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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TTL신화의 CF감독 박명천

‘15초의 꿈’ 만드는 이미지의 연금술사

  • 마정미 SPERO@chollian.net

‘15초의 꿈’ 만드는 이미지의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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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름에서 이미지를 뽑아 내는 일에 탁월하다. 굿모닝 증권 광고가 그렇다. 제품을 지시하는 직접적인 이름이 아닌 경우 이미지를 잡아내기 위해서는 우회해야 한다. 그래서 굿모닝의 이미지를 살린 픽토그램을 사용한 것. 그의 표현을 빌면 이 광고는 ‘쿨하게’ 가야 하고 ‘리치’해야 하며 ‘모던’해야 했던 것이다.

그가 특히 신경쓰는 것은 모델 캐스팅이다. 모델의 분위기가 광고의 분위기를 좌우하기 때문에 캐스팅에만 한두달 걸리는 경우도 있다. 심혈을 기울이는 CF일수록 시간을 비우고 모델 캐스팅에 공을 들인다. “모델이 무척 중요해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표정과 연기를 통해 온몸으로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신중해야죠. 스니커즈 CF를 찍을 때는 백여 명의 모델들을 3번 이상 만나서 보고 또 보고 해서 골랐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상상력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광고주를 만났을 때 빛을 발한다. 최근에는 광고주와 광고 대행사가 프로덕션에 많은 자유를 주는 편이다. 덕분에 그가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작업이 많아졌다. 그 편이 광고 효과가 더 높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좋은 광고주가 좋은 광고를 만든다’는 것이 진리다.

그가 광고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군대 제대후 복학해서 수강한 영상 디자인이라는 과목 때문이다. “군대에 다녀오니 바야흐로 컴퓨터와 영상의 시대가 시작되었더군요. 당시 강사는 영상인 프로덕션의 CF 감독 김종덕씨였는데, 그분이 저를 잘 보셨는지 당신 작업실에 있는 편집기와 기기들을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당시 학교의 컴퓨터와 편집기 등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었는데, 편집기기가 완비된 프로덕션이 제공된다니 얼마나 꿈같았겠어요? 아예 그곳에 눌러 살았습니다. 졸업 후에는 곧바로 영상인의 CF조감독으로 일하게 되었지요.”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했고, 그의 가족은 아버님을 비롯하여 형 누나 삼촌이 모두 미술 계통에 있다. 박감독은 대학시절 언더그라운드 만화 동아리 ‘네모라미’에서 활약했고 같은 동아리 출신인 ‘도널드 닭’의 이우일씨는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다.



“만화를 포기한 것은 좋아하는 일에 생계를 걸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이 얼마나 들어갔느냐가 기준이 아니라 장당 얼마라는 식으로 평가된다는 것이 실망스럽더군요. 질이 아니라 양으로 계산이 된다면 먹고살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하고 좋아하는 일이 혐오스러워질 것 같아서 포기한 거지요.”

그의 만화실력은 만만치 않다. 명암이 깊게 들어가고 어두운 톤에 다소 추상적이다. 내용 또한 전체주의에 대한 혐오와 자의식이 배어 있는 그림들이 대다수다. 그의 광고에 나오는 이미지들도 실은 그의 만화에 담겨 있는 모티프가 많다. 물고기라든가 텔레비전, 냉장고, 의자만이 있는 방안 풍경,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 그의 아이디어 풀은 만화인 셈이다.

영상세대의 기원

만화와 함께 오늘의 박명천을 만든 것은 영화다. 그가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 할리우드 키드로 성장하게 된 배경은 TV의 ‘주말의 명화’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길’. 어릴 때 본 이미지가 오래 남아 있다. 제소미나가 팔려갈 때 등장하는 전형적인 이별 신, 엄마가 손 흔들고 아이들이 쫓아오는 장면은 002 CF에 담겼다. 텀블링하는 장면은 ‘제7의 봉인’에서 이미지가 나왔다. 역광에 비치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기억에 남았던 것. 닉스의 묘지 편은 ‘석양의 무법자’ 이미지를 살린 것이다. 그 영화에서처럼 십자가가 끝도 없이 펼쳐진 곳을 촬영장소로 찾아 달라고 했더니 현지인은 “전쟁 중이 아니라 그런 곳은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마침내 비슷한 곳을 찾았고 촬영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영상세대의 출현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란 정치적·경제적 환경에서 비롯된다. 기성세대가 궁금해하는 영상세대의 탄생은 아이러니하게도 군부독재와 상관이 있다. 요즘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는 재능있는 감독들의 영상 입문 계기는 대부분 어린시절 ‘주말의 명화’에서 받았던 감동과 영향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고전이라 할 만한 주옥 같은 영화들이 연일 TV에서 방영되어 어린 꿈나무들에게 꿈을 꾸게 만들었다. 80년초 전두환 정부의 초기집권시절, 3S(screen, sports, sex)정책이라 불리던 국민의 우민화 정책 덕분이다.

여하튼 박감독도 ‘주말의 명화’에 세례받은 세대인데 교육열이 높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욕망이 더욱 컸다. ‘주말의 명화’ 시그널 뮤직에 대한 그의 향수는 남다르다.

“어릴 때 ‘주말의 명화’ 주제곡이 나오면 몸이 달았어요(002 CF에 삽입되기도 한 이 곡은 그에게는 ‘아랑훼스 협주곡’이 아니라 ‘주말의 명화’ 주제곡이다). 텔레비전이 안방에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려면 부모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죠. 그래서 꾀병을 부려 어머니 옆에 누워, 이불을 에스키모 동굴처럼 만들고 ‘주말의 명화’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는 언젠가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장르 넘나들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영화 감독 중에는 CF 감독 출신이 꽤 있다. ‘터미네이터’를 제작한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그 예.

이미지의 다양성

그가 펼치는 영상이 그로테스크하다는 평에 그는 “그렇지 않다”고 일축한다. 자신의 영상이나 그림이 낯선 것은 일반 사람들이 다양한 그림과 영상을 접해 보지 못해서 그렇다고 단언한다.

이해와 사고의 폭은 관습과 교육에서 나온다. 어두운 것이 우울하고 악마적이라고 회피하는 경향은 우리가 받아온 교육 때문이다. 우리가 다양한 비주얼을 보고 자란 것이 아니라 곱고 밝은 그림, 디즈니 만화 같은 그림만 보고 자랐기 때문에 이런 그림을 보면 생경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섬뜩하다, 기괴하다, 무섭다”라는 평을 들었던 마이크로 아이 가면도 그렇다. “저는 인형 수집을 좋아해서 여행 갈 때마다 인형을 사오곤 합니다. 인형은 인간의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마이크로 아이에 등장하는 인형도 그 중 하나예요. 중국인형이 유럽에 넘어가서 유행한 인형인데, 바비인형처럼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광고를 보고 악마주의라고 해요.”

이미지 자체의 어두움도 싫어하지만 지저분한 것, 불량스러운 것에도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다.

“기성세대는 치부를 다루는 것을 싫어해요. 지저분한 뒷골목을 보여주거나 장애자를 보여주면 국민 정서에 해를 끼친다고 하죠. 그러나 감춘다고 해서 사회가 깨끗하고 살 만한가요? 불량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심의에 걸리고 청소년이 사랑을 얘기한다고 해서 방송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실정이예요.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광고가 그리는 세계가 장밋빛 허구라는 것은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만의 책임은 아닌 것 같다. 파시즘의 영역을 소비주의가 대체하고 있다면 일상 속의 파시즘을 생산하는 것은 여전히 권력을 가진 기득권 층이다. 세상의 아름다움만 부각시키고 싶어하는 것은 그 어두움에 대한 책임이 기성세대에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가면 국화빵 찍어내듯이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똑같은 길을 가라고 강요합니다. 방향을 정해 놓고 그 길에 가지 않으면 낙오자 취급을 하죠, 아이들은 모르모트처럼 그 길을 가지만 막상 자유가 생기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헤매게 됩니다.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 원하는 것이 무언지 모르는, 자율성을 잃은 인간이 되는 것이죠.”

그는 맹목적인 세계화 바람에 휩쓸릴 생각도 없지만 ‘우리 것’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과연 우리 것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얼마나 있는가 묻는다. 우리 문화란 옛부터 중국 일본 미국 등 타문화들이 들어와 뒤섞이고 덧칠된 문화라는 것.

박명천 감독의 영상에 종종 등장하는 것은 물과 질주 이미지다. TTL의 경우는 연속되는 5편에 모두 물이 등장한다. 그것은 어항의 물인 경우도 있고, 너른 바다, 휘돌아가는 강물인 경우도 있고 찰랑이는 물이기도 하다. 이 모든 이미지는 광고의 타깃 오디언스인 ‘스무살’의 이미지와 관련 있다. 물은 생명의 시원이기도 하고, 고여있는 마른 늪의 이미지이기도 하며 거듭나는 재생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미래가 불확실한 스무살, 아직 애티도 벗지 못한 채 다가오는 불안한 미래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 그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적절한 소재다.

또하나의 이미지인 질주는 왠지 도시인의 외로움을 전한다. 골목길, 숨막히는 회색빛 도시의 골목을 내처 달리는 모델은 탈주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물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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