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라톤은 섹스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고 나면 온 몸이 땀 범벅이 되고 진이 다 빠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농담이고, 경험해보기 전에는 그 황홀감이 어떤 건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섹스를 해봤다고 해서 남들에게 권하지 않지만, 마라톤은 자꾸만 권하게 된다는 것. 하지만 입이 마르게 아무리 설명해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게다가 마라톤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개는 거부감을 가진다. 마라톤에 관심이 있다면 이 거부감을 잘 이해해야만 실제로 달리기를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왜 달리기를 싫어할까
일반적인 한국 사람은 달리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예비군 통지서를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논리적으로 말하기 이전에 우선 본능적으로 몸이 거부감을 갖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마라톤대회에 참가해서 한번 달려보라고 권하는 과정에 그 거부감을 경험한 나는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달리기에 빠진 사람들의 첫번째 증상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보라고 권한다는 점이다. 나 역시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주위 사람들에게 달리기를 권했다. 그런데 막상 달리기를 권하면 대부분 거부감을 표시한다. 한번 달려보겠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나마 매일 달리면서 연습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왜 한국사람은 달리기를 싫어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한 친구가 말한 첫번째 해답은 양반문화가 잔존하기 때문이라는 것.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은데 굳이 달려봐야 하는 이유가 뭐냐는 얘기인데, 양반과 거리가 있는 사람들도 달리기는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그다지 설득력 있는 것 같지 않다. 내가 간신히 끌어낸 두 번째 해답은 잘못된 우리나라 체육교육에 그 원인이 있다는 점이다. 나 역시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스물다섯살 이전까지 달리기라면 치가 떨리는 몇몇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시절까지 내가 기억하는 달리기는 대학 입학시험을 앞두고 숨이 턱에 차오를 지경까지 달려야만 하는 오래달리기와 웃통 벗고 눈 맞으며 달려야만 하는 군대의 전투구보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건강에 좋다지만, 왜 그 고역을 사서 한단 말인가? 하긴 입시체육, 군대체육의 대명사인 오래달리기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해답도 뭔가 좀 부족했다. 그렇다면 이제 강요하는 사람도 없으니 즐기면서 달릴 수 있지 않은가? 실제로 나 역시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 그랬다. 운동화끈을 묶을 때만 해도 구보에 끌려가는 것처럼 싫었다. 하지만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고 혼자서 달려나간다는 그 쾌감에 빠진다. 그러는 동안 오래달리기와 전투구보는 달리기와는 전혀 다른 운동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은 쉽게 달리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달려본 사람만이 안다
또 뭐가 부족한 것일까? 그 중요한 원인을 나는 오늘 ‘전주-군산 마라톤’ 중계방송을 보다가 깨달았다. 한동안 대회에 나가느라 마라톤 중계를 보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중계를 보게 됐다. 원래 마라톤 중계를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가뜩이나 어제 경주벚꽃마라톤에 참가한 장인이 기록을 단축했다는 소식을 전해온 터라 더했다. 그런데 중계를 보는 과정에 점점 그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조폐공사 형재영 선수가 달리는 내내 나는 과연 그가 동아마라톤 우승자인 정남균 선수의 기록을 깰 것인지 조마조마했다. 왜냐하면 형재영 선수가 정남균 선수보다 좋은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한다면, 2000년 시드니올림픽대회 출전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35㎞까지의 기록으로 볼 때는 아슬아슬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 화면을 바꿔 느릿느릿, 몇몇은 걸어서 결승점을 통과하는 일반 참가자들을 보았을 때다. 그 모습을 보자 조마조마하던 긴장감이 풀렸다. 미안한 얘기지만, 형재영 선수는 하나도 안 부러웠는데 그 일반인들은 너무나 부러웠다. 반드시 올림픽출전권을 따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달리는 마라톤이라면 나는 사양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나운서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나운서는 계속해서 형재영 선수가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둥, 그런 속도로 뛰어간다면 정남균 선수의 기록을 깰 수 있다는 둥의 멘트를 계속했다. 내가 예상시간을 계산해본 것 역시 그런 멘트 탓이었을 것이다. 마라톤을 직접 해보지 않았다면 나도 형재영 선수가 그런 자세로 결승점에 들어가 정남균 선수의 기록을 깰 수 있을지 없을지 초조해하며 지켜봤을 것이다.
하지만 마라톤은 전혀 그런 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나는 그런 마음을 버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게 달리기의 즐거움을 잠시나마 잊게 한 그 중계방송을 원망했다. 만약 마라톤이, 그 아나운서가 형재영 선수에게 말하는 것처럼 10초를 단축하지 못해 아깝게 탈락했다고 결론짓는 운동이라면 애당초 마라톤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전문선수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있지만, 나는 이런 식의 태도가 일반인들이 달리기를 꺼리게 만드는 대표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첫걸음은 ‘인간승리 환상’에서 벗어나기
초코파이 세 개를 모두 챙겨먹고 나서도 기진맥진해서 사지를 비틀며 결승점에 들어간 뒤에야 나는 마라톤을 일러 인간승리니 뭐니 하는 말이 수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승점에 들어가면 항상 다리가 풀려서 빨리 결승점에서 나가라는 진행요원들의 핀잔을 듣기 일쑤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마라톤이 어려움과 고난을 이기면서 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려가는 운동이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사실 그렇게 멋진 게 아니다. 다리는 당장이라도 뒤틀릴 것 같고 물집 잡힌 발바닥은 화끈거린다. 그래도 웃음이 실실 나올 정도로 행복하다. 그 행복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무지 난감하지만 어쨌든 ‘자신을 채찍질’ 운운하는 것은 순전히 거짓말이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일은 바로 이런 식으로 언론이나 영화가 만들어낸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지난 동아마라톤은 하프코스 이상만 신청을 받았는데도 8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침 일찍 광화문에 모였다. 그 사람들이 자기를 채찍질하며 인간승리를 맛보기 위해서 모였다고 하면 자학도 그만한 자학이 없을 것이다. 물론 자학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막상 참가신청을 해놓고서는 연습을 하나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고통이 없다. 하지만 하프코스 이상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은 대개 매일 5㎞ 이상 달리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행복에 겨워 달리기를 한다. 거짓말 같지만 정말 그렇다.
내가 마라톤을 모든 운동 중에 최고라고 생각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마라톤은 달리는 사람 모두가 승자다. 결승점까지만 들어가면 모두에게 기록증이 주어진다. 순위를 매기는 대회도 있지만, 순위를 매기지 않는 게 보통이다. 작은 대회에서는 직접 기록증을 작성하게 한다. 그럴 때면 모두가 당당한 표정으로 자신의 정확한 기록을 써내려간다. 잘하지 못했을 때도 그렇게 뿌듯하기만 한 일은 마라톤밖에 없는 듯하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든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승부욕, 인간승리 따위의 단어는 깡그리 잊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라톤은 즐겁기 위해서 달리는 운동이다. 전혀 즐겁지 않다면, 그 순간 달리기를 멈춰야 한다. 다른 운동은 어느 정도 기술을 익혀야만 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데, 마라톤은 즐거움을 맛볼 줄 아는 게 바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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