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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 2만명 ‘기적의 명성교회’ 성장비결

  • 안기석 daum@donga.com

새벽기도 2만명 ‘기적의 명성교회’ 성장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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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와 2부 예배에서 워밍업이 이뤄지면 교인들이 가장 많이 참석하는 3부 예배에서 ‘절정의 설교’를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제3부 예배를 택했다. 교회 본당 2, 3, 4층은 입추의 여지도 없이 가득 찼다. 앞의자와 뒷의자의 간격이 너무 좁아 교인들이 일어선 자세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드나들 수 없을 정도였다.

교회 본당 정면에는 가시가 휘감긴 십자가가 있고 그 밑에는 성경이 펼쳐져 있었으며 왼쪽에는 태극기, 오른쪽에는 교회기가 세워져 있었다.

시온성가대가 ‘죽임 당하신 귀한 어린양’을 장엄하게 부른 후 김삼환 목사가 강대상 위에 나타났다. 높은 천정 위에서 조명이 강대상 위로 은은하게 쏟아져 내렸다. 이런 분위기라면 설교자는 만면에 가득한 웃음을 머금고 손을 높이 들고 강대상 아래의 교인들을 사랑스런 눈으로 쳐다보며 ‘할렐루야’를 외치기에 적합했다.

그러나 김삼환 목사는 강대상에 올라서자마자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드렸다. 교인 대중들과의 접촉에 앞서 신앞에 먼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겸손해보였다. 김목사보다 학벌이 좋고 똑똑한 교인들이라도 이런 모습 앞에서는 마음의 자세를 낯출 수밖에 없었다. 기도는 길지 않았고 목소리는 간절했다. 마치 아들이 아버지에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듯 자연스러웠다.

기도가 끝난 후 김목사는 교인들을 향해 한 주일동안의 안부를 가볍게 물었다. 이날 김목사의 설교제목은 ‘나의 삶을 베드로처럼’이었는데 ‘예수는 잘난 사람, 조건이 좋은 사람을 제자로 택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 같은 무식한 어부를 제자로 택했다’는 것이 요지였다. 기독교인이라면 몇십번 들었을 법한 이 평범한 진리를 김목사는 재미있고도 감동적인 예화를 통해 교인들에게 전달했다.



김목사가 설교에서 예화로 든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성악을 전공하려고 이탈리아에 유학간 한국인 여자 유학생이 쌍꺼풀 수술을 하려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쌍꺼풀이 없었던 덕분에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됐다는 내용이었다. 두 번째는 10년전에 김목사의 구두를 닦아주었던 한 구두닦이가 이제는 목사가 되어 편지를 보내왔다는 내용이었다. 첫 번째 예화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라면 두 번째 예화는 서민층 사람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였다.

아무튼 김목사는 이 두 가지 예화를 제스처를 섞어가며 마치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동화를 들려주듯 이야기했다. 마치 원고도 없이 즉흥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같았다. 교인들이 웃음으로 화답하면서 마음의 문을 연 것은 당연한 일. 이때 “진실된 모습대로 살자” “천한 사람이라도 주님은 귀하게 쓰신다”는 간단한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했다.

김삼환 목사는 평범한 진리, 상식적인 윤리를 진부하지 않게 전달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성경말씀’이 밥이라면 자신의 체험을 반찬으로 삼아 교인들이 맛있게 먹도록 밥상을 차려놓은 것이다. 교인들도 김목사의 설교를 “계속 먹어도 물리지 않는 설렁탕이나 된장찌개”에 비유하곤 했다. 경상도 출신인 김목사는 설교중에 가끔 시골에서 자란 체험을 구수하게 털어놓기도 하고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김목사의 설교를 두고 ‘고향신학’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교인에게 고향의 맛을 느끼도록 하여 예수의 사랑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예화도 어린 시절 시골에서 고기 잡던 이야기, 죽 쑤어 먹던 이야기, 이 잡던 이야기, 화투치던 이야기 등 교인들에게 푸근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소재가 있으면 모두 활용한다. 물론 김목사의 설교에 대해 다른 평가도 있다. 김목사의 설교는 시트콤적 설교로서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는 있지만 사회를 향해 던지는 예언자적 메시지는 없다는 주장이다.

김목사의 설교에 대해 교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교인들의 체험담을 직접 들어보았다. 기독교에서는 신앙적 체험담을 말하는 것을 간증이라고 하는데 교인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 교회와 목사의 목회 방향에 대한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간증은 ‘죄를 짓고―말씀을 듣고 회개하고―새로운 삶’을 찾거나 ‘병에 걸려―목사의 안수를 받고 나은 후―새로운 삶’을 찾게 됐다는 식의 3단계 구조로 전개된다. 전자의 경우는 ‘말씀’이 강조되고 후자의 경우는 ‘치유능력’이 강조되는데 두 가지가 병행되기도 한다.

‘가시나무’ 작가의 고백

명성교회 안수집사인 하덕규씨(42)는 전자의 경우에 속한다. 하씨는 일반인들에게는 ‘시인과 촌장’의 멤버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가수 조성모가 불러 대히트를 친 ‘가시나무’의 원작자다. 가수 양은희이 부른 ‘한계령’도 하씨가 작곡 작사한 것이다. 4월14일 오전 하씨와 전화통화를 했다.

―어떻게 해서 명성교회에서 다니게 되었습니까.

“86년에 명성교회 교인으로 등록했어요. 82년부터 명성교회에 다니던 누님이 권유하기에 85년 12월31일 송구영신 예배에 참석했어요. 목사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고 교회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계속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노래를 만드느라 약을 먹어가며 밤을 새웠는데 심신이 상당히 지쳐 있었어요. 그런데 86년부터 새벽기도 집회에 거의 매일 참석하면서 그런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기도집회에 많은 교인들이 참석하는데 그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목사님의 영적 지도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목사님의 예리한 통찰력은 그 분야 전문가들도 놀랄 정도입니다.”

―김목사의 설교는 아주 단순하고 평범해보이던데요.

“목사님의 말씀은 균형이 잡혀 있어요. 이성적이면서도 은혜가 넘칩니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이해할 정도로 쉽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느낌이 한결같습니다. 영감이 풍부하신 분이지요. 드러내고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신유(병고치는 것)의 은사를 받은 분도 많아요.”

―가수 조성모가 부른 가시나무를 작곡 작사하게 된 것도 신앙생활과 관계가 있습니까. 가사가 좋다는 사람이 많은데요.

“가시나무를 작곡 작사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교회에 다니면서도 운동권 노래를 만들었어요. 구호적이거나 투쟁적은 아니지만 현실을 풍자하는 노래가 많았지요. 87년 대선에서 군정종식이 좌절되자 직접적으로 투쟁하는 목소리를 담은 노래를 제작하기 위해 녹음을 하고 있었어요. 운동권에서도 제 작품에 대한 기대를 했죠. 그런데 88년 3월 특별새벽집회를 하면서 목사님께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에 관한 설교를 하셨어요. ‘죄없는 자가 먼저 저 여인을 돌로 쳐라’는 대목 있잖아요. 그때 저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저는 그동안 김민기씨나 밥 딜런 등의 저항가수를 좋아했는데 그런 가수처럼 불의에 맞서 싸운다는 명분으로 영웅이 되고 싶어했던 제 모습을 보게 된 겁니다.”

하씨는 일면식도 없이 처음으로 통화하는 낯선 기자에게 마치 친구에게 고백하듯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3월 특별새벽기도집회 한달 내내 저 자신의 모습을 회개했어요. 집회 기간이 끝나고 작업실에 돌아와 그동안 만들려고 했던 운동권 노래 녹음 테이프를 모두 내려놓고 엉엉 울었어요. 그렇게 한참동안 울고 난 뒤 오후에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데 자연스럽게 어떤 노래가 제 입에서 흘러나왔어요. 그것을 그대로 가사와 악보로 옮겨놓은 것이 바로 ‘가시나무’입니다. 그동안 만든 운동권 노래는 모두 폐기하고 이 노래를 새롭게 녹음하기 시작했어요. 이 작업을 하면서 완전히 내면적으로 자아성찰을 하는 음반을 만들게 됐어요. 음반의 방향이 완전히 바뀐거죠. 제 삶의 방향도 전환됐습니다.”

―가시나무 노랫말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는데….

“제가 의식하고 한 것은 아니지만 신약성경 로마서에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가시나무’의 첫머리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로 시작된다. 영웅적인 심리에 들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뉘우치는 하씨의 종교적 체험이 녹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수 조성모가 부르면서 대중적인 가요로 히트한 것은 무척 흥미롭다.

―김목사의 설교 중에는 어떤 것이 가장 가슴에 와 닿습니까.

“너무 많아 한 가지만 말하기 힘든데 자동차 안에서 듣는 설교테이프 중 50번 정도 들어 외우는 설교가 있어요. 겸손에 관한 건데 지난해 여름 쯤 하신 설교입니다.”

명성교회에는 하씨 외에도 음악활동을 하는 교인들이 많은데 그룹 핑클의 이진과 성유리도 명성교회에 다닌다.

명성교회 협동장로를 맡고 있는 심재현(62)씨는 조각가다. 심씨는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인 오는 5월18일에 개막될 ‘광주 5·18 현황 조각공원’의 조형설치물을 만든 주인공이다. 심씨는 광주시의 공모에 응모했다가 당선돼 97년부터 조형물을 제작하여 99년말에 ‘아 광주여, 영원한 빛이어라’란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조형물에서는 좀처럼 쓰지 않는 스테인리스를 사용해 빛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심씨는 홍익대 미대 조각과를 졸업하고 70년에 도미, 오티스 미술학교에서 유학하고 줄곧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95년에 귀국했다.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에서 살고 있는 심씨는 96년부터 명성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미국에 오래 살았는데 김삼환 목사의 존재를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미국에 있을 때 김삼환 목사님의 설교테이프를 들었는데 좋았어요. 목사님께서 LA영락교회에 오셔서 부흥회를 하셨는데 누가 녹음을 했다가 저에게 들려줬어요.”

―그때 느낌은 어떠했습니까.

“우리 목사님 말씀은 문장이 아주 짧아요. 함축성있는 짧은 문장이 아주 아주 쉬워요. 원래 저는 지적인 설교를 좋아했어요. 신학이나 철학적으로 어려운 설교를 하지 않는 목사는 공부를 하지 않는 목사라고 무시했어요. 그런데 우리 목사님은 영적인 갈망을 채워줄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귀국한 뒤 명성교회를 나가게 됐습니까.

“한국에 와서는 어느 교회를 나갈지 교회 ‘쇼핑’을 많이 하고 다녔어요. 소망교회 광림교회 등 부흥하는 큰 교회마다 어떤 메뉴가 있는지 알아보러 다녔는데 결국은 명성교회에 안착을 했어요. 쇼핑을 많이 해보고 결정을 한 겁니다.”

심씨는 껄껄 웃으며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자신이 다닐 교회를 물색하러 다니는 것을 ‘쇼핑’이라고 표현한 것도 흥미로웠다. 요즘 도시 교인들은 이 교회 저 교회 다녀보고 선택을 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쓰는 것 같았다.

“좋은 목사님을 만나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심씨는 명성교회에 등록하기 전에 그 교회 교인들을 통해 김삼환 목사의 사생활이나 생각에 대해 이모저모 알아봤다고 한다.

―김목사는 서울 변두리인 명일동에서 개척교회를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런 점에도 감동을 받았습니까.

“목회자들도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시험을 많이 받아요. 우리 교회는 얼만지는 자세히 몰라도 헌금이 참 많이 들어와요. 이 돈을 우리 교회를 위해 사용하면 남보다 더 큰 교회를 지을 수 있어요. 그런데 헌금의 상당액을 선교비로 사용합니다. 지방이나 농촌, 해외 선교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겁니다.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아요.”

심씨는 자신이 간접적으로 들은 김목사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인상이 깊었던 모양이다.

“목사님은 전세를 든 아파트를 몇 번이나 옮겨다니셨어요. 어려운 농촌 목회자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교회는 돈이 없으니 할 수 없이 아파트 평수를 줄여 이사를 가면서까지 도와준 겁니다. 해외에서 부흥회를 하면 받는 사례금은 그곳에서 어려운 교회를 도와주는 데 쓰거나 모두 헌금해요. 이만한 윤리의식을 가진 목사님이면 그 교회 다닐 만하지요.”

―이 교회 저교회 ‘아이쇼핑’을 했으니 감각도 남다를 텐데 명성교회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교회 분위기가 좋아요. 우리 교인들은 참 열심히 봉사해요. 열심히 일하는 일꾼의 모습 있잖아요. 우리 목사님은 부목사님들을 모두 모아놓고 머슴목회를 강조합니다. ‘주의 종’,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면서도 섬김을 받으려는 목회자도 많지 않아요. 목사가 교인들에게 대접을 받으려고 하면 은근히 싫어지는데 우리 목사님은 그런 면이 전혀 없어요.”

개척 초기부터 새벽기도로 승부

김삼환 목사는 경북 영양의 전형적인 유교집안에서 1남9녀중 막내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종가집의 장손으로서 일년에 수없이 제사를 치러야 했기 때문에 가족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목사의 모친은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낳은 귀한 아들이 죽지 않고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나가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김목사를 등에 업고 20리 길을 다녔다고 한다.

어머니로부터 신앙심을 물러받은 김목사는 17세 때 시골교회의 종지기를 자원했다. 요즘 도시 교회야 종을 치지 않지만 시골 교회에서는 예배시간을 알리는 종을 치곤 했다. 김목사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새벽종을 쳤다. 김목사가 서울에 와서도 새벽기도를 중시한 것은 이때부터 쌓은 새벽기도 훈련의 결과로 보인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서신학교에 입학한 김목사는 흥구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후 월전교회, 풍북교회, 해양교회 등 지방에서 목회하다가 1980년에 명성교회를 개척한 것.

당시 서울은 70년대 강남개발붐으로 잠실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는 중이었다.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목사들 대부분이 잠실이라는 거대한 어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김목사는 종점인생들이 모이는 변두리 명일동에서 개척초기부터 새벽기도에 승부를 걸었다. 당시 다른 목회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던 새벽기도에 매진한 결과 명성교회는 눈부신 성장을 이루게 됐다. 명성교회에 등록한 교인들 중 대부분은 이 새벽기도에 매료됐다고 한다. 다음은 매달 30만부가 발행되는 월간 ‘좋은 생각’의 대표 정용철씨(46)의 말이다.

“88년 당시 우리 교회는 신축중이었기 때문에 피닉스 상가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3월 경에 아는 분이 권유하기에 새벽기도 집회에 참석하게 됐는데 아주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새벽거리에 수백명의 교인들이 힘차게 걸어가는 모습과 상가건물의 철판 계단을 올라가는 발자국 소리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김삼환 목사는 균형있는 교회성장을 위해서는 어느 한 가지 요소에만 집착해서는 안되며 열 가지 이상에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설교와 행정, 재정, 목회자, 당회, 제직회, 성가대, 행사, 교육정책, 교인관리 등 모든 부분에 관심을 갖고 추진할 때 교회는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명성교회는 현재 부목사 25명, 행정목사 1명, 교육목사 4명, 협동목사 3명. 전도사 22명이 있고 교구는 25교구 2200여구역으로 구성돼 있다. 각 교구는 부목사들이 교구장을 맡아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지도하고 있다. 지역적인 조직 외에 기능별로 위원회를 만들어 교인들이 교회생활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당회장인 김삼환 목사는 교회의 각 기관에서 전반적인 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최대한 권한을 위임하고 교인관리의 실제적인 분야인 교구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교구장에게 위임하며 중요한 사항들만 직접 관여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금요 구역장 모임에서 김목사는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구역장들은 각자 구역으로 돌아가 구역예배를 본다. 구역예배에서 파악된 각 교인의 상황은 바로 교구장에게 보고가 되고 교구장은 다시 당회장인 김목사에게 보고하고 있다. 따라서 김목사는 교인들의 상태를 늘 파악하고 있다.

재정은 헌금액중 40%를 선교비로 사용하고 있는데 연간 70~89억원 규모다. 현재 국내에는 700개의 지방 교회가 지원을 받고 있고 45개국에 해외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해외선교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는 파키스탄의 경우.

1992년에 개척된 쓰다에 파키스탄 교회(파키스탄의 소리교회)는 세운지 8년 만에 주일예배에 400명이 모이는 큰 교회공동체가 되었으며 특별새벽집회에는 매일 200명 이상이 모인다. 36개 구역과 24개 전도구역에서 구역장들이 활동하고 있다. 명성교회에서 세운 쓰다에 파키스탄 봉사센터는 30여개의 지역교회를 도와 정착시켰으며 17개의 초등학교, 중학교에 2000여 명의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다. 문맹퇴치학교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3000명 이상의 젊은이들을 문맹에서 깨쳤다. 92년 시작된 파키스탄 성서신학교도 올해 6회 졸업생을 배출하게 됐으며 이미 배출된 40여명의 졸업생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교회를 개척하거나 기존 교회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도 명성교회는 특수선교에 신경을 쓰고 있다. 외국인들을 위한 쉼터도 제공하고, 영어예배와 비영어권 외국인들을 위한 다국어 예배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서울의 명일동과 고덕동을 비롯, 목포, 대구, 전주, 광주에는 6개 장학관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이 기숙생활을 하고 있다. 1909년 미국 북장로교 소속 선교사가 세운 안동성소병원도 명성교회에서 인수했는데 만성질환인 신부전증 환자들에게는 평생 혈액투석 치료를 무료로 해주고 있다.

교인들의 영적 상태와 갈증을 제대로 파악한 김삼환 목사의 설교, 교회 생활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 교인들의 네트워크와 조직, 여기에서 파생되는 에너지를 구제와 선교에 사용하는 것 등이 명성교회를 활력있는 공동체로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러면 앞으로 김삼환 목사가 물러나게 되면 어떻게 될까. 4월8일 오전 4시 새벽기도회에서 만난 한 교인의 말이다.

“김삼환 목사님의 말씀이 좋지만 다른 목사님의 말씀도 좋습니다. 새벽기도에 김삼환 목사님만 보고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님께서 늘 강조하는 ‘오직 주님’만 보고 나오는 거죠.”

신동아 200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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