪽에선 어떻게 해서든 매출을 늘리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때도 물론 창업주의 부의 원천은 주식이었다. 그러나 증시에서의 주식 평가액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여러 계열사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엄청난 배당금이 핵심이었다. 이렇게 생긴 현금은 다시 부동산으로 흡수됐다. 땅 부자가 현금 부자, 현금 부자가 땅부자였다. 재벌의 토지, 자본, 인재 독점은 신흥기업의 성장을 원천 봉쇄했다. ‘보통 사람’이 거부로 도약하기란, 복권에라도 당첨되지 않는 한 쉬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충격의 진원지는 디지털 혁명, 그리고 IMF 구제금융체제의 도래다.

    디지털 혁명은 18세기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경제 패러다임의 대이동이다. 첨단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 인터넷이라는 경이로운 매체는 사람·기업·국가 간의 경계를 허물고, 넓은 매장이나 방대한 영업망 없이도 얼마든지 물건과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신통한 길을 열어 놓았다.

    디지털 혁명의 파도가 전지구적 현상이라면 우리나라에는 IMF구제금융체제가 있었다. 불황이 본격화되자 몇몇 대기업에만 대출을 몰아주던 은행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민간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우, 기아, 뉴코아, 한일, 거평…. 대마(大馬)도 뼈가 약하면 쓰러질 수 있음이 증명됐다. 대기업은 더 이상 최상의 파트너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적은 투자금으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술집약형 기업, 높은 미래 가치를 인정받는 정보통신 전문 기업, 주식시장을 무대로 투명한 경영을 할 준비가 돼 있는 기업. 바로 벤처였다.

    벤처 열풍은 기업인 뿐 아니라, 이들에게 종자돈을 댄 투자자, 함께 회사를 키운 직원들, 펀드매니저와 컨설턴트들까지 골고루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한 회사 직원들이 몽땅 억대 재산가가 됐다거나, 어려운 친구를 돕기 위해 속는 셈치고 산 주식이 ‘황제주’가 됐다는 식의 이야기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재력가라 불릴 만한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다양해진 셈이다. 이전에는 상위 5% 이내에 집중됐던 부가 일부 ‘보통 사람들’에게까지 나눠지면서 자본가 혹은 재력가의 층이 훨씬 두툼해졌다. 이로써 재벌 주도 경제 체제에 대한 순응 구조도 상당부분 허물어졌다. 재벌의 ‘대안’이 생긴 것이다.

    벤처 사장의 부의 원천은 철저하게 주식 평가액이다. ‘오늘 우리 회사 주식이 1주당 얼마에 거래되느냐’에 따라 매일의 재산이 달라진다. 상황이 이런 만큼 대강대강, 잔재주 피워가며 일했다간 큰코 다치기 십상이다.

    고려대 경영학과 장하성 교수는 “재벌이 밀실 로비로 은행 빚을 얻어 사업을 벌였다면, 벤처기업은 광화문 네거리에서 지나가는 시민들 주머니 돈을 밑천 삼아 시작한 격”이라고 풀이한다. “은행 한 곳의 감시를 받는 것과, 수많은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엄청난 차이지요. 벤처의 건강성은 여기서 나옵니다. 거품이든 무엇이든, 시장(코스닥)이 만들어 준 부가 아닙니까. 이것이 진짜 자유경제체제인 것이죠.”

    재벌 총수들은 종종 임직원들과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종현 회장은 아예 회장실 안에 작은 주방을 마련해 놓고 몇 시간씩 점심 식사 겸 회의를 주재하곤 했다. 미국 유학파로 개방적이고 소탈한 성품의 최 회장이었지만, 하늘 같은 ‘회장님’을 모시고 식사한다는 것은 결코 편한 일이 아니었다. SK 이노종 전무는 “회장님이 워낙 식탐이 없으신 분이라 밥도 반찬도 직원 식당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간소했다. 퍼주는 양이 많지 않아 회의가 끝나면 벌써 배고프다는 사람이 나올 정도였지만, 회장님이 여러 번 권해주시지 않는 이상 더 달라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전한다.

    삼성 이병철 회장과의 식사는 아예 ‘어전(御田)식사’로 불렸다. 자리는 임직원이 공항에서 이회장을 영접할 때와 마찬가지로 엄격하게 서열에 따라 배정되었다. 이 회장은 ‘고생이 많다’며 임원들의 앞접시에 생선회나 초밥 따위를 얹어주곤 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긴장 때문에 밥을 제대로 넘길 수 없었다.

    정주영 명예회장과 식사하려면 전쟁을 앞둔 심경으로 밥상 앞에 앉아야 한다. 식사 시간은 길어야 4~5분. 회장이 수저를 들면 비로소 식사를 시작하고, 회장이 숟가락을 놓는 순간 먹기를 멈춰야 한다. 당연히 식사시간에 대화란 없고 실내에는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돈다.

    이렇듯 직원들에게 총수는 왕 또는 아버지에 비견할 만큼 멀고도 어려운 존재다. 오죽하면 정 명예회장의 별명이 ‘왕회장’이겠는가. 회사를 지배하는 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이고 그 속에서 총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위로는 오직 ‘정권’이 있을 뿐, 조직의 우두머리요 아버지이며 상전이고 지도자였다.

    총수들이 직원을 아끼는 방식 또한 자식을 다독이는 아버지의 그것에 가까웠다. 이병철 회장은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 자신이 쓰던 넥타이나 구두, 골프채 따위를 나눠주었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쓰던 물건을 어떻게 선물로 주느냐’며 큰 불평을 살 일이다. 이 회장은 또 노조의 데모를 ‘가장에 대한 자식들의 도전’으로 해석해 ‘삼성 무노조 정책’을 고집스레 고수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사장은 ‘안된다’ ‘어렵다’는 말을 가장 싫어했다. 김회장이 시킨 일이라면 직원들은 밤을 새우건 몸이 아프건 무조건 해내야 했다. 임원들도 김회장 의견에 거의 반론을 제기지 않았다. 얘기해도 통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우전자 배순훈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독립 경영하라면서 회장 자리에 앉혀 놓고는 인사권도 자금 결제권도 주지 않았다. 중요한 결정은 여전히 김 회장이 주재하는 기조실 회의에서 결정됐다. 나는 진정한 의미의 전문 경영인이 아니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내 돈을 밑천 삼아, 내 실력으로 일으켜 세운, 나와 내 가족의 재산. 대다수 재벌 총수들은 운영하는 회사에 대해 심정적으로 대강 이러한 생각을 품고 있었던 듯 하다.

    비슷비슷한 얘기들을 죽 늘어놓으면 벤처 회장들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며 펄쩍 뛴다. 벤처기업에 있어 직원은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능한 엔지니어가 없으면 기술도 없다. 창의적인 기획인력이 없으면 새 사업도 없다. 벤처 전쟁은 사람 전쟁, 사람만 잡으면 90% 끝난 싸움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견해다.

    모 그룹 상무를 거쳐 고희에 가까운 나이에 벤처기업 사장으로 변신한 K씨. 상명하달식 조직체계가 몸에 밴 그에게 벤처 사장은 적응이 쉽지 않은 자리다.

    “직원이 상전이에요. 그 친구들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거든요. 회사 운영과 관련된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꼭 옛날 회장님께 보고하듯 꼬박꼬박 알려줍니다. 정보 공유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사장과 직원은 완벽한 공동운명체입니다. 스톡옵션과 우리 사주로 꽁꽁 묶여 있어요. 사장은 지배하는 게 아니라 조정만 합니다. 저처럼 기술 없는 사장은 더 조심해야지요. 명함조차 제 손으로 내밀지 않는 그룹 총수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겁니다.”

    야후코리아 염진섭 사장에게 직원은 동업자다. “저뿐 아니라 직원들도 스톡옵션을 통해 모두 부자가 됐습니다. 수천, 수억 원, 그 이상도 있지요. 벤처의 기본 정신은 ‘윈(win)-윈(win)’과 나눔(share)입니다. 자본금 9억 원으로 수조 원짜리 회사를 만들었으니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어요.”

    아이소프트 이철호(38) 사장은 얼마전 소유 주식 중 3만주를 직원들에게 액면가로 배분했다. 이 회사 주식은 요즘 장외시장에서 주 당 2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그러니까 약 60억원 가치의 주식을 나눠 준 셈이다. 이 사장은 “100억원 짜리 기업의 지분 50%보다 1000억원 짜리 회사의 10% 지분을 갖는 게 더 낫다”고 말한다. 직원에게 최선을 요구하려면 그만큼의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논리다. 올 1월 출범한 인터넷 포털업체 인터게이트 코리아의 권오덕(43) 사장은 아예 한 술 더 떠 “직원들 갑부 만들어 독립시키는 게 꿈”이라고 한다.

    “그래서 벤처에는 노조가 없습니다. 사장들이 워낙 알아서 잘 하거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회사가 발전할 수 없어요. 또 노조 활동의 핵심은 단체협약인데,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보상 체계가 다 다른 벤처에서 ‘단체’로 뭔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벤처기업협회 김용호 기획조정실장의 설명이다.

    족벌 경영·경영권 세습

    대부분의 재벌이 총수 가족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직계 자손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요소 요소에 참 알뜰히도 박혀 있다. 그렇다 보니 총수 가계도가 그룹 구성도와 얼추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앞서 적은 대로 사업 시작 자체를 동생, 매제 등 가족들과 함께 한 경우에는 나름대로 자리를 나눠 가질 명분이 선다.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장자가 이룬 부를 손아랫사람들에게 증여하는 것도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일이다. 문제는 능력이 없는데도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중책을 맡긴다거나, 장남이기 때문에 경영권을 세습하는 식의 가내수공업적 기업 운영이다. 최근 현대그룹 총수자리를 놓고 벌어진 형제간의 낯뜨거운 전면전이 그 대표적 사례다.

    벤처기업 중에 경영권 세습 운운할 만큼 연조가 오래된 회사는 아직 없다. 다만 친척을 직원으로 쓰는 문제에 있어서는 회사마다 조금씩 방침이 다른 듯하다.

    아이월드네트워킹 허진호 사장은 “능력은 있는데 제 친척이라 도리어 입사하지 못한 사람이 몇 명 있다”고 전한다. “저야 별 상관없지만 직원들은 그렇지 않겠죠. 왜 저 사람이 입사했을까, 혹시 내 잘잘못을 사장에게 고스란히 옮기는 건 아닐까, 쓸데없이 걱정만 많아질 겁니다. 직원들 사이에 비밀이 생기고 뒷말이 오가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죠. 특히 인화가 가장 중요한 벤처에선 아주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반대 사례도 있다. 인터넷 벤처 1세대로 주목받던 모 사장은 계열사가 생기는 등 회사가 커지자 친척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역시 벤처업계에 몸담고 있는 한 친구가 “별로 좋지 않은 태도”라고 충고하자, 그는 “드라마 ‘왕과 비’도 보지 않았느냐. 조직마다 내 사람을 심어 놓아야 안심할 수 있다”는 요지의 답변을 했다. 요즘 그 회사는 투자자들이 사장의 경영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직원들이 빠져나가는 등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세간의 우려대로 섣불리 ‘재벌식 경영기법(?)’을 도입했다 낭패를 본 케이스다.

    한 벤처기업 사장은 “나도 능력 모자라고 재미없어지면 그만둘 건데 자식한테 뭘 물려주느냐”고 반문한다. “만약 내 아이가 사업이 하고 싶다면 제 아버지가 그랬듯 좋아하는 분야에서 맨손으로 시작해야 할 겁니다. 능력이 우선되지 않은 경영권 세습은 주주와 직원들에 대한 배신이자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명분·부의 환원

    재벌이 부르짖는 사업 명분은 시기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다. 그중 가장 일관되게 유지돼온 캐치프레이즈가 수출보국이었다. 60년대 후반 이후 수출 확대를 통한 외화 획득은 기업인의 절대 사명이자 ‘지고의 선’이었다. 수출이란 명분 앞에서는 독점도, 부실도, 근로자 인권 침해나 사주의 부도덕성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면 오늘날의 벤처기업가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사명은 주주에게 많은 이윤을 돌려주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수출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업주의 능력과 도덕성이다. 미 ‘포천’지는 얼마 전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의 평가 항목’ 8가지를 발표했다. 혁신능력, 경영의 질, 직원의 능력, 재무건전성, 자산 운용, 장기 투자의 가치,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제품 및 서비스의 질. 이 중 무려 3가지가 경영진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논할 때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이 부의 환원이다. 재벌이 주로 문화재단을 만들거나 불우이웃돕기 성금처럼 돈 그 자체를 제공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춰온 반면, 대다수의 벤처기업들은 ‘전략적 환원’에 방점을 찍고 있다. 사장 개인 재산을 이용한 기부는 얼마든지 하되, 회사 차원의 도움이라면 반드시 반대급부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벤처기업들은 대학 연구소를 지원하거나 대학생들에게 현장 실습 기회를 제공하는 식의 ‘생산적 기부’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이제 벤처는 우리 나라 경제의 주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재벌과 벤처를 나눠 이리저리 비교하는 따위의 일은 더 이상 의미 없는 작업이 될지도 모른다. 둘은 서로 닮아갈 것이고, 서로의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활발히 교류하거나 때론 몸을 합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부는 한 순간이지만 벤처 정신은 영원하다는 사실이다. 애플컴퓨터 스티브 잡스 회장는 ‘포천’지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벤처기업가는 세계를 바꾸는 일,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을 만드는 일에 인생을 걸어야 한다. 돈을 버는 것은 그 다음이다. 창업은 부모가 되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자신이 만든 회사에 애정을 가지라. 혁신적인 신상품 개발에 정신을 쏟으라. 벤처 붐의 문제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명분·부의 환원

    1994년, 취재 차 정주영 명예회장의 서산 농장 방문에 동행했을 때의 일이다. 오전, 오후로 나눠 그 넓은 간척지를 다 둘러본 정 회장은 저녁 식사 후 직원들을 데리고 근처 횟집으로 향했다. 전복죽에 민물고기 회를 안주 삼아 막걸리 두 사발을 맛있게 들이킨 정 회장은 나오면서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어 만 원 짜리 지폐 한 움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세어 보지도 않고 주인 아낙에게 쑥 내밀었다. 주인은 또 그것을 심상하게 받았다. 한 두 번 있어온 일이 아닌 듯 했다.

    정 회장은 지갑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짐작이지만, 그 날처럼 직원들 밥 한 두끼 사주는 것 외엔 돈 쓸 일이 거의 없는 터에 굳이 거추장스러운 장지갑을 안주머니에 넣고 다닐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정 회장뿐이 아니다. 재벌 총수들은 아무래도 보통 사람들에 비해 소비에 대한 감각이 둔하다. 자기 손으로 뭔가 필요하고 욕심나는 것들을 사보는 기회가 많아야 할 텐데 정신없이 바쁠 뿐 아니라, 대부분의 것들이 요구하기도 전에 갖추어져 있는 상태인 까닭에 ‘돈 쓰는 재미’를 느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하다 못해 늘 입고 다니는 슈트도 전용 양복점에 치수가 기록돼 있어 누군가 색깔과 디자인만 대신 골라주면 된다.

    1세대의 경우 절약이 몸에 배서, 2세대는 아버지의 엄한 교육 때문에 ‘작은 돈 쓰기’에 의외로 소극적인 총수도 적지 않다. 쌍용그룹 창업주인 고 김성곤 회장은 평생 휴지 한 장을 반씩 나눠 쓰고 대봉투도 꼭 한 번 쓴 것을 두 번, 세 번 다시 썼다. 현대자동차 정몽준 회장은 설렁탕 한 그릇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일이 흔하다. 값에 비해 맛있고 든든하다는 것이 정 회장이 설렁탕을 선호하는 이유다.

    어떻게 보면 돈 쓰는 재미를 만끽하고 사는 건 디지털 부자들일지도 모른다. 사치를 부린다기는 뜻이 아니다. 경제적 풍요가 주는 여유와 편리함을 한껏 즐길 자세가 돼 있다는 의미다.

    아이월드네트워킹 허진호 사장은 벤처 2세대의 선두주자다. 94년 인터넷접속서비스업체인 아이네트를 설립, 동종업계 매출 1위의 우량 기업으로 키워놓았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느닷없이 회사를 떠나더니 올 3월 말 다시 아이월드네트워킹이란 벤처기업의 사장으로 돌아왔다. “자리잡은 회사를 운영하는 것보다 창업이 훨씬 재미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중도에 전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충분한 보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어쨌건 허 사장은 지금, 제법 많은 현금을 보유한 재산가가 됐다.

    “돈을 꼭 써야 할 일이 있을 때 크게 주저하지 않고 실행해 옮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지요. 친구들한테 마음 편히 술도 한 잔씩 사고, 아이들 교육비 걱정 같은 거 하지 않아도 되고. 그렇다고 이전과 그렇게 많이 달라진 건 아니에요. 사람이 돈을 쓰는 덴 분명 한계가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전 아이들 옷을 자주 사주는 편인데 돈 많이 벌기 전이나 지금이나 고르는 물건엔 큰 차이가 없어요. 가격에 합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것도 똑같고요.”

    허 사장은 “한 50억~100억원 정도만 있으면 하고 싶은 일 실컷 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서민들에겐 어마어마하지만 그에게는 충분히 욕심 낼 만한 돈이다. 아니, 앞으로 벌 돈에 비하면 지나치게 적은 액수라고나 할까.

    한국벤처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터보테크 장흥순(40) 사장은 “150억 원이면 충분하겠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집 사고 땅 사는 데 쓰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을 때 돈이 없어 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으면 하는 거지요. 회사 주가가 많이 올랐고 그래서 서류상으로는 만만찮은 부자가 된 것이 사실이지만, 아내에게 ‘맘놓고 쓰라’며 천만 원 짜리 수표 한 장 척 내놓지 못했어요. 식구들이 오히려 절 놀리지요. 그 많은 돈 다 어디 갔느냐고요.”

    사실 수천 억원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벤처기업가 중 그 돈을 100% 마음껏 쓸 수 있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모두 주식에 매인 돈이니만큼 함부로 현금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페이퍼 머니(서류상 돈). 개중에는 새롬기술 오상수 사장처럼 경영권에 약간의 주식을 처분하거나, 야후코리아 염진섭 사장처럼 스톡옵션 일부를 팔아 100억원 가량의 현금(세금 제외)을 마련한 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아직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의 안철수(39) 소장은 회사가 코스닥에 상장되면 일약 수천 억대의 재산가로 떠오를 가능성이 큰 벤처기업가다. 그러나 그는 아직 전세집에 살고 있다. 집 살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럴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이 생기면 기술 개발과 회사 발전을 쓸 겁니다. 벤처기업가가 돈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회사를 제대로 유지해갈 수 없어요.”

    일정 규모 이상의 부는 재벌에게나 벤처기업가에게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다. SK 최종현 회장은 생전에 측근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재산이 한 30억 원쯤 될 때까지는 돈 모으는 게 재미있었어. 아내와 통장을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궁리도 많이 했지. 그런데 그 액수를 딱 넘어가고 나니 재미가 없는 거야. 서류상 숫자는 자꾸 올라가는데 정작 돈 만지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회계사, 은행원들이거든. 사람이 돈을 쓰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어. 30억이나 300억이나, 따지고 보면 똑같은 건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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