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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韓-中은 지금 어업전쟁중

중국 쌍끌이 선단 서해바다 밑바닥 훑는다

  • 최영재 cyj@donga.com

중국 쌍끌이 선단 서해바다 밑바닥 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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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30분, 흑산도 흑산항에 거의 접근했다. 정면에 호랑이 형상을 한 호장도가 보였다. 무궁화 8호 정면에 달린 파란색 해양부 깃발은 초속 10m가 넘는 바람 때문에 찢길 것만 같다. 서해 바다는 폭풍 때문에 벌써 허옇게 뒤집혔다. 흑산항은 의외로 한산했다. 피항한 어선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부두는 텅 비어 있었다. 부두에서 만난 어민들은 한·일 어업협정 이후, 연근해 어업이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흑산항은 파리만 날린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남은 어장이 서해와 남해, 제주도 어장인데, 이곳도 중국 어선 등쌀에 제대로 조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중 어업협정 체결 시기가 늦추어질수록 우리 어민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현재 한·중 어업협정은 양국이 98년 11월어업협정문과 양해각서

(Memorandom of Understanding)에 가서명한 상황이다. 양해각서란 국가가 합의한 내용이나 조약 본문에 사용한 용어 개념을 분명히 하려고 서로 양해한 사항을 기록한 문서다. 양해각서는 한·중 어업협정의 일부로서, 일단 협정이 발효되면 협정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 문서라고 볼 수 있다. 가서명 당시 양국은 서해 북부 수역 및 양쯔강 연안을 포함한 동중국해 일부 수역에서 현행 조업(상대국 정부 허가를 받지 않고 조업)을 유지한다고 합의했다.

가서명 당시 양국간에 특별히 논란이 된 구역은 두 곳이었다. 바로 서해 북부 일부 수역(37도 이북 특정해역)과 양쯔강 연안이다. 당시 양국, 중국어선은 우리 서해 북부 일부 수역에서 일년 내내 조업을 금지하고, 우리 어선은 양쯔강 연안에서 2∼3개월간 조업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를 명문화하지는 않았다. 양국은 “서해 북부에서는 한국측 법령을, 양쯔강 연안에서는 중국측 법령을 따른다”는 추상적인 표현으로만 명문화했다.

그런데 문제는 98년 11월에 가서명한 지 넉 달 뒤인 99년 3월, 중국이 새로운 국내법을 만들면서 불거졌다. 이 법은 중국 어선이라도 양쯔강 연안 부근 3개성 소속이 아니면 이곳에서 연중 내내 조업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중국측은 이 새로운 국내법을 한국측도 지켜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중 양국은 이후 금년 3월까지 이 문제를 풀려고 네 번이나 회담을 가졌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양쯔강 문제가 관건

외교통상부와 해양수산부 당국자는 이러한 금지수역이 가서명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던 어업 규제라고 설명했다. 양쯔강 하구 수역은 우리가 쉽사리 양보할 수 없는 수역이다. 이곳은 양쯔강의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지역으로 물고기 산란지며 엄청난 황금어장이다. 우리 어선들은 전통적으로 이곳에서 꽃게, 갈치, 조기, 장어를 잡아왔다. 여러 해 동안 이곳에서 조업한 어민 말을 빌리면 ‘물 반, 고기 반’이라고 부를 정도로 물고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국측으로서도 이 곳은 양보할 수 없는 지역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만약에 한국 주장대로 1년에 2개월 정도만 한국 어선을 규제한다는 식으로 명문화한다면 중국 내부에서 중국판 ‘쌍끌이 파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양쯔강 문제 때문에 협정을 차일피일 미룰 수도 없는 것이 우리 처지다. 한국보다 어선 수가 월등히 많은 중국은 양쯔강 문제를 걸어놓고 협정을 미루면 미룰 수록 유리하다. 한국 외교 당국은 양쯔강 유역 조업권을 끝까지 고집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인 이유는 협정을 늦출수록 중국어선의 공격적인 조업 때문에 우리 서해 어장의 물고기씨가 마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개할 수 없는 속사정도 있다. 서해 특정 해역 문제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중국 어선은 현재 서해 특정 해역에서 조업하지 않는다. 또 정부는 한·중 어업협정과 관계없이 97년 11월부터 이 구역 내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은 예외없이 나포하고 있다. 실제로 99년에는 이 구역을 침범한 중국 어선 20척을 나포했다. 한국측이 양쯔강 하구 조업권을 고집할 경우, 중국은 북위 37도 이북 특정 해역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현재 외교통상부와 해양수산부는 양쯔강 수역 조업 이익이 얼마나 되는 지 저울질하고 있다. 외교부는 양쯔강 하구 조업권 문제를 어느 정도 양보하더라도 가능한 한 협상을 빨리 끝내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외교통상부 당국자에 따르면 서해와 동중국해 전체 조업 실적 가운데 양쯔강 하구 실적은 약 4%라고 분석한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최근 이쪽 조업 조건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물고기는 점점 줄어들고, 중국 어선 세력이 너무 커서 가더라도 마음껏 조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근해 어선은 전국을 통틀어도 6000척 규모인데, 중국은 그 5배인 3만 척 규모에 이른다.

그러나 해양수산부 처지는 조금 다르다. 해수부는 어민의 이해 관계를 직접 살펴야 하기 때문에 양쯔강 하구 조업 문제를 쉽사리 양보할 수 없는 처지다. 어쨌든 정부는 한·중 어업협정을 서두를 계획이다. 한·중 어업협정 한국측 수석 대표인 외교통상부 아시아태평양국 이준규 심의관은 “오는 6월 안에 양쯔강 문제를 해결하고 협정에 서명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일단 양국간의 조업구역선을 확정하는 협정 서명이 끝나면 수산 당국간에 실무교섭이 뒤따라야 한다. 상대 조업 구역에 들어가는 어선 수와 그물 종류, 어획량을 결정하는 입어 교섭인데, 이 교섭도 빨라야 6개월 정도 걸린다. 이준규 심의관은 모든 과정을 거쳐서 내년 초까지 협정을 발효하는 것이 정부 목표라고 밝혔다.

3월30일 오전 10시15분, 무궁화 8호는 북위 34도 28분, 동경 126도 05분 지점을 지나며 남쪽으로 항해중이다. 2시간 전에 흑산항을 출발했다. 폭풍 때문에 꼬박 사흘을 대흑산도에 묶여 있었다. 목적지는 제주도 서쪽의 한림항. 오늘은 영해 경계선을 따라 제주도로 항해하며 중국 어선의 동태를 살펴볼 작정이다. 풍속은 초속 7∼10m, 파고는 1∼1.5m. 만만찮은 파도다. 뒤에서 밀어주는 파도라 무궁화 8호의 흔들림은 덜하다. 소흑산도가 왼쪽으로 보인다.

레이더에 중국 어선 2척이 나타났다. 북위 34도 11분, 동경 125도 02분, 소흑산도 북서 8마일 지점이다. 우리 영해선에서 4마일 안쪽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 배를 추적할 수 없다. 제주 한림항으로 갈 길이 멀다.

제주해역은 중국어선 천지

14시20분, 다시 중국 어선 두 척을 발견했다. 위치는 북위 33도 47분, 동경 125도 48분, 제주 북서 32마일 지점이다. 영해선 바깥 7마일 지점이다. 이들의 조업 방식은 역시 쌍끌이 기선 저인망이다. 우리 어선이 이 구역에서 저렇게 조업한다면 당연히 구속감이다. 그러나 중국 어선은 한·중 어업협정이 발효되지 않아서 단속할 근거가 없다.

이번에는 중국 어선이 떼로 나타났다. 쌍안경으로 뱃머리를 확인했다. 80t급이고 ‘1218 노성어’라고 적혀 있다. 이 선단은 모두 13척이다. 이들은 무궁화 8호를 발견하자 바삐 서쪽으로 도주했다. 15시 정각, 다시 중국 어선 22척을 발견했다. 북위 33도 45분, 동경 125도 52분, 제주 북서 27마일 지점에서 선단을 이룬 채 조업하고 있다. 모두가 이 구역에서 금지된 쌍끌이 그물이다. 이 배들 역시 무궁화 8호를 발견하자 서쪽으로 사라졌다.

17시40분 무궁화 8호는 제주 한림항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하얀 등대가 왼쪽으로 보인다. “포워드 스톱, 왼편 20도, 스톱, 포워드백”

김점곤 선장이 부두를 내려다보며 지시를 내린다. 무궁화 8호에서 내렸다. 6박7일 동안 함께한 승무원과 작별하고, 제주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제주시에서는 제주 어민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바다에서 만난 그 수많은 중국 어선이 머리를 스쳐갔다. 이들은 오성홍기를 높이 날리며 제주 해협과 흑산도 근방 서해 바다를 제집 드나들 듯 헤집고 다녔다. 이를 먼 발치서 바라보는 우리 어선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129시간 동안 무궁화 8호를 타고 중국 어선을 숱하게 보았다. 그러나 이를 단속하는 정부 선박은 보지 못했다. 한·중 어업협정이 체결된 뒤라도 이렇다면 과연 무엇이 달라질까.

신동아 200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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