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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아이디어가 흐르는 100개 벤처클럽

  • 하태원 scoop@donga.com

정보와 아이디어가 흐르는 100개 벤처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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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벤처인들의 오프라인 모임이 활발해지자 아예 그들만을 위한 모임방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역삼동에 문을 연 ‘벤처클럽@소프라노’는 ‘성공을 만드는 벤처 네트워크’를 위한 공간제공을 목표로 삼았다. 지난 3월31일 이곳에서 동료 벤처인 10여 명과 모임을 가진 금융·증권 포털사이트 ‘머니코케이알’의 한징수(36) 사장은 “테헤란 밸리에 있어 사람을 만나기도 편하고 가격도 호텔보다 저렴해 가끔 이곳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벤처인들은 왜 이렇게 피와 살이 통하는 만남을 갈구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기업경영 노하우가 부족하고 또 사업방향에 대해서도 불안한 마음이 적지 않다는 것.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교환하다 보면 자신감도 생기고 잘못 생각한 부분도 수정할 수 있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도 노린다.

사교클럽은 중소벤처기업과 업무 제휴를 추진하는 대기업에도 파트너를 찾는 좋은 자리.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 사업을 확대하면서 함께 일하고 싶은 젊은 벤처들을 물색하기 위해 그들의 사교모임에 회원으로 등록하고 자주 참여한다”고 말했다. e-모임 등 벤처인간의 사교모임을 주최하는 홍보대행사 드림커뮤니케이션의 한 관계자는 “정보교류와 광통신망 등 온라인의 네트워크는 완벽하게 갖췄지만 벤처업체에 정작 필요한 것은 인적 교류의 장이라는 생각에서 사교모임을 기획했다”며 “갓 사업을 시작한 벤처들이 인적 인프라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벤처인들이 모임에 목을 매는 또 다른 이유는 벤처 비즈니스의 성공 여부가 누가 빨리 정보를 얻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어려울 때 언제라도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파트너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간의 만남과 정보 흐름이 자유로운 네트워크(Network)가 필요하다.

벤처 모임들이 생겨나는 가장 큰 이유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려는 것이다. 벤처기업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인력과 자금의 열세를 극복하고 시너지 효과도 낼 수 있다는 것. 웹마스터클럽에 참여하고 있는 한별텔레콤의 여준영 홍보팀장은 “당장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이런저런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만 해도 든든하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네트워킹 구축은 벤처기업의 경쟁력을 판가름 하는 핵심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창의성과 스피드가 무기인 벤처기업은 사업을 꾸리는 데 필요한 수요가 단기간에 발생하는 특성이 있어 모든 수요를 자체 해결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그 해답을 네트워킹에서 찾는다. 서로 강점을 살리는 윈-윈(win-win)전략인 셈.

실제로 정보기술이 취약한 재래업종과 정보통신업체 간의 짝짓기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음반산업이 대표적인 경우. 자본을 내세운 대기업의 공세에도 밀리지 않던 음반업계는 인터넷 음반 판매라는 거대한 흐름에 밀려 정보통신기업들과 제휴하고 있다. 도레미레코드와 나눔기술의 제휴는 한 사례에 불과하다. 인터넷이 네트워킹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내 짝을 찾습니다”

서울의 한 대형 서점과 지방 서점들 간의 공동마케팅 사례도 있다. 지난해 12월 중순 서울 신대방동에 대형 서점을 낸 골드북은 인터넷을 통해 전국의 지방서점과 네트워킹을 구축했다. 전국 어디서든 고객이 주문한 서적을 24시간 이내에 배달해주겠다는 것.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위기에 몰린 서점들이 생존전략으로 네트워킹을 채택한 것이다.세계 유통질서를 지배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자상거래 시장의 패권을 쥐기 위한 네트워킹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물류업체와 정보통신 업체의 손잡기도 한 흐름이다. 대한통운은 인터넷쇼핑몰 사업을 위해 인터넷 전문업체와 제휴키로 했다. 동대문의 일부 상인들이 전자상거래 전문업체인 인터파크와 손잡은 것도 네트워킹의 한 사례. 대기업도 벤처기업과의 제휴에 적극적이다. 벤처의 발빠른 기술대응력을 자본과 연결하는 전략이 새로운 모델로 자리잡고 있는 것.

제휴를 통한 네트워킹은 이른바 벤처도우미 산업에서도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벤처자금의 젖줄인 벤처캐피털을 비롯해 홍보·마케팅·헤드헌팅 등 아웃소싱 업체들의 제휴가 그것이다. 대구창업투자는 네트워킹으로 지방창투사의 한계를 극복한 대표적인 성공사례. 이 회사는 서울 및 수도권과 대전 지역 기업들에 투자를 더 많이 한다.

대전에는 그 지역 벤처기업인 모임인 대덕21세기를 통해 유망기업을 발굴한다. 서울에는 지난해에 사무소를 열고 코리아벤처링크·한국코스닥컨설팅·스마트21세기엔젤 등과 협력체제를 갖췄다. 현대기술투자와 홍보대행사인 링크인터내셔널은 제휴를 하고 서로 상대편 고객을 우대해주고 있다. 코콤PR는 헤드헌팅업체와 제휴한 데 이어 인터넷 전문업체와도 협력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벤처기업 고객이 늘면서 홈페이지까지 관리해달라는 주문이 늘어서다.

테헤란로의 벤처인들은 대개 여러 개의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10개가 넘는 모임에 이름을 올려 놓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대로 이름이 있는 벤처기업 사장의 경우 평균 3, 4개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츠닷컴의 이진성 사장은 6개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 실무자 시절 웹마스터클럽에 참가했고 이후 IB리그, e-비즈니스클럽, e-모임에 참가한 데 이어 최근에는 벤처리더스클럽에서도 초대장을 받았다.

이 사장은 벤처리더스클럽에 가입한 것에 대해 ‘영광스럽게도’라는 표현을 썼다. 이 사장은 “벤처리더스클럽에는 워낙 대단한 분들만 오니까 뭔지 모르게 좀 부담스럽다”며 “여러 모임 중 가장 마음이 편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는 모임은 시작닷컴”이라고 말했다.

매일 야근을 할 정도로 바쁘고 그야말로 촌음(寸陰)을 아껴야 할 벤처기업사장들이 금쪽 같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한두 개도 아니고 여러 모임에 명함을 내미는 이유에 대해 한 벤처기업 사장은 이렇게 풀이했다.

“사업에 일단 성공하기는 했지만 지금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성장속도를 높여야 하는 강박감, 아이디어 고갈에 따른 불안감 등이 모임을 찾게 만드는 것 같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나만 그런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또 열심히 새로운 아이디어로 신천지를 개척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시 일하고 싶은 에너지를 얻기도 하는 것이 지친 몸을 이끌고 모임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요.”

오프라인 모임에서 재미를 본 벤처기업인은 종종 자기의 온라인 고객을 오프라인 파티에 초대하는 경우도 있다. 온라인에서 접속 아이디로만 인식하고 있는 회원들에게 얼굴을 마주할 기회를 줌으로써 서로 한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겠다는 것. 이 밖에 ‘내가 매일매일 접속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라는 궁금증을 해결해 줘 소속감과 일체감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온라인 기업들이 오프라인 파티를 여는 주 목적이다. 이름하여 ‘감성마케팅’이다.

지난 3월25일 오후 6시 반 서울 삼성동에 있는 스카이라운지 ‘라퓨타’에서는 중고품 경매사이트인 ‘와와컴(www.waawaa.com)’ 주최로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파티’가 열렸다. 이날 파티에는 추첨을 통해 초대받은 와와 회원 400여 명을 포함 관련업계 인사, 연예인 그리고 와와컴 직원 등 60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파티는 댄스타임, 와와컴 직원들의 인사, 미니콘서트 등 일반적인 파티행사 외에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 ID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실제 찾을 수 있는 게시판이 설치돼 미지의 ‘그’ 또는 ‘그녀’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실현되기도 했다. 이날 모임에 홍보를 맡은 드림커뮤니케이션의 장윤제씨는 “PC통신 동호회와 학교 내 동아리는 다른 것 아닙니까”라는 말로 오프라인 모임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벤처의 신조류 ‘감성마케팅’

여성종합 문화공간을 추구하는 ‘우먼플러스(www.womenplus.com)’는 3월부터 세종대·덕성여대 등 서울지역 5개 대학에 에어돔을 설치하고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고 있다. 대형 컴퓨터 모니터 형태로 제작된 이 에어돔 안에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현되는 모든 것이 압축돼 있다. 스포츠 베팅사이트인 ‘와나와나컴(www.wa nawana.com)’은 아예 사이트 오픈기념행사를 오프라인 파티로 대신했다. 지난 3월22일 한강유람선을 통째로 빌리고 300여 명의 고객을 초청해 선상파티를 연 것. 연예인들이 주주로 대거 참여한 탓인지 이날 행사에는 최진실·조성모·최수종·유동근 등 유명 연예인이 참여해 눈길을 끌엇다.

그런가 하면 아예 이런 파티를 월례행사로 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있다. 동서양 문화교류 사이트인 ‘클릭컬처(www.clickc ulture.com)’는 매달 한 번씩 내국인과 외국인이 함께하는 오프라인 파티를 개최한다. 인터넷에서 습득한 각국 문화를 실제 세계에서 피부로 느끼자는 것이 오프라인 파티의 취지. 매번 100여 명의 내외국인이 참여하며 인종·국적·연령과 성별은 불문이다. 내국인보다는 한국에 막 부임해와 국내문화에 낯선 외국인 상사원, 외국기관 공무원이 훨씬 적극적이라는 게 주최측의 설명.

MP3로 음악을 다운받아 감상하는 네티즌에게도 최고의 선물은 역시 실제 가수의 음성이나 춤실력을 감상할 수 있는 오프라인 콘서트. 이에 따라 온라인 업체마다 회원을 위한 오프라인 콘서트나 페스티벌을 벌이고 있다.

음악방송인 MTV의 인터넷업체인 MTV코리아온라인은 지난 3월25일 god·이현도·허쉬·코요테 등의 가수를 초청, KBS 88체육관에서 ‘MTV 웹 짱 콘서트’를 열었다. 이 밖에 인터넷검색엔진인 라이코스 코리아는 온라인 이벤트를 펼쳐 당첨된 5명에게 ‘엄정화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하지만 시내 모호텔에 나오기로 한 엄정화가 갑자기 몸져 누워 저녁식사는 탤런트 이창훈이 대신했다는 후문.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결합해 테헤란밸리의 벤처신화를 일궈가는 벤처기업들. 하지만 그들은 필연적으로 혼자서는 완전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고 그와 같은 이유로 벤처들간에 전략적 제휴를 비롯한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의 구성을 현실화하고 있다. 내게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사람들로 채워가고 있는 것.

실제로 테헤란밸리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기술제휴가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M·A를 선언한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뿐만 아니라 테헤란밸리에서는 필요한 인력충원도 일반기업이 사용하는 공채방식보다는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한 방식을 더 선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벤처기업 홍보대행사인 벤처PR의 이백수(37) 사장은 “벤처기업 관련 모임은 기존 기업들의 모임처럼 이익단체적 성격을 갖기보다는 친목도모나 정보교환을 주목적으로 한다”며 “폐쇄적이지 않은 벤처기업 문화를 만드는 데 이들 모임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귀족화하는 일부 벤처모임

하지만 벤처인 모임 가운데 상당수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것도 사실이다. 소위 잘 나간다는 벤처기업끼리만 모이는 경우가 많은 것. 벤처리더스클럽이나 e-비즈니스클럽, 시작닷컴, e-모임 같은 모임에는 신생벤처기업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모임을 주최하는 측에서 아예 초대장을 보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임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혀도 회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반려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이 업계에서 성공한 사장들의 경우 멤버십에 제한이 없는 공개모임에서 대거 이탈하기도 한다. 물론 이탈하는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논리는 있다. 모임 구성원이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차분하게 이야기할 분위기가 깨졌다는 것. 모임의 성격도 CEO 모임인지, 부장급 모임인지 분명히 해야 하는데 직급에 혼동이 오면서 격에 맞지 않는 모임이 됐다는 것도 모임에서 탈퇴하는 사람들의 불만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부 벤처인들은 “벤처가 태동할 즈음 격의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만나 정보를 교환하던 정신이 약해지면서 일부 벤처인이 귀족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어떤 경우에는 업계에서 의도적인 ‘왕따’를 당하는 벤처인이나 기업도 있다. 지난해 검찰에서 코스닥시장에 대한 전면 수사를 벌일 때 의혹이 제기된 기업이나 코스닥시장에 등록하기 위해 무리를 범했다고 지적받은 업체 사장들이 왕따 대상이다. 사회적으로 벤처정신을 흐리게 만든다고 지적받는 사람들을 모임에 끼워서는 안 된다는 것.

테헤란밸리에 몰아치는 인적 네트워크 형성의 열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아니 앞으로 더욱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인적 고리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벤처인들의 만남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화려한 모임도 있지만 이름도 정해지지 않고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무명초’ 같은 모임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 없는 모임이라고 해서 참여자들의 자부심이 덜한 것은 아닐 터이고 앞으로 전개될 사업 방향을 논의하는 진지성이 희석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일부 벤처졸부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현상마저 드러내고 있는 요즈음 이름 없는 용사들의 창조적인 만남은 벤처신화를 이어나가는 촉매가 될 것이다.

신동아 200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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