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내해인 에게바다는 일찍이 시인 호메로스가 말했듯이 포도주빛 바다다. 그것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농담(濃淡)을 조금씩 달리하기에 오묘하기 그지없다. 그 포도주빛 바다 위로 배가 지나가면서 하얀 포말이 이는데, 아름다운 반라(半裸)의 여인이 갑판을 오가기라도 하면 참으로 로맨틱한 풍경이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에게바다에는 777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떠 있다. 이 섬들은 크기는 각기 달라도 하나같이 경사가 가파르다. 그 언덕 위에는 집들이 들어서 있는데 모두가 그림같이 아름답다. 어느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도 완벽한 풍경화, 정물화가 된다.
집의 구조는 아주 단순하다. 사각 평면에 돔형 천장, 그리고 햇빛을 반사시키기 위한 하얀 페인트칠, 간혹 멋을 내느라 노랑, 빨강, 하늘색 등으로 창이나 문을 칠하거나 항아리에 꽃을 담아두는 것, 그게 전부다. 그리고 집 앞에는 반드시 테라스가 있다. 바다를 바라보고 태양을 즐기며 여유롭게 커피나 아이스 티를 마시기 위해서다.
한때 이 땅에서도 유행했던 칸소네 ‘카사 비앙카(하얀집)’를 연상시키는 에게해의 집들은 이렇듯 언제 보아도 정겹고 평화롭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흔히 ‘에게해의 진주’라 부르는 산토리니섬과 나그네의 향수를 달래주기라도 하려는 듯 5개의 커다란 풍차가 언덕을 점령하고 있는 미코노스섬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에게 제일의 관광지다. 섬에는 ‘호텔’ ‘인’ ‘펜션’ ‘스튜디오’ ‘아파트’ 등의 이름을 가진, 크기와 설비와 분위기가 다른 다양한 숙박시설이 즐비하다.
그런데 길은 좁다. 차가 빵빵거리면서 달릴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자전거만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다. 옛날 해적들이 날뛰던 시절, 그들이 쉽게 찾아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골목을 좁게 했다는데, 나그네의 눈에는 그게 그렇게 아기자기해 보일 수가 없다.
하얀집은 모두 벽이 두껍다. 그리고 창이 작다. 태양이 내리비치는 밖은 가마솥같이 뜨거워도 집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금방 시원해진다. 바다가 가까이 있어도 원체 건조한 곳이라 햇볕을 피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늘 닫혀 있는 집
그러나 벽이 두툼하고 창이 작은 집이 에게바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건조한 바다’ 지중해 일대가 다 그런 집들로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카사 비앙카의 고향 이탈리아 반도는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 남부, 스페인, 포르투갈 또한 그렇다. 이들 지역에서도 골목은 어김없이 좁다. 사람이 다녀야 하는 골목에 그늘을 드리우기 위해서다. 에게 지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붕 위에 얇은 기와를 얹는다는 정도다. 비가 적게 내리기에 기와가 두꺼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붕의 물매도 완만하고 그 선도 직선에 가깝다.
그리스 북쪽의 발칸반도나 이탈리아 북부지방으로 올라가면 기와는 조금 두꺼워지고 색깔은 흰색 계열에서 황적색으로 바뀐다. 그러다가 알프스를 넘어서면 회색 또는 검은색이 된다. 그렇지만 건축 재료는 여전히 벽돌 아니면 돌이다. 콘크리트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비율을 차지한다. 그 두꺼운 건물외벽이 담장 노릇을 하며 당당히 길과 맞서고 있다. ‘파티오(patio)’라 부르는 사각 마당은 그 속에 있으면서 집과 집을 잇는 통로 구실을 한다. 그렇긴 해도 닫혀 있다는 인상을 지우진 못한다. 그렇다면 왜 유럽의 집은 닫혀 있는 것일까.
비가 적게 내리는 곳에선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다. 따라서 집은 대개 돌이나 벽돌로 짓게 된다. 그것들을 한 장 두 장 차곡차곡 쌓아서 짓는 그곳의 집은 벽이 두터울 수밖에. 더욱 중요한 것은, 건조한 지역은 땅의 생산성이 낮기에 자체 생산물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지에서 생필품을 사오거나 뺏어와야 한다. 상업과 약탈, 그리고 전쟁이 주로 건조지대에 사는 민족들에 의해 자행됐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늘 셈을 해야 하고,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그들의 집은 마음놓고 쉬기 위해서라도 외부의 위해를 막아내는 구조를 취해야 했다. 이런 가옥 형태의 대표적인 예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푸에블로(Pueblo)’라 불리는 아도베(adobe)집을 들 수 있다. 이곳 역시 건조지대다.
‘푸에블로’란 스페인어로 ‘마을’이란 뜻. 수렵 채취 상태에서 벗어나 농사를 지으며 마을을 이루고 정착생활을 하는 인디언들을 일컫는 말로 쓰였는데, 그것이 후일 그들의 전형적인 주거형태까지 가리키게 됐던 것이다.
푸에블로는 아파트의 원형?
푸에블로의 고전적 형태는 미국 콜로라도주 남쪽의 메사 베르데(Mesa Verde)-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로 유적에서 볼 수 있고, 그보다 남쪽인 뉴멕시코주의 타오스(Taos)-이곳도 세계문화유산이다-엔 지금도 그들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다층구조의 푸에블로가 2동이나 남아 있다.
황갈색 두꺼운 벽체에다 좁은 출입문, 극히 절제된 창, 사다리를 타고 지붕을 올라 위층으로 오를 수 있는 특이한 구조, 연기마저 지붕 위의 작은 출입구를 통해 빠져나가게 한 철저한 차단구조는 이 집이 외부 침입을 막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시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이 독립가옥보다 아파트 구조를 연상시키는 공동가옥을 짓게 된 가장 큰 원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듯 지붕은 편평하여 성냥갑 모양이다. 이런 모양새의 푸에블로들이 타오스 시내는 물론 그 남쪽의 현대도시 산타페(Santa Fe)까지 온통 뒤덮고 있다. 일반주택뿐 아니라 교회, 화랑, 최고급 아파트도 푸에블로 양식이다.
푸에블로에서 놀라운 것은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르내릴 때만 사다리를 사용하고는 재빨리 치워버리기 때문이다. 그만큼 철저하게 외부 침입에 대비했던 것이다. 공동주택을 일컫는 아파트(apartment)란 말이 푸에블로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왜 인간 관계를 단절하는지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공동주택은 아니지만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원주민들도 위층에 출입할 때만 사다리를 사용하고는 곧장 치워버린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인공적인 것이라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펼쳐지는 아나톨리아 고원을 달리다가 문득 지평선의 고요를 깨뜨리며 다가오는 카파도키아. 먼 옛날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출된 부드러운 화산재가 세월이 흐르는 사이 뜨거운 낮과 차가운 밤의 일교차, 혹서와 혹한, 비바람의 풍화작용으로 얼었다가 풀리며 씻기고 다듬어져 아주 기묘한 풍경을 연출하는데, 그 기묘한 돌기둥 속을 파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금도 ‘변화중’인 이곳이 2000년 가까이 삶의 터전으로 쓰였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역사는 기독교가 아직 공인을 받지 못했던 시절, 박해를 피하고자 했던 기독교인들이 쉽게 지하공간을 만들 수 있는 이곳을 신앙의 도피처로 삼으면서 시작됐다. 카파도키아의 중심도시 괴레메(G쉜eme)에서 얼마간 떨어져 있는 7층 구조의 지하도시 데린쿠유가 그 좋은 물증으로 남아 있다.
방어와 프라이버시 보호 완벽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교회는 웬만큼 지상으로 올라왔으나 여전히 동굴 속을 벗어나진 못했다. 굵은 돌기둥 속을 파내 내부공간을 만든 다음,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해서는 예배 공간으로 삼았던 것이다. 기묘한 경관을 가진 괴레메는 시대를 달리하여 지어진 이런 건축물 덕분에 세계자연유산이면서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
괴레메에서 과히 멀지 않은 우치사르란 곳은 마을 전체가 커다란 원뿔형 돌기둥으로 되어 있고 집은 그 속에 자리잡고 있다. 문이 돌기둥 중간쯤 되는 높이에 있어 그곳으로 오르려면 사다리가 필요할 텐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푸에블로와 마찬가지로 사다리는 필요할 때만 내렸다가 곧장 걷어들이기에 그런 것이다. 그러니 집 안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집주인의 승낙을 받아야 한다. 이곳 역시 외부의 위험에 대비했던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별다른 공간구획이 없는, 그래서 커다란 홀처럼 생긴 공간과 만나게 된다. 바닥은 원형이고, 천장은 높은데다 돔 구조라 쾌적하기 이를 데 없다. 문과 창이 작아 어둡지만 빛이 그런 작은 창을 통해서만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매우 강렬하다. 사뭇 성스러운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물론 그들도 등불을 켠다. 참으로 매혹적인 것이 바로 이 등불이다. 한밤, 그 등불빛이 바깥으로 새나오는 환상적인 광경을 본다면 누구나 무릎을 칠 것이다. 그들은 카펫이 깔린 이런 방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잘 뿐만 아니라 빵을 굽고 카펫도 짠다. 그들에게 방은 곧 집인 것이다. 그만큼 방은 다용도로 쓰인다.
카파도키아인들처럼 부드러운 흙을 파내 그 속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 사는 사람들은 튀니지의 산악지대,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지역, 중국 서북부의 건조한 황토지대에서도 볼 수 있다.
중국에선 깎아지른 듯한 황토 벼랑의 단면에 새긴 이런 가옥을 ‘요동(窯洞)’이라고 부르는데, 정저우(鄭州)에서 뤄양(洛陽)으로 가는 길 주변과 옌안(延安)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중국 공산당이 대장정의 마지막 종착지로 삼았던 옌안의 요동이 국민당군에 쫓기던 그들에게 안전한 은신처가 되어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건조지대의 집은 이렇게 닫혀 있다. 그래서 안전과 프라이버시는 완벽하게 보호된다. 그들이 일찍 노크(knock) 문화를 만들어낸 것도 그렇고, 초대하지 않은 사람이 불쑥 찾아오는 것을 가장 무례한 행위로 받아들이는 것도 다 이런 사정에 연유한다.
그러나 방어기능에 충실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효과적으로 지켜준다고만 해서 집으로서 기능을 다한다고 할 수는 없다. 카메라는 사진이 잘 나오면 되고, 자동차는 안전하고 빠르게 달리면 일단 합격이지만 집은 그렇지가 않다. 집은 매우 넓은 활동영역을 가진 인간의 삶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몇몇 특정한 기능을 잘 해낸다고 해서 반드시 집의 ‘성능’이 좋다고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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