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호

장롱유감

  • 김명자

    입력2006-10-25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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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김없이 신록의 계절이 찾아왔다. 산허리에 희끗희끗한 잔설이 자취를 감춘다 싶더니 어느새 세상은 연록색으로 생동하고 있다. 잿빛을 훌쩍 벗어버리고 생생한 자태를 자랑하는 자연이 한없이 소중한 이 계절, 젊은이들은 결혼시즌을 맞아 가슴 설레는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새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혼사에서 우리네 관습으로는 장롱을 빼놓을 수가 없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딸이 자라서 시집갈 때 그 오동나무로 장롱을 만들기 위해서였으니까, 장롱은 혼수로서 그만큼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는 얘기다.

    우리 기억 속에는 새색시가 실어오는 장롱이 동네 아주머니들의 관심거리이던 때가 있다. 몇 자 짜리인가 크기로 눈을 끄는 것은 물론, 티크장이라느니 자개장이라느니 하면서, 장롱은 살림밑천으로서 톡톡히 유세를 했다. 그래서 시원찮은 물건일 때는 색시를 주눅들게 만들기도 했다. 아마도 우리 조상들은 딸을 시집 보내면서 적어도 장롱은 평생 동안 자랑스럽게 지닐 수 있는 것으로 장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졌던 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초음속비행기로 지구를 돌며 인터넷을 타고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는 오늘날, 우리네 혼인문화에서 혼수로서 장롱의 가치는 얼마만큼 달라진 것일까. 요즈음도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 마음은 장롱에서 해방된 것 같지 않다. 여전히 출가하는 딸에 대한 부모의 정성을 표시하는 것이자 시댁에 대한 예우인 듯 여겨져서, 장롱문화는 여전히 전승되는 듯하다. 물론 갖가지 가전제품이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변신하면서 주요 혼수품목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장롱 형태나 모양도 세월따라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다. 광복 이전까지는 주로 전통적인 조선시대의 장롱이 주류를 이루다가, 1950∼60년대에는 자개가 상감된 장롱과 옷장 문짝에 아치형 거울을 장식한 자개장이 유행을 탔다. 산업화가 무르익으면서 70년대 중반부터는 장롱도 대량생산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무렵부터 부유층을 중심으로 대형 맞춤가구가 성행해서 장롱이 가세를 상징하는 듯 호사를 더하게 되었다. 누구누구의 작품이고 제작에 몇십 년이 걸렸다는 둥 서민들과는 거리가 먼 소문도 돌아다녔다. 일반가정에서도 장미목, 티크, 오크, 나왕 등 각양각색 원목이 사용되면서 고급화 경쟁을 벌였다. 이후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하면서 서구식의 입식생활, 침대생활이 퍼져 나가고, 신소재 개발과 맞물려 가구도 패션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제 웬만한 가정이면 새로운 패션감각으로 가구를 치장하는 일이 주부의 행복한 소일거리가 되고 있다.

    장롱문화가 패션화하고 고급화·다양화되는 것을 마다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옛날처럼 가구를 평생 지니고 쓰고 대물림을 한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유행 따라 싫증나면 갈아치울 수 있는 대상이 되고 보니,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전국 규모로 가정에서 장롱이나 가구를 버리다 보니, 그 처리로 골머리를 앓게 된 것이다. 예컨대 시청이나 구청에서 운영하는 재활용센터 공간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것은 예외 없이 쓰다 버린 장롱과 가구들이다. 그나마 이것들은 저를 데려갈 새 주인을 기다릴 수가 있으니 다행인 셈이다. 후미진 도로변이나 주택가 한 구석에는 통째 버려진 장롱과 부스러진 장롱의 잔해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이렇듯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장롱 등 대형 가구 폐기물은 연간 약 97만 점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알뜰시장을 운영해서 가구를 교환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성과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더욱이 폐기되는 가구의 85% 정도는 플라스틱으로 붙였거나 페인트를 칠한 것이라, 소재상 리사이클조차 곤란하다. 뿐만 아니라 쓰레기로 묻자니 매립지가 부족하고, 소각하자니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 방출이 걱정거리다. 이렇게 되고 보니, 전국의 가정에서 쏟아내는 폐가구 처리는 단순히 미관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대처해야 할 환경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 가구시장은 3조6000억원을 웃돈다고 한다. 그리고 가구제작에 소요되는 목재는 연간 약 230만㎥에 이른다. 그런데 그 가운데 약 44%(원목의 경우 95%)가 외국에서 수입되는 것이고,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3700억원에 이른다. 그래서 여기저기 버려지는 장롱들로 환경오염이 심화되는 것은 물론 엄청난 외화가 낭비되는 것도 문제다. 가구 소비량의 증가는 근본적으로 산림파괴, 생물종 감소, 지구온난화 등 지구환경문제로 연결된다. 목재생산 때문에 매년 남한 면적에 해당하는 열대림이 사라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거기 살던 생태계 동식물이 멸종하고 있다. 이는 광합성작용에 의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주던 자연의 메커니즘을 차단함으로써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던 기능을 잃는 결과를 빚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의식주 문화에서 장롱이 그렇듯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데는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살림살이의 너저분한 것들을 차곡차곡 수용하고 장식용으로도 한몫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활의 변화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짚어볼 때 ‘꼭 장롱이어야 하는가’를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 생활을 살피면, 아파트 등 대단위 주거형으로 바뀌었으려니와 2년 단위의 임대차 관행으로 전국에서 이사빈도가 매우 잦다. 이사 때마다 무겁고 덩치 큰 장롱 때문에 생기는 수고와 비용은 결코 만만치 않다. 고밀도 고층 아파트까지 끌어올리다 보면 장롱에는 흠집 또는 훼손이 생기게 마련이다.

    서양 사람들은 우리 같은 장롱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집집마다 방방이 옷가지를 걸고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붙박이장을 마련해 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할 때 가장 큰 이삿짐이래야 대개 소파나 침대 정도니까 단출한 살림살이가 된다. 남들은 그렇게 합리적인 주생활을 하는데, 우리는 굳이 생활 변화에 역행하는 관습을 고집해야 할 것인가.

    이쯤 해서 장롱을 집 치장의 ‘장식품’으로 여기는 생각은 버릴 때가 되었다. 그리하여 편리함과 쓰임새를 중시하는 주생활 문화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요즈음은 일부 아파트에서 붙박이장 설치가 늘어나고 있어서 다행이나 그 속도는 아직 느리다. 소비자단체와 정부에서도 환경보전 차원에서 적극 권장하고 있으나, 의무화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장롱문화의 합리적 개선은 우리 신부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전셋집을 옮겨 다니는 사람들의 이사철 고역을 해결하고, 그보다 근본적으로 환경 살리기와 자원 아끼기 차원에서 용단이라 해도 괜찮을 것이다. 이제 거추장스럽고 겉멋 중심의 장롱문화를 훌훌 벗어버리고 장롱 없는 자유로움을 누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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