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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21세기’ 뉴리더 뉴트렌드<3>|문학편

테크노 픽션, 퓨전문학의 첨단작가 그룹

  • 김성곤

테크노 픽션, 퓨전문학의 첨단작가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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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작가들은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해하고 컴퓨터와 뉴미디어에 능하다. 하이퍼 픽션, 테크노 픽션, 퓨전문학, 되받아쓰기 등은 이들의 주요 영역이다.》
20 세기 후반부터 작가들은 유전공학과 생명공학 같은 첨단 테크놀로지의 부작용을 생태주의적 시각으로 경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과학기술을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공학이론이나 생명공학이론을 직접 작품 속에 대입해 설득력 있는 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그들이 첨단 테크놀로지 이론을 공부했고, 컴퓨터와 뉴 미디어에 능하며, 멀티미디어적 인터액티브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점도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특색이다. 문단과 학계에서는 이 특색있는 새로운 작가들을 ‘정보 시스템 작가’라고 부른다.

그중에서도 DNA의 구조를 연구하는 유전학자들과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을 다룬 ‘골드 버그 변이(The Gold Bug Variations)’라는 소설을 쓴 리처드 파워스(Richard Powers)는 가장 주목받는 작가다. 파워스는 문학과 과학과 음악 사이의 장르를 해체하며, 바흐의 ‘골드버그 변주곡(The Goldberg Variations)’의 구성과 장치, 그리고 첨단 유전자 이론을 자신의 소설과 뒤섞는다. 그래서 파워스의 소설은 문학작품이면서 리드미컬한 악보이고, 악보이면서 재미있는 과학이론서가 된다. 예컨대 파워스의 소설은 마치 바흐의 변주곡처럼 처음과 마지막이 아리아로 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 30개의 변주곡이 들어가 있다. 물론 파워스가 작곡하는 변주곡은 바흐 시대와는 달리, 유전자의 ‘변이(variations)’를 의미한다.

파워스의 소설 ‘골드 버그 변이’는 또 에드가 앨런 포의 추리소설 ‘황금충(The Gold Bug)’과도 연결된다. ‘황금충’의 주인공은 숫자의 다양한 변이를 통해 암호를 해독한 뒤 감춰진 보물을 찾는다. 파워스는 거기에다 유전자의 암호풀이와 유전자 변형의 모티프를 병치시킨다. 즉 ‘변이’는 우리가 그 수수께끼를 풀기에 따라 다양성과 보물찾기가 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우리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파워스를 비롯한 정보시스템 작가들은 유전공학, 생명공학, 심리학, 사회학, 컴퓨터 과학, 생태학 등을 문학에 접목시킨 새로운 형태의 소설을 창출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이퍼 픽션’- 로버트 쿠버

‘하이퍼’라는 말은 원래 기존 ‘공간’의 범위를 초월하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라는 뜻인 ‘하이퍼 스페이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하이퍼 픽션’은 새로운 공간 속에서 쓰이는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퍼 픽션’은 컴퓨터 화면에 쓰이지만, 단지 화면에 문자로 써서 종이책처럼 읽는 컴퓨터소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이퍼 픽션’에는 시작도 끝도 없고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도 없다. 즉 ‘하이퍼 픽션’은 활자매체처럼 텍스트를 처음부터 읽을 필요도 없고, 좌우 상하의 순서로 읽을 필요도 없다. 독자가 화면에 나타난 수많은 아이콘 중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 마우스로 클릭하면, 화면은 삽시간에 시공을 뛰어넘어 독자가 선택한 경로로 이동한다. 그러므로 텍스트의 현재 화면은 작품의 그 어느 부분과도 연결될 수 있다. 그래서 ‘하이퍼 픽션’은 ‘대화적 픽션(Dialogic Fiction)’ 또는 ‘쌍방향적 픽션(Interactive Fiction)’이라고도 불린다. 왜냐하면 ‘하이퍼 픽션’은 저자가 읽는 순서를 정해 놓는 종래의 종이소설들과는 달리, 독자들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다른 텍스트 공간으로 이동하며, 저자와 창조적인 교류를 하기 때문이다.

‘하이퍼 픽션’의 원조는 마이클 조이스지만, 현재 ‘하이퍼 픽션’을 이끌어가고 있는 작가는 브라운대학의 창작 교수이자 저명한 소설가인 로버트 쿠버(Robert Coover)다. 쿠버는 “사람들은 ‘하이퍼 텍스트’를 읽으면서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엄청난 이야기의 저수지가 화면 아래에 있음을 감지한다”고 말한다. 즉 종이에 쓰이는 활자소설과 달리 ‘하이퍼 픽션’은 독자가 저자와의 공조를 통해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 개념의 소설은 문학작품이 더 이상 저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독자와 공유하는, 또는 독자와 공동으로 창조하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이퍼 픽션’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21세기의 새로운 소설양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테크노 픽션’-마크 아메리카

‘테크노 픽션(Techno-Fiction)’은 테크놀로지를 이용해서 쓰는 ‘전자소설’을 지칭한다. 그래서 테크노 픽션에는 그래픽이나 사운드, 음성이나 동영상이 들어가며 그 속에서 기계와 문학, 또는 테크놀로지와 글쓰기가 서로 혼합된다. 테크노 픽션은 물론 하이퍼 텍스트를 이용하는 멀티미디어적 개념의 소설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최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 기법을 글쓰기에 차용한다는 점에서 멀티미디어 기능을 우선시하는 하이퍼 픽션과는 또다른 형태다. 테크노 픽션은 또 저자와 독자가 인터넷상에서 신용카드로 직접 작품을 사고 판다는 점에서 출판업자나 중간도매상, 또는 서점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테크노 픽션에서 모든 것은 기계와 과학기술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마크 아메리카(Mark Amerika)는 현재 테크노 픽션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작가다. 원래 기계를 두려워하고 그래서 종이책에 인쇄되는 문자 소설만을 출판하고 있었던 그는 10여 년 전부터 미래의 소설은 변할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고, 그때부터 테크노 픽션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나는 이제 소설가, 단편작가, 시인, 평론가, 온라인 칼럼니스트, 잡지 편집인, 라디오 프로그래머다. 또한 나는 디지털 오디오 테이프에 종종 음악을 취입하고, 비디오나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아직 애니메이션이나 디지털 그래픽 기획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조만간 그렇게 할 예정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작가가 그런데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느냐”라고 묻는 사람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크 아메리카는 “비록 존 바스나 토머스 핀천 같은 포스트모던 작가들이 솔 벨로나 존 업다이크 같은 리얼리즘 작가들보다 새로운 소설양식을 창출해 냈지만, 컴퓨터 시대인 지금은 그보다 더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테크노 픽션”이라고 말한다. 마크 아메리카는 ‘글쓰기의 과학을 모델삼아 만든 글쓰기 기계’인 ‘그래마트론’이라는 테크노 픽션을 출간했는데,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기법과 SF적 배경으로 쓰인 이 소설은 테크노 픽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소수인종/여성문학’-루이스 어드릭

최근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는 소수인종 작가 중 원주민계 미국작가인 루이스 어드릭(Louise Erdrich)은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 그녀의 작품세계 근간에 깔려 있는 것은 물론 백인 지배문화에 대항하는 원주민계 미국인들의 저항과 비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에는 원주민 특유의 구술 설화 전통, 독특한 서사구조, 그리고 페이소스와 강렬한 유머 감각 등이 깃들여 있어서 시종일관 독자들을 즐겁게 해준다. 그러나 독자들은 곧 그 웃음 속에 감추어진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발견하고, 비수를 드러내지 않고서도 충분한 저항효과를 거두는 어드릭의 탁월한 예술적 형상화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루이스 어드릭의 대표작 ‘사랑의 묘약’(Love Medi cine, 초판 1984년, 증보판 1993년)은 각기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긴밀히 연결되는 18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특이한 소설이다. 다시 말해 ‘사랑의 묘약’은 단편과 장편에 대한 종래의 구분과 경계를 초월하는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신선한 느낌을 준다. 단편의 간결함과 긴장감 속에서 매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어느새 18편의 이야기들을 관통하고 조감하는 통일된 주제와 커다란 그림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드릭은 이 작품에서 미합중국 정부가 정해놓은 보호구역에서 살고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고통스럽고 박탈당한 삶의 묘사를 통해 지배이데올로기의 억압과 착취, 밀려나는 주변부 문화와 전통의 상실, 그리고 인종간, 세대간, 남녀간의 갈등과 충돌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어드릭은 그와 같이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투쟁이 아닌, 블랙유머와 패러디를 통해 때로는 환상적으로 때로는 신화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예컨대 언덕 위에 있어 늘 보호구역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수녀원,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이며 남편인 인디언들이 갇혀 있는 형무소, 그리고 원주민 청년을 징집해 정신이상자로 만들어 돌려보낸 월남전. 이 모든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백인 지배문화의 상징이다. 어드릭은 21세기를 이끄는 소수인종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백인 주류 문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참신하고 새로운 문학양식을 창출해 내고 있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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