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호

탈진상태에서 맛보는 황홀감의 극치

  • 김연수

    입력2006-10-25 1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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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승부욕, 인간승리 따위의 단어는 깡그리 잊어버려야 한다. 마라톤은 스스로 즐겁기 위해서 달리는 운동이다. 전혀 즐겁지 않다면, 그 순간 달리기를 멈춰야 한다. 다른 운동은 어느 정도 기술을 익혀야만 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데, 마라톤은 즐거움을 맛볼 줄 아는 게 바로 기술이다. 》
    나는 마라톤은 섹스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고 나면 온 몸이 땀 범벅이 되고 진이 다 빠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농담이고, 경험해보기 전에는 그 황홀감이 어떤 건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섹스를 해봤다고 해서 남들에게 권하지 않지만, 마라톤은 자꾸만 권하게 된다는 것. 하지만 입이 마르게 아무리 설명해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게다가 마라톤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개는 거부감을 가진다. 마라톤에 관심이 있다면 이 거부감을 잘 이해해야만 실제로 달리기를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왜 달리기를 싫어할까

    일반적인 한국 사람은 달리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예비군 통지서를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논리적으로 말하기 이전에 우선 본능적으로 몸이 거부감을 갖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마라톤대회에 참가해서 한번 달려보라고 권하는 과정에 그 거부감을 경험한 나는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달리기에 빠진 사람들의 첫번째 증상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보라고 권한다는 점이다. 나 역시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주위 사람들에게 달리기를 권했다. 그런데 막상 달리기를 권하면 대부분 거부감을 표시한다. 한번 달려보겠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나마 매일 달리면서 연습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왜 한국사람은 달리기를 싫어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한 친구가 말한 첫번째 해답은 양반문화가 잔존하기 때문이라는 것.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은데 굳이 달려봐야 하는 이유가 뭐냐는 얘기인데, 양반과 거리가 있는 사람들도 달리기는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그다지 설득력 있는 것 같지 않다. 내가 간신히 끌어낸 두 번째 해답은 잘못된 우리나라 체육교육에 그 원인이 있다는 점이다. 나 역시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스물다섯살 이전까지 달리기라면 치가 떨리는 몇몇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시절까지 내가 기억하는 달리기는 대학 입학시험을 앞두고 숨이 턱에 차오를 지경까지 달려야만 하는 오래달리기와 웃통 벗고 눈 맞으며 달려야만 하는 군대의 전투구보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건강에 좋다지만, 왜 그 고역을 사서 한단 말인가? 하긴 입시체육, 군대체육의 대명사인 오래달리기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해답도 뭔가 좀 부족했다. 그렇다면 이제 강요하는 사람도 없으니 즐기면서 달릴 수 있지 않은가? 실제로 나 역시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 그랬다. 운동화끈을 묶을 때만 해도 구보에 끌려가는 것처럼 싫었다. 하지만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고 혼자서 달려나간다는 그 쾌감에 빠진다. 그러는 동안 오래달리기와 전투구보는 달리기와는 전혀 다른 운동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은 쉽게 달리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달려본 사람만이 안다

    또 뭐가 부족한 것일까? 그 중요한 원인을 나는 오늘 ‘전주-군산 마라톤’ 중계방송을 보다가 깨달았다. 한동안 대회에 나가느라 마라톤 중계를 보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중계를 보게 됐다. 원래 마라톤 중계를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가뜩이나 어제 경주벚꽃마라톤에 참가한 장인이 기록을 단축했다는 소식을 전해온 터라 더했다. 그런데 중계를 보는 과정에 점점 그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조폐공사 형재영 선수가 달리는 내내 나는 과연 그가 동아마라톤 우승자인 정남균 선수의 기록을 깰 것인지 조마조마했다. 왜냐하면 형재영 선수가 정남균 선수보다 좋은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한다면, 2000년 시드니올림픽대회 출전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35㎞까지의 기록으로 볼 때는 아슬아슬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 화면을 바꿔 느릿느릿, 몇몇은 걸어서 결승점을 통과하는 일반 참가자들을 보았을 때다. 그 모습을 보자 조마조마하던 긴장감이 풀렸다. 미안한 얘기지만, 형재영 선수는 하나도 안 부러웠는데 그 일반인들은 너무나 부러웠다. 반드시 올림픽출전권을 따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달리는 마라톤이라면 나는 사양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나운서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나운서는 계속해서 형재영 선수가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둥, 그런 속도로 뛰어간다면 정남균 선수의 기록을 깰 수 있다는 둥의 멘트를 계속했다. 내가 예상시간을 계산해본 것 역시 그런 멘트 탓이었을 것이다. 마라톤을 직접 해보지 않았다면 나도 형재영 선수가 그런 자세로 결승점에 들어가 정남균 선수의 기록을 깰 수 있을지 없을지 초조해하며 지켜봤을 것이다.

    하지만 마라톤은 전혀 그런 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나는 그런 마음을 버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게 달리기의 즐거움을 잠시나마 잊게 한 그 중계방송을 원망했다. 만약 마라톤이, 그 아나운서가 형재영 선수에게 말하는 것처럼 10초를 단축하지 못해 아깝게 탈락했다고 결론짓는 운동이라면 애당초 마라톤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전문선수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있지만, 나는 이런 식의 태도가 일반인들이 달리기를 꺼리게 만드는 대표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첫걸음은 ‘인간승리 환상’에서 벗어나기

    초코파이 세 개를 모두 챙겨먹고 나서도 기진맥진해서 사지를 비틀며 결승점에 들어간 뒤에야 나는 마라톤을 일러 인간승리니 뭐니 하는 말이 수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승점에 들어가면 항상 다리가 풀려서 빨리 결승점에서 나가라는 진행요원들의 핀잔을 듣기 일쑤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마라톤이 어려움과 고난을 이기면서 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려가는 운동이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사실 그렇게 멋진 게 아니다. 다리는 당장이라도 뒤틀릴 것 같고 물집 잡힌 발바닥은 화끈거린다. 그래도 웃음이 실실 나올 정도로 행복하다. 그 행복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무지 난감하지만 어쨌든 ‘자신을 채찍질’ 운운하는 것은 순전히 거짓말이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일은 바로 이런 식으로 언론이나 영화가 만들어낸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지난 동아마라톤은 하프코스 이상만 신청을 받았는데도 8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침 일찍 광화문에 모였다. 그 사람들이 자기를 채찍질하며 인간승리를 맛보기 위해서 모였다고 하면 자학도 그만한 자학이 없을 것이다. 물론 자학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막상 참가신청을 해놓고서는 연습을 하나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고통이 없다. 하지만 하프코스 이상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은 대개 매일 5㎞ 이상 달리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행복에 겨워 달리기를 한다. 거짓말 같지만 정말 그렇다.

    내가 마라톤을 모든 운동 중에 최고라고 생각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마라톤은 달리는 사람 모두가 승자다. 결승점까지만 들어가면 모두에게 기록증이 주어진다. 순위를 매기는 대회도 있지만, 순위를 매기지 않는 게 보통이다. 작은 대회에서는 직접 기록증을 작성하게 한다. 그럴 때면 모두가 당당한 표정으로 자신의 정확한 기록을 써내려간다. 잘하지 못했을 때도 그렇게 뿌듯하기만 한 일은 마라톤밖에 없는 듯하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든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승부욕, 인간승리 따위의 단어는 깡그리 잊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라톤은 즐겁기 위해서 달리는 운동이다. 전혀 즐겁지 않다면, 그 순간 달리기를 멈춰야 한다. 다른 운동은 어느 정도 기술을 익혀야만 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데, 마라톤은 즐거움을 맛볼 줄 아는 게 바로 기술이다.

    지금은 인터넷이 있어 매주 미국의 유명한 마라톤 잡지인 ‘러너스월드(Runner’s World)’가 보내주는 훈련지침이나 몸 관리법을 읽을 수 있다. 예컨대 이번 주에 배달된 전자우편의 훈련지침을 보면 이렇게 써놓았다. “항상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몸이 찌뿌드드할 때는 최고기록에서 상당히 멀어질 수 있다. 느리게 뛸 때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항상 같은 기록을 내려고 들지 말고 예전 기록과 비교하려고 하지 말라. 그래도 자꾸 옛날 기록이 생각나서 견딜 수 없다면 코스를 바꾸거나 시계를 풀고 달려라.” 또 이런 지침도 보내왔다. “가장 좋은 연습은 당신에게 자신감과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이 행복한 기분은 다시 새로운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준다. 대회에 나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할 때가 되었다면, 자기 자신을 믿어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런 점이 ‘러너스월드’처럼 역사 깊은 마라톤 잡지가 가진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러너스월드’는 독자들에게 마라톤이란 운동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때로는 이 잡지가 마라톤 잡지가 아니라 마인드컨트롤 잡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정도다. 이런 지침과 함께 멋진 달리기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달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만드는 게 이 잡지의 매력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마라톤대회를 주관하는 신문사에서 대회 때마다 만드는 책자가 있지만, 괴로움으로 점철된(물론 환희로 끝나기는 하지만) 수기나 아킬레스건염이나 연골연화증 치료법 등 너무나 전문적인 지식, 마치 해병대전우회처럼 일반인은 감히 근접도 하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마라톤동호회 소식 등으로 채워져 있다. 물론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쯤 읽어야만 하는 글들이지만, 일반인들이 달리기에 대해 가지는 두려움을 너무 과소 평가하는 것은 아닌가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내게, 달리기에 대한 두려움과 제대로 뛰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잊게 만든 책이 바로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글라서가 쓴 ‘긍정적 중독’이다. 한국심리상담연구소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기관에서 내놓은 책이라 일반인의 눈길을 끌기에는 약간 어려움이 있었지만 책을 펼쳐드는 순간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술 마약 도박 등의 중독현상과 그 효과는 비슷하지만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심리현상으로 ‘긍정적 중독’현상을 연구한 책이다. 글라서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해로운 중독현상만큼이나 바람직한 중독현상이 많은데, 이 중독현상들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우리 삶을 더 만족스럽게 해준다. 그러면서 글라서는 그중 가장 대표적인 ‘긍정적 중독’현상으로 달리기와 명상을 든다. 글라서는 그 중독현상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설명하기 위해 세계적인 마라톤선수인 이언 톰슨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든다.

    “E.M. 포스터는 노 젓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노 젓는 사람들이 모든 체육인의 목표인 초월상태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달리기를 할 때도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달리기 그 자체가 되는 일이 일어난다. 나는 훈련을 통해 이 사실을 깨달았다. 단지 운동화를 신었고 근육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즐겁기 시작한다. 이 진정한 황홀감은 순환적이다. 나는 행복하기 때문에 달리고 달리기 때문에 또 행복하다. 이 과정에 나는 자신을 가장 순수하게 알 수 있었다. 달리기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깊이 깨닫게 된다.”

    글라서는 이 긍정적 중독을 분별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①자발적으로 매일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것으로 경쟁적이지 않은 것 ②누구나 쉽게 할 수 있으며 숙달되기 위해 정신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 ③혼자서도 할 수 있고 여럿이 같이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것 ④행할 만한 신체적·정신적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 ⑤자신만이 그 일의 성과를 판단할 수 있는 것 ⑥스스로 비판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것.

    글라서는 1974년 ‘러너스월드’ 독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달리기가 바로 긍정적 중독의 하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설문에 응답한 사람 중 존 로머가 “달리기에 관심은 있으나 달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규칙적으로 달려보라고 권하고 싶습니까?”라는 설문에 응답한 내용은 입시체육이나 군대체육에만 길든 우리에게는 사뭇 충격적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달리기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달리기는 증오심과 공격심을 가라앉히고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며 자존심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들이 모두 달리기를 한다면 혁명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자동차가 없어질 것이며 어리석은 사치와 억압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아 환경이 보존되고 인종차별이 없어질 것이다.”

    글라서는 매일 규칙적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안에 긍정적 중독에 빠지고 일단 이 상태에 빠지면 하루도 달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게 된다고 결론 지었다. 아울러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태도가 긍정적 중독에는 가장 중요하며 긍정적 중독에 빠지면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왜 마라톤에 빠진 사람들이 한사코 달리기의 즐거움을 남들에게 강조하는지 이제는 알 것이다. 마약, 도박, 술에 빠진 사람들처럼 그들은 마라톤에 중독된 것이다. 중독된 주제에 그들은 왜 나쁜 기록이 나와도 결승점 주변에서 웃고 다니는지 이제는 알 것이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존중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쯤이면 단순히 살을 빼기 위해서, 혹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어서 달리기를 한다는 생각은 저 멀리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달리기 목표를 거리보다는 시간에 둬라

    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처럼 마음가짐이다. 5년 전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나 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많았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둔 거리를 달렸다. 뛰기 싫었지만 이를 악물고 달렸다. 이유는 오직 하나. 나 자신이 과연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내가 알게 된 것은 나 자신이 상당히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이었다. 운동장을 10바퀴를 돌겠다고 생각하고 나서면 7바퀴쯤 가면 자꾸만 내가 왜 뛰어야만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목표한 거리를 빨리 돌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이 강할수록 다리에선 힘이 빠졌다. 일주일마다 거리를 늘려서 한 달 뒤에는 매일 8㎞를 뛸 생각이었는데 결국 3주 만에 달리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자신감은커녕 내가 고작 이 정도 인간밖에 안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운동을 매일 계속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몇 주 뒤, 다시 용기를 내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목표를 세우고 달리면 달릴수록, 날마다 내 상태를 체크하며 문제점을 찾아내려고 하면 할수록 도무지 계속 뛸 수 없었다. 그저 그런 상태만 반복되면 다행인데, 그럴 때마다 자기 혐오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자신을 비난하게 되고 그래서 또 달릴 때마다 자신을 채찍질하게 되고 그 결과는 당연히 다시는 달리기 싫어진다.

    그렇게 뛰다가 말다가를 1년 정도 반복하다가 새롭게 마음먹었다. 이건 순전히 ‘좋은 사람’이라는 일본만화를 보다가 든 생각이었다. 학창시절에 장거리달리기 선수였다가 지금은 도쿄의 스포츠회사에 다니는 주인공이 우연히 고등학교 육상팀 감독을 맡았는데, 그 육상팀이라는 게 오합지졸이다. 그 오합지졸을 데리고 하코네 역전마라톤에 참가했는데, 주인공이 선수들에게 내리는 지시라는 게 가능한 한 천천히 뛰라는 것이다. 그 주인공에게는 달리기란 자신이 즐겁기 위해 뛰는 운동이란 신념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1등을 못 할 것이라면 가능한 한 천천히 즐기면서 달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5㎞마다 페이스 조절해가며 달리던 선수들이 시계는 보지 않고 가능한 한 천천히 뛰었는데, 1위를 한 것이다. 하하하, 하고 나는 웃었다. 역시 만화는 만화다. 그런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장 천천히 뛰는 사람이 가장 먼저 들어가는 세상이라면.

    하지만 그 말은 내게도 해당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는 전문 주자가 아니다. 소설가인 내가 소설 내용을 두고 자학할 수는 있지만, 달리기를 못한다고 해서 자신을 비난할 이유는 없는 셈이다. 한 바퀴만 도는 게 가장 즐거운 일이라면 한 바퀴만 돌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제는 목표를 거리에 두지 않고 시간에 두기로 했다. 대개 건강한 사람이라면 처음 시작해도 30분 정도면 5㎞를 주파한다. 그래서 나는 속도가 느리든 빠르든 30분은 무조건 뛴다는 생각을 했다. 정상적으로 달린다면 5㎞ 정도는 달릴 수 있으니 그렇다고 생각하고 거리는 신경 쓰지 않고 내 편한 대로 달리기로 했다. 하지만 목표가 거리에 있지 않고 시간에 있기 때문에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나는 아무런 부담이 없이 사실은 빠르게 걷는 속도나 다름없을 정도로 천천히 달렸다.

    천천히 뛸 때, 가장 오랫동안, 먼 거리를 달린다

    이렇게 마음을 바꿔 먹으니 매일 뛸 수 있게 됐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얼마간 뛰다가 걷는 한이 있더라도 30분은 채웠다. 비가 오는 날이면 30분 동안은 걸어다니며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도 바라보고 빗소리도 들었다. 섣불리 시간을 늘리지 않았다. 대회를 앞두고서는 1시간까지 늘리기도 했지만, 평상시에는 30분 이상 달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차츰 내가 달리는 속도는 빨라졌고 행복감은 달리는 내내 가득했다. 더 이상 자학하지 않았다. 만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비로소 달리는 일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많은 것을 깨달았다. 소설 쓰기와 달리기는 상당히 비슷한 구석이 많다. 일정한 시간을 계속 투자해야만 하고 지속적이어야만 한다. 그러고 보면 나도 하룻밤에 80매를 쓴 적도 있다. 전혀 안 뛰다가 어느 날 저녁 집에 들어와 6㎞를 달리고 나서는 아홉시부터 뻗은 적이 있듯이. 하지만 궁극적으로 소설을 쓰는 일이나 달리는 일은 스스로 그 일을 즐기면서 지속적으로 일정한 시간을 투자해야만 한다.

    영어로 천천히, 오랫동안, 먼 거리를 달리는 일을 줄여서 LSD(long, slow, diatance)타입이라고 말하는데 참 어울리는 말이다. 강력한 환각제인 LSD처럼 천천히, 오랫동안, 먼 거리를 달리는 일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함께 간다. 천천히 뛸 때, 가장 오랫동안,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다. LSD를 복용해 본 사람만이 그 환각을 경험할 수 있듯이 천천히, 오랫동안, 먼 거리를 달려본 사람만이 이 역설적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되도록 천천히 달리는 것이 가장 오랫동안 달리는 방법이라는 역설적인 사실을 깨달은 뒤로 나는 소설을 쓰는 일도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마라톤대회에 참가를 신청하고 한 달 동안 연습하는 동안에 가장 큰 원동력은 대회에 나가서 낙오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경험상 꾸준히 연습했다면 전혀 힘들지 않다는 사실을 알지만, 연습하는 동안에는 매번 불안하기만 하다. 그래서 스스로 다짐한다. “그래, 기록이 좀 늦으면 어때. 어쨌든 결승점까지는 들어가자.”

    출발선상에 선 선수들은 이미 목표 이룬 사람들

    그러나 막상 대회에 참가하고 나면 달리기의 목표는 대회에서 낙오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매일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출발 신호가 울리기 직전, 사람들이 서로 앞으로 나가려고 밀치는 순간 나는 최고의 행복을 느낀다. 결승점에 들어올 때가 아니라 출발 신호가 울리기 직전에 가장 최고조의 행복을 느낀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은 달리기의 결승점은 연습과 준비가 완전히 끝난 바로 그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회에서의 달리기는? 그건 부록일 뿐이다. 달려보지 않은 사람은 믿기 어려운 얘기겠지만, 이는 실제로 자기 만족감에 달리는 대부분의 주자들이 경험하는 일이다. 꾸준히 연습한 후 출발선상에 선 선수들은 이미 목표를 이룬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록이 좋지 않게 나오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소설을 쓰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 매일 쓰는 과정이 바로 소설 쓰기의 목표다. 보스턴 마라톤은 물론 아테네 전령이 달린 아테네와 마라톤 사이의 원조 마라톤코스도 완주한 경험이 있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로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마라톤을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어렸을 때 나는 그 체력이 역기를 드는 힘과 같은 것으로 착각했다. 그저 소설을 쓰려면 감기 따위에는 걸리지 않고 매일 책상에 앉을 수 있는 정도의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쯤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체력’이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어떤 힘을 뜻한다. 그 힘이 어떤 것인지 이해한 것만으로도 나는 달리기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얻었다.

    나는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다. 내가 혼자서만 달리다가 마라톤대회에 참가할 때쯤 우리나라의 마라톤 인구가 급속하게 늘었다. 물론 주요대회에 일반인들이 참가할 수 있는 마스터스 부문이 1997년경 신설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 마라톤 인구의 증가는 눈부실 지경이다. 이제 대회에 나가 조금만 한눈 팔면 같이 온 동료를 잃어버리기 일쑤다. 지난 동아마라톤 때에는 주자들이 잠실대교를 가득 메워 외국잡지에서나 보던 장관이 펼쳐지기도 했다. 마라톤 인구가 늘었다는 말은 달리는 동안 초코파이를 먹기가 힘들어졌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제 왜 마라톤 따위를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회사나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은 한두 명씩 있어서 이제는 ‘모월모일에 마라톤대회에 참가합니다’라고 말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게 됐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글을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 마니아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마라톤의 진정한 경지를 맛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러너스 피크(Runner’s Peak)’를 아직 나는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마라톤의 세계 운운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그래서 애당초 나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달리기 시작했고 지금도 달리는 일 그 자체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분들보다는 아직 마라톤이 어떤 운동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글을 쓸 작정이었다. 사실 나는 달리기가 무슨 마니아의 영역으로 묶인다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다. 달리기는 음반 수집이나 공포영화 감상과는 전혀 다르다. 누구라도 지금 당장 달리는 그 일 자체를 즐기면서 달리면 되는 운동이다. 마니아라는 단어가 풍기는, 그 배타적이고 전문적인 냄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동기는 내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 겪은 시행착오를 조금은 줄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마라톤 인구가 비약적으로 늘었는데도 관련 잡지는 물론 제대로 된 서적도 하나 없다. 달리기라고 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달리기가 지금 당장 시작해도 어렵지 않을 만큼, 힘든 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해서 지금부터는 조금 먼저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으로서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이런저런 자료를 뒤져 알게 된 몇 가지 지침을 나눠 가지도록 하겠다.

    달리고 싶으면 언제 어디서든 달려라

    나는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마라톤화를 사지 않았다. 집에 있는 운동화를 신고 달렸다. 스니커즈도 괜찮고 천으로 만든 것이라면 캐주얼화도 괜찮다. 하지만 연습할 때는 몰랐는데, 대회에 나갔더니 아주 곤란했다. 어차피 그때쯤 되면 근사한 마라톤화를 하나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처음으로 달리는 사람이라면 집에 나뒹구는 운동화를 신고 나가도 아무 상관없다. 또 너무 근사한 마라톤화를 구입하면 나중에 대회에서 숨을 헐떡거릴 때, 구두 신고 뛰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자괴심이 들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은 자기 회사 구두가 운동화보다 편하다는 사실을 광고하기 위해 구두를 신고 풀코스를 완주하는 제화회사 직원들이다.

    대회에 나가면 정말 근사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괜히 주눅들 필요가 없다. 대개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반바지만 있으면 된다. 주요대회에서는 늘 티셔츠를 한 장씩 미리 주는데, 그걸 입고 뛰는 것도 괜찮다. 이봉주 선수처럼 고글을 쓰고 뛰는 사람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나중에 힘들 때 저 고글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한다. 한번은 땀을 닦을 요량으로 팔에 손목 보호용 고무천을 감고 뛴 적이 있는데, 나중에는 그걸 들고 뛰느라 사소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달리기를 연습하는 곳은 집 앞에서 시작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가 가장 좋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바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도로 사정 때문에, 또 남들 앞에서 달리는 것을 다소 부끄러워하는 심성 때문에 가까운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원칙적으로 달리고 싶다면 어느 곳에서나 달리는 게 좋다. 한번은 치악산에 단풍구경을 간 적이 있었다. 한껏 홍엽을 보고 내려오는데, 치악산 들머리의 아스팔트길이 너무 멋있었다. 뒤쪽 산으로 울긋불긋한 단풍이 장관이었다. 이 길을 달렸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평상복에 캐주얼화를 신고 있었지만, 나는 달렸다. 다른 사람들이야 저 사람이 뭔가 급한 일이 생겼구나고 생각할 뿐,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 기분을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시간이 없어 연습하지 못했을 때는 은행이나 지하철역까지 슬슬 뛰어가기도 한다. 운동화를 신고 다니면, 그리고 옷을 껴입은 겨울만 아니라면 사실 언제 어디서라도 뛸 수 있다.

    사실 언제 뛰는 게 가장 좋다는 것도 없다. 물론 아침 식전에 뛰는 게 제일 좋다.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는 일을 즐긴다면 아침이든 저녁이든 상관없다. 다만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식사한 뒤에 바로 뛰는 것은 좋지 않다. 특히 우리가 먹는 쌀밥은 복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식후는 되도록 피하고 어느 때나 달리면 된다.

    척 코넷이 제안한 ‘30/30법칙’

    일단 처음에는 걷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걷다가 조금 익숙해지면 조깅을 시작한다. 조깅이란 최대한 천천히 달리는 일을 뜻한다. 조깅하다가 힘들면 다시 걷는다. 걷다가 편안해지면 다시 조깅한다. 처음 나섰을 때 가장 중요한 일은 최대한 천천히, 걷는 속도와 거의 비슷할 만큼 천천히 달리는 일이다. 목표를 정해놓고 달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흔히 달리기에 처음 입문한 사람들은 한 사흘 빨리 달린 뒤에 지쳐버리는 일이 많다. 무조건 달린다고 해서 달리기에 재미를 붙이지는 못한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미국의 마라톤코치 척 코넷이 제안한 ‘30/30법칙’을 소개할 만하다. 내가 몇 년간의 경험으로 깨달은 바를 이 사람은 아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놓았다. 우선 처음 30일간은 30분만 달린다. 집을 나서서 15분간 한 방향으로 뛰어간 뒤, 다시 15분간 집으로 되돌아온다. 처음 10분간과 마지막 5분간은 무조건 걸어야만 한다. 중간의 15분을 조깅하거나 달린다. 이때는 자기 편한 대로 달려야만 한다. 절대로 ‘이 정도는 달려야지’라거나 ‘이거 너무 늦은 거 아니야’ 따위의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15분간 뛸 때도 처음에는 30초간은 걷다가 30초간은 뛰는 일을 되풀이하는 ‘30/30법칙’을 준수하라고 척 코넷은 말한다. 화끈한 것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지루한 연습방법일지 모르지만, 달리기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달리기를 즐기는 단계로 접어드는 데는 반드시 필요한 연습법이다.

    이 단계가 지나면 조금씩 달리는 양을 늘린다. 예컨대 45초 달리고 30초 걷다가 60초 달리고 30초 걷는 식으로 말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날마다 다른 거리를 달리는 일이다. 하루를 많이 뛰었다면 그 다음날은 조금 적게 뛰는 식으로 거리를 조정한다. 이런 방법은 앞으로 계속할 연습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니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익혀둘 필요가 있다.

    이상이 처음 달리기에 입문하는 사람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사항들이다. 이 이후에는 더 전문적인 훈련법이 있지만, 어떤 것이나 중요한 것은 결코 괴로워하며 뛰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실 달리기는 뛰겠다고 생각만 하면 이미 시작한 셈이다. 지금 운동화가 있다면 주워 신고 천천히 달려보라. 전혀 새로운 세계가 떠오른다. 지금까지 80매를 썼지만, 아무리 말해도 직접, 천천히 달려보지 않으면 전혀 볼 수 없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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