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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보고|산부인과 의사의 인도 밀교 탄트라 체험기

‘요가섹스’를 통한 깨달음의 세계

  • 조현두

‘요가섹스’를 통한 깨달음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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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마수트라(Kamasutra).’ 나는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에 와서 ‘카마수트라’라는 고대 인도의 성경전(性經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카마는 사랑(sex), 수트라는 기교(technique)란 뜻인데, 우리 식으로 풀어보면 완전한 사랑 혹은 완전한 결혼생활을 위한 섹스 교과서인 것이다.

고대 인도인들은 결혼생활에서 성(性)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성에 무지하여 겪는 결혼생활의 좌절이나 파탄을 막고 지속적인 성생활을 통해 부부의 사랑과 건강증진에 초점을 맞춰 지어낸 것이 바로 ‘카마수트라’다.

나는 강변에 있는 요가학교에서 카마수트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 훌륭한 경전을 사 보았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성실하고 현명한 아내는 매일 아침 남편의 건강을 알아보아야 한다. 남편보다 먼저 깨어나 남편의 (팬티 속에 손을 넣어) 고환(불알)을 만져 볼지니… 불알이 탱글탱글하고 주름이 까실까실하면 건강하고, 불알이 축 늘어져 있고 뜨뜻하며 땀에 젖어 있으면 이상이 있음을 알아야 할지니라… (중략).’

산부인과 의사인 나도 놀랄 만한 고대 인도들인의 지혜로운 건강 체크법이 아닐 수 없다. ‘여자의 기분을 알아내는 편’을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여자가 데이트할 때 저번보다 더 예쁘고 화려한 옷을 입고 나오면 그것은 나에게 더욱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지니 총각들이여 분발하라….’

여자들은 남자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입으로 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은 몸 전체로 사랑의 편지를 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하간 카마수트라가 건강한 부부생활을 위한 경전이라면, 남녀의 성생활을 쾌락을 넘어서 신과 일체가 되는 종교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것이 바로 탄트라다. 즉 쾌락을 최고도의 힘으로 고양시켜 정신적인 에너지로 만드는 수행법인 것이다.

섹스에 대한 양대 학설

여기서 잠시 섹스 에너지에 대한 양대 학설을 짚고 넘어가 보자. 고대 중국인들은 세계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성생활과 건강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해왔다. 중국의 고대 의학서인 ‘의심방방내기(醫心方方內記)’는 동양을 대표하는 성경전(性經典)인데, 일반인에게는 성 지침서로 소녀경(素女經)이 더 유명할 것이다.

나는 부산대학병원 산부인과 수련의 시절 주임교수의 연구 ‘소녀경의 현대적 해석’을 도운 적이 있다. 세세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중국 황제들의 필독서인 소녀경의 주제는 ‘건강=절제 있는 성생활’이었다. 즉 접(接)하되 사정(射精)하지 말라, 즐기되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인들은 고대로부터 섹스 에너지(性力), 즉 정액은 한정돼 있다고 믿은 것 같다. 이들을 속칭 ‘곶감학파’라고 부른다. 인간의 정액은 마치 선반 위에 올려놓은 곶감 두름과 같아서 젊을 때 많이 빼먹으면 늙어서는 빼먹을 것이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요즘 TV 인기 드라마인 조선의 의성(醫聖) 허준도 그의 저서 ‘동의보감’에서 인간이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정액의 양은 서 말 서 되뿐이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다. 그래서 절제하고 절제하라, 즐기되 사정을 아껴라 하는 것이다. 여자를 수십에서 수백 명씩 거느리고 사는 중국의 황제에게 이 말이 해당될 것 같다. 그 많은 여인을 상대로 잘 때마다 사정하면 약해지고 단명할 것은 뻔한 일이 아닌가.

반대로 서양에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학파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이른바 ‘샘물학파’라고 부른다. 그들은 인간의 정액은 샘물과 같아서 퍼낼수록 맑은 물이 흘러나온다고 본다. 아낀다고 그냥 두면 샘물은 썩는다고 말하고 있다.

두 학설 모두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나는 중용을 취해서 이해하기로 했다. 샘물학파라고 해서 샘물을 마구 퍼내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곶감학파라고 해서 곶감을 절대 빼먹지 말라는 말도 아니다. 두 학파 공히 정액을 규칙적으로 적절히 자제하면서 사용하면 건강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또한 힘이 없는 노인에게도 섹스는 중요하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처럼 뜨거운 몸부림은 아니더라도 배우자를 꼬옥 안아준다든지, 사랑한다고 귓속말로 속삭여준다든지, 손 얼굴 귀 등을 만져주는 것도 노인들의 신체·정신 건강에 크게 도움을 준다. 이런 행위도 넓은 의미의 섹스다.

저승으로 가는 길목, 바라나시

인도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갠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 힌두교도들은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 죄가 씻긴다고 믿으며, 죽어서 화장한 재를 이 강에 뿌리면 그 영혼은 바로 천국으로 간다고 한다. 그래서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이곳 바라나시로 찾아오며, 강변에는 죽음을 눈앞에 둔 노인으로 가득하다. 인도인들에게 가장 큰 효행은 바라나시까지 가는 열차의 편도 티켓을 늙은 부모에게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곳 바라나시는 지상 최악의 도시 캘커타에 못지않게 먼지와 소음, 혼잡과 시체 타는 냄새로 뒤덮인 도시다. 차선도 신호등도 없는 거리에는 자전거와 인력거 사이로 마차와 승용차가 지나다닌다.

또 낙타꾼, 어슬렁거리는 소들, 소 뒤를 따라다니며 쇠똥을 줍는 인간들, 들것에 실려가는 시신들, 타다 남은 시신을 놓고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개와 천민들, 달려드는 거지들, 지붕 위로 뛰어다니는 원숭이들, 그리고 홀랑 벗고 다니는 수행승들이 있다. 내 눈에는 마치 지옥처럼 보이는데 그들의 눈에는 더할 수 없이 신성한 도시라니….

나는 이곳에서 혼돈의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탄트라나 깨달음에 대해 알려고 할수록 더욱 무지(無知)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그들의 종교나 신앙심,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가치관의 혼란을 초래할 뿐이었다. 내가 여태 자랑하고 싶어하던 것이 여기서는 추한 악(惡)일 뿐이고, 내가 평소 지극히 혐오하던 것들이 여기서는 지극한 선(善)인 것이다.

화장터에는 대나무 끝에 많은 등불을 달아 두었다. 내가 뭐하는 데 쓰는 것이냐고 물어보니, 밤에 불빛을 내 “신이시여, 제 영혼이 지금 올라가오니 보살펴주소서”라고 하늘에 신호를 보내는 등불이라고 한다.

저승으로 가는 길목, 바라나시. 밤에 나와보니 화장터의 날름거리는 불꽃들과 대나무 끝에 매달린 수많은 등불이 강에 비쳐서 정말로 영혼들이 춤을 추면서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같이 보였다. 나는 갠지스 강변에서 한 편의 시를 지었다.

‘갠지스강에서 나는 보았네./ 그들의 영혼의 깨끗함을/ 나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네./ 온갖 옷과 치장으로 가려야 하는/ 내 肉身과 악취 풍기는 내 영혼을 알았네./ 나는 무릎 꿇고 기도했다네./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주신 그대로/ 이 대지를 걸을 수 있게 해달라고./ 나는 다시 떠났다네./ 바로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가장 아름답고도 순수한 그 神을 찾기 위하여/ 내 마음속에 있는 가장 깨끗한 그 神을 찾는 순간/ 나는 깨달음을 얻고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리라.’

강변의 높은 언덕에서 몇 년 동안 수행 중인 한 수행승을 만났다. 그는 서양인들의 부(富)와 물질주의를 크게 비난했다.

“마음의 평안도 없이 가진 게 많으며 안락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들은 모두 몸의 평안이지 마음의 평안은 아닙니다.”

그분은 나에게 진정한 행복의 열쇠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다.

“당신의 욕망을 통제하시오. 그리고 자기 수련을 계속하시오. 그러면 당신은 영원한 기쁨을 얻을 것이오.”

그 말은 교회에서 들은 목사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오. 그리고 늘 기도하시오. 그러면 영원한 기쁨과 영생을 얻을 것이오”와 너무나 비슷한 말이었다. 수행방법은 다르지만 진리는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나에게 또 충고를 했다.

“한 집의 가장이 되어 그의 피부가 주름지게 되고 그의 머리가 백발이 되며 그의 자식의 자식을 보게 될 때는 그는 집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는 그곳에서 집 없이, 불 없이 오직 과일과 나무뿌리만으로 연명하다가 깨달음을 얻어 현인(賢人)이 될 수 있다.”

인도인들은 죽을 때 가장 가난하게 죽는 것을 가장 훌륭하다고 여긴다. 심지어 죽을 때는 빈손으로 죽기 위해 걸친 팬티까지 벗어버린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어떤가. 어떻게 해서든 부자로 죽으려고 한다. 남아 있는 재산을 움켜쥐고는 죽지 않으려고 발광하다가 대개 죽는다. 병원에서 환자가 죽으면 서너 명의 자식과 며느리, 친척들이 재산을 서로 차지하려고 아귀처럼 싸우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망자(亡者)의 시신은 한쪽으로 나동그라져 있고, 자식들은 멱살을 쥐고 싸우는 꼴이란….

흔히 인도인들은 가난하고 더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인도인들은 가난하지 않고 더럽지도 않다. 정작 더럽고 가난한 사람은 깨끗한 양복을 입고 다니는 우리가 아닐까 싶다.

구루 사라난다를 찾아

나는 이곳 바라나시에 와서 구루 사라난다(Guru Sarananda)를 열심히 찾았다. 물어 물어서 힌두교인만 출입을 허용하는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 시바교도처럼 이마에 점을 찍고 가로로 회칠을 했다.

사원의 집사는 나를 스와미 사라난다가 계신다는 넓은 법당(?)으로 안내해 주었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그러나 법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다시 그 집사를 붙잡고 “실례지만 그분이 어디 계신지 상세히 말을 해주시오” 하니 “그분은 저기 있지 않소. 제단 위에 저처럼 꼿꼿이…” 하고 말했다.

제단 위에는 벌거벗고 앉아 있는 동상 하나가 있었다.

“아니, 그러면 구루 스와미 사라난다님은 죽었단 말입니까(Is he dead)?”

“아니오. 그 분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No, he is alive forever).”

나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집사는 화가 나 있었다.

“죽음이란 모든 것의 사멸을 뜻하는 것인데 스승님에게 그런 치욕적인 말을 하다니, 당신 빨리 나가!”

나는 쫓겨났다. 죽음이란 우리 같은 속세 사람에게나 해당되지, 위대한 성인(聖人)은 신과 같기 때문에 죽음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 한 가지를 알고서 말이다.

나는 다음날부터 요가학교에 등록하여 수십 명이 들어가는 도장(道場)에서 요가를 배웠다. 허탈한 심정이 사라지고 나는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여러 힌두교인을 만났는데, 그중 한 분이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분은 바라나시 힌두대학의 두바이(Dubay) 박사였다.

“스와미 사라난다 스승은 몇 년 전에 입적하셨소. 그분의 수제자인 묵타난다(Muktananda)가 아직 활동하고 있소. 그 분과 나는 친한 친구이므로 당신이 꼭 원한다면 소개장을 써줄 수 있소. 봄베이에서 기차로 6시간을 가면 가네스푸리(Ganeshpuri)라는 곳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강을 건너면(강에는 다리가 없소), 원주민 왈리족이 사는 마을이 나오고 그 마을을 지나면 200년 전 그 땅을 점령한 포르투갈인이 세운 성채가 있소. 그 안에 묵타난다의 아슈람이 있소.”

아슈람(ashram)은 이른바 성지(聖地)라고 풀이할 수 있는데, 순례객을 위한 숙박시설과 사원을 갖춘 장소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박사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곳까지 가려면 제 목숨을 걸어야 할 것 같군요.”

다음날 두바이 박사는 묵타난다의 사진을 가져와서 보여주었다. 나는 그 성인의 사진을 보았는데 흠칫 놀랐다. 사진 속의 눈길이 너무나 강렬해 내가 빨려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봄베이로 가기로 했다. 인도 여행은 기차여행이다. 고속도로도 없고 비행기는 큰 도시 몇 군데밖에 연결되지 않는다. 이 대륙의 구석구석을 이어주는 것은 오로지 기차뿐이다.

기차를 타보면 이 사회가 계층사회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최상류 왕족이 타는 칸부터 최하층 빈민이 타는 칸이 구별돼 있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칸에 타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느 칸에 타야 할지 몰라 물었다.

“저는 어느 칸에 타야 합니까?”

“당신 아버지가 무엇을 했습니까?”

“아버지가 촌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저는 의사입니다.”

“당신이 의사인 것은 필요없고 아버지가 농민이니 당신은 농민계층입니다. 코끼리는 코끼리를 낳고 참새는 참새를 낳을 뿐이고 왕은 왕을 낳고 대장장이는 대장장이를 낳고 농부는 농부를 낳을 뿐입니다.”

할 수 없이 나는 농부와 의사의 중간을 택하여 이등칸 표를 사서 한바탕 죽기 살기로 승차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겨우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차 안은 더욱 충격적이다. 짐 싣는 선반까지 인간들로 가득하고 시트 아래에도 인간들로 득실거린다. 이곳에서는 인간 위에 인간 있고 인간 밑에 인간 있다더니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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