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호

정보와 아이디어가 흐르는 100개 벤처클럽

  • 하태원 scoop@donga.com

    입력2006-10-19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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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나라를 벤처열풍으로 몰고 간 ‘온라인’의 귀재들이 ‘오프라인’에서 와글거린다. 30여만 명으로 추산되는 벤처인들이 종(縱)으로 횡(橫)으로 만들어가는 ‘인적 네트워크’다. 벤처인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사업 이야기도 하고 지친 심신을 시원한 생맥주 한 잔으로 달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이들 기업인들은 온라인 고객들을 초대해 ‘오프라인 파티’를 열기도 한다. ‘피와 살이 통하는’ 만남을 통해 진짜 고객을 만들어보겠다는 의도다.》
    4월 4일 오후 7시 서울 서초동 ‘레떼컴’ 김경익(34) 사장의 방. 인터넷 카드업체인 레떼컴의 김사장 방에 화장품 전문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코스메틱랜드’의 최선호(35) 사장이 찾아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벤처기업 사장들의 격식을 차린 만남이라기보다는 오랜 친구가 재회한 듯 격의 없는 대화가 오갔다. 간단한 안부인사를 나누고 최근 벤처기업의 동향 등에 대한 대화가 진행될 즈음 인터넷 검색엔진인 ‘네이버컴’의 이해진(34) 사장이 스웨터 차림으로 나타났다. 이사장은 네이버컴이 지난 3월16일 인터넷 무료전화인 다이얼패드로 유명한 ‘새롬기술’과 인수·합병한다는 발표 이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은 터라 가벼운 핀잔이 쏟아졌다. 하지만 비난하는 어조라기보다는 큰 결단을 내린 것에 대한 격려성 발언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이해진 사장은 장기간 ‘잠수’한 ‘죄가(罪價)’로 이날 저녁값을 내기로 했다(하지만 4월11일 새롬기술과 네이버컴은 코스닥 시장의 침체에 다른 새롬 주가의 하락때문에 인수합병을 포기했다).

    이어 허겁지겁 김사장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전자우편을 통한 광고 마케팅 홍보 등을 대행하는 ‘에이메일’의 백동훈(36) 사장. 이제 막 인쇄돼 나온 책이라며 자사에서 발행하는 ‘메일 매거진 가이드’를 내놓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시계는 이미 오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누군가 “밥 먹고 합시다”를 외치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이가 있지만 이들은 부근의 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9년 10월부터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만나는 이 모임은 ‘시작닷컴’.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기술개발에 땀흘리던 순수한 시절을 잊지 말고 미래지향적이고 건전한 벤처문화를 정착시키자는 취지로 시작한 친목 모임이었으나, 지난해 12월에는 아예 자신들이 운영하는 사이트들을 모아 시작닷컴(www.sijaq.com)이라는 ‘브리지 사이트’를 법인으로 출범시켰다. 새로운 벤처기업을 양성하는 ‘벤처 인큐베이팅’ 노릇을 하는 한편, 자신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는 상담 및 컨설팅도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오전 8시 조찬모임을 가졌지만 다음날이 휴일이어서 이날은 오랜만에 술 한잔 하기 위해 저녁에 모였다는 것이 김경익 사장의 설명. 뒤늦게 저녁식사 자리에 합류한, 세대별 사이트와 엔터테인먼트 포털사이트인 ‘인츠닷컴’을 운영하는 이진성(34) 사장도 “저녁시간에 이렇게 자리를 같이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라며 “저녁에 만나니 마음이 여유롭다”고 말했다.



    이사장은 이 모임에 참가하기 직전 홍콩 파이어니어 캐피털 등 해외자본과 하나은행 LG창업투자 등 18개 업체로부터 400억원을 투자유치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발표한 직후라 조금은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업과 벤처업계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안주 삼아 벌어진 이들의 맥주파티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내가 산다 100잔”

    지난 3월16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정보카페’에서는 정보통신기업, 벤처기업, 벤처투자사, 벤처컨설팅사, 관련정부기관, 언론인 등 200여 명이 모여 명함을 교환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시작닷컴’이 7명의 벤처기업 사장만 모이는, ‘진입장벽’이 있는 폐쇄적인 모임이라면 T-밸리 클럽은 참여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개된 모임. ‘내가 살게 (맥주)100잔’이라는 슬로건이 모임의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홍보대행사인 링크인터내셔널이 주관하고 삼보컴퓨터가 주최하는 이 모임은 벤처와 직·간접으로 인연을 맺은 다양한 구성원들이 서로 아이디어와 사업 아이템을 공유하고 격의 없이 의견을 교환한다는 취지로 지난 1월 처음 모였다. T-밸리의 T는 벤처밸리로 다시 태어난 테헤란로의 ‘Teheran’, 세계 최고의 기술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의 ‘Technology’, 그리고 벤처인들이 추구하는 신조류를 의미하는 ‘Trend’라는 세 가지 개념을 포함한다는 것이 주최측의 설명. 테헤란 밸리의 각 기업이 매달 한 번씩 릴레이식으로 맥주 100잔을 산다.

    모임 성격과 규모는 판이하지만 테헤란로 벤처밸리에는 시작닷컴과 T-밸리클럽 같은 오프라인 모임이 봇물을 이룬다. 이름이 알려진 것만 해도 50 개가 넘고 이름 모를 모임까지 모두 합치면 줄잡아 수백 개는 될 것으로 추산된다.

    등록된 업체만 5000여 개에 이르고 등록되지 않은 회사까지 합치면 4만여 개나 되는 벤처기업. 모임이 추구하는 바도 다르고 모임을 이루는 구성원의 성격도 제각각이지만 온라인에서 일하고 온라인에서 대화하는 것을 뛰어넘어 얼굴을 맞대고 부대껴보겠다는 열망은 같다.

    2∼3년 전부터 동호인들의 소모임 형태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던 벤처인들의 모임은 최근에는 성공한 벤처기업과 대기업을 주축으로 전략적인 모임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 벤처빌딩에 입주한 회사끼리 업종간 정보교환과 친목도모를 위해 모임을 결성한 경우도 있고, 해외시장에 공동 진출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사례도 보인다.

    ‘벤처리더스 클럽’. 이름이 시사하듯 소위 벤처업계에서 이미 성공한 ‘벤처 1세대’인사들이 주축인 모임이다. 정문술 미래산업 사장, 이민화 메디슨 회장, 조현정 비트컴퓨터 사장, 이건환 연우엔지니어링 사장, 김형순 로커스 사장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벤처기업 사장들이 회원이다. 거기에 서갑수 한국기술투자 사장, 연병선 한국IT벤처투자 사장, 곽성신 우리기술투자 사장, 이장우 경북대 교수, 공종렬 정보통신부 국장 등 벤처캐피털 경영진, 학계·관계·언론계·법조계 인사가 골고루 참여했다. 정보통신부장관 중소기업청장도 가끔 보인다.

    벤처 신화를 이룬 신흥부자들이 사회·문화활동을 통해 이익을 환원하고 새로운 벤처문화를 정립하는 것이 지난 1월25일 벤처리더스클럽이 출범할 당시 대외적으로 공표한 설립취지. 이 밖에 ▲실리콘밸리 및 이스라엘 벤처기업인들과의 해외 네트워크 확대 ▲차세대 벤처기업인의 발굴 및 육성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을 위한 각종 사회봉사 활동에 힘쓴다는 목표를 정했다.

    테헤란밸리는 지금 미팅중

    ‘IB(Internet Business)리그’도 가입한 회원이 300 명이 넘는 모임. 인터넷 분야의 벤처기업인과 창투사직원, 대학교수, 언론인 등이 중심이 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한 모임으로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오후 7시에 만난다.

    김이숙 e-코퍼레이션 사장과 전하진 한글과컴퓨터 사장, 장진우 3W투어 사장, 최선호 코스메틱랜드 사장, 전성영 지오이네트 사장, 이경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등이 창립멤버. 3월29일 르네상스호텔에서 150여 명이 모여 1시간여 동안 ‘스탠딩 파티’식으로 가벼운 인사와 정보교환을 포함한 식사를 한 뒤 오후 8시부터 메인행사에 들어갔다.

    IB리그의 특색은 신참자에게 공식적으로 인사할 기회를 준다는 것. 이미 그 업계에서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 내로라 하는 ‘벤처선배’들에게 동등한 자격으로 명함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이날도 새로 온 벤처인 10여 명에게 각각 3분씩 ‘스피치’를 할 기회가 마련됐다.

    하지만 신참자에게 많은 기회를 주기 때문에 기존 회원 중 성공한 사람들이 일부 이탈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300여 명이나 되는 사람이 주제없이 와글와글 떠들다가 신참자의 ‘인사말씀’이나 듣고 돌아가기에는 너무 바쁘다는 것이 ‘성공한 사장’들의 대체적인 탈퇴 이유. ‘개나 소나’ 다 참가하는 영양가 없는 모임에서 시간낭비하기 싫다는 생각이다.

    이에 대해 IB리그를 주도하는 e-코퍼레이션측은 “기존 회원들이 대거 이탈하는 현상이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애초에 이 모임을 만든 이유가 새로운 사람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데 있으므로 신참자들의 참여를 제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4월로 창립 1주년을 맞은 IB리그는 ‘홈커밍데이’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지난 1년간 눈부시게 발전한 회원사나 벤처기업 사장을 초청해 성공담을 듣겠다는 것.

    초창기 벤처 모임은 자생적인 소모임이나 직능형 동호인회로 출발했다. 인터넷마케팅포럼, 한국웹마스터클럽, 말금회, 이브 등이 대표적. 1998년 2월 출범한 인터넷마케팅포럼은 기획·마케팅·웹디자인, 프로그래밍 실무자들이 만든 직능형 모임이다. 김형택 엔웍스 팀장이 대표를 맡고 정재윤 기획공방 사장, 김희정 시이즈 사장, 송희원 LG텔레콤 팀장 등 47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 수가 워낙 많아 이메일을 통해 웹마케팅 정보를 교환하며 무역·웹프로모션·전자상거래 등 5개 소모임별로 격주 세미나를 연다.

    1997년 5월 소위 테헤란밸리가 자리잡기 이전에 이미 창립된 한국웹마스터클럽은 기업체 웹사이트 관리자들이 주축이다. 웹이 아직 생소하던 시절 생긴 모임으로 당초 목적은 건전한 웹문화를 한국에 심는 것. 이제는 정보교환과 함께 구인구직 등 헤드헌팅도 해주며 매달 기술세미나를 개최한다.

    20여 명으로 시작한 모임이 이제는 1000여 명에 이르렀고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하루 200여 통의 이메일이 오가는 등 온라인 모임이 활발하지만 지역별로 ‘번개’모임도 자주 갖는다. 각 기업의 홈페이지를 모두 이들 웹마스터가 주무르기 때문에 이들이 끼치는 영향은 지대해서 초기에 각 기업 홈페이지에 태극기 달기 운동을 전개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최근에는 회원간에 경조사를 챙겨주는 일도 많아 자발적으로 모금하기도 한다.

    1997년 11월 만든 말금회는 그해 가을 컴덱스 참가자 20여 명의 소모임. 벤처 창업정보를 교환하다 한·중·일 3국에 퍼져 있는 한국 벤처기업인의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일본 도쿄(東京)에서 활동하는 원성묵 아시아인트로닷컴 사장이 대표를 맡고 중국 베이징에 있는 박호민 K·C 사장과 문성일 코스모정보통신 사장, 성필문 어나더월드 사장, 이광석 인크루트 사장 등이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지난해 말 구성된 이브는 전자상거래와 인터넷 비즈니스를 주로 연구한다. 이태종 싸이버텍홀딩스 전자상거래담당이사를 중심으로 이상성 파이언소프트 사장, 최영일 네트로21 사장 등 벤처기업인과 대학교수 변호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의 동호회

    골치아픈 사업이야기를 벗어난 순수한 동호회도 있다.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보드카모임’이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까당스’ 등이 대표적. 보드카모임은 말 그대로 술과 함께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모임이다. 1년 전쯤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앱솔루트 보드카’를 마시던 장영승 나눔기술사장, 김홍선 시큐어소프트사장, 김택진 엔씨소프트사장, 나성균 네오위즈 사장 등이 즉석에서 만들었다. 서울대 합창 동아리 ‘메아리’ 출신인 장사장이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 모임의 시작을 자축했다.

    프랑스어로 운율 또는 선율을 의미하는 ‘까당스’는 음악을 매개로 정보통신인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모임이다. 지난 1998년 말 몇몇 정보통신인들이 취미얘기를 하며 비공식적으로 만나던 이 모임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30여 명도 안 되는 작은 모임이었지만 최근에는 회원사가 100여개에 이를 만큼 덩치가 커졌다. 참여업체들의 면면을 보면 현대정보기술, 삼성SDS, 다음커뮤니케이션, 유니텔, 드림라인, 시티넷 등 벤처기업에서 PR코리아, 벤처PR, 링크인터내셔날, 드림커뮤니케이션 등 홍보대행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까당스는 매월 한 번씩 모여 가수나 연주가들을 초청해 라이브 연주를 즉석에서 들으며 음악에 대한 정보를 교류해왔다. 올해에는 방송과 연계한 대규모 라이브쇼를 개최, 그 수익금으로 불우이웃돕기에 나설 계획이다.

    학연이나 지연 등 기성세대가 중시하는 ‘연줄문화’를 거부한다는 벤처지만 그래도 학연(學緣)이나 사연(社緣)으로 얽힌 모임도 있다. 스탠퍼드대 벤처비즈니스는 스탠퍼드대 비즈니스스쿨 연수 동기생들이 만든 벤처 모임. 당시 43명이 연수를 받았는데 이중 30명 정도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글과컴퓨터 전하진 사장, 이기대 드림서치 사장, 김병기 지오인터랙티브 사장, 김옥경 신화전자회장 등이 회원이다.

    한국벤처포럼은 지난해 말 SK그룹의 후원으로 한국경영연구원과 벤처기업 연구회가 손잡고 만든 모임이다. 벤처기업 발굴과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경영기법 강연과 세미나를 열고 있다. 지용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경영연구원장) 등 학계 인사와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 임병진 성진씨앤씨 사장, 박석봉 지식발전소 사장, 임병동 인젠 사장, 배재광 벤처법률지원센터 소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 SK SK상사 SK텔레콤 SK옥시케미칼 등 SK그룹 계열사들이 돕고 있다.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 출신들도 ‘제일닷컴’이란 깃발 아래 자기들만의 ‘이너서클’을 형성하고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명환 부사장, 새롬기술의 김대선 이사, 옥션의 이유찬 실장 등 70여 명이 멤버다. 모회사격인 제일기획에서도 이 모임에 직간접적인 관리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소문. 성격은 다르지만 SVC포럼은 서울 역삼동 아주빌딩의 서울벤처타운에 입주한 46개 벤처기업 사장으로 구성됐다. 서로 다른 업종간 사업정보를 나누고 투자유치에 공동 협력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벤처인들의 오프라인 모임이 활발해지자 아예 그들만을 위한 모임방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역삼동에 문을 연 ‘벤처클럽@소프라노’는 ‘성공을 만드는 벤처 네트워크’를 위한 공간제공을 목표로 삼았다. 지난 3월31일 이곳에서 동료 벤처인 10여 명과 모임을 가진 금융·증권 포털사이트 ‘머니코케이알’의 한징수(36) 사장은 “테헤란 밸리에 있어 사람을 만나기도 편하고 가격도 호텔보다 저렴해 가끔 이곳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벤처인들은 왜 이렇게 피와 살이 통하는 만남을 갈구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기업경영 노하우가 부족하고 또 사업방향에 대해서도 불안한 마음이 적지 않다는 것.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교환하다 보면 자신감도 생기고 잘못 생각한 부분도 수정할 수 있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도 노린다.

    사교클럽은 중소벤처기업과 업무 제휴를 추진하는 대기업에도 파트너를 찾는 좋은 자리.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 사업을 확대하면서 함께 일하고 싶은 젊은 벤처들을 물색하기 위해 그들의 사교모임에 회원으로 등록하고 자주 참여한다”고 말했다. e-모임 등 벤처인간의 사교모임을 주최하는 홍보대행사 드림커뮤니케이션의 한 관계자는 “정보교류와 광통신망 등 온라인의 네트워크는 완벽하게 갖췄지만 벤처업체에 정작 필요한 것은 인적 교류의 장이라는 생각에서 사교모임을 기획했다”며 “갓 사업을 시작한 벤처들이 인적 인프라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벤처인들이 모임에 목을 매는 또 다른 이유는 벤처 비즈니스의 성공 여부가 누가 빨리 정보를 얻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어려울 때 언제라도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파트너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간의 만남과 정보 흐름이 자유로운 네트워크(Network)가 필요하다.

    벤처 모임들이 생겨나는 가장 큰 이유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려는 것이다. 벤처기업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인력과 자금의 열세를 극복하고 시너지 효과도 낼 수 있다는 것. 웹마스터클럽에 참여하고 있는 한별텔레콤의 여준영 홍보팀장은 “당장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이런저런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만 해도 든든하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네트워킹 구축은 벤처기업의 경쟁력을 판가름 하는 핵심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창의성과 스피드가 무기인 벤처기업은 사업을 꾸리는 데 필요한 수요가 단기간에 발생하는 특성이 있어 모든 수요를 자체 해결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그 해답을 네트워킹에서 찾는다. 서로 강점을 살리는 윈-윈(win-win)전략인 셈.

    실제로 정보기술이 취약한 재래업종과 정보통신업체 간의 짝짓기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음반산업이 대표적인 경우. 자본을 내세운 대기업의 공세에도 밀리지 않던 음반업계는 인터넷 음반 판매라는 거대한 흐름에 밀려 정보통신기업들과 제휴하고 있다. 도레미레코드와 나눔기술의 제휴는 한 사례에 불과하다. 인터넷이 네트워킹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내 짝을 찾습니다”

    서울의 한 대형 서점과 지방 서점들 간의 공동마케팅 사례도 있다. 지난해 12월 중순 서울 신대방동에 대형 서점을 낸 골드북은 인터넷을 통해 전국의 지방서점과 네트워킹을 구축했다. 전국 어디서든 고객이 주문한 서적을 24시간 이내에 배달해주겠다는 것.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위기에 몰린 서점들이 생존전략으로 네트워킹을 채택한 것이다.세계 유통질서를 지배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자상거래 시장의 패권을 쥐기 위한 네트워킹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물류업체와 정보통신 업체의 손잡기도 한 흐름이다. 대한통운은 인터넷쇼핑몰 사업을 위해 인터넷 전문업체와 제휴키로 했다. 동대문의 일부 상인들이 전자상거래 전문업체인 인터파크와 손잡은 것도 네트워킹의 한 사례. 대기업도 벤처기업과의 제휴에 적극적이다. 벤처의 발빠른 기술대응력을 자본과 연결하는 전략이 새로운 모델로 자리잡고 있는 것.

    제휴를 통한 네트워킹은 이른바 벤처도우미 산업에서도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벤처자금의 젖줄인 벤처캐피털을 비롯해 홍보·마케팅·헤드헌팅 등 아웃소싱 업체들의 제휴가 그것이다. 대구창업투자는 네트워킹으로 지방창투사의 한계를 극복한 대표적인 성공사례. 이 회사는 서울 및 수도권과 대전 지역 기업들에 투자를 더 많이 한다.

    대전에는 그 지역 벤처기업인 모임인 대덕21세기를 통해 유망기업을 발굴한다. 서울에는 지난해에 사무소를 열고 코리아벤처링크·한국코스닥컨설팅·스마트21세기엔젤 등과 협력체제를 갖췄다. 현대기술투자와 홍보대행사인 링크인터내셔널은 제휴를 하고 서로 상대편 고객을 우대해주고 있다. 코콤PR는 헤드헌팅업체와 제휴한 데 이어 인터넷 전문업체와도 협력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벤처기업 고객이 늘면서 홈페이지까지 관리해달라는 주문이 늘어서다.

    테헤란로의 벤처인들은 대개 여러 개의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10개가 넘는 모임에 이름을 올려 놓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대로 이름이 있는 벤처기업 사장의 경우 평균 3, 4개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츠닷컴의 이진성 사장은 6개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 실무자 시절 웹마스터클럽에 참가했고 이후 IB리그, e-비즈니스클럽, e-모임에 참가한 데 이어 최근에는 벤처리더스클럽에서도 초대장을 받았다.

    이 사장은 벤처리더스클럽에 가입한 것에 대해 ‘영광스럽게도’라는 표현을 썼다. 이 사장은 “벤처리더스클럽에는 워낙 대단한 분들만 오니까 뭔지 모르게 좀 부담스럽다”며 “여러 모임 중 가장 마음이 편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는 모임은 시작닷컴”이라고 말했다.

    매일 야근을 할 정도로 바쁘고 그야말로 촌음(寸陰)을 아껴야 할 벤처기업사장들이 금쪽 같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한두 개도 아니고 여러 모임에 명함을 내미는 이유에 대해 한 벤처기업 사장은 이렇게 풀이했다.

    “사업에 일단 성공하기는 했지만 지금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성장속도를 높여야 하는 강박감, 아이디어 고갈에 따른 불안감 등이 모임을 찾게 만드는 것 같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나만 그런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또 열심히 새로운 아이디어로 신천지를 개척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시 일하고 싶은 에너지를 얻기도 하는 것이 지친 몸을 이끌고 모임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요.”

    오프라인 모임에서 재미를 본 벤처기업인은 종종 자기의 온라인 고객을 오프라인 파티에 초대하는 경우도 있다. 온라인에서 접속 아이디로만 인식하고 있는 회원들에게 얼굴을 마주할 기회를 줌으로써 서로 한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겠다는 것. 이 밖에 ‘내가 매일매일 접속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라는 궁금증을 해결해 줘 소속감과 일체감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온라인 기업들이 오프라인 파티를 여는 주 목적이다. 이름하여 ‘감성마케팅’이다.

    지난 3월25일 오후 6시 반 서울 삼성동에 있는 스카이라운지 ‘라퓨타’에서는 중고품 경매사이트인 ‘와와컴(www.waawaa.com)’ 주최로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파티’가 열렸다. 이날 파티에는 추첨을 통해 초대받은 와와 회원 400여 명을 포함 관련업계 인사, 연예인 그리고 와와컴 직원 등 60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파티는 댄스타임, 와와컴 직원들의 인사, 미니콘서트 등 일반적인 파티행사 외에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 ID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실제 찾을 수 있는 게시판이 설치돼 미지의 ‘그’ 또는 ‘그녀’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실현되기도 했다. 이날 모임에 홍보를 맡은 드림커뮤니케이션의 장윤제씨는 “PC통신 동호회와 학교 내 동아리는 다른 것 아닙니까”라는 말로 오프라인 모임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벤처의 신조류 ‘감성마케팅’

    여성종합 문화공간을 추구하는 ‘우먼플러스(www.womenplus.com)’는 3월부터 세종대·덕성여대 등 서울지역 5개 대학에 에어돔을 설치하고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고 있다. 대형 컴퓨터 모니터 형태로 제작된 이 에어돔 안에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현되는 모든 것이 압축돼 있다. 스포츠 베팅사이트인 ‘와나와나컴(www.wa nawana.com)’은 아예 사이트 오픈기념행사를 오프라인 파티로 대신했다. 지난 3월22일 한강유람선을 통째로 빌리고 300여 명의 고객을 초청해 선상파티를 연 것. 연예인들이 주주로 대거 참여한 탓인지 이날 행사에는 최진실·조성모·최수종·유동근 등 유명 연예인이 참여해 눈길을 끌엇다.

    그런가 하면 아예 이런 파티를 월례행사로 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있다. 동서양 문화교류 사이트인 ‘클릭컬처(www.clickc ulture.com)’는 매달 한 번씩 내국인과 외국인이 함께하는 오프라인 파티를 개최한다. 인터넷에서 습득한 각국 문화를 실제 세계에서 피부로 느끼자는 것이 오프라인 파티의 취지. 매번 100여 명의 내외국인이 참여하며 인종·국적·연령과 성별은 불문이다. 내국인보다는 한국에 막 부임해와 국내문화에 낯선 외국인 상사원, 외국기관 공무원이 훨씬 적극적이라는 게 주최측의 설명.

    MP3로 음악을 다운받아 감상하는 네티즌에게도 최고의 선물은 역시 실제 가수의 음성이나 춤실력을 감상할 수 있는 오프라인 콘서트. 이에 따라 온라인 업체마다 회원을 위한 오프라인 콘서트나 페스티벌을 벌이고 있다.

    음악방송인 MTV의 인터넷업체인 MTV코리아온라인은 지난 3월25일 god·이현도·허쉬·코요테 등의 가수를 초청, KBS 88체육관에서 ‘MTV 웹 짱 콘서트’를 열었다. 이 밖에 인터넷검색엔진인 라이코스 코리아는 온라인 이벤트를 펼쳐 당첨된 5명에게 ‘엄정화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하지만 시내 모호텔에 나오기로 한 엄정화가 갑자기 몸져 누워 저녁식사는 탤런트 이창훈이 대신했다는 후문.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결합해 테헤란밸리의 벤처신화를 일궈가는 벤처기업들. 하지만 그들은 필연적으로 혼자서는 완전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고 그와 같은 이유로 벤처들간에 전략적 제휴를 비롯한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의 구성을 현실화하고 있다. 내게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사람들로 채워가고 있는 것.

    실제로 테헤란밸리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기술제휴가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M·A를 선언한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뿐만 아니라 테헤란밸리에서는 필요한 인력충원도 일반기업이 사용하는 공채방식보다는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한 방식을 더 선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벤처기업 홍보대행사인 벤처PR의 이백수(37) 사장은 “벤처기업 관련 모임은 기존 기업들의 모임처럼 이익단체적 성격을 갖기보다는 친목도모나 정보교환을 주목적으로 한다”며 “폐쇄적이지 않은 벤처기업 문화를 만드는 데 이들 모임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귀족화하는 일부 벤처모임

    하지만 벤처인 모임 가운데 상당수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것도 사실이다. 소위 잘 나간다는 벤처기업끼리만 모이는 경우가 많은 것. 벤처리더스클럽이나 e-비즈니스클럽, 시작닷컴, e-모임 같은 모임에는 신생벤처기업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모임을 주최하는 측에서 아예 초대장을 보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임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혀도 회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반려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이 업계에서 성공한 사장들의 경우 멤버십에 제한이 없는 공개모임에서 대거 이탈하기도 한다. 물론 이탈하는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논리는 있다. 모임 구성원이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차분하게 이야기할 분위기가 깨졌다는 것. 모임의 성격도 CEO 모임인지, 부장급 모임인지 분명히 해야 하는데 직급에 혼동이 오면서 격에 맞지 않는 모임이 됐다는 것도 모임에서 탈퇴하는 사람들의 불만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부 벤처인들은 “벤처가 태동할 즈음 격의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만나 정보를 교환하던 정신이 약해지면서 일부 벤처인이 귀족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어떤 경우에는 업계에서 의도적인 ‘왕따’를 당하는 벤처인이나 기업도 있다. 지난해 검찰에서 코스닥시장에 대한 전면 수사를 벌일 때 의혹이 제기된 기업이나 코스닥시장에 등록하기 위해 무리를 범했다고 지적받은 업체 사장들이 왕따 대상이다. 사회적으로 벤처정신을 흐리게 만든다고 지적받는 사람들을 모임에 끼워서는 안 된다는 것.

    테헤란밸리에 몰아치는 인적 네트워크 형성의 열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아니 앞으로 더욱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인적 고리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벤처인들의 만남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화려한 모임도 있지만 이름도 정해지지 않고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무명초’ 같은 모임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 없는 모임이라고 해서 참여자들의 자부심이 덜한 것은 아닐 터이고 앞으로 전개될 사업 방향을 논의하는 진지성이 희석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일부 벤처졸부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현상마저 드러내고 있는 요즈음 이름 없는 용사들의 창조적인 만남은 벤처신화를 이어나가는 촉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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